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2화: 비즈니스 맨(3)
권총수는 의자에 앉은 사내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아 압수하고 이윽고 세 사내를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눕혔다.
소리가 나면 옆방에서 반응할 것이다.
주르륵!
머리에서 쏟아지는 피로 바닥은 금세 시뻘겋게 변했다.
권총수는 객실 안을 스윽 훑는다.
자신의 가방과 옷가지들이 사방에 내 팽개쳐 있었다.
“이 셔츠는 구매해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것인데.”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초록색 티셔츠를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지이잉!
전화벨이 울렸는데 사내의 것이다.
사내는 눈치를 보았다.
권총수는 왼손을 뺨에 대며 전화 받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사내는 통화버튼을 터치했는데 상대 목소리가 들렸다.
“엘리베이터 탔다고 했잖아?”
권총수와 오민철이 엘리베이터를 탔다는데 왜 아직 조용하냐는 질문이다.
사내는 다시 권총수 눈치를 보았다.
‘당신 느낀 생각 그대로 말해요’
사내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권총수 목소리가 전화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귓속을 파고들었다.
‘매우 자연스럽게, 그리고 옆방 사람들이 전혀 의심하지 않도록 말하면 더욱 좋겠군요’
태어나 이토록 소름끼치는 일은 처음 경험한다.
사람이 어떻게 목소리를 원하는 상대에게만 들리도록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마르티노 왜 아직 들어오지 않는 거야?”
“그...글쎄.”
바로 그때 귓속으로 권총수의 음성이 살벌하게 파고들었다.
‘한 번만 더 목소리 떨면 그때는 머리를 부수고 양팔을 잘라 버리겠소’
“연락해 봤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바로 그때 권총수의 전음이 빠르게 파고들었다.
‘의논할 일이 있다고 잠시 건너오라고 하시오.’
부하들까지 데리고 오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 할 것이다.
“잠깐 오지. 상의할게 있어서 말이야. 전화로는 조금 그렇고.”
“알겠네.”
통화가 끝났다.
권총수는 입구로 다가가 벽으로 붙어 섰다.
잠시 후 옆방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딩동!
밖에서 벨을 눌렀다.
권총수는 일부러 잠금쇠를 거칠게 돌리며 문을 열어주었다.
확!
문을 열고 들어선 사내가 멈칫했다.
차가운 총구가 이마에 달라붙는다.
권총수는 사내 몸을 더듬더니 허리에 꽂힌 권총을 회수했다.
“들어오세요.”
권총수는 등을 돌리며 앞장서 걸어갔다.
총을 빼앗았으니 신경쓸 일은 없다.
사내는 바닥에 엎어져 있는 사내들과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는 마르티노를 발견하고 사색이 되었다.
‘형 내방으로 들어와.’
권총수는 전음을 보냈고 금세 오민철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방안의 상황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허리를 구부리고 죽은 사내들 귀를 잡아 당겼다.
마치 아는 얼굴이라도 찾는 사람처럼 세 명을 살피고 나서 말했다.
“나쁜 자식들! 이름 대.”
“마르티노? 차차리토!”
오민철의 인상이 험악했다.
“차차리토씨 옆 방으로 날 데려다 주시죠.”
권총수가 앞장서 걸어갔다.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차차리토를 향해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뭐해, 따라 오라잖아.”
차차리토는 권총수를 따라 객실을 나섰다.
차차리토가 객실을 나갔을 때 권총수는 이미 옆방 1010호 앞에 서 있었다.
권총수는 느릿느릿 오는 차차리토를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문 앞에 도착한 차차리토는 벨을 누르지 못했다.
자신이 벨을 누르면 부하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문을 열어 줄 것이다.
모두가 죽는다.
‘눌러요’
차차리토 역시 숨이 넘어간다.
귓속으로 권총수의 전음이 파고 든 것이다.
권총수의 오른손에 쥐어진 권총이 꿈틀하자 차차리토는 다가와 벨을 눌렀다.
안에서 차차리토임을 확인한 듯 누구냐는 질문도 없이 문이 열렸다.
