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58화 (458/651)

제458화: 말이 안된다(2)

신호가 간다.

이어 저쪽에서 여보세요 하고 묻는다.

“나요. 계약을 취소 합시다.”

“뭐라구요?”

상대가 깜짝 놀란다.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았던 사내였다.

하지만 지금은 숨 쉬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 의식도 또렷해 졌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의식이 분명하게 돌아왔는지 알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 오른쪽 사내의 도움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을 싣고 오면서 잠깐 차를 세우더니 가게로 들어가 두 잔의 커피를 사는 여유까지 보였다.

자신을 담벼락에 기대 앉혀 놓고 오른쪽 사내는 여러 곳으로 전화 통화를 했다.

통화 내용이 누군가에게 어떤 지시를 내리고 구두로 결재를 하는 걸 보면 적지 않은 규모의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탁!

오른쪽 사내는 통화가 끝난 듯 핸드폰을 옆에 놓더니 커피를 후루룩 소리나게 마셨다.

나스닥에 상장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미 상장이 되었어야 하는데 몇 가지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어 몇 달 더 늦췄다.

걸려온 전화들 모두 그와 관계된 것들이었다.

후루룩!

권총수는 소리가 나도록 커피를 비우더니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부상당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 것이고? 피곤하게 말싸움 하지 말고 깔끔하게 끝내는 게 어떻습니까? 대답만 잘하면 병원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병원까지 데려다 준다는 건 자신을 살려주겠다는 뜻이다.

죽기 싫었다.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위기에 처해서일까.

오늘처럼 산다는 것이 찬란하고 미치도록 좋은 건지 몰랐다.

무조건 대답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백만장자가 된들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누가 시켰습니까?”

사내는 망설이지 않았다.

“마운트!”

동일인의 이름이 두 번째로 흘러나온다.

첫 번째는 식사하기 전에 만났던 페레즈 입에서 뱉어졌다.

페레즈는 처음 맥크레인을 주저앉히자는 제의를 해왔던 인물이 마운트라고 했다.

그는 지금 백악관 대외협력실장이다.

대외협력실장은 대통령은 물론 가족의 은밀한 사생활을 관리한다.

은밀한 사생활이란 다른 것이 아닌 정적들에 대한 대처와 처리를 도맡는 것이다.

돈이 들어가야 할 곳에는 돈을 쑤셔 넣고, 공작을 벌여 주저 앉힐 사람은 가차없이 밟아 버린다.

그래서 ‘배후의 암살자(an assassin behind one's back)’라고 부른다.

“당신들 소속은 어디요?”

용병들은 아니다.

용병들은 보면 알 수 있었다.

용병들은 그저 강한 기세만 내 뿜을 뿐인데 사내들은 그렇지 않았다.

매우 안정되어 보인다.

총을 맞아 행색이 볼품 없지만 예리한 기세는 살아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모두가 절망의 눈빛을 보이는데 사내는 차분했다.

“SAD.”

권총수는 물론 오민철까지 깜짝 놀랐다.

“뭐라고 했소. 지금?”

오민철이 다그쳤다.

“SAD라면 설마 그곳?”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SAD(Special Activities Division) 특수공작국을 의미한다.

글자 그대로 특별한 임무, 아주 비밀스런 일들만을 진행하고 청소한다.

“계속 말해 보세요? 몇 국이죠?”

권총수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3국 소속.”

“내가 알기로 특수공작국은 모두 6국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각 국은 항상 경쟁관계이고?”

“맞소.”

“3국에서 날 노렸다면 국장 역시 백악관쪽 사람이며 마운트 실장과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봐야 할 듯.”

슥!

권총수는 담배를 꺼내더니 불을 붙였다.

담배를 피우는 권총수 얼굴이 굳어져 있었는데 뭔가 답답한 모양이었다.

특수공작국 휘하 제3국에서 자신을 노렸다고 그것이 CIA의 뜻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의 악연이 한 번 있었던 때문인지 순간적으로 가슴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토사구팽(兎死狗烹: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뜻)도 아니고.”

