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3화: 그들의 네이비 씰(2)
하나는 성경 구절이었다.
요한복음서에 있는 내용으로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And ye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또 하나는 메인 홀 북쪽에 있는 추모의 벽이다.
그곳에는 모두 125개의 별이 새겨져 있었다.
CIA요원으로 활동하다 숨진 요원들의 숫자인데 그들의 희생으로 오늘 날 중앙정보국은 세계최고의 정보기관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민간 보안기업들이 CIA에 약한 첫째 이유가 그들의 정보능력 때문이었다.
아무리 무기와 병력에서 밀리는 작전이라고 할지라도 적의 단점과 장점을 알고 있다면 밀리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이긴다는 건 곧 정보에서 앞선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은 맥보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난 항상 캡틴 편입니다. 우린 지금까지 캡틴의 도움만 받았지 한 번도 뭔가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민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정보원이지만 비즈니스를 아는 인물이다.
정보기관 사람들은 고지식하다.
하지만 맥보란은 상당히 탄력적인 비즈니스를 갖고 있다.
“나도 곧 출국합니다. 사막에서 뵙죠.”
맥보란이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세 사람은 부드럽게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비행 내내 불편한 얼굴이다.
대표라는 직함이 주는 책임감 때문은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적지 않은 희생은 불가피하다.
현장 노동자가 철골 구조물 위에서 떨어지고, 택시 운전사가 과로로 쓰러진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사건들이다.
보안기업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직업이다.
군인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죽지 않지만 보안기업 직원들이 24시간이 전쟁이다.
세상의 모든 위험을 방어하는 집단이다.
희생자가 적은 회사일수록 시장에서의 인기 또한 높을 건 자명했다.
연말에 상장하는 주식 역시 마찬가지다.
피해 직원이 적어야 주가가 쑥쑥 오른다.
기다리던 전화는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 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입국검사를 받고 막 문을 나서는데 핸드폰이 울린 것이다.
지사장 박호명의 전화였다.
“박 지점장 어떻게 됐습니까?”
“사망자가 발생했고 부상 한 명입니다. 실종자가 넷입니다.”
“정확한 위치가 어디죠?”
“나시리아 우르 지역입니다.”
권총수의 눈이 번쩍 거렸다.
알고 있다.
나시리아에서 북쪽으로 18킬로 정도가면 나오는 고대도시이다.
전쟁과 내전으로 원래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도시 곳곳에 BC 4000년 전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근처에 유프라데스강이 흐르는데 한낮에는 섭씨 50도를 쉽게 올라간다.
또한 밤에는 영하 11도까지 떨어지기도 하는 가장 잔인한 곳이 바로 우르 지역이다.
“기습에 당했습니다. 치고 빠지는 놈들을 쫓았습니다만 사전에 준비된 공격이라는 걸 말해주듯 잡지 못했습니다. 이라크 경찰도 피해가 큽니다. 3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았소. 지금 리야드 공항이니 내일 쯤 볼 수 있겠군요.”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통화를 엿듣고 있던 오민철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표님!”
고개를 돌리자 흰색의 긴 칸두라에 머리에 검정색 이갈을 두른 사내가 다가왔다.
이곳 현지인으로 블랙잭에 고용된 호사위였다.
두 사람은 호사위와 악수를 나누고 곧바로 그의 차를 타고 회사로 들어갔다.
회사에 도착한 권총수는 호사위로부터 간단한 브리핑을 받았다.
새로운 내용은 없다.
박호명과의 통화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카이로 비행편 알아봤어요?”
리야드에서 이라크 바그다드로 가는 직항은 없다.
친미국가인 사우디는 수많은 아랍인들에게 이교도의 하수인으로 외면당하고 있는데 비행노선이 단절된 것 또한 그런 이유였다.
결국 카이로에서 들어가는 비행 노선이 제일 빠르다.
“내일 아침 5시 11분 비행기로 예약되었습니다.”
권총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리야드에서 카이로 가는 비행기가 저녁 9시에 있다.
세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잠시 공항을 벗어나 사무실에 들린 것이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카이로행 비행기에 올랐고 다음 날 새벽 다시 바그다드행 에미레이트소속 항공기에 있었다.
