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55화 (455/651)

제455화: 허물 벗는 뱀(1)

여긴 시카고다.

어제 밤 비행기로 시카고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고 곧바로 이곳 유니언 역 앞에 있는 여기 아이스크림 가게로 온 것이다.

“그러게요.”

파멜라는 잠시 굳었던 얼굴을 풀며 웃는다.

“하루 매출이 어느 정도 됩니까? 아 걱정 마세요. 미리 말하는데 우린 IRS(Internal Revenue Service)사람 아닙니다.”

파멜라가 놀랄까봐 웃으며 말했다.

IRS는 미국 국세청이다.

국세청이라고 하여 우리나라를 떠올리면 안 된다.

그냥 세금만 걷으러 다니지 않는다.

산하에 세무범죄조사국(Criminal Investigation Division, IRS-CID)까지 두고 있다.

그들은 경찰 조직으로 법무부, 국토안보부, FBI, DEA, 그리고 연방보안관들과 긴밀히 공조하여 연방 차원의 탈세범의 검거와 체포를 담당한다.

권총은 물론 자동화기도 보유하고 있다.

마을 단위로 납세를 거부하면 주방위군이나 연방군과 같이 출동한 사례들도 있다.

가게든 개인이든 회사든 한 번 털리면 끝이다.

미국인이라면 피하지 못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그건 죽음과 세금이다.

“내게 용건 있나요? 그런 것 같군요. 건장한 남자 둘이서 고작 쿼터 사이즈 놓고 깔짝거리고 있는 걸 보니.”

여자의 말은 매서웠다.

“가게를 나가실 거에요? 아니면 경찰을 부를까요?”

“고향인 루이빌에서 장사를 하지 않고 전혀 연고도 없는 이곳 시카고에서 하는 걸 보면 무슨 사연이 있나 봐요?”

오민철이 입을 열었다.

“당신들 누구에요?”

행주를 든 파멜라의 눈이 매섭게 빛난다.

“미국의 발전은 이제 여성의 몫이라면서 정치에 뜻을 두고 정치인 사무실에 인턴으로 들어가셨던데 이제 꿈을 포기했나봅니다?”

권총수가 나섰다.

파멜라의 안색이 변했다.

탁!

권총수가 품에서 새끼 손가락만한 크기의 병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는 흰색의 액체가 들어 있었다.

권총수는 약병을 살피듯 자세히 보더니 불쑥 입을 열어 말했다.

“이게 뭔지 아세요? 그 옛날 당나라의 양귀비가 사용했다는 백오분(白蜈糞)이라는 거죠.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파멜라의 눈빛이 흔들린다.

권총수는 뚜껑을 열었다.

“흐음!”

마개를 연 병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는다.

“무슨 향기가 이렇게 좋아.”

오민철이 처음 본다는 듯 병을 가져다 자신의 코에 가까이 댄다.

“와우, 환상이군. 엇, 뭔데 아랫도리가 불쑥 꿈틀거리지?”

스윽!

권총수는 오민철의 손에 들린 병을 다시 가져왔다.

“지네의 배설물, 변이죠. 오분(蜈糞)에 몇 가지 식물의 꽃가루를 섞으면 이런 백오분이 만들어집니다. 당나라 양귀비의 미모는 전해오는 역사처럼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가 황제 현종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아름다운 몸이 아닌 이 백오분이라고 하죠.”

파멜라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백오분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달라진다.

“백오분은 남자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향이 있습니다. 조금만 냄새를 맡아도 남자는 이성을 잃어버리죠. 또한 제 사부이신 소림사의 천금신승께서는 백오분을 지옥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죽어가는 노인도 벌떡 일어나 여자를 탐하게 만들 만큼 무자비한 미향이라는 거죠. 중국에는 아직도 이 백오분이 직접 거래되고 있습니다. 물론 희귀하고 고가이기 때문에 아무나 구입할 수는 없지만.”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날 중국이 첨단 사업분야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루는데 이 백오분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미모의 중국 공작원들에게 실리콘벨리의 많은 미국 과학자들이 넘어간 것이죠. 맥크레인 공화당 원내 대표도 이 백오분에 당한 것으로 압니다.”

