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64화 (464/651)

제464화: 그들의 네이비 씰(3)

높이 30여 미터 가까이 되는 절벽이 나타났다.

그 절벽 끝에 뭔가가 매달려 있었다.

슈우웅!

권총수는 신법을 펼쳐 떠올랐다.

단번에 30미터 높이의 절벽 끝까지 올라선 권총수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아 버렸다.

“맙소사!”

권총수는 한참을 감았던 눈을 뜨고 다시 바라보았다.

파르르!

권총수의 눈썹이 가는 파장을 일으켰다.

사람이었다.

옷을 벗긴 알몸 상태로 목을 매달아 놓은 네 구의 시신은 실종된 블랙잭 용병들이었다.

시신들은 홀쭉했다.

부패가 되면서 장기들이 지면으로 쏟아져 버리고 뼈와 가죽만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몸 여기저기에 약간의 구더기가 보이긴 했지만 워낙 뜨거운 날씨로 인해 투툭 하면서 떨어졌다.

더욱이 내장이 아닌 딱딱한 뼈와 말라가는 피부에 구더기가 끓을 자리는 그다지 없었다.

투투툭!

권총수는 오른손을 뻗었다.

손 끝에서 예리한 경기가 발출되며 시신들을 매달고 있는 줄이 잘라져 나갔다.

권총수는 네 구의 시신을 내가강기로 감싸 천천히 지면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한편 헐떡거리며 도착하여 고개를 올려다보던 두 사람의 눈이 커졌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시신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저런!”

오민철과 박호명은 신음을 흘렸다.

시신은 지면에 반듯하게 눕혀졌다.

“아이고!”

오민철은 말을 잇지 못했다.

박호명은 거의 넋이 나가 있었다.

입을 떠억 벌린 채 이것이 꿈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구별하지 못하겠다는 듯 바라보았다.

딸칵!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작렬하는 태양을 올려다보며 연기를 뿜었는데 무거운 신음 소리까지 흘러나온다.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흥분하여 길길이 날뛴다거나 욕설을 하지도 않았다.

세 사람 모두 우울한 낯빛이다.

가혹한 열기가 이글거리며 온 산을 덮었고 살갗에 붙은 구더기들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박 지사장 혹시 뭐가 또 있는지 훑어보지.”

오민철이 박호명을 데리고 사라졌다.

권총수는 뙤약볕에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후후후!

담배 연기가 뜨거운 복사열에 밀려 순식간에 공중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때 멀리서 차량 한 대가 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장의 차량이다.

권총수가 민간 장의사를 부른 것이었다.

차가 멈추고 일단의 사람들이 내리더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모두 네 사람인데 그들 손에는 이동 들것이 있었다.

사내들은 모두가 이라크 현지인들이었다.

내장이 사라지고 남은 뼈와 가죽뿐인 탓에 냄새는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사내들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 거리낌 없이 이동 들것 하나에 두 구의 시신을 올리고 흰 천으로 덮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장의차량은 네 구의 시신을 싣고 떠났다.

권총수 혼자 산 중턱에서 사라지는 장의차를 보고 있을 때 인근을 수색 나갔던 오민철과 박호명이 돌아왔다.

오민철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없어!”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갑시다!”

권총수가 앞장서 산을 내려갔다.

숲속은 낮보다 밤이 활발하다.

나시리아 역시 그렇다.

낮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만 밤이면 죽이고 죽는 살육전이 전개된다.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간헐적으로 폭발음이 있었는데 수류탄 소리로 여겨졌다.

사무실은 불이 켜져 있었지만 창문은 검정색 커텐이 두껍게 쳐져 있었다.

불빛이 밤의 무법을 즐기는 자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사내가 더 있었다.

권총수와 오민철 박호명 말고 자리에 앉아 있는 사내는 머리에 둥근 페즈를 썼으며 반팔티셔츠에 헐렁한 카키색 바지를 입었다.

이곳 나시이라에 파견된 번개팀의 팀장 정윤수였다.

그는 특전사에서 근무하다 중사로 전역한 뒤 무술 특기로 경찰에 특채되었다가 다시 블랙잭으로 들어온 케이스였다.