비행기가 바그다드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현지 시간으로 오전 11시30분이었다.
두 사람은 공항에 내려 한 시간 십 분을 기다려 나시리아로 가는 이라크 국내선으로 환승했다.
한 시간 가까이를 비행하여 나시리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간단한 수속을 마치고 공항 청사로 들어섰다.
“대표님!”
넥타이 없는 정장을 한 박호명이 다가왔다.
권총수는 박호명과 악수를 나눴다.
해병 수색대 출신으로 중사로 제대했다.
결혼하여 쌍둥이 아들 둘을 두었는데 둘 모두 공부를 잘한다고 자랑한 기억이 있다.
“죄송합니다.”
박호명은 고개부터 숙였다.
사무실에 앉아 서울에서 오는 지시만을 열심히 따를 뿐인 그가 잘못한 것은 없다.
“일단 현장부터 가봅시다.”
“알겠습니다.”
권총수는 박호명이 운전하는 랭글러 지프에 올랐다.
강이 나타났다.
유프라데스강이다.
한참 강을 따라 가던 차량은 좌측으로 꺾어지며 강과 거리가 멀어졌다.
그다지 높지 않지만 산이 나타났다.
산을 타면서 오르막 길은 한참을 이어졌다.
고개마루 쯤에 올라서자 커다란 안내판이 나타났으며 고대도시 우르지역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멀리 뜨거운 태앙이 쏟아지는 고대도시는 뿌연 연무에 덮여 있다.
“저 산은 뭐요?”
오민철이 물었다.
“가롬산이라는 이름만 들었습니다.”
그러자 권총수가 설명해 주었다.
“아브라함이 살았다는 설이 있는 산이야.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묘하게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아. 굉장히 더워, 한낮에는 복사열까지 더해지면서 섭씨 50도를 웃돌기도 하고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건 예사지.”
“뭐야. 낮에는 삶았다가 밤에는 얼린단 얘기 아냐.”
“밤에는 동사한 사람도 있어. 그것도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때.”
잠시 멈췄던 지프는 아무도 살지 않는 수천 년 전의 도시 속으로 들어갔다.
발굴을 하다만 유적들이 도처에 널려 있고 옛 건물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 없었다.
거의 무너졌고 아랫단만 발굴되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자(死者)의 궁전’
오민철이 불쑥불쑥 솟아있는 크고 작은 건축물을 보며 놀란 표정이다.
“이게 다 왕족들 무덤이란 말이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무덤들을 보며 오민철이 눈을 크게 떴다.
도로는 쭉 뻗어있었다.
차는 유적지를 통과해 가롬산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잠깐!”
권총수가 소리쳤다.
핸들을 잡은 박호명이 차를 세웠다.
권총수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문을 열고 내리더니 천천히 걸어갔다.
권총수가 내렸으므로 오민철과 박호명도 따라 내렸다.
길을 벗어난 오른쪽으로 20여미터 걸어가던 권총수가 허리를 숙여 뭔가를 주워들었다.
권총수의 손에는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조그만 배지(badge)가 있었다.
배지 뒤에는 옷깃에 달 수 있도록 핀이 들어가는 작은 구멍이 붙었다.
작지만 선명하게 새겨진 문양은 표범이다.
앞발로 후려치며 공격하는 표범의 강인한 동작과 배지 가장자리를 빙 둘러 새겨진 영문글씨가 있다.
‘Snow Leopard Commando Unit’
권총수는 한참을 보았다.
전혀 추정되는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권총수는 살짝 가슴에 배지를 대어 봤는데 괜찮다.
“뭔데?”
오민철이 다가와 묻자 권총수는 건네주었다.
“빼찌(배지) 아냐.”
반들반들한 걸 보면 누군가의 몸에 오랫동안 걸려 있었다는 것을 대략 추정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 명찰 같지는 않고?”
오민철은 불편한 듯 인상을 썼다.
권총수는 주위를 예리한 눈으로 훑었다.
앞으로 10여 미터를 걸어갔는데 딱딱한 황무지에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그중 선명한 발자국을 향해 오른손 뼘을 댔다.
