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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67화 (467/651)

제467화: 사냥(1)

맥보란은 사라지는 권총수를 무거운 얼굴로 바라보더니 길게 한숨을 쉬며 커피잔을 들었다.

그때 근처에서 손님처럼 앉아 커피를 마시던 한 명의 사내가 권총수가 앉았던 자리를 차지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맥보란을 지키는 요원 케빈이었다.

케빈은 커피를 마시는 맥보란을 살피듯 보았는데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술을 우물거렸다.

하지만 끝내 아무말을 않고 맥보란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흐흠!”

맥보란은 입술을 물었다.

이마에 주름까지 생기는 걸 보면 좋은 방법이 아직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막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잘못하면 중국군이 이라크에 주둔할 수 있는 빌미를 주게 됩니다.”

맥보란은 잠시 앞으로 숙였던 상체를 반듯하게 세웠다.

“캡틴의 의지는 누구도 막지 못해.”

“놔두겠다는 겁니까?”

“캡틴을 완전히 죽여 없앨 자신이 없다면 그와 친구로 살아가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이지.”

어떤 일이 있어도 권총수와 원한을 맺어서는 안된다는 뜻이었다.

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권총수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보았다.

“지금부터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요원들은 블랙잭 지원이 최우선 임무일세.”

정보기관의 체계는 군대와 똑같다.

상사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케빈!”

“예 팀장님!”

“M200 한 자루 구해 캡틴에게 전달해주게.”

“M200을!”

“캡틴에게는 신체의 한 부분인 총이야. M200을 쥘 때가 가장 편하다더군.”

M200 샤이텍은 미군 저격소총중 하나다.

정확한 이름은 샤이엔 텍티컬 M200 인터벤션(Cheyenne Tactical M200 Intervention)이다.

일반 저격총의 유효사거리가 1,500미터를 전후하는 것에 비해 M200샤이텍은 2,000미터를 훌쩍 넘는다.

14킬로를 웃도는 다소 무거운 점이 저격수의 체력을 저하시키긴 하지만 권총수에게는 가장 적당한 총이었다.

현재 이라크에 미군이나 정보국에서 확보하고 있는 M200은 없다.

즉 아리크 바깥에서 가지고 들어와야 하는데 케빈이 총기에 관한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언제까지 입니까?”

“빠를수록 좋네.”

케빈은 망설이지 않고 커피숍 밖으로 걸어갔다.

혼자 남은 맥보란은 커피를 마시며 중얼 거렸다.

‘운명이라고 했지. 운명.’

권총수는 당신과 내가 중동의 전장에서 만난 것이 운명이라고 했다.

운명이 무엇이냐고 묻자 권총수는 씨익 웃으며 잘 모른단다.

다만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어떤 정해진 길을 간다는 것이었다.

그 정해진 길이 운명이라고 했다.

‘내가 당신을 미워 할 수 없는 지금 이 심정까지도 운명 속에 들어가는 건가’

권총수는 적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군이냐고 묻는다면 이 또한 맞다는 대답을 하기가 쉽지않은 애매한 관계이다.

좀 더 적극적인 관계를 만들어보기 위해 다가서면 접근한 거리 만큼 멀어진다.

운명은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면 받아 들이고 떠나가면 그냥 놔주고 바라보는 것이란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느꼈고 지금은 확신한다.

계속 권총수를 도와야 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맥보란은 커피를 마셨다.

“사막의 석양도 아름답군.”

때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세 사람이 움직였다.

차는 이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도보 행군이다.

맨 선두에 권총수가 섰다.

그 뒤에 정윤수였고 맨 뒤에는 오민철이 따른다.

정윤수는 자신의 체력에 자신감을 갖고 뒤에 서겠다고 했으나 권총수가 말렸다.

장거리 야간행군에서 체력적으로 떨어진 사람을 뒤에 두면 놓치기 쉽다.

