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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66화 (466/651)

제466화: 사람을 죽이는 법(2)

샤토라는 나시리아에서 동쪽으로 25킬로 떨어진 조용한 마을이다.

그곳에서는 지금 한참 터널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핸들을 잡은 아지지와 조수석의 타레미 과장은 오늘 관리감독 할 구간에 대해 얘길 나누고 있었다.

서류 가방을 들고 뒷좌석에 탄 아즈문은 유리를 조금 내리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침 일찍이지만 사막의 태양은 이미 불덩이가 되어 있었다.

타앙!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아지지와 타레미 과장 모두 총성을 들었을 텐데도 밖을 바라보거나 놀라는 표정 따위는 없었다.

이 지역에서의 총성은 새로운 일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든지 발생하고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일 뿐인 듯 했다.

그들은 하던 얘길 중단하지 않았는데 뒤에 앉은 아즈문 역시 표정 변화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화약작업을 하기 위해 터널 벽에 많은 구멍을 뚫었다.

뚫린 구멍 속에 발파용 화약을 넣고 연결된 선을 길게 늘어 뜨린 후 발파기에 연결한다.

그리고 발파 스위치를 누르면 굉음과 함께 흙과 돌들이 무너지고 버력(무너진 암석들)은 덤프에 실려 밖으로 나가면서 터널은 조금씩 전진한다.

물을 뿌리며 작업을 하는데도 먼지는 자욱했다.

시청 환경과 직원들은 터널 밖으로 빠져나오는 먼지의 강도와 소음, 폭발로 인해 인근 마을에 미치는 여러 가지 영향을 상세히 체크하고 살피기 시작했다.

현장 소장 가오홍은 타레미 과장과 악수를 나누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 환경과 직원들의 조사는 그다지 엄격하지 않다.

여기 또한 많은 봉투들이 수시로 거래되면서 좋은게 좋은 것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오늘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에는 타레미 과장의 인솔하에 자세히 측정하고 조사하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그가 보이지 않는다.

현장 소장 가오홍과 같이 사무실로 들어가 그들이 끓여주는 보이차를 마시며 노닥거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바깥에서 검사하는 아지지 또한 모든 것이 형식적이다.

단지 어제와 오늘 일에서 차이점 한 가지가 있었다.

새로온 아즈문이 측정이나 검사 대신 터널 안과 밖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중국 노동자들 누구도 아즈문의 그런 행동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즈문은 바쁘게 움직였다.

현장 곳곳에서 휘날리는 먼지를 측정했고 소음데시벨 측정기를 이곳저곳으로 들고 다니며 수치를 살핀다.

보통 감독기관에서 나와 위법 사실이 있는지 확인 조사할 때 현장 관계자가 수행하거나 따라다니며 질문에 대답을 하고 협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즈문 곁에는 그림자도 없다.

그건 환경과 직원들과 현장 소장과 아주 밀착되어 있음을 의미했다.

한참 조사를 하던 아즈문이 아까시나무가 만들어낸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없다’

아즈문은 권총수의 변장한 모습이다.

나시리아 경찰서 작전과장 나흐얀의 도움으로 환경과 직원으로 들어가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하여 살펴본 결과 하나같이 노동자들일 뿐이었다.

노동자와 고도의 훈련을 한 특수부대원은 금방 차이가 난다.

아무리 옷으로 감추고 작업도구로 숨긴다고 해도 그냥 알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단 한 명의 특수부대원도 이 현장에는 없다.

과일가게 주인 하지사파는 이곳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회사 완커 소속의 노동자들로 회색의 반팔 작업복 차림이라고 했다.

“음!”

권총수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갑자기 머릿속에 혼란이 온 것인데 쉽게 풀릴 것으로 여겼던 상황이 꼬인 느낌이다.

‘저들과 같은 복장인데 여기에는 없다’

그건 어떤 의미일까.

지이잉!

그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어딥니까?”

맥보란이었다.

오늘 나시리아로 온다는 연락은 받았다.

“공사 현장입니다.”

맥보란도 이미 블랙잭을 공격한 민병대의 복장이 이곳 완커 현장 노동자들과 동일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어떻습니까?”

단서를 찾았느냐는 질문이었다.

“지금 상태에서는 실패입니다.”

예상이 빗나갔다는 뜻이다.

“돌아오면 전화 주십시오.”

맥보란이 전화를 끊었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한 번 현장을 샅샅이 뒤져볼 생각이었다.

없다.

이곳 현장 노동자는 500여명이다.

중국에서 온 기술자들이 200여 명이고 나머지는 이 지역 이라크인 잡부들이었다.

과일가게 주인 하지사파가 거짓말 할 리는 없다.

블랙잭을 노리고 있는 설표돌격대의 집결지(근거지)는 이곳이 아니다.

오후 3시쯤이 되어서 시청으로 돌아왔다.

차는 돌아왔지만 내리는 사람은 과장 타레미와 운전사 아지지 둘 뿐이었다.

권총수는 중간에 내린 것이다.

원래 얼굴로 돌아갔지만 머리에는 여전히 페즈를 쓰고 있었다.

모자를 벗지 않은 건 중동생활의 오랜 경험 때문이다.

그들은 외국인일 지라도 이슬람 복장을 간단하게나마 갖추면 상당한 친근감을 드러낸다.

그들도 중국을 포함한 동북 아시아에서 무슬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어떤이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순교자라고까지 칭송한다.

호텔 커피숍을 들어서던 권총수는 멈칫했다.

머리에 흰색의 터번을 두르고 금테 안경을 낀 사내가 유유자적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누가봐도 어느 사원의 이맘(예배를 이끄는 사람)정도 되는 위치로 보일 만큼 단아하면서도 품위가 느껴진다.

