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65화 (465/651)

제465화: 사람을 죽이는 법(1)

사막에서 만큼은 제왕으로 불린다는 캡틴이다.

사막의 흑새는 울던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IS는 두려움에 떨게 한다.

그런 인물을 직접 만나니 흥분되는 것이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CCTV좀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들어가시죠.”

나흐얀이 앞서 걸었다.

권총수는 정윤수에게 말했다.

“사주경계 철저히 하며 대기하도록. 상황이 발생하면 자네가 판단하며 결정하게.”

“예!”

정윤수는 돌아섰다.

“전원 전투 위치로!”

무전을 통해 명령이 내려지고 순식간에 용병들이 사라졌다.

엄청난 모래 폭풍이다.

투둑!

하는 소리가 들리며 경찰서 앞에 서 있던 커다란 대추야자 나무 가지가 부러졌다.

모래폭풍이 발생할 것이라는 걸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

이라크 기상청은 갑작스런 기압의 변화로 모래폭풍이 소규모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약간의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누구라도 믿을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 기상청의 비올 확률이 30퍼센트 이하라는 발표와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허리케인급의 모래폭풍이 들이닥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설표돌격대는 폭풍이 올 걸 알고 기다렸을까.

권총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이미 며칠 전부터 쉬지 않고 블랙잭의 경계상태를 살폈을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파악을 끝내고 공격하려는데 모래 폭풍이 일어난 것이다.

준비는 철저히 했을 것이다.

모래 폭풍은 운이었을 뿐이다.

무려 세 번을 돌려 봤지만 영상을 통한 어떤 실마리도 찾아 낼 수는 없었다

본토에서 왔는지 아니면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 파병중인 병력에서 온 건지 알려진 건 아직 없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코트디부아르등지에도 상당한 중국 특수부대가 파견되어 활동 중이다.

분명한 건 중국이 자랑하는 설표돌격대가 이라크에 들어왔고 자신과 블랙잭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권총수는 찌푸린 얼굴로 경찰서 인근 거리를 배회한다.

찾아내야한다.

모래폭풍을 만난 건 철저히 운이다.

팟팟!

갑자기 눈이 빛난다.

‘근처 어딘가에서 숨어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와중에 모래폭풍이 왔고 때는 이때다 싶어 치고 들어온 것이다.

‘목격자가 있을 수도 있다’

권총수는 넓은 도로를 건넜다.

방송국 북쪽 길을 건너 시장이 몰려 있는 곳으로 향한 것이다.

다른 곳 보다는 사람 통행이 많고 크고 작은 가게들이 몰려 있어 숨어 있기에는 무척 적절한 곳이다.

시장 가게들과 도로, 그리고 맞은편 방송국 건물을 보며 자신이라면 어디쯤에 숨었을까를 생각했다.

한참을 재면서 왔다갔다 하던 권총수의 걸음이 멈췄다.

과일 가게였다.

서른 중반 정도의 사내가 의자에 앉아 있는데 잡지로 보이는 책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권총수를 속일 수는 없었다.

등봉조극의 경지에 오른 고수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누군가 자신을 경계하거나 긴장한 시선으로 흘긋거리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간파한다.

누군가를 해치려 마음먹을 땐 악독한 기운이 몸을 통해 뻗어 나간다.

이를 살기라고 하는데 야수들은 이런 기운을 금세 알아차리고 대비를 한다.

권총수 역시 그렇다.

권총수는 사내가 시선을 책에 두고 있지만 오로지 모든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역사가 짧은 블랙잭이다.

용병은 의뢰를 받아 움직인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활동중인 용병들의 숫자를 대략 20만명으로 추산한다.

그중 중동에 약 15만명이 깔려 있고 약 80퍼센트가 미국 정부, 또는 미국의 민간 기업에 고용되어 있다.

그렇다고 반미 테러단체들이 용병을 상대로 테러를 자행하지는 않는다.

테러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이 우선이다.

이름하여 테러의 효과인 것이다.

뉴스 카메라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가장 손 쉬운 방법은 철저히 미국에 대한 공격이다.

오로지 미국의 시설물과 기업, 미국인을 노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키고 보호하는 용병들과 교전은 피할 수 없지만 그들이 궁극적인 목표는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과 현실을 설표돌격대에 대입해봤다.

설표돌격대는 방송국을 지키는 나시리아 경찰을 죽이긴 했으나 끌고 가지 않았다.

끌고 간다는 것과 죽인다는 것에는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끌고 간다는 건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설표돌격대는 블랙잭 용병들만 끌고 가 절벽 끝에 옷을 벗겨 매달아 놨다.

이 지역 반미 민병대들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잔인하다.

과거 IS로 활동하던 자들이 조직이 무너지면서 설 자리를 잃게 되자 재빨리 민병대로 갈아탔다는 정보가 있다.

당연히 잔혹한 IS를 기억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들 짓이라고 해석할 것이다.

권총수는 과일을 살 듯 둘러보았다.

가게에는 많은 과일이 있었다.

이 지역 특산과일이라고 할 수 있는 대추야자와 석류를 비롯해 오렌지 사과 바나나까지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잡지를 보고 있던 사내가 일어났다.

“싸게 드릴테니 마음껏 골라 보십시오.”

와삭!

권총수는 사과 한 개를 베어 물었다.

달다.

분명 한국에서 먹었던 사과와 같은 것인데 설탕물을 씹는 것 같았다.

“어엇!”

구매의사를 확실히 밝히고 물건을 손대는 것이 철칙이다.

그래서 살 것이냐고 물으려는데 주인이 다급성을 터뜨렸다.

갑자기 몸이 마비가 된 것이다.

“어어어!”

계속 어어어 하며 움직여 보려 했으나 되지 않았고 권총수는 볼이 터질 듯 사과를 밀어 넣고 씹는다.

