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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56화 (456/651)

제456화: 허물 벗는 뱀(2)

파멜라는 주춤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정치인들은 사람의 입을 잘 믿지 않습니다. 특히 여자들 입은 더욱 신뢰하지 않죠.”

“무슨 말씀이에요?”

“이제 이쯤에서 입을 닫아야 할 것 같습니다.”

“페레즈, 입을 닫아야 한다뇨?”

스윽!

페레즈란 사내는 속주머니에서 권총 한 자루를 꺼냈다.

“아학!”

파멜라가 놀라며 서너 걸음 더 물러났고 페레즈란 사내가 권총을 들어 올렸다.

“아주 잠깐이면 끝납니다.”

“아...안돼요.”

파멜라는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페레즈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고 오른손 검지가 방아쇠에 닿는다.

딱!

권총 방아쇠를 당기려 할 때 팍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페레즈가 비명을 터뜨렸다.

“으악!”

풍덩!

페레즈가 손에 쥐고 있던 권총을 호수로 빠뜨렸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권총을 쥐고 있던 오른 손등에 나뭇가지 한 개가 깊숙이 박혀 있는데 잎사귀까지 달려 있었다.

“우욱!”

페레즈는 무척 괴로운 듯 신음을 흘렸으며 손등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보고 있었다.

타다닥!

그 사이 파멜라가 도망을 치려했으나 10여 미터도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다...당신?”

오민철이 그녀 앞을 막았다.

“놀랄 것 없습니다. 누구도 당신을 죽이지 않습니다. 진정하세요.”

오민철은 부드럽게 웃었다.

“당신은 누구요?”

들려오는 소리에 파멜라는 고개를 돌렸다.

오민철과 같이 가게를 찾아왔던 사내가 페레즈 앞에 서 있다.

“동풍이 부는 걸 보아 비가 오려는 모양입니다.”

권총수는 더욱 거칠어지는 호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어 담배를 피워 물었다.

“대강의 윤곽은 잡혔습니다. 대통령의 딸이 왜 실종되었고 그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지 말입니다. 왜 초능력을 지녔다는 CIA와 FBI도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건지 사정도 알 것 같고.”

권총수는 느릿하게 호숫가에 쭈그리고 앉았다.

밀려온 파도가 금방이라도 달려 들것처럼 가까이 접근했다.

“공직 사회에서는 맥크레인 후보가 훨씬 인기가 좋아보이더군요. 그렇다 보니 대통령 딸이 실종되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수많은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머뭇거리거나 그럭저럭 시늉만 낸다는 걸 알았습니다. 특히 그린우드 대통령은 후보시절 약속을 무시하고 맥크레인 후보쪽 사람들로 평가되는 고위 공직자 수백 명의 옷을 벗겼던데?”

페레즈의 눈이 커졌다.

너무 속을 정확히 드려다 보았기 때문이었다.

“정보기관 내에서 맥크레인파와 그린우드 파가 나눠져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으니 정확한 수사가 될 리 없죠. 서로가 방해하고 정보를 빼돌리다 보니까 말이죠.”

그래서 권총수에게 청부를 한 것이다.

양 기관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부 분열로 심각한 충돌이 일어나면서 수사에 진척이 없자 최후 수단으로 권총수를 선택한 것이다.

지이잉!

파멜라를 데리고 있던 오민철이 핸드폰을 보았다.

30여 분 전 페레즈 얼굴사진을 찍어 맥보란에게 인물 확인을 요청했는데 답장이 온 것이다.

문자를 보던 오민철이 깜짝 놀랐다.

‘페레즈 맥크레인 전 공화당 원내대표 보좌관’

몇 번을 읽고 또 읽어도 페레즈가 맥크레인 보좌관이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된거야?”

오민철은 재빨리 권총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페레즈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권총수는 울리는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하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권총수는 페레즈를 향해 말했다.

“난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든 삶의 방법까지 간섭하거나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등지면 배신자라고 그러는데 난 생각이 조금 다르죠. 배신도 약자가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멈칫!

정치인 보좌관답게 눈치가 빠르다.

뭔가를 읽어 낸 듯 했다.