정윤수는 공격을 받았을 당시를 설명하고 있었다.

블랙잭은 이곳 나시리아에 있는 이라크 국영방송 지국을 지키고 있었다.

블랙잭 이전에는 PNP라는 호주 민간보안 기업이 경비를 맡았다.

하지만 워낙 시도 때도 없이 자행되는 공격에 피해가 커지자 그들은 중도에 계약을 해지하고 떠나 버렸다.

공격자들이 방송국을 장악하려는 건 뻔했다.

선전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방송을 통한 선전은 큰 위력을 지니기 때문에 나시리아시 경찰에서는 결코 넘겨줄 수 없는 일이었다.

근처에 이라크 군부대가 있었지만 그들은 반미 민병대를 소탕해야 하기 때문에 이쪽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 날 모래 폭풍이 발생했습니다.”

특전사 시절 해외 파병 경험도 있으나 모래폭풍은 처음 겪는 놀라운 일이었다.

말 그대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만약을 대비해 갖고 있던 구트라(머리에 쓰는 넓은 천)를 이용해 얼굴을 덮었다.

엄청난 모래들이 얼굴이 때리며 방송국 창문 일부가 깨질 만큼 폭풍은 위력적이었다.

모든 것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반미를 외치는 민병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모래 폭풍에 익숙해 있었다.

구트라는 단순히 머리에 쓰기만 하는 수건이 아니었다.

밤에는 목의 체온이 떨어지는 걸 막아주는 외투의 용도로 사용하고 사막의 모래가 날릴 땐 눈 코 입을 가리는 도구가 된다.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모래 폭풍속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양쪽의 총격전은 20분 가까이 이뤄졌다.

모래폭풍이 끝나는 것과 같이 총소리도 멎었는데 정윤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망자가 발생했고 네 명이 사라졌다.

아무리 수색을 하고 뒤졌으나 네 명의 실종자는 찾지 못했다.

“그들이 우르지역으로 퇴각했다는 건 이 지역 경찰을 통해서였습니다. 외곽을 순찰하던 중 무장한 민간인들을 태운 트럭 두 대가 사라지는 걸 봤다는 것입니다.”

권총수는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딸칵!

담배를 피워문 권총수는 슬쩍 핸드폰을 보았다.

혹시 낮에 맥보란에게 부탁한 배지 해독에 대한 답장이 왔나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정팀장!”

“예 대표님!”

“우리 화력이 어떻습니까?”

질문이 갑작스럽다는 듯 정윤수가 멈칫했다.

“사실 여기서의 전쟁은 99퍼센트가 총이죠. 가끔 RPG가 날아가기도 하고 박격포도 나타나지만 적을 공격하고 제압하는 무기는 총입니다.”

공중 폭격도 없고 포병지원도 없다.

오로지 총으로 싸운다.

블랙잭의 제식 소총은 M4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화력에 대한 질문을 한 것은 이곳을 오면서 받은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상대는 나시리아 경찰서 작전과장 나흐얀이었다.

그는 CIA 맥보란과 가깝게 통하고 있었다.

맥보란이 미리 그에게 전화를 하여 권총수를 도와 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물론 경찰에서도 30명이라는 큰 희생을 낳았기 때문에 정밀 조사가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많이 희생당한 경찰에 초점을 맞춘 조사를 하면서 같이 작전을 벌였던 블랙잭의 피해도 살폈다.

나흐얀을 통해 경찰이 조사한 서류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건네받은 서류의 내용 중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라크 군은 AK를 쓴다.

AK가 제식 총인데 반해 경찰은 두 가지를 사용했다.

AK도 쓰고 미군으로부터 받은 M4도 상당히 지급되어 있었는데 모래가 들어가며 잔고장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AK는 두 자루 뿐이었는데 M4는 좀 더 많은 여섯 자루라는 것이었다.

블랙잭 역시도 갑작스런 총기고장을 경험했다.

전혀 사용 못 할 만큼의 고장은 아니었지만 노리쇠가 자꾸 덜컥거리며 걸렸다.

