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61화 (461/651)

제461화: 채무회수(3)

변장은 변장일 뿐이다.

아무리 뛰어난 분장술의 대가라고 해도 가까이서 보면 금세 드러난다.

피부를 손질하고 이목구비를 감추기 위해 만든 주름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것이다.

지이잉!

전화가 왔고 데미안 부국장이 핸드폰을 꺼내 받았다.

“백악관입니다.”

“예!”

맥보란은 전화기를 들고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가는 데미안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백악관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마운트 실장이다.

무슨 말을 나누는지 통화는 꽤 길다.

가끔 데미안 부국장이 사무실의 맥보란을 흘긋 거리는 것이 자신에 관한 얘기도 나오는 모양이었다.

5분여 가까이 통화를 하던 데미안이 전화기를 든 채 들어왔다.

“받아보시죠.”

“누굽니까?”

그러면서 핸드폰을 받아 뺨에 댔다.

“여보세요.”

“백악관입니다.”

“백악관 누구시죠? 난 대외정보국 맥보란입니다.”

CIA요원들은 웬만해서는 자신의 부서를 밝히지 않는다.

부서를 밝힌다는 건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상대에게 알려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마운트 실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때 전화기를 통해 길게 호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악관이라는데 이쪽이 전혀 저자세적인 말투가 아니라는 것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마운트 실장이오. 당신이 사막의 흑새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보고 받았소. 지금 좀 만나야겠소.”

맥보란은 대꾸하지 않았다.

맥보란 역시도 짜증이 난 것이다.

백악관이라고 하면 사전 약속도 않고 아무 때나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면 만나야 하는가.

이쪽 사정과 시간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의사와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듯 뱉어내는 말이 심사가 꼬인다.

“어디로 갈까요?”

맥보란은 몇 마디 더 듣고 난 뒤 불편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건네주는 맥보란의 굳은 표정에 데미안 부국장이 눈치를 살폈다.

“부국장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막의 흑새를 상대로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쓸데없는 고생 하지 말라는 뜻이죠.”

그리고 문을 열고 몇 걸음 걸어가더니 돌아보았다.

“사람이 공중을 날아가는 걸 본적 있습니까? 그 사람은 날아갑니다. 믿거나 말거나.”

맥보란은 자신의 차를 타고 떠났다.

푸른색 바탕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은 흰색의 실선이 점점이 그어진 넥타이를 맸다.

사내는 의자에 등을 붙이고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맥보란은 맞은편에 앉았는데 마운트는 한참을 바라보더니 퉁명스럽게 쏘아 붙였다.

“사막의 흑새는 어디 있소?”

“전 알지 못합니다.”

“그 자는 교수형 감일세. 사람을 죽여 택배로 보내다니. 아주 악질적인 악마야.”

“절 부르신 이유가 뭔지?”

“사막의 흑새에게 반드시 전하게. 미합중국은 공격을 받고 가만히 기다리는 허약한 나라가 아니라는 걸, 난 반드시 그놈을 미연방 법정에 세우고 말걸세.”

마운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맥보란은 표정없는 얼굴로 걸어가는 마운트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할 말도 없다.

마운트는 길가에 세워놓은 자신의 승용차에 올랐다.

“용서 않겠다.”

부르릉!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데 돌연 차가운 뭔가가 귀 아래를 스쳤다.

뭔가 싶어 더듬거리며 손으로 만졌다가 소스라쳤다.

“억!”

손가락이 베인 것이다.

그건 칼이었다.

룸미러로 뒤를 보았는데 카우보이 모자를 쓴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는데 손에 섬뜩한 칼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더 야드 공원으로 가면 될 것이오.”

마운트는 아무소리 못하고 운전에 집중했다.

차는 포토맥강이 내려다보이는 길가에 멈췄다.

강을 끼고 달리는 도로는 차량 통행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바람에 강물이 출렁거리며 오리들이 물위를 떠다니고 있었는데 사내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죽여드릴까요?”