“몸이 움직이지 않죠?”

“그...그렇습니다.”

사내는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건강하던 몸이 도무지 꼼짝을 할 수 없을 만큼 마비가 되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은 것이다.

결혼도 하지 않아 아파 누우면 병수발 들 사람도 없다.

부모님들도 전쟁통에 모두 죽었고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있긴 하지만 자신이 쓰러지면 구경만 할 정도의 그냥 그런 사이다.

“그런데 어떻게 내 몸이 굳어 버렸는지 아십니까?”

사내의 눈은 권총수에게 매달릴 기세를 보였다.

의사들은 안색만 보고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알아 맞추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 몸을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한 가지 뿐입니다.”

“뭡니까?”

사내는 침을 삼킨다.

권총수는 사과 씨앗이 있는 부분까지 청소하듯 베어 삼키더니 트림을 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당신 몸은 움직이게 될 것이오.”

“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알라 앞에 맹세 합니다. 알라후 아크바르.”

신은 위대하다면서 자신은 항상 떳떳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애썼다.

“5일 전 이곳에 거대한 모래폭풍이 있었죠.”

“그렇습니다. 많은 모래바람을 봐왔지만 그날처럼 거칠고 큰 건 처음입니다. 주차해 놓은 차가 들썩거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날 가게에서 있었던 얘기를 해보시죠.”

“그날은 별로 손님도 없었고...”

말을 하다말고 사내는 눈을 빛냈다.

“내 몸이 마비되는 것과 그 날 일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굉장히 상관있습니다.”

사내는 눈을 빛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말하기 싫으면 관두시고.”

권총수는 등을 돌려 가게를 걸어나갔다.

“잠깐!”

권총수는 걸음을 세우고 돌아섰다.

안쪽에 서 있는 사내의 표정에 긴장이 넘치는데 뭔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하고 많은 날 중 하필 그날 있었던 일을 물어보는 권총수의 정체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파팟!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사내의 눈빛이 변했다.

권총수를 알아보는 듯 했다.

“감이 온 모양이군요.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으면 당신은 절대 움직이지 못합니다. 믿지 못하겠거든 시험해 보세요.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겠습니다.”

권총수가 밖으로 걸어가자 사내는 더욱 움직여 보기 위해 노력했으나 불가능했다.

이렇게 몸이 굳어 버린 상태라면 먹고 마시는 건 물론 잠도 잘 수 없다.

“잠깐 멈추시오.”

사내는 다시 소리쳤다.

권총수는 또 다시 돌아섰다.

‘나 바쁜 사람이오. 할 말 있으면 어서 하시오’

“으헉!”

사내의 비명을 질렀다.

권총수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귓속으로 파고 들었다.

마치 이어폰으로 어떤 음성을 듣는 것 같은 느낌에 사내는 완전히 질린 표정을 했다.

‘틀림없는 그 사람이다’

사내는 확신했다.

자신은 모르지만 도와주었던 그들이 사진 한 장을 내보이며 묻기도 하고 여러 질문을 했다.

‘사막의 흑새’

그들은 사진속 인물이 사막의 흑새라고 했다.

자신도 사막의 흑새에 대해서는 들어봤다. 중국인 노동자들이라고 했다.

중국 최대의 건설회사 완커에서 나시리아에서 바스라까지 가는 이라크 동서 고속도로 공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사내는 쉽게 믿지는 않았다.

이라크와 미국과 벌인 10년 전쟁과 IS와 벌인 내전에 가까운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눈은 노련해졌다.

노동자인지 군인인지 그냥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노동자라고 했으나 결코 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자신을 찾아온 건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가게가 방송국과 마주보고 있어 블랙잭의 경비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천 달러를 내놓았는데 버틸 수가 없었다.

천 달러면 일 년 생활비다.

자신이 봐왔던 블랙잭에 대해 자세히 말해 주었다.

“중국 노동자들이라고 했소.”

권총수는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하지사파라고 밝힌 사내는 길게 숨을 내쉬며 설표돌격대를 만나게 된 경위를 좀 더 차분하게 설명했다.

나시리아 경찰서 작전과장 나흐얀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나타났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권총수가 백 달러짜리 한 뭉치를 내놨다.

나흐얀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재빨리 주위를 살폈으나 다행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커피숍 손님은 없었다.

슥!

재빨리 집어넣는데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권총수는 느긋하게 커피를 들어 올렸다.

“나시리아에서 바스라까지 가는 동서고속도로 발주처가?”

“당연히 이라크 중앙정부죠?”

“나시리아 지방정부가 지닌 권한은 무엇이 있습니까?”

“공사중 발생할 수 있는 소음과 먼지를 포함한 공해에 대한 감시입니다. 시청 환경과에서 수시로 방문하여 이라크 정부가 요구하는 기준에 적합한 공사를 하는지 살피죠.”

“시청 환경과라고 했습니까?”

커피 잔을 내린 권총수가 눈을 빛냈다.

“필요하면 책임자를 소개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매우 친절한 사람이군요. 나흐얀.”

권총수의 웃음이 깊어졌다.

혼다 지프는 시동이 걸려 있었다.

운전사 아지지는 환경과장 타레미와 새로 발령을 받고 온 아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 분여 정도 지났을쯤 본관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오른쪽 구레나룻이 짙은 사내가 나시리아 시청 환경과장 타레미이고 왼쪽에 서류 가방을 들고서 검정 터번을 쓴 이가 아즈문이었다.

과장 타레미는 조수석에 올랐고 아즈문은 가방을 들고 뒷좌석에 앉는다.

부르릉!

차는 주차장을 벗어나 나시리아 시청을 떠났다.

목적지는 동서고속도로 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제 5공구 샤토라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