“여보세요.”

파멜라가 전화를 걸었다.

“911이죠. 지금 우리 가게에 이상한 사람들이 와서 날 협박하고 있어요. 모르겠어요. 빨리 좀 도와주세요!”

오민철이 어떻게 할 거냐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먹다 만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떠 입에 넣었다.

이미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은 물이 되어 권총수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후루룩!

컵을 들어 급기야 마셔 버린다.

“또 봅시다!”

권총수는 손을 들어 보이며 천천히 아이스크림 가게를 걸어 나갔다.

파멜라는 그 모습을 한참을 지켜보고 있었다.

권총수와 오민철이 떠나고 1분도 되지 않아 경찰차가 들이닥쳤다.

가게에 들어선 경찰들은 파멜라를 향해 물었다.

“어딨소? 파멜라 당신을 위협한 자들 말이오?”

“갔어요. 도망쳤어요.”

그때까지 오른쪽 허리에 있는 권총을 쥐고 있던 두 경관의 손이 비로소 내려왔다.

“피해 본 건 없습니까?”

“당신들이 조금만 늦게 왔더라도 난 온전하지 못했을 거에요.”

“총을 소지하고 있었나요?”

“날 죽이려고 했어요. 아시아계에요.”

경찰들은 이것저것 묻고 수첩을 꺼내 메모를 했다.

그리고 한 명이 재빨리 바깥에 있는 차량 무전기로 파멜라가 설명한 두 명의 아시아계 남자들을 수배해달라는 지령을 내린다.

경찰도 떠나고 혼자 남은 파멜라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뭔가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파멜라에요. 이상한 남자 둘이 찾아왔어요.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백오분까지 얘길 했어요.”

상대로부터 무슨 얘길 듣는 듯 파멜라는 30여초 잠자코 있었다.

“빨리 어떤 대책을 세워주세요. 무서워요.”

일 분여 더 통화를 한 파멜라는 전화를 끊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두 명의 할머니가 손님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목소리는 높았지만 파멜라의 표정은 여전히 풀릴 줄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파멜라가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훤히 보이는 맞은편 2층에 있는 작은 카페였다.

창문 너머로 경찰차와 구급차가 도착하여 부산하게 움직이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구경하듯 한참을 지켜보던 오민철이 입을 열었다.

“저 가게는 맥크레인 상원 공화당 원내 대표와 민사로 가져가지 않기로 약속하고 받은 합의금으로 오픈했다고 했지?”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왜 고향에서 오픈하지 않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여기서 장사를 하는 걸까?”

“사람은 두 가지로 움직인다고 해. 하나는 몸이 시키는 대로, 다른 하나는 양심이 가는대로 움직인다는 거야. 내 말이 아니라 유명한 정신과 의사 에버튼 박사가 한 말이야.”

오민철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썹을 보았다.

“몸은 루이빌에서 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양심은 도저히 고향땅에서 아는 사람들 얼굴 보며 장사를 할 수 없었을 거야. 더욱이 그곳이 맥크레인 후보 지역구이며 인기가 대단한데 견딜 수 있겠어?”

“그래도 떳떳하다면 고향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니야.”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어 나가는데.”

구급차와 경찰들이 모두 철수하고 얼마되지 않아 파멜라가 문을 잠그고 나왔다. 그리고 가게 앞에 세워진 자신의 체로키 지프에 올랐다.

후다닥!

오민철은 부리나케 뛰어나갔지만 권총수는 창문을 열고 그냥 날아 내렸다.

권총수가 핸들을 먼저 잡고 기다린다.

1층 출입구에 나타난 오민철은 허겁지겁 차에 올랐고 포드 익스플로러가 멀리 달리는 체로키를 발견하고 속도를 높였다.

“장사하다 말고 어딜 가는 걸까?”

“가봐야지.”

권총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린다.

뭔가 느껴지는 바가 있는 얼굴이었다.