화악!

핸들을 잡고 있는 마운트의 눈이 커졌다.

“미국이란 나라는 개인의 의사를 무척 존중한다고 들었습니다.”

원하는 죽음의 방식을 말하면 그대로 죽여주겠다는 뜻이었다.

마운트는 침을 삼켰다.

살면서 이토록 삭막하고 아찔한 얘기는 처음 듣는다.

사내는 흘긋 손목시계를 보았다.

“1분을 드리죠. 그때까지 말이 없으면 IS 참수 방식을 도입할까 싶습니다.”

IS 참수방식이라는 건 목을 자르는 걸 의미한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눈을 분명 뜨고 있는데도 승용차 전면 유리너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어둠뿐이다.

또한 뒷목이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달궈진 쇳덩이 한 개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

“으으으!”

“40초!”

시간을 재고 있었다.

캄캄하던 시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낯익은 도로와 차량들, 그리고 푸른 포토맥강이 훤히 보이는 이곳이야 말로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50초!”

움찔!

마운트는 화들짝 놀랐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51...52.”

사내는 카운트를 시작했다.

“53...54...55”

콱!

그러더니 머리채를 강하게 쥐었다.

목을 자르기 위한 행동인 것이다.

“56...57...58”

“잠깐!”

“말하시오!”

“누구? 혹시?”

사내는 가만히 있었다.

룸미러를 보며 마운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사막의 흑새?”

“나는 결코 먼저 시비를 걸지 않죠. 지금까지 내가 먼저 나서서 누군가를 죽여 본적이 없어요. 대신 날 해치려는 사람은 절대 가만 두지 않습니다.”

사막의 흑새라는 걸 인정하는 대답이다.

자신은 분명 특수공작국 제3국을 동원해 사막의 흑새를 죽이려고 했었다.

“할 말 있소?”

죽는 것이 억울하느냐고 묻는다.

이런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우리 대화를 합시다!”

“하세요!”

마운트가 머뭇거렸다.

목에 닿아있는 차가운 칼날을 조금 거두어 달라는 뜻이다.

금방이라도 목을 파고 들것 같아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할 말이 없으면 그럼 59초!”

“잠깐, 자아아암깐!”

목이 터져라 소릴 질렀다.

사내는 입을 다물었고 마운트는 미친 듯 소릴 질렀다.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난 대화를 하고 싶소. 평화를 사랑합니다. 난 폭력보다 더 야만적인 행동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내는 가만 듣고 있었다.

“차분하게, 아주 천천히 얘기를 하고 싶군요. 서로 불편한 생각 하지 말고 부드럽게 대화를.”

“계속 말해요.”

“내가 잘못했소. 정식으로 사과드립니다.”

“살고 싶소?”

“그렇소. 살려주시오.”

“미스터 마운트, 당신을 살려주겠소. 아마 내 생애에 처음으로 날 죽이려고 했던 적을 살려주는 최초의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숨은 하나뿐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그럼요. 압니다.”

“또 다시 날 귀찮게 할 때는 그땐 당신의 목을 잘라 저 강물에 던져 버리겠소.”

“절대 그럴 일 없을 것입니다.”

핸들에 이마를 부딪칠 만큼 굽신 거렸다.

멈칫!

숙였던 상체를 세우고 룸미러를 보던 마운트는 깜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 자신의 목에 칼을 대고 있던 사내가 사라진 것이다.

홱!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없다.

몸을 일으켜 혹시 뒷좌석 뒤에 숨어 있나 살폈지만 보이지 않는다.

부우웅!

있는 힘을 다해 가속 폐달을 밟았다.

타이어가 아스팔트 바닥을 거칠게 마찰하며 찢어지는 굉음을 흘렸다.

부아앙!

미친 듯 도망친다.

“FBI? 나요. 당장 요원들을 보내주시오. 여긴 더 야드 공원이오. 표적은 사막의 흑새요. 즉시 출동시키시오.”