화악!
권총수가 왼손으로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방아쇠를 당겼다.
슉!
슈슈슉!
세 명의 사내 역시 AK-12를 들고 있었는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엎어졌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선 오민철의 인상이 구겨졌다.
짐 가방이 뒤집어져 있었다.
“그녀에게 줄 신발인데.”
흰색의 운동화 한 켤레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운동화를 주워든 오민철의 손이 부르르 떨었다.
곧 결혼하게 될 여자에게 선물할 신발이다.
사내들이 신어 본 듯 운동화는 구겨지고 늘어나 보기가 흉했다.
뿌드득!
오민철이 이를 갈았다.
“조사 끝나고 보자 개자식.”
오민철은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듯 늘어나 버린 신발을 이리저리 쓰다듬었으나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뿌다다닥!
죽여 버릴 모양이다.
권총수는 차차리토를 데리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차차리토와 마르티노는 나란히 앉았다.
권총수는 핸드폰에 저장된 용병 캐시먼의 몽타주 사진을 보여주었다.
“누군지 알죠?”
“모릅니다.”
“처음 보는 사람?”
권총수는 빙긋 웃더니 입술을 달싹 거렸다.
‘형 어제 과일 깎아 먹는다고 구입한 칼 있지. 그거 좀 가져와.’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오민철이 들어섰는데 시퍼렇게 날이 선 회칼 한 자루를 들고 들어섰다.
“저 놈은 가급적 살려 둬. 내가 죽여야 하니까.”
오민철이 칼로 차차리토를 가리키며 인상을 썼다.
칼을 넘겨받은 권총수는 다시 핸드폰에 저장된 몽타주를 보여주며 물었다.
“여전히 모릅니까?”
“모른다!”
마르티노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번쩍하며 섬광이 터졌다 사라졌다.
“으악!”
마르티노가 비명을 질렀다.
의자에 앉아있는 마르티노의 오른발 무릎 아래가 없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오른발이 무릎에서 깨끗하게 잘려나가 바닥에서 떨어졌다.
“아으으윽!”
마르티노는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지만 마혈이 제압되어 꼼짝하지 못했다.
꾸울꺼억!
옆에 앉은 차차리토의 목젖이 그게 요동했다.
자신들도 사람 잡아 놓고 협박하고 고문하는 데에는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한 방에 사람의 다리를 잘라버렸다.
그것도 뼈가 있는 무릎이고 절단면이 두부를 베어버린 것처럼 군더더기가 없었다.
스윽!
이번에는 핸드폰 몽타주가 차차리토를 향해 돌아갔다.
“아시오?”
“예 조금 압니다.”
그러면서 흘긋 마르티노의 눈치를 보았다.
“이름이 캐시먼이라던데?”
“맞습니다. 동부 팀 팀장이죠.”
MS-13은 미국을 동서남북으로 나눠 모두 네 개 집단의 비즈니스맨들이 있다.
캐시먼은 캔터키주를 중심으로 미국 동부지역의 모든 작전을 지휘한다.
MS-13에 도전하거나 아니면 조직을 등진 배신자에 대한 응징등 크고 작은 사건을 정리하는 동부 팀(eastern time)의 우두머리라는 것이다.
“허면 당신도 동부팀 소속이라는 건가?”
“그...그렇소.”
또 다시 마르티노의 눈치를 살폈다.
오랫동안 같이 조직을 지켰던 동료 앞에서 조직을 배신하려니 여러모로 불편하다.
하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입에서 뱉지 말아야 할 말은 나왔고 이제는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조직의 보복이 두렵지만 당장 눈앞이 더 살벌하다.
차라리 이 기회에 사막의 흑새에게 협조하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부탁하는 것이 더 나을 듯 싶었다.
“당신도 이곳 시장 필포든 별장 사건 때 참여했소?”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단지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같은 팀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내가 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또 다시 마르티노의 눈치를 본다.
푸슉!
소음기가 불을 뿜었다.
권총수는 불편해 하는 차차리토를 생각해 마르티노의 목숨을 끊어 버렸다.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의자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캐시먼은 지금 어딨소?”
