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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54화 (454/651)

제454화: 달의 집(2)

어깨에 엎어져 메었기 때문에 두 눈으로 상황을 볼 수가 있었다.

계단이 아닌 창문으로 뛰어 내렸는데 추락하듯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가라앉는다.

처억!

사내는 거의 충격이 없는 착지를 보이며 걸어갔다.

파팟!

캐시먼의 눈이 커졌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세 사내의 주검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당했다’

자신들이 공격을 한 것이 아니라 공격을 당한 것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오늘밤 기습 계획은 MS-13에서도 수뇌급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포드 익스플로러가 달의 집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일 분 정도 지나 911과 경찰차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허리가 다쳤다는 걸 모르지 않는데 차 밖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를 쳤다.

“아우우!”

너무 아픈 나머지 캐시먼은 짐승같은 소릴 냈다.

하늘에 별이 보이는 것이 아직 밤인 것은 분명하지만 목을 돌릴 수가 없어 어딘지 알 수는 없었다.

등이 차갑고 약간 딱딱한 것을 보면 아스팔트는 아니다.

냉기가 스며드는 강도와 면적을 보아 인적이 드문 산속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코끝으로 담배 냄새가 맡아졌다.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아까 C4 반죽할 때 몇 번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위력은 폭탄급이 던데?”

C4란 말에 캐시먼은 눈을 감아 버렸다.

컴포지션(Composition) 은 TNT보다 생산 과정이 비교적 덜 위험하면서도 위력은 더욱 강력한 RDX를 베이스로 한 폭약이다.

폭약의 왕좌로 보면 무리가 없다.

컴포지션도 여러 계열이 있는데 그중 C4가 가장 악랄하다.

풀네임은 ‘Composition Explosive C-4(복합 폭발물질 C형 4번)’로, C4의 폭발 속도는 초속 8.1km이다.

놀라운 건 두 사람의 대화였다.

반죽 운운한 걸 보면 직접 제조했다는 뜻인데 전문가도 쉬운 일이 아니다.

군대시절 자신도 이론적으로만 배웠을 뿐 직접 제조해본 경험은 없다.

씰의 한 개 팀은 모두 8개의 소대로 이뤄졌다.

그중 소대는 16명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 두 명이 폭탄제조 주특기를 갖고 있다.

몇 번 그들이 폭탄을 만드는 걸 볼 기회가 있었는데 매우 어렵고 위험했다.

또한 폭탄의 위력은 제조한 사람의 기술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너무 지나치게 반죽을 많이 해도 위력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적당히 몇 번 주물럭거려도 별로야. 그래서 C4를 주무름의 과학이라고 하지.”

권총수의 말에 오민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배웠는데 자신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권총수는 능숙하다.

그래서 항상 넌 군대 체질이라고 약을 올리기도 했다.

캐시먼의 옆구리에 강한 발길질이 가해졌다.

푸욱!

어둡지만 충분히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씨익!

오민철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무릎을 굽히고 쭈그려 앉았는데 무릎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들린다.

“묻는 말에 대답만 하세요. 당신 이름이 캐시먼 맞소? 클럽 레드윙의 팔카오와 친하고?”

“맞소!”

“음 그러니까 두 달 조금 더 지난 것 같은데 필 포든 시장 별장에서 커다란 폭발사고 있었죠.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세요.”

캐시먼은 오민철을 올려다보았다.

인상은 그다지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형 비켜봐.”

오민철이 일어났고 그 자리에 권총수가 쭈그리고 앉았다.

번쩍!

그런데 권총수의 손에 새하얗게 빛나는 회칼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움찔!

칼에서 차가운 냉기가 쏟아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진짜로 뿜어 나온다.

춥다.

그건 죽음의 기운이다.

칼에서 폭사되는 얼음 같은 기운이 온몸을 덮으면서 몸을 떨었다.

숨이 턱 막힌다.

“하던 얘기 계속 합시다. 별장을 공격하려던 사람들은 누구고 그 별장에는 누가 있었죠?”

캐시먼은 입을 다물었다.

씨익!