“다만 한 가지는 내 질문에 대답해줘야 합니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거부한다면 미시간호에 파멜라씨 대신 당신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내 말 잘 알았냐는 듯 깊은 시선으로 페레즈를 바라본 권총수가 꽁초를 버리며 말했다.

“당신과 파멜라는 어떤 관계입니까? 맥크레인 대표 사무실에서 같이 일을 한 보좌관과 인턴 여비서 관계란 그런 뻔한 말은 하지 마세요.”

대중이 모르는 얘길 하라는 뜻이다.

페레즈는 굳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얼른 대답을 하지 않자 오민철이 다가왔다.

“실험해보고 싶습니까?”

고문을 당해봐야겠느냐는 뜻이었다.

“페레즈 보좌관님 파멜라양과 어떤 사이냐고 묻잖습니까?”

페레즈는 여전히 침묵이다.

오민철이 고개를 돌려 파멜라에게 말했다.

“파멜라양도 대답할 준비 해놓으셔야 할 겁니다. 가게에서처럼 우리에게 쌀쌀맞게 내쫓는 행동이 여기선 안 통합니다. 아셨습니까?”

그리고 다시 페레즈를 바라보았다.

“5초를 허락하죠. 1초 2초 3초 4초 5초 땡!”

빠악!

오민철의 주먹이 턱을 갈겼다.

강하게 단련된 주먹에 맞은 거구의 페레즈가 그대로 무너져 버린다.

꽈지직!

오민철은 손을 뻗어 머리 위에서 뻗어 나온 가문비 나무 가지를 사정없이 잡아 당겼다.

쿠쿠우우!

나무가 찢어졌고 가느다란 끝 부분을 부러뜨린 뒤 적당한 길이의 몽둥이를 만들었다.

퍽!

퍼퍼퍽!

일어나려는 페레즈를 향해 무자비한 몽둥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페레즈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지만 오민철은 멈추지 않았다.

“미연방 법은 인간에게 어떤 고문이나 폭력도 절대 가해서는 안된...!”

“연방법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다.”

빡!

빠바박!

“큭! 아우!”

페레즈는 오민철의 몽둥이를 피해보기 위해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마...말 할테니 그만 때려.”

뚝!

오민철이 몽둥이질을 멈추며 만족스런 표정이다.

권총수가 보는데서 페레즈를 굴복시키지 못하면 창피라는 걸 알고 좀 더 살벌하게 때렸는데 다행히 통한다.

페레즈는 몹시 아픈 듯 가만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몸을 구르면서 신음을 흘렸다.

“크으으으!”

공화당 원내대표 보좌관 정도면 엘리트 코스만 밟아 왔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오민철의 몽둥이 세례는 절대 견딜 수 없는 공포이며 두려움으로 충분히 작용한 것이다.

“맥크레인 대표님 사무실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

“그 얘긴 앞서 말했잖습니까?”

오민철의 눈을 부릅떴다.

페레즈는 몇 번 호흡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했다.

물론 꿈은 정치인이 되는 것이었다.

대학 2학년 때 맥크레인의 대중연설을 듣고 그에게 빠져 들었다.

이후 그는 열렬한 맥크레인 지지자가 되었고 졸업하자마자 그의 사무실에서 보수 없는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맥크레인은 과묵하면서 냉철한 눈으로 워싱턴 정가의 흐름을 꿰뚫는 페레즈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페레즈가 입안한 계획서나 정치적 전략은 항상 성공을 거두었고 맥크레인을 만족시켰다.

맥크레인은 그를 곁에 두고 싶어 했다.

그렇게 정치 초년생 페레즈의 삶은 보좌관으로서 본격 궤도에 오른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나서부터 갑자기 페레즈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약속날짜가 다가온 것이다.

‘내 나이 쉰다섯이 지나면 자네에게 내 지역구를 물려 주겠네’

그건 엄청난 당근이었다.

그래서 더욱 목숨걸고 뛰었는지 모른다.

정치인이란 햇빛도 강하지만 어둠도 적지 않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정치생명이 끝장나는 궂은 일은 모조리 페레즈가 맡아 처리했다.