발자국은 자신의 뼘보다 좀 크다.
이번에는 오른발을 옆으로 나란히 대어봤는데 자신의 것인 듯 크기가 똑같았다.
“여기 발굴하던 사람들 발자국 아냐?”
오민철이 생각없이 툭 뱉는다.
권총수는 대답하지 않고 여기저기 찍힌 발자국들을 살펴갔다.
발자국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찍힌 문양이 거의가 물결무늬라는 것이었다.
“이곳이 최초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박호명이 말했다.
“반미를 외치는 민병대라고 했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이라크에는 많은 민병대가 있다.
이라크처럼 정치적 종교적으로 많이 갈라지고 나눠진 민병대도 없다.
친이라크 민병대가 있고 현 정부를 공격하는 반군과 힘을 모으는 반 이라크 민병대도 있다.
물론 현정부를 지지하는 민병대는 그다지 많지 않은 소수 집단이며 나머지는 거의가 시아파 민병대로 외세 축출, 특히 미군 철군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은 쿠르드족이 많다.
쿠르드족 민병대도 많다는 뜻이다.
“형 그 배지 좀 줘봐.”
권총수는 오민철로부터 다시 배지를 넘겨받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어 곧바로 맥보란에게 전송하며 문자를 남긴다.
‘즉시 분석요망’
오민철이 별것 같지도 않은데 사진을 찍어 보내느냐는 시선으로 본다.
“설표(雪豹) 같은데.”
파팟!
오민철의 눈이 빛났다.
상당히 놀라는 눈이다.
“설표라고?”
“확실하지는 않아.”
권총수가 근거 없이 아무 말이나 뱉어내는 가벼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매의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 야수의 심정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단 한 번도 욱하는 감정에 치우쳐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만큼 차가운 이성을 갖고 있었다.
“설표.”
오민철이 중얼거렸다.
박호명이 그게 뭐냐는 듯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오민철은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물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 자식들 우리와 원한 있지.”
오민철이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소속의 특수부대야.”
화악!
중국군이라는 말에 박호명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이곳에 중국군이 나타날 수 있느냐는 눈빛인데 오민철은 권총수와 중국 사이에 얽힌 사정을 애기해 주었다.
중국 시베이 유전과 영국 BP 석유회사가 이집트의 석유개발권을 놓고 충돌했다.
그런데 권총수가 개입하여 시베이 유전을 탈락시켰다는 얘기였다.
박호명의 표정이 긴장으로 돌변했다.
해병대 근무시절 설표 돌격대에 대해 들어봤다.
중국판 네이비 씰인 것이다.
“확실치는 않아. 단지 여기 바닥에 찍힌 신발 모양이 설표 돌격대의 전투화 같아서, 배지도 좀 그렇고”
“설표.”
그들의 전투화 바닥은 물결무늬, 즉 거친 파도를 의미한다.
잔잔한 바다가 아닌 파도가 치는 위험한 바다를 항해한다는 뜻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헤치고 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흐릿하지만 바닥에 찍힌 자국들은 거의가 물결 문양을 하고 있었다.
권총수는 어금니를 물었다.
맥보란으로부터 분명한 대답이 오면 알겠지만 표정이 환해 보이지는 않았다.
만약 그들이라면 대대적인 보복을 하기 위해 왔을 것이다.
산이 나타났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참혹한 산이었다.
작렬하는 태양빛에 달궈진 바위는 신발을 신었는데도 발바닥을 후끈거리게 만들었다.
“우욱! 장난 아닌데!”
오민철이 손바닥으로 올라오는 복사열을 막으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여긴 유난히 심한데.”
수많은 사막을 종횡했다.
모래사막에서도 뒹굴었고 사하라의 모진 암석 사막에서도 IS와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하지만 여기처럼 내려쬐는 열기보다 올라오는 복사열이 강한 곳은 처음이다.
지면에 모닥불을 피워 놓은 것 같았다.
권총수를 제외한 오민철과 박호명은 금세 땀으로 젖었다.
팟!
앞서가던 권총수의 눈에서 짧은 섬광이 쏟아지더니 단번에 땅을 박차고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