숨 막히는 교전을 벌이는데 그런 잠깐의 고장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준다.

경찰로부터 그런 조사 내용을 받아 알고 있는데 정윤수로부터는 어떤 얘기도 없었다.

권총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정윤수가 입을 다문 건 권총수가 회사 대표라는 것 때문이었다.

회사대표에게 총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결코 승진이나 연봉인상에서 플러스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에서 알고있는 것이다.

즉 아랫사람다운 나름의 비즈니스인 셈이다.

“총기 문제에 입을 다물면 내가 모를줄 알았소?”

“사용 불가할 만큼의 큰 고장들이 아니어서”

“정 팀장, 난 수백 명을 죽였어요. 근접전에서, 그것도 얼굴 마주보고 갈길 때 단 몇초만 노리쇠 움직임이 멈춰도 내가 죽는 곳이 전장입니다. 일주일만 기다리세요. 앞으로 블랙잭의 제식 화기는 HK-416이 될 것입니다.”

M4를 버리고 HK-416으로 바꾼다는 뜻이다.

정윤수뿐만 아니라 오민철의 눈까지 커졌다.

M4는 미군의 제식총기다.

HK-416은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으나 극히 제한적이다.

특수부대의 소수만이 사용할 뿐 일반 군인들은 거의가 아직은 M4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 자루에 칠 팔백 달러선인 M4와 달리 HK-416은 3,000달러가 넘는다.

어마어마한 가격 차이다.

더욱이 민간보안기업에서 제식 소총을 HK-416으로 바꾼 곳은 아직 없다.

필요에 의해 일부 자체 정예병들에게 지급하는 곳이 있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드륵!

권총수가 벽쪽에 붙은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M4 십여 자루가 저장되어 있는데 예비용이다.

그중 한 자루를 꺼내더니 30발들이 탄창을 끼웠다.

“뭐하려고?”

오민철이 묻는다.

“전쟁 해야지. 지금 남은 인원은 몇 명이죠?”

“저까지 포함 스물셋 입니다.”

지이잉!

그때 핸드폰이 울렸으므로 권총수는 재빨리 액정을 본다.

맥보란이 전화를 걸어왔다.

“팀장님!”

“캡틴, 별일 없죠. 분석했습니다. 설표돌격대원들의 배지입니다.”

“인식표를 말합니까?”

“아닙니다. 네이비 씰이 가슴에 삼지창 표식을 달고 있듯 그들은 가슴에 그 배지를 달더군요.‘

권총수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분명하다는 맥보란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중국판 네이비 씰이라고 보면 된다.

강인한 부대이고 동남아와 아프리카에 파견되어 실전경험을 쌓고 있는데 대단한 공격력을 지녔다는 것이 CIA의 조사였다.

“내일 바그다드에 용무가 있어 가는데 한번 볼까요? 내가 나시리아로 가겠습니다.”

“그러시죠.”

권총수는 전화를 내렸다.

워낙 조용했기 때문에 대충의 내용을 들을 수 있었으므로 오민철을 포함한 정윤수와 박명호 모두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다음 날 버스 한 대가 이라크 국영방송 Asia TV 나시리아 지국 정문에 멈췄다.

버스지만 외벽에 강력한 국방색의 철판을 댔고 창문 역시도 총구가 나올 수 있는 최소한의 구멍만 놔두고 모조리 막았다.

덜컹!

앞문이 열리고 M4를 든 건장한 사내들이 내렸다.

블랙잭 소속의 용병들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잠시 방송국 경비는 인근 이라크 군 병력이 맡고 있다.

권총수는 블랙잭 단독 작전이 필요한 사안이라면서 잠깐의 경비 공백을 요청했고 나시리아 지방 정부 관계자가 오케이 했다.

넥타이 없는 정장을 한 오십 가량의 이라크인이 다가왔다.

이 지역 경찰서의 작전 과장 나흐얀이었다.

전화로 인사는 나누었고 서류까지 팩스로 받아봤지만 직접 만난 건 처음이었기에 권총수는 호탕하게 웃으며 악수를 했다.

“캡틴!”

나흐얀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건 흥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