그야말로 맥크레인의 하수구는 전부 페레즈가 청소한 것이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으나 맥크레인은 요지부동이었다.

갈수록 정치적 욕망은 커졌고 그러면서 페레즈가 치워야 할 더러운 쓰레기의 생산은 더욱 많아졌다.

백악관에 들어가면 그것으로 정치인의 삶은 정리된다.

하지만 맥크레인은 그린우드 현 대통령에게 밀렸고 또 다시 페레즈의 워싱턴 입성은 물거품이 되었다.

바로 그때 한 가지 제의가 들어왔다.

내용은 맥크레인을 워싱턴 정가에서 밀어내자는 것이었다.

미움을 넘어 증오를 품고 있던 페레즈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내용은 뭐였소?”

이번에는 권총수가 질문을 던졌다.

페레즈는 한쪽에 서 있는 파멜라를 슬쩍 바라보았다.

“여자였소.”

이번에는 파멜라가 페레즈를 돌아보았다.

모든 건 그들이 준비했다.

두 사람은 그들이 짜준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기만 했을 뿐이었다.

파멜라는 맥크레인의 비서였다.

그와 사무실을 쓰면서 잔 심부름에서부터 정책 토론까지 모든 걸 관리했다.

특히 파멜라 머릿속에서 나온 여성정책에 관한 뛰어난 아이디어는 맥크레인의 주가를 더욱 높였다.

“그렇군. 좁은 공간에서 백오분의 향기는 아무리 오랜 정치경험을 가진 맥크레인이라고 해도 이성이 흔들리지.”

“그들의 계획은 뭐였소?”

“맥크레인의 정치 생명을 끊는 것이지.”

“대통령 후보 게임에서 패배했으면 승부는 끝난 것 아닙니까?”

페레즈는 크게 한숨을 내 쉬었다.

“두 사람의 지지도는 팽팽했죠. 만약 그런 상태로 끝까지 간다면 누가 이겨도 만신창이가 될 건 뻔했소. 두 사람의 입이 갈수록 거칠어지면서 대중의 시선이 차갑게 변해가고 있었기에 지도부는 다급했습니다. 더 이상 경쟁은 공멸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잃었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양보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죠. 양보의 미덕으로 그동안 눈살 찌푸렸던 이미지를 씻어내자는 생각이었소.”

양쪽 진영은 물밑에서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당신이 양보하시오.

아니다. 당신이야 말로 약점이 너무 많아서 본선에 나가면 위험하다.

그러는 가운데 도저히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 어려울 것 같았던 두 사람이 극적으로 합의를 하였고 그린우드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합의 내용이 뭡니까?”

“다른 건 모르고 한 가지는.”

“말해보세요.”

권총수가 눈을 빛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위원의 3분의1을 맥크레인 후보 쪽에 양보한다는 것입니다.”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고위 각료들의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고유권한이다.

대통령이 가진 권력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인사권인데 그런 절대막중한 힘을 일부분 떼어 맥크레인에게 준다는 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공동정부라고 할 만큼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 있다면 그의 지분을 어느정도 인정하여 인사권을 양보하기도 하지만 드물다.

“당신은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보시오?”

“불가능한 일이죠.”

그린우드는 맥크레인의 조건을 받아 들였다.

우선 단일화부터 이뤄 놓고 보자는 다급한 마음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약속을 한 것이다.

하지만 약속은 첫판부터 처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맥크레인은 자기 몫으로 남겨진 각료 3분의1에 대한 명단을 전달했다.

그러나 막상 백악관의 발표에는 자신이 추천한 인물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모조리 뭉개 버린 것이다.

당연히 맥크레인쪽에서는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나 칼자루는 이미 그린우드에게 잡혀 있었다.

그건 시작이었다.

후보 단일화를 하면서 맥크레인과 약속했던 많은 것들이 모조리 깨지기 시작했다.

CIA와 FBI를 포함한 국가 안보기관에서 맥크레인계 인물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모조리 쳐냈다.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불과 6개월만에 그린우드는 맥크레인의 손과 발을 완전히 잘라 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맥크레인을 인턴 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몰아갔다.

“맞습니까?”

권총수는 파멜라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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