파멜라가 도착한 곳은 미시간호를 끼고 있는 조그만 산자락이다.

산이라기보다는 공원에 가까웠는데 시민들이 산책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 놓았고 군데군데 나무 벤치가 있어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다.

입구에 차를 세운 파멜라는 차에서 내려 산책로를 따라 걸어갔다.

바람이 불면서 미시간호의 물결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를 한 참 걸어가던 파멜라가 멈칫했다.

등산복 차람의 한 사내가 호수에 낚싯대를 던지고 있었다.

던지고 릴을 감기를 수차례 반복하지만 사내는 전혀 고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파멜라는 느릿하게 사내 곁으로 다가갔다.

드르륵!

다시 릴을 감고 재차 캐스팅하려던 사내가 멈칫했다.

잘못하면 파멜라가 낚시 바늘에 걸릴 수도 있기 때이다.

파멜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의 시선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대여섯 걸음 옆으로 비켜주었다.

휘익!

사내는 그제서야 멀리 릴을 던졌다.

“백오분을 아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사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시아계인데 두 명이 가게로 찾아와서 백오분을 보여주면서 성분과 사용처에 대해 자세히 말하더군요.”

낚시하는 사내는 여전히 침묵이다.

모든 감각을 낚싯대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보국 사람들 같지는 않았어요. 911에 신고를 하자 도망치듯 가버리더군요.”

“처음이죠?”

사내가 입을 열었다.

파멜라는 불쑥 뱉는 남자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바라보았다.

“가게에 찾아와 백오분 얘길 꺼낸 사람 말입니다?”

“네 맞아요.”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더니 릴을 감았다.

피이잉!

고기가 물렸다.

낚싯대 끝이 휘어지며 팽팽해진 줄에서 비명이 터진다.

고기는 쉽게 끌려나오지 않았다.

좌우로 물살을 가르며 빠져나가기 위해 강하게 버티고 있지만 낚싯대를 쥔 사내 역시 만만찮았다.

낚싯대 끝이 꾸욱 소리를 내며 휘어지면 잠시 대의 탄력을 이용해 방치하듯 지켜보다 힘이 꺼지면서 저항이 느슨해지면 재빨리 릴을 감았다.

촤아아!

고기는 몇 번을 더 저항하더니 결국 모습을 드러냈는데 60센티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송어였다.

사내는 고기를 뭍으로 끌어 낸 다음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로 인증샷을 찍었다.

이어 바늘을 빼더니 고기를 다시 풀어 주었다.

촤악!

사내는 호수 물에 손을 씻더니 손수건을 꺼내 닦았다.

“파멜라.”

사내는 낚싯대를 접기 시작했다.

탁!

타타탁!

“이런 일은 무척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은밀하게 마무리 됩니다.”

“저도 알아요!”

사내는 접은 낚싯대를 조그만 가방에 담았다.

그리고 윗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로 불을 당긴다.

후우!

뿜어내는 연기가 미시간호 위로 흩어졌다.

사내는 침묵했다.

말없이 담배만 피웠는데 말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파멜라의 표정도 굳어가고 있었다.

후우!

뱉어낸 연기가 차갑게 뻗어나간다.

‘자네의 역할은 그녀의 보호자가 아닐세. 무슨 말인지 알겠나? 보호자 행세를 하지만 난 자네가 다른 일을 해주길 원하지’

생구지개(生口之開)라고 했다.

살아있는 입은 반드시 열린다는 뜻이다.

‘세상이 조금 잠잠해지면 조용히 흔적을 남기지 말고 제거하는 것이 보호자 속에 숨겨진 자네의 진짜 역할이라는 걸 명심하게’

사내의 굳게 물린 입이 열렸다.

“파멜라!”

사내가 옆으로 돌아섰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는데 파멜라는 움찔했다.

자신도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사내는 고개를 돌려 주위 산길을 바라보았는데 산책하는 사람도 없고 살아 움직이는 짐승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죽여 물속에 묻어 버린다면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헛헛!”

사내는 씁쓸한 표정으로 웃더니 정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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