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3화: 달의 집(1)
얘기를 나누고 있던 필포든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급속도로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속히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표정이 변하는 필포든을 보며 멕크레인이 물었다.
“뭔데 그러나?”
“쉽게 제거되지 않습니다.”
“사막의 흑새인가 뭔가 하는 놈 말인가?”
“네, 주위를 거칠게 뒤지며 다가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긴 중동의 사막이 아니야. 미국 땅이지. 그까짓 놈 하나 잡아 넣는 것이 어렵나?”
“너무 염려 마십시오.”
멕크레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워 보이긴 처음이군.”
멀리 해가 지고 있었다.
선홍색 불덩이가 조금씩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고 있었다.
주말답게 거리는 사람들이 장악했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아마추어 뮤지션들, 십여 명의 흑인들이 집단 브레이크 댄스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부모와 나들이 나온 아이들을 유혹하는 형형색색의 가스풍선과 크고 작은 노점상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루이빌 중심가인 이곳 5번가 일대는 주말에는 자동차 통행이 금지된다.
그러다 보니 춤과 노래와 온갖 묘기들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그렇게 낮의 열기는 고스란히 밤까지 이어졌다.
너무 많다.
말 그대로 돌아설 틈이 없을 만큼 클럽 안은 북적거렸다
거기다 귓구멍을 쑤시는 것 같은 시끄러운 음악까지 더해지며 클럽은 혼돈의 아수라장이었다.
그때 클럽 안쪽으로부터 세 명의 사내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셋 중 한 명은 백인이었고 둘은 히스패닉계다.
“서니!”
“엠마, 얼마만이야.”
“오우! 카밀라 프랑스 같다더니 언제 온거야.”
백인 사내는 여기저기 여자들과 악수를 하고, 볼키스를 하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세 사내는 클럽 밖으로 나왔다.
앞서 걷던 백인 사내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힐끗 액정을 한 번 본 뒤 통화를 시작했다.
“다 모였나? 오케이. 알았어. 금방 갈거야.”
통화하는 사이 따라 나오던 두 사내중 한 명이 벤츠의 시동을 걸었다.
백인 사내는 곧바로 차에 올랐고 세 사람이 탄 벤츠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루이빌 시내로 들어오는 17번 도로 분기점에 바로크 건축 양식의 3층 건물이 있었다.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바로크 시대 건축물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곳은 바로 루이빌의 소리소문 없는 명소중 한 곳인 ‘달의 집(Moon House)’으로 불리는 모텔이다.
남북전쟁 끄트머리 때 남군 포로를 잠시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을 1950년 유명한 건축가 빌리 샤이먼이 바로크 형태로 증 개축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1975년 코스피라는 사람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건축물을 가장 훼손하지 않는 상태에서 수익을 내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숙박업소가 적격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3층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영업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거친 대리석 바닥과 붉은 벽돌로 쌓아 세운 복도의 벽, 높은 천장은 언뜻 유럽의 거대한 성을 방불케 한다.
모텔이지만 5성급 호텔 숙박비에 버금가는 고가의 투숙료를 받는데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묵을 수가 없다.
모텔 달의 집 앞 주차장에는 20여 대의 승용차가 주차해 있었다.
밤 10시 45분쯤 라이트를 켠 벤츠 승용차 한 대가 달의 집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차가 멈추고 라이트가 꺼졌다.
벤츠에서 두 사내가 내렸고 주차해 있던 20여 대의 차량중 두 대의 랜드로버 문이 열리더니 8명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AK를 들고 있었다.
어둡기도 하지만 전혀 감추거나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듯 보였는데 벤츠에서 내리는 백인 사내를 향해 다가왔다.
차에서 내린 백인사내 캐시먼은 몰려든 사내들을 훑어보더니 오른쪽 귀에 자물쇠 귀고리를 한 사내에게 물었다.
“있어?”
“예 불 켜졌습니다.”
“장비들 다시 한 번 확인해.”
사내들은 각자 들고 있는 소총을 훑어본다.
딸칵!
