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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50화 (450/651)

제450화: 비지니스 맨들(1)

빨리 말하라는 재촉이다.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던 피어스가 입을 열어 필포든 시장의 수행비서 로이킨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밤 10시 레드윙 클럽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영업을 하고 있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팔은 물론 목, 심지어 얼굴까지 그림을 그린 사내들이 들어오는 손님들을 날카롭게 살핀다는 것이었다.

“나왔어.”

클럽 맞은편 골목에 차를 세워놓고 살피고 있던 오민철이 입을 열었다.

마흔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후드티를 뒤집어 쓴 사내가 한 사내의 영접을 받으며 걸어 나왔다.

“야비한 놈, 보나마나 얼굴 알아볼까봐 후드티 뒤집어 쓴 걸 거야.”

운전석에 올라서 유리를 내리더니 밖에 서 있는 정장의 사내와 악수를 했다.

“저 친구가 팔카오 대신으로 온 레드윙 책임자라고?”

권총수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오스피나라는 놈인데 피어스가 분석해서 보내준다고 했어.”

오스피나라는 정장 사내는 몸을 돌려 다시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딩동하는 소리에 핸드폰을 확인한 오민철이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벌써 왔네. 역시 FBI는 틀려.”

그러면서 자신의 메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메일에는 조금 전 들어간 오스피나라는 사내에 대한 자세한 신상 정보가 들어 있었다.

“그럼 그렇지.”

“왜?”

“MS-13이야.”

“당연히 그렇겠지.”

권총수가 오민철의 핸드폰을 가져가 읽기 시작했다.

다음 날 오전 11시30분.

시장 필포든은 루이빌 시의 기업인들과 점심 오찬을 가졌다.

오찬이 열리는 장소는 그래머시 파크 호텔이었다.

분위기는 좋다.

기업인이나 상류층의 정치색은 보수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더욱이 시장 역시 보수적인 공화당 출신이다 보니 한자리에 모인 기업인들과 의견충돌은 있을 수 없었다.

시장 필포든은 시장으로서 최대한 기업활동을 지원하고 돕겠다는 연설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비서 로이킨이 회의장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통화를 하는 것이 전화가 걸려와 잠시 회의장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아이들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이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로 추측된다.

일 분 여 통화를 하는 것 같더니 잘 알았다면서 끊고 돌아섰다.

그러다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갔는데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에 들어선 로이킨이 지퍼를 내리고 시원하게 볼일을 본 뒤 지퍼를 올리고 손을 씻었다.

흠칫!

무심결에 전면 거울을 보던 로이킨이 깜짝 놀랐다.

자기 등 뒤에 한 사내가 서 있었는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권총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갑시다.”

그러면서 어깨를 부둥켜 안 듯 하면서 몸을 돌린다.

로이킨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말이 나오지 않고 상체와 팔이 굳었고 오로지 두 다리만 움직였다.

다리만 움직이다 보니 권총수가 인도하는 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복도에서 만난 호텔 직원들도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하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권총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로이킨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했지만 입은 열리지 않는다.

“조금만 참아요. 이따 말 실컷 하도록 해줄 테니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고 로이킨은 포드 익스플로러에 태워졌다.

발을 제외한 신체의 어떤 부분도 움직일 수 없다.

로이킨은 목석처럼 뒷좌석에 빳빳하게 앉아 있었다.

부우웅!

차는 주차장을 벗어나 호텔을 빠져나갔다.

조수석의 사내가 상체를 돌렸다.

굳어 있는 로이킨을 보더니 악수 할 것처럼 손을 내밀었다.

화악!

그때까지 꼼짝하지 않던 혀가 움직였다.

다리와 팔은 여전히 무용지물이었지만 일단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살 것 같았다.

“이 길 잘 아시죠?”

포드 익스플로러는 산길을 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거나 살필 필요도 없을 만큼 잘 알고 눈에 익은 길이다.

시장 필 포든의 별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하버드 대학까지 나왔으면 먹고 사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을텐데, 욕심이 너무 과하십니다.”

로이킨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으므로 듣기만 했다.

“어느 학자가 그랬죠. 세상에서 중독되지 말아야 할 네 가지가 있다고 말입니다. 첫 번째가 마약중독, 두 번째는 알코올중독, 세 번째는 도박중독, 그리고 마지막으로 범죄라고 했죠. 범죄도 중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누굴까.

누군데 벌건 대낮에 시장이 주재하는 기업인들과의 오찬 자리에 나타나 수행비서인 자신을 이렇게 납치해 가는 것일까.

“물론 고국을 떠난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교류하면서 살아가면 좋죠.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 타인을 제물삼아 내 주머니를 채우는 범죄 집단과의 관계가 밀접하다면 얘긴 달라집니다.”

“지금 뭐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지랄을 해요. 지랄을.”

운전하던 오민철이 룸미러를 통해 비아냥 거렸다.

끼이익!

차가 멈췄다.

별장 앞이다.