오민철이 중얼거렸다.

엄밀히 따지면 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성공 직전에 있긴 했다.

즉 잡혀 먹을 충분한 상황에 놓인 건 사실이다.

권총수는 전화를 걸었다.

“어디십니까? 그렇잖아도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맥보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알고 있었소?”

“캡틴 무슨 말입니까?”

“SAD 3국에서 날 죽이려 했소.”

“네에?”

휘이익!

갑자기 권총수가 전화기를 던졌다.

사내는 두 손으로 핸드폰을 받았는데 여보세요 소리가 다급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받아 보세요. 한 식구 아닙니까?”

핸드폰에서는 캡틴 내 말 좀 들어봐요. 하는 맥보란의 소리가 터질 듯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당신 누구요? 왜 캡틴의 전화를 당신이 받는 거야?”

사내는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난 제3국 소속의 갈랜드라고 합니다. 누구십니까?”

“3국?”

맥보란은 매우 놀라더니 오마이 갓을 외쳤다.

“누구의 지시였소? 난 대외정보국 소속 맥보란 중동팀장이오.”

팀장이면 대기업 부장급이다.

이사 바로 밑으로 정보국에서는 굉장히 높은 서열이었다.

소속이 달라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들어보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린 국장님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하긴 제3국 요원이 제3국장 지시를 받지 않고 어떻게 움직일 수 있겠소. 캡틴을 바꿔주시오.”

갈랜드란 사내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슈우욱!

받으라는 듯 살짝 내밀었을 뿐인데 전화기가 날아간다.

화악!

갈랜드의 눈이 커진다.

“마...마!”

마술이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마술은 사람의 눈을 속이는 기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술사는 항상 몸에 뭔가를 감추거나 아니면 관객의 시선을 아주 잠깐이라도 가로막는다.

하지만 권총수는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탁!

권총수는 전화기를 받아 말했다.

“얘기 하세요.”

“그렇잖아도 뭔가 조짐이 이상해 캡틴에게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어딥니까? 지금 잠깐 만나죠. 화는 나를 만나고 내셔도 됩니다.”

권총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권총수가 말했다.

“형 갑시다!”

두 사람은 차를 향해 걸어갔다.

초조하다.

태어나 이토록 초조해보긴 처음이다.

기다린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커피를 두 잔 시켜 마셨다.

그러나 여전히 타는 갈증은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권총수를 진정 시켜야 한다.

그는 전투기의 폭격이나 탱크로 밀어버리지 않는 한 누구도 죽이지 못 한다.

그는 신이다.

최소한 자신이 본 권총수의 능력은 신에 근접해 있었다.

얼마만큼 무서운 사람인지 이미 한 번 경험을 했다.

삐걱!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권총수와 오민철이 들어서고 있었다.

권총수는 바로 자리로 걸어왔고 오민철은 차를 주문하려는 듯 카운터로 걸어간다.

“캡틴 난 알지 못한 일입니다. 어쨌든 특수공작국장님께 전화를 하여 자초지종을 알아보겠습니다.”

“맥!”

“말하세요.”

“나한테 숨기는 것 있죠?”

“글쎄 숨겼다고 해도 할 말이 없고 숨기지 않았다고 해도 크게 흠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오민철이 쥬스 두 잔을 가져와 놓고 앉으며 물었다.

“어느 정도 파헤쳤으니까 알고 있겠죠. 맥크레인 전 원내대표와 대통령 그린우드 사이가 무척 좋지 않습니다. 문제는 맥크레인씨의 비즈니스 능력이 뛰어납니다. 정치적 수완 또한 노련하여 그를 따르는 기관장이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죠. 그 한 예가 양 기관에 대통령 딸 납치 사건이 극비에 전달됐는데도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맥크레인이 좋아 현 대통령이 밉다고 해도 국가 기관이라는 건 무조건 현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오민철이 이마를 찡그렸다.