모든 신경을 앞에만 두고 가다보면 낙오해도 모를 수가 있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듯 불편한 표정을 짓던 정윤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말이 안된다’

가운데에서 걸어가는 정윤수는 연신 손등으로 흘러내리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대표님이야 신비한 힘이 있으니까 그렇다 치지만 이사님까지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걷는다’

뒤를 따라오는 오민철의 발걸음이 일정하면서도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자 정윤수는 스스로가 답답했다.

‘이사님은 나이도 나보다 훨씬 많은데.’

특전사 전역후에도 경찰 강력반 특채였기 때문에 몸 관리가 제일 중요했다.

태권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계룡산을 뒷동산 오르듯이 다녔다.

나이가 들었지만 체력에서 만큼은 현역시절에 못지 않다고 자부하는데도 도무지 따라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팀장이다.

학!

허헉!

숨소리를 밖으로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기침하듯 한 번씩 터져나온다.

“오 분간 휴식.”

권총수가 길가 바위에 걸터앉았다.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 혹여 있을 지도 모를 흑룡중대 순찰병들을 의식해 야산을 통한 이동이었다.

그로인해 체력소모가 크다.

세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앉아 쉬었다.

정윤수는 자신만 헐떡거리는 것이 창피했다.

“정중사!”

오민철이 불렀다.

길게 보면 특전사 선배다.

“10년을 전쟁터에서 뒹군 우리야. 자네 체력이 저질이 아니라 우리가 뛰어난 거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운동선수와 전장의 군인은 사기로 먹고 산다.

모래폭풍이라는 예상 못한 자연재해를 밀고 들어온 설표돌격대를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 했다.

그러나 패배는 무조건 지휘관의 책임이기에 그동안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권총수나 오민철이 질책을 하지는 않았지만 팀원들을 잃었다는 건 큰 충격이었다.

아직도 가슴 한 구석이 바늘로 쑤시는 듯 아파왔다.

넷 모두가 가정이 있는 아빠들이다.

그렇다고 기혼자의 목숨이 미혼자보다 중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자꾸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힘없이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정윤수를 모를리 없다.

그런 그를 야간 행군에서까지 비참하게 만들면 안된다.

그때 오민철에게 권총수의 전음이 왔는데 정윤수의 마음을 다스리고 토닥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너무 오랜 시간 괴로워 해도 좋지 않다.

이제 그만 정윤수의 기를 살려야 한다.

“일상다반사라는 말 있잖아. 모든건 흘러가고 흘러오는 거라더라고.”

오민철의 말에 정윤수가 빙긋 웃는다.

모든 걸 털어 버리라는 뜻이다.

진심에서 우러난 위로가 아니라면 이렇게 따뜻한 말이 나올 수는 없다.

정윤수가 웃으며 분위기는 가벼워졌다.

권총수 역시 정윤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는데 툴툴 털고 잘해보자는 뜻이다.

어둡다.

오민철은 바라일 시가 언뜻 고향 벌교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규모도 엇비슷했다.

유프라데스강 지류의 하나인 작은 샛강이 있고 그 위로 시멘트로 된 다리 하나가 지나간다.

좌우 강둑으로 제방 도로가 만들어져 있고 크고 작은 말뚝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햇빛을 가리는 파라솔을 단단하게 고정하는 말뚝이다.

즉 낮에는 둑방에 시장이 형성되는 것 같았다.

작은 샛강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눠진 바라일을 산중턱에서 내려다 보던 권총수가 눈에서 야시경을 뗐다.

“무전기 오픈하고 대기해.”

권총수가 일어나더니 쉭 하면서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정윤수는 눈을 부릅뜨고 보려고 했지만 권총수의 모습은 더이상 볼 수가 없었다.

“신법이라는 것이지.”

“신법?”

“권대표는 소림의 제자야. 소림의 무공을 많이 알고 있어.”

정윤수는 눈을 깜빡 거렸다.

실감나지 않는 듯 했다.

권총수는 바라일 도심으로 들어가는 37번 도로를 따라 쭉 이동했다.

좌우로는 모두 밭이다.

옥수수 수확이 끝나고 비쩍 마른 줄기들만 서 있었다.