캐시먼은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사막의 흑새라고?”
담배를 물고 있는 캐시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캐시먼이 웃자 둘러싼 부하들까지 낮은 소리를 내며 웃었는데 비아냥이었다.
“몇 번 놈을 쳤다가 볼썽사나운 꼴만 당한 모양인데 우리는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 해.”
캐시먼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한 사내가 권총 한 자루를 건네준다.
현대 권총중 가장 완벽하다는 글록19다.
툭!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구둣발로 짓이겨 버린다.
우후!
입안에 남은 담배연기를 깨끗하게 뿜어 버리고 삼층 불 켜진 창문 하나를 바라본다.
“루에다, 에스코바르, 발데라마 너희 셋은 저기 창문 아래를 지켜. 혹시 모르잖아. 새라고 하니까 훨훨 날아갈 수도 있고.”
“흐흐흐!”
사내들이 또다시 웃는다.
3층 높이면 날렵한 사람이라면 충분이 뛰어내릴 수 있다.
혹시 창문으로 뛰어내릴 수도 있으니 대비하라는 뜻이다.
세 사내는 키가 큰 스카이로켓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고개를 들어 불 켜진 삼층을 올려다보던 세 사내는 나무 아래 몸을 숨기고 매복에 들어갔다.
현관으로 들어서는 사내들을 보며 근무중이던 두 명의 직원이 눈을 크게 떴다.
여덟 명의 사내들이 30발들이 탄창이 끼워진 AK를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재빨리 전화기를 들자 캐시먼이 손을 들고 말했다.
“아아! 당황하지 마시고.”
캐시먼이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묶인 백 달러 두 뭉치를 던져 주었다.
툭!
직원들은 카운터 책상으로 떨어지는 돈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방 하나만 작살 낼거야. 이만 달러면 모자라지 않을거고.”
그러면서 손을 들어보이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배인님!”
여직원이 놀란 표정을 했다.
지배인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더니 말했다.
“작년에 307호 박살나고 수리비 얼마 들어갔지?”
그러자 여직원이 재빨리 컴퓨터를 검색했다.
“일만 이천달러입니다.”
“남는 장사는 말리는 것 아니지.”
우리는 모른체 하자는 뜻이다.
더욱이 한두 명도 아니고 여덟 명이 AK를 들고 들어올 정도면 이 지역을 잡고 있는 MS-13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과는 어떤 식으로든 충돌하여 좋을 일 없는 것이다.
“내가 사장님께 잘 말씀드릴 테니까 우린 잠깐 피해 있자고.”
두 사람은 안쪽 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계단을 오르는데 발자국 소리가 없다.
사내들 모두 긴장한 듯 입을 다물었고 번뜩이는 눈에서는 진한 살기가 뿜어 나왔다.
척!
캐시먼이 3층으로 올라섰다.
복도가 있고 왼쪽으로 객실들이 쭉 있었다.
달의 집 객실수는 모두 21개다.
각층마다 7개씩이고 스위트룸이니 로열층이나 하는 따위는 없다.
평수도 동일하고 구조도 같다.
‘305호’
캐시먼은 나직하게 중얼 거리며 소리 없이 복도를 걸어갔다.
301호부터 시작된다.
302, 303호를 지나가고 있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며 AK총구가 전부 앞을 향하고 있고 오른손 검지가 방아쇠에 걸렸다.
304호가 지나고 마침내 305호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캐시먼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문에 귀를 댔다.
방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20여초 가까이 귀를 대고 있던 캐시먼이 얼굴을 떼며 돌아보았다.
휘익!
권총을 쥔 오른손을 앞으로 저었다.
공격 신호다.
그리고 캐시먼은 뒤로 빠졌는데 두 명의 사내가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드르르르!
원목으로 된 출입문이 쏟아지는 AK 총알에 벌집처럼 구멍이 생겼다.
딱!
30발들이 탄창이 비면서 소리가 나자 둘이 물러나고 다른 두 명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그 사이 먼저 사격을 했던 사내들은 재빨리 탄창을 갈아 끼웠다.