권총수가 웃는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말씀이군요. 좋습니다. 한 번 견뎌 보시죠.”

스으으!

칼끝이 옷 위를 지나간다.

투툭!

얼마나 예리한지 무언가 지나가기만 한 것 같은데 옷이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칼은 아랫배를 지나 허벅지로 내려갔다.

쫘아아!

입고 있는 바지가 물살처럼 좌우로 잘라지며 다리가 드러났다.

뚝!

칼은 장딴지 중간쯤에 멈췄다.

“이곳이 비골이고 여기가 경골이죠.”

장딴지 뒤쪽 뼈와 정강이 뼈를 칼로 툭 친다.

“비골과 경골 사이에 공간이 있죠. 돼지 앞다리도 두 개의 뼈로 공간이 있고 그 사이에 있는 살이 굉장히 맛있죠. 양도 얼마 안 되지만 구워 놓으면 쫄깃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형 사람들은 그곳을 뭐라고 부르지?”

“도가니!”

“맞아 사람도 도가니(crucible)가 있는데 그곳은 급소이기도 합니다.”

푸욱!

권총수의 칼이 무릎 사이를 파고들었다.

“커억!”

캐시먼은 비명을 질렀다.

후들후들!

캐시먼이 고통에 온몸을 떨었다.

“강하게 타격하면 죽는 그런 혈(穴)이 아니라 육체적 통증을 가장 심하게 전달합니다. 그래서 로마시대에는 이곳에 칼을 꽂아 고문을 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끄어어어! 아으으!”

스윽!

꽂힌 회칼 손잡이를 슬쩍 건드리자 캐시먼은 구토하듯 말했다.

“클레어.”

뚝!

권총수는 움직이던 칼을 멈췄다.

“지금 클레어라고 했소?”

“조직에 배신자가 있었소. FBI 요원이 신분을 숨기고 들어와 조직원으로 활동했는데 그의 입을 통해 클레어양이 그곳에 있다는 말이 백악관 대외협력실장 마운트에게 전달됐소.”

“그럼 그 용병들은 마운트 대외협력실장이 보냈다는 것이군요? 헌데 왜 실패를 한거요. 그들 모두가 당신 손에 몰살당했다는 것 같던데?”

알면서도 소문을 들었던 것처럼 묻는다.

그러면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토해 내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캐시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마를 잔뜩 찡그리고 있었는데 20여초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FBI나 CIA의 단점이 뭔 줄 아시오? 자기들은 깨끗한 줄 안다는 거지. 우리조직에 자기 사람을 심어 두었다는 것만 생각하지 자기들 조직에 우리 사람이 들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

어리석다는 듯 입꼬리를 말려 올린다.

“백악관에도 MS-13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까?”

“당연하지.”

“그 사람을 통해 대외협력실장 마운트가 용병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고 덫을 설치한 것이군요.”

“사막의 흑새라고 했소? 이왕지사 이렇게 된 마당인데 그 칼 좀 뽑고 얘기하면 안 되겠소. 정말 아픈데.”

권총수는 곧바로 칼을 뽑았다.

“으으음!”

캐시먼은 길게 신음을 토해냈다.

상처로 인해 아프긴 하지만 꽂혀 있을 때보다는 덜한 모양이다.

팟팟!

캐시먼의 눈이 커졌다.

“지금 무엇 한거요?”

누워 있기 때문에 권총수가 한 행동을 볼 수 없었으나 신체 몇 곳을 손가락으로 누르는 것 같았다.

“지혈을 한 것입니다.”

“피가 멈췄단 말이오?”

“그렇소.”

느낌이 있다.

피를 흘릴 때와 흘리지 않을 때의 차이가 있는데 지금은 전혀 출혈의 기운이 감지되지 않는다.

거짓말이 아니다.

지혈을 위해서는 지혈제를 뿌리거나 압박붕대로 상처부위를 감는 것을 전부로 알고 있는 캐시먼에게 권총수의 지혈 수법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털썩!

권총수는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 캐시먼을 굴려 엎드리게 했다.

큭!