권총수는 변장한 맥보란에게서 또 한 번 CIA의 위력을 발견했다.

이슬람 복장이지만 그가 백인이고 서양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흘긋 거리거나 경계하고 분노의 찬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앉아 이슬람 경전을 읽는 그에게 존중의 눈빛을 던졌다.

“대단합니다.”

권총수가 맞은 편에 앉았다.

“미국에도 이슬람이 많습니까?”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미연방법은 종교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맥보란이 슬며시 웃는다.

자신의 복장 때문에 던지는 권총수의 농담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본토에서 온 것 같습니다.”

“본토라면 중국에서.”

“한 달 전 유엔 평화유지군 소속 이라크 재건 팀으로 일개 대대병력이 왔더군요.”

대대병력이라는 말에 권총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중국판 네이비 씰이다.

대대병력이라면 중국군 편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최소한 500여명은 될 것이다.

“나시리아에서 멀지 않는 바라일에 흑룡중대로 불리는 1개 중대병력이 의료 봉사를 하고 있더군요.”

“바라일?”

촤라락!

미리 준비한 듯 맥보란이 작은 지도 하나를 폈는데 나시리아 오른쪽으로 조그만 붉은 동그라미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이곳입니다. 인구 8천여 명 되는 작은 도시라고 할까요. 시골이지만 조금 크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권총수는 지도의 붉은 동그라미를 쏘아보았다.

“의료지원과 각종 시설보수도 같이 하는 모양입니다.”

이라크에는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들어온 여러나라 군대가 있다.

외형상으로는 모든 나라가 비 전투부대를 보냈다.

그러나 그건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 면면은 자국 최대의 특수부대를 파견했다.

하나같이 실전경험을 얻으려는 목적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테러와 반미 민병대들의 활동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 완전 철수를 선언하면서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IS잔당은 물론 쿠르드 반군까지 기세를 높이고 있다.

중동의 군사전문가들은 미군이 철수하면 이라크가 당장은 혼란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중동은 절대 평화로워질 수 없을 것입니다.”

“석유 때문에?”

맥보란은 빙긋 웃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석유 뺏기 아니면 뭐겠습니까. 이라크 뿐만 아니라 중동에서 석유가 생산되는 한 결코 조용할 수 없죠.”

그때 맥보란이 전화기를 꺼내더니 한참 동안 메시지를 읽었다.

표정에 큰 변화가 없는 걸 보면 급한 보고는 아닌 듯 보였는데 권총수는 무거운 숨을 내 쉬었다.

만약 중국군이 평화유지군의 일환으로 들어왔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그들은 이번처럼 노동자로 위장해 블랙잭을 공격한다.

그렇다고 맞서서 희생자를 만들게 되면 용병들이 이라크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유엔 평화유지군을 공격했다는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다.

일이 간단하지 않다.

어쩌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리고 중국의 로비와 입김으로 블랙잭의 중동진출을 차단해버릴지도 모른다.

“맞다고 합니다. 우리 요원이 정확하게 정보를 수집하여 지금 보냈습니다. 설표 돌격대라고 합니다.”

권총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맥보란은 권총수를 바라보더니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으나 마땅히 도와줄 만한 일이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강호의 격언이 있긴 하지만 반드시 빚은 받아야 한다.

살아 있는 사람을 절벽에 매달아 죽였다.

그들의 몸에는 총알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옷을 벗기고 산채로 매달아 놓고 가버린 것이다.

물론 그건 권총수에게 보낸 경고였는데 앞으로도 계속 블랙잭을 친다는 암시이기도 했다.

“캡틴!”

맥보란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누구보다도 캡틴을 잘 아는 사람중 한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어쨌든 그들은 평화 유지군입니다. 내 말뜻을 알겠습니까?”

조심하라는 얘기다.

어쩌면 복수 따위는 꿈도 꾸지마라는 뜻일 수도 있었다.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딨습니까?”

권총수가 피식 웃었다.

“평화유지군이 노동자로 변장하여 내 직원들을 죽였는데 나 또한 그렇게 하지 말란 법은 없죠.”

맥보란이 눈을 좁혔다.

“보복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조금 전 누구보다도 사막의 흑새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셨죠? 잘 아신다면서 자중하라?”

권총수는 종업원이 가져다 놓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맥 팀장님께서는 그게 가능합니까? 매우 아끼는 부하직원이 임무를 수행하던 중 누군가의 총에 죽었어요. 그대로 넘어갈 자신 있습니까?”

“내 말은 조금 달라요. 블랙잭에서 보복을 하면 중국은 병력의 안전을 위해 전투부대를 보낸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군부대가 이라크로 들어 올 수 있습니다.”

“내가 중국군의 전투부대가 이라크에 주둔할 명분을 줄 수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미국은 평화유지군을 제외한 어느나라 군대도 중동에 진출하는 걸 바라지 않아요.”

권총수가 씨익 웃었다.

“그런 정치적인 건 난 잘 모릅니다. 대신 잘못하면 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아시죠. 민간 보안기업의 가치는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에 완전한 가격을 매긴다는 것을 말입니다. 물론 희생자가 적은 것도 기업 가치를 높이는 요건중 하나지만 당하면 갚아준다는 것에 시장은 더욱 우리를 존경하고 좋아할 것입니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과 불편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공격을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우리 블랙잭은 중국 설표돌격대와 전쟁을 할 것입니다. 물론 전쟁의 형태가 어떤 식일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지만.”

“미국은 개입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당연합니다. 끼어들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는 나도 모릅니다.”

권총수는 몸을 돌려 커피숍을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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