문이 갈라지면서 너덜거리기 시작했다.
“들어가!”
캐시먼의 명령이 떨어졌다.
콰아앙!
사격을 하던 사내가 문을 걷어찼다.
문은 부서지면서 쉽게 열렸는데 사내들이 방안으로 뛰어들면서도 무차별 난사를 했다.
와장창!
퍽!
채애앵!
텔레비전이 박살나고, 벽에 걸린 대형거울이 산산조각이 되어 쏟아졌다.
화아아!
침대의 이불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오리털이 흩날리고 벽 속으로 들어가 있는 냉장고가 총탄에 열리면서 안에 들어있는 술과 물이 흘러내렸다.
닥치는 대로 갈겼다.
“그만!”
캐시먼이 사격을 중지 시켰다.
방안은 난장판이다.
총소리에 다른 투숙객들이 뛰어나온 듯 문밖이 시끄럽다.
“샤워실?”
“없습니다.”
한 사내가 샤워실에서 걸어 나왔다.
캐시먼의 눈이 갈기갈기 찢어진 침대 매트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뭔가 떠올린 듯 소리쳤다.
“나가!”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듯 부하들이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일단 나가자고.”
사내들이 일제히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하려는 그때 건물이 흔들리는 굉음이 들렸다.
쿠쿵!
암흑이다.
전기가 꺼졌고 방 안이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컥!”
“으아악!”
방안은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쿵!
또 다시 지진이 난 듯 건물이 흔들리고 엄청난 폭풍이 실내를 휩쓸어 버렸다.
캐시먼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굉음과 함께 몸이 날아가 객실 벽에 부딪쳤다.
무엇일까.
어떤 종류의 폭발물을 설치했기에 사람의 몸이 깃털처럼 날아가 버린단 말인가.
“욱!”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허리가 끊어진 듯 아프다.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
다리나 팔에 이상이 있으면 기어나갈 수는 있으나 허리가 부서지면 꼼짝 못한다.
그때였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후레쉬 가져왔지.”
“여기!”
파앗!
후레쉬 불빛이 나타났다.
불빛은 천천히 방안을 살폈다.
“한 명!”
죽은 부하들의 숫자를 세는 소리가 들린다.
“둘, 어 이건 뭐야? 다리 같은데?”
“다리잖아. 오른쪽 다리.”
“이 친구 오른쪽 다리가 없네. 조금 전 그 다리가 이 친구 것인가 본데.”
“맞아. 신발이 똑같네.”
사람을 죽인 경험은 많다.
군시절 수 많은 테러조직들과 싸웠고 전역 후 보안기업에 입사하면서 죽인 사람들 또한 손가락으로 셀 수 없다.
하지만 죽은자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을 이렇게 사실적이고 노골적으로 들어보긴 처음이다.
더욱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듣고 있는 두 사람의 대화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른 공포였다.
“이 친구는 왜 목이 없어. 난 또 까만 공인줄 알았잖아.”
잘린 목을 공이라 부른다.
“전부 몇 명이야?”
다른 사내가 묻는다.
“다리 잘린 친구 한 명, 목이 없는 놈 두 명, 셋 넷 다섯...모두 일곱.”
“여덟 명이 들어왔잖아?”
“맞아, 왜 한 명이 비지.”
두 사내는 후레쉬를 들고 부서진 객실을 다시 훑기 시작했다.
화악!
강한 불빛이 얼굴을 비췄다.
“찾았어. 여기.”
마치 거대한 금맥을 발견한 사람처럼 희열 가득한 목소리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한 사내가 더 다가왔다.
“허리가 나갔군.”
단번에 자신의 상태를 알아본다.
“일단 데리고 나가자고.”
휘익!
갑자기 캐시먼의 몸이 떠올랐다.
“으악!”
떠오른 몸이 어깨에 둘러메지는 순간 허리에 수십 개의 칼이 파고드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사내는 캐시먼의 아픔에는 관심 없다는 듯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렸다.
“으허헉!”
캐시먼은 또다시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