“솔직히 모릅니다.”
“캐시먼 사진 있소?”
갑작스런 사진 요구에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차차리토가 대답했다.
“내 핸드폰에 찾아보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권총수는 찾아보라고 했다.
차차리토의 마혈이 풀리고 양손이 움직인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저장된 사진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확인을 하던 차차리토가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권총수는 차차리토의 핸드폰을 받아 살폈다.
한 사내가 차차리토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다.
패들보드(paddleboard)를 들고 서 있는 것이 윈드서핑을 끝내고 찍은 사진 같았다.
피식!
사진을 보고 있던 권총수는 웃고 말았다.
자신들이 그린 몽타주와는 전혀 닮지 않은 것이다.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눈썹뿐이다.
눈썹 하나에서 특징을 잡고 대답해준 차차리토가 고맙다.
권총수는 차차리토로부터 사진을 받았다.
이어 이번엔 자신이 맥보란에게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조금 전 사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곳 호텔 사건 좀 정리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호텔직원중 MS-13과 연계하는 자가 있는 모양이니 정리하시죠.”
“알겠습니다.”
권총수는 자신의 물건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이곳에서 기다리면 CIA요원들이 올 것이오. 그들의 도움을 받으시면 됩니다.”
차차리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CIA에서 자신을 도와준다면 조직에 쫓기며 살 일은 없다.
그들은 증인 보호프로그램이라는 걸 갖고 있다.
얼굴을 성형하여 바꾸고 이름과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 새 삶을 살도록 만들어 준다.
차차리토는 나가는 권총수 등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표시했다.
타앙!
총소리가 울리며 산속의 새들이 날아올랐다.
퍽!
총에 맞은 멧돼지가 바로 숨이 끊어지지 않고 일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덩치 큰 멧돼지는 네 발만 부지런히 움직일 뿐 몸을 세우지는 못했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며 두 명의 사냥꾼이 나타났다.
얼룩무늬 위장복을 걸친 마흔 중반의 사내와 사냥 모자를 눌러쓰고 검정색 재킷에 목에 붉은 머플러를 감은 예순가량의 금발의 노인이다.
금발의 노인이 발버둥 치는 멧돼지를 미소 띤 얼굴로 내려다보더니 총구를 머리에 겨눴다.
타앙!
방아쇠를 당기고 멧돼지는 조용해졌다.
노인은 흡족한 표정으로 멧돼지를 보더니 옆에 있는 바위를 깔고 앉았다.
재킷에서 담배를 꺼냈는데 말보로 레드였다.
딸칵!
군용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여 길게 연기를 내 뿜는다.
“어제 마지막으로 조정안을 보냈네.”
마흔 중반의 사내는 루이빌 시장 필포든이었다.
“뭐라고 말입니까?”
노인은 가볍게 웃었다.
“너무 내 주장만 요구하는 것도 아니겠다 싶어 한 걸음 물러났지. 연준이사장과 국무부장관을 포함한 다섯 명이 마지노선이라고 했네.”
필포든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너무 후퇴한 것 아닙니까? 백악관은 어찌됐는지요?”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백악관 인사까지 내가 파고들면 안 되겠더군. 자기 집인데 남의 집 식구가 들어와 같이 밥상에 앉으면 밥맛이 좋겠나? 허허헛!”
필포든은 이마를 찡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인데 체면은 생각해줘야지.”
“대표님 결정이니 따르긴 하지만 조금 허전한 기분입니다.”
“나도 그렇다네.”
“만약 마지막 제의인데도 그 쪽에서 거절을 한다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금발의 노인, 맥크레인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끝내야지.”
“죽입니까?”
“그 사람은 날 추잡한 성폭행범으로 만들어 버렸어. 정치공작이 무섭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지.”
맥크레인의 눈이 타오른다.
누군가를 향해 분노와 시뻘건 적대감이었다.
“약속을 어긴 건 그쪽이니 난 전혀 미안하다거나 주저하고 싶지 않네.”
그건 클레어를 죽이겠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