“맞습니다. 그게 정상이죠. 법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못 박았구요. 전 국민이 보는 대선 토론에서 이런 일이 있었죠. 그동안 CIA와 FBI가 국가에 봉사하는 것만큼 연봉에서부터 복지제도까지 상당히 미비했다면서 맥크레인이 포문을 열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공무원의 연봉이 결코 민간 기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특히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은 그 자체가 권력이기 때문에 더욱 보수가 박하다.

그동안 두 기관은 10년 넘도록 연봉과 복지 모든 것이 제자리였다.

그로인해 구성원들 모두 불만이 있었는데 맥크레인이 대선공약으로 민간 기업 애플 직원의 80퍼센트에 준하는 만큼 두 기관의 연봉을 끌어 올리겠다고 말한 것이 충돌의 시발점이었다.

그린우드 현 대통령은 다른 기관과 형평의 원칙을 내세워 불가론을 강조했다.

하지만 맥크레인은 두 기관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월급 받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일 년에 두 기관에서 희생되는 요원들의 숫자까지 나열해가면서 지금 미국에서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공직이 있냐고 반격을 한 것이다.

우린 미국이다를 외치는 보수 우익 쪽에서는 환호했다.

두 기관 또한 환영 발표나 성명은 없었지만 웃음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그런 와중에 예상을 깨고 맥크레인이 후보에서 탈락했다.

두 기관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넘어갔다.

문제는 백악관에 들어간 이후 보여준 그린우드의 행동이었다.

그린우드는 대통령에 오르자마자 두 기관의 주요 간부들을 모조리 갈아 치웠다.

알력은 여기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간 간부들이 저항을 했다.

그렇다고 눈에 띄는 반역적인 행동을 하는 건 아니었다.

바깥으로 흘러나가서는 안 되는 정보들을 슬쩍슬쩍 흘리면서 현 정부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사건을 맡기면 공정한 수사를 할 리가 없다.

어쩌면 이 사건을 계기로 양측이 충돌할 가능성만 높아질 것이 뻔했다.

지금의 CIA국장과 FBI국장 모두 그린우드쪽 사람들이다.

그러나 현장 수사를 할 중간 간부 이하는 맥크레인쪽이 더 많다.

“백악관에서는 이번 사건은 양 기관 대신 가장 공정할 수 있는 곳에 맡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맥보란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미국 내 수많은 수사기관이 있으나, 믿을 만한 중립적인 기관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화당이 정권을 잡았으면서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맥크레인을 지지하고 현 대통령을 깎아내린 전례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우리한테 사건이 왔군요.”

오민철이 낮게 중얼 거렸다.

“아무튼 오늘 사건은 과잉 충성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3국장이?”

오민철의 질문에 맥보란이 이마를 찡그렸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그가 단독으로 행동에 나설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

“백악관 대외협실실장 마운트가 제3국장에게 지시를 내렸겠군?”

권총수는 단정했다.

“클레어 양은 찾아야겠고, 그런데 내가 맥크레인과 그린우드 대통령 사이에 있는 거래 내용을 알게 되자 위기를 느낀 것이로군. 사건 전모가 알려지면 연임은 꿈도 꿀 수 없고 남은 2년의 임기도 무척 시끄럽게 될 테니까.”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잘 아시잖습니까?”

맥보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권총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소속 기관이지만 민낯을 까야 했다.

쭉!

권총수가 쥬스를 한 모금 마신다.

“할 말이 뭐죠?”

전화로 이번 사건 말고 할 얘기가 있다고 했었다.

“흐흠!”

맥보란은 한숨을 내 쉬었다.

표정이 처음보다 더 무거워 졌다.

그건 매우 좋지 않는 얘기를 하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계약 말입니다.”

“계약?”

오민철이 눈을 빛냈는데 무슨 계약이냐는 질문이다.

“회사(CIA)와 맺은 계약?”

화악!

권총수 눈이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