고통에 신음을 터뜨렸는데 권총수는 캐시먼의 상의를 걷어 올리고 허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부욱!

주무르는 듯 특정 부위를 움켜쥐었다가 놓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캐시먼은 신음을 흘리며 부르르 떨었지만 권총수는 멈추지 않았다.

‘타근추골(打筋推骨)’

무공이 높아지면 인간의 혈근계에 대해 훤히 들여다본다.

내상은 몰라도 뼈와 근육의 이탈로 생긴 건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절정고수들의 능력인 것이다.

손바닥에 내공을 모아 이탈한 뼈와 근육을 제 자리로 돌려놓은 상승의 치료법이다.

“크으음!”

캐시먼이 연거푸 신음을 흘린다.

하지만 처음에 보기 흉할 만큼 찌푸리던 이마가 조금씩 펴진다.

그건 고통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꾸욱!

꾸우우우!

손바닥이 한 번씩 지날 때마다 캐시먼은 신음을 흘렸지만 이후 통증이 완화하는 걸 보며 뭔가 알아차린 듯 조용했다.

권총수는 캐시먼의 몸에서 손을 뗐다.

“움직이지 마시오. 골절된 뼈와 뒤틀린 근육이 겨우 제자리만 찾았을 뿐이오. 병원에서 보름 여 치료를 하면 괜찮을 것이오.”

캐시먼은 눈을 감았다.

권총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치료를 해 주었다.

세상에 공짜 없다는 너무 단순한 이유를 들지 않아도 치료는 상당한 압박이었다.

차라리 고문이라면 말을 골라 대답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두 가지 선택 밖에 없다.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을 털어 놓든지 아니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캐시먼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전 공화당 대통령후보였던 맥크레인씨와 현 대통령인 그린우드 사이에 벌어진 싸움이라고 들었지.”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현 대통령 그린우드가 대선후보를 사퇴하는 조건으로 맥크레인에게 내세운 몇 가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어떤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

“그런 깊은 면까지 우리 같은 행동대원들이 안다는 건 어려운 일이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다.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 맞는 만큼만 알고 있다.

더 많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위치에서 알아야 할 것이 있고 알아도 모른 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선을 혼동하여 절제하지 못하면 불행을 맞는다.

스윽!

권총수는 그 폭발의 와중에도 고장나지 않고 주머니에 있는 캐시먼의 핸드폰을 꺼내 손에 쥐어 주었다.

“행운을 빕니다.”

권총수는 조수석으로 들어갔다.

오민철은 피우던 담배를 끄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부우웅!

라이트를 켠 포드 익스플로러의 엔진소리가 멀어지며 잠시 후 주위는 다시 고요해졌다.

캐시먼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핸드폰을 손에 쥐어준 건 스스로 911에 도움을 청하라는 뜻이었다.

전화기를 쥔 캐시먼은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잡히면 결코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사막의 흑새에게서 탈출했다.

탈출이라기보다는 조직을 배신한 댓가로 살아난 것이다.

“으음!”

911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 이후다.

MS-13에서 자신을 결코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캐시먼은 핸드폰으로 911을 걸어 구조요청을 했다.

해결책이 없을 땐 일단 부딪히고 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여자의 손길은 무척 바쁘다.

손님들이 주문하는 아이스크림을 컵에 담아 건네는데 환한 웃음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남자 두 명만이 홀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을 뿐 다른 손님들은 모두 매장 밖으로 나가는 이른바 테이크 아웃이었다.

이십 여명이 손님이 한바탕 왔다가고 매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여자는 손님이 없는 틈을 이용해 흰색의 마른 행주로 아이스크림이 담겨 있는 박스 유리를 깨끗하게 닦았다.

“미스?”

청소를 하던 여자가 고개를 들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두 명의 남자들을 보았다.

“파멜라에요.”

사내는 가게 안을 스윽 훑어보며 말했다.

“아이스크림 가게 치고는 상당이 큽니다.”

“아, 네!”

“사람 통행이 많은 유니언 역 앞에 이만한 가게를 차리려면 돈이 적지 않게 들텐데?”

권총수의 질문에 주인 여자 파멜라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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