그리고 연이어 또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스티브 국장, 비상대기 요원들을 더 야드 공원으로 보내시오. 표적은 사막의 흑새요. 그 놈을 잡아야 합니다.”

부우웅!

차는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그런데 강변을 따라 달리던 마운트의 승용차가 출렁하더니 미끄러졌다.

왼쪽으로 굽어진 도로인데 차는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길가 펜스를 치고 강으로 날아갔다.

꽈아앙!

펜스가 부서지며 승용차는 강물 속으로 빠졌고 흰 거품을 내며 잠겨 들었다.

차는 금세 빠졌고 강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물결을 일렁인다.

때마침 지나가던 차량도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구하기 위해 차를 세운다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도로 맞은편 공원의 커다란 소철나무 아래 권총수가 서 있었다.

이기어검의 수법을 이용하여 자동차 핸들을 잠기게 하는 것은 어려운 기예가 아니다.

권총수의 능력으로 FBI와 CIA에게 출동 명령을 내리는 마운트의 음성을 듣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살려줘도 싫다는 사람을 살려둘 필요는 없지.’

권총수는 혼잣말을 흘리며 공원을 떠나갔다.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워싱턴 DC에서 서쪽으로 40여 킬로 떨어진 공항에 두 사내가 나타났다.

어깨에 여행용 가방을 맨 사내들은 권총수와 오민철이었다.

두 사람은 오른손에 비행기표를 들고서 청사 안으로 들어섰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커피숍을 발견하고 나란히 걸어갔다.

“일단 차 한 잔 하지.”

오민철이 앞장을 섰다.

권총수는 자리를 잡았고 오민철은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계산대로 다가갔다.

권총수는 어깨의 가방을 내리고 핸드폰을 켰다.

스윽!

문자를 오픈했는데 같은 내용이 십여 개가 넘도록 찍혀 있다.

‘긴급 연락’

‘긴급 연락’

‘긴급 연락’

사우디 지사장인 박호명의 이름으로 찍혔다.

그리고 문자는 두 시간 후에 다시 왔는데 앞서와는 다른 내용이었다.

‘바그다드 나시리아’

‘나시리아 나시리아’

바그다드에서 나시리아로 간다는 뜻이다.

나시리아는 이라크 남부에 있는 도시로 유프라데스강을 끼고 있는 지역이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중요한 건 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해, 정확히 2003년 3월 20일.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 미 육군과 해병대와 연합군 지상 전투부대들은 쿠웨이트에서 남부 이라크로 들어간다.

이때까지 미군은 미사일과 공중공격에 의존했는데 처음으로 지상군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후 지상군부대 들은 속속 이라크 국경을 넘었고 3월 23일 주요 미 지상군 전투부대들은 나시리아로부터 약 130마일 북쪽까지 진군하였다.

이는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2003년 3월 23일 이라크 시간으로 아침 7시 무렵이었다.

남부 이라크 지역의 나시리아 시 외곽에서 이동 중이던 미군 제 507 정비중대는 이라크 정규군 및 비정규군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이 부대는 18대의 차량으로 이뤄진 차량 종대(convoy)에 33명의 미군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나시리아 곳곳에 숨어 있던 이라크 병력들은 이 차량 종대에 대하여 격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차량 종대에 있었던 33명의 미군들 중에서 11명은 전투 중에 죽거나 입은 부상이 사막의 열기에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미군 포로도 무려 7명이 나왔다.

겨우 도망쳐 포위망을 벗어난 인원은 고작 16명이었다.

그 이전으로 돌아가서 507 정비중대는 2003년 2월 20일 텍사스주 포트 블리스로부터 쿠웨이트에 도착했다.

중대 규모로 인원 82명과 각각에 할당된 차량들로 이뤄져 있었다.

이 부대는 쿠웨이트의 캠프 버지니아(CAMP VIRGINIA)에 위치한 미 제 5군단의 작전 통제 하에 들어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