권총수는 그런 옥수수 줄기 사이로 이동하고 있어 완벽하게 은폐가 되고 있었다.

잠영술도 있고 보법을 펼쳐 접근할 수도 있지만 야시경을 피할 수는 없다.

즉 체온을 가진 살아 있는 동물은 적외선 감지기를 무력화 시키지 못한다.

아무리 빨라도 사람형태가 아닌 점의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관측병이 그냥 넘어갈 리 없다.

더욱이 상대는 사막의 흑새가 지닌 역량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야시경에 어떤 의심스러운 신호가 보이면 즉시 비상태세에 들어 갈 것이었다.

스으으!

한 자락 미풍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권총수의 모습이 나타났다.

땅에 내려선 권총수는 옥수수밭 두렁을 이용해 시내로 들어가는 길로 바짝 접근해 들어갔다.

어둠이 더욱 그의 안광을 빛나게 했다.

‘인기척!’

권총수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오십여 미터.’

어둠속을 관통하는 권총수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인기척이 있는데 사람이 있을 만한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파팟!

권총수가 놀란다.

적은 땅속에 숨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초소는 적의 직사화기나 곡사화기로부터 피하기 위해 모래주머니나 벽돌 따위를 지상에 쌓아 올려 만든다.

그런데 지금 오십 미터 전방에는 분명히 인기척이 있지만 초소로 보이는 엄폐물 따위가 보이지 않았는데 그건 적이 지하로 땅을 파고 숨었기 때문이었다.

땅을 파고 숨게 되면 일단 들어오는 상대가 알아차리는데 어렵다.

평평한 지면으로 보일 뿐 그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이 근접거리까지 다가서기 건에는 육안으로 선뜻 관측되지 않는다.

방어자의 입장에서는 맨 땅을 파야하기 때문에 모래포대나 벽돌 따위로 쌓아 올리는 초소보다 구축하는데 훨씬 힘들긴 하지만 경비초소로써의 효과는 크다.

특수부대 요원들이 야전 훈련에서 나무나 바위를 이용한 엄폐가 아닌 비트(비밀 아지트)를 파는 이유도 다 같은 것이다.

땅위에 뭔가를 쌓거나 짓는다는 건 눈에 먼저 띌 수밖에 없다.

스으으!

권총수의 몸이 떠올랐다.

야시경을 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가시권을 벗어나야 한다.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60미터 가까이 솟구친 권총수는 수평으로 날아갔는데 능공허도에 초상비를 섞었다.

두우웅!

권총수는 허공에 멈췄다.

발 밑 아래에 다섯 명이 있는데 깊이가 10미터 정도 되는 지하 통로였다.

깊이는 1미터 50정도 되었는데 길 위로는 어떤 공격무기도 내놓지 않았다.

‘QTS-11’

중국 인민해방군 육군의 제식 소총이다.

유효사거리는 러시아의 AK-12보다 앞서지만 연사능력에서는 떨어진다.

하지만 중국군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현대식 돌격소총이며 또하나 육중한 무기 두 정이 시선을 끌었다.

QJG-02, 중국군 중기관총이다.

서방의 중기관총에 버금가는 위력을 갖고 있으며 유효사거리 1,500미터에 1분에 700발을 쏟아 붓는다.

웬만한 장갑차는 벌집을 만들어 버릴 만큼 강한 중기관총이다.

스으으!

허공에 떠 있던 권총수의 신형은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오민철과 정윤수는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채 권총수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지면서 정윤수는 불안한 표정이다.

오민철에게 권총수의 금강부동신법이 아무리 빨라도 총알을 넘어설 수 없고 호신강기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하지만 강력한 총기 앞에서는 오래 버터지 못한다고 했다.

즉 현대 무기 앞에서는 쓰러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불안한 얼굴을 하는 것이었다.

“헛!”

정윤수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권총수가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표님!”

권총수는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바위에 등을 기댔다.

“비트 형태의 지하 통로를 구축했어. 경계 초소치고는 무장상태도 좋고, QJG-02 두 자루를 갖고 있어.”

오민철의 표정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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