많은 인명을 살상한 폭발사고가 발생한 지역으로 일체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었다.

“아아!”

갑자기 로이킨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비로소 온 몸이 자유로워진 것이다.

차에서 내린 로이킨은 자신의 몸이 정말로 이상이 없는 건지 확인하겠다는 듯 맨손 체조 비슷하게 온몸을 비틀고 뒤틀어 본다.

“저기가 어딘지 아시죠?”

저 만치 위에 있는 통나무집을 가리켰다.

“시장님 별장입니다.”

“저건 어떠십니까?”

이번에는 폭발로 뒤집혀 있는 지점을 가리켰다.

“뭘 말입니까?”

퍼억!

그러자 오민철이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하버드 나왔다는 자식이 딱 보면 몰라. 흙이 뒤집어 졌잖아.”

“글쎄 내 눈에는.”

“어이 로이킨.”

오민철이 노려본다.

“당신 저기에 묻어 버릴수도 있어. 주둥이 컨트롤 잘하라고.”

“앉아요. 다리 아플텐데.”

권총수가 바위에 앉으며 말했다.

담배 한 대를 피워 문 권총수가 여전히 서 있는 로이킨을 보며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여기 형님이 얘기한 것처럼 말 잘하셔야 합니다. 우린 당신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어요. MS-13도 지금 이 자리에서는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주지 못해요.”

화악!

처음으로 로이킨이 반응을 보였다.

“MS-13에서 당신 자리는 어디쯤 되시죠?”

“지금 무슨 헛소리.”

파파팟!

권총수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어 지풍을 날렸다.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진 로이킨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오민철은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버렸다.

처음 본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등골이 서늘하다.

아직까지 분근착골을 버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는 테러범들 중 일부가 미정보국 요원들로부터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가 분노했다.

법적으로 처벌을 하면 될 일이지 고문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테러범 심문을 책임진 CIA요원중 한 명이 퇴직을 하고 발간한 자서전 ‘눈물이 없는 사람들’이란 책에 보면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

고문을 시작하면 거의가 굴복하는데 아주 가끔 기절을 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영혼이 확실하게 몸을 지배한다고 했다.

이슬람의 종교전쟁, 이름하여 성전으로 불리는 그들의 싸움은 신의 뜻이다.

이교도와 싸우다 죽는 것이야 말로 신을 만나는 순교의 길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굴복한다는 건 배교자(背敎者)로 인정하고 믿는다.

죽는 것이야말로 신을 향한 진정한 신심이라는 확신 앞에는 어떤 고문도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근착골은 틀리다.

그냥 토해낸다.

로이킨도 그러했다.

이슬람 전사도 아니고 하버드란 대학을 나와 루이빌 시장의 수행비서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으나 이제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떤 인내력을 기대한다는 건 무리다.

“그만...제발 그만 멈춰.”

권총수는 혈도를 풀어주었다.

“어으아아아!”

돼지 멱따는 소리를 토해내며 큰 대자로 뻗는다.

넥타이를 맨 흰색의 셔츠는 흘러나온 피로 젖었고 뒤틀리고 어긋난 뼈와 근육들이 투툭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시작합시다.”

권총수 음성이 들려왔다.

“MS-13에서 당신의 위치는 어디요?”

“조직원은 아니오. 단지 거리를 아주 가깝게 유지하고 있지요.”

“무슨 뜻이야?”

오민철의 이마를 찡그렸다.

“적당히 양지의 권력을 이용해 그들의 뒤를 봐주고 그에 맞는 몫을 챙긴다는 거요?”

“그런 셈이오.”

“보름 전 이곳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소. 아는 데까지 말해보시오.”

로이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순간적으로 갈등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는데 분근착골을 떠올린 듯 거칠게 몸을 한 번 떨었다.

권총수는 말을 이었다.

“언론에 보도가 된 것처럼 사망자들은 모두 용병이오. 그들은 시장님 별장을 공격하려다 매복에 걸린 것이오?”

그러자 오민철이 가까이 다가서며 물었다.

“용병들이 왜 루이빌 시장의 별장을 친단 말입니까?”

그때 로이킨의 바지 주머니에서 지이이잉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전화가 걸려 온 모양이었다.

“전화 받으세요.”

오민철이 권총수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로이킨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는데 오민철이 부드럽게 말했다.

“편하게 통화하세요. 아주 즐거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이오.”

차라리 그건 경고였다.

함부로 개소리 지껄였다가는 이 자리에서 해치워 버리겠다는 살해협박이었다.

“네 시장님!”

“자네 어디야? 갑자기 어디로 간거야?”

“죄송합니다. 갑자기 배가 아파 약국에 왔습니다.”

“많이 아픈가?”

“약간, 심하군요.”

“그러지 말고 일찍 퇴근하여 집에서 쉬게. 배가 아플만도 하지. 요즘 내가 자네를 너무 혹사시켰어.”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그날 한 사내를 만났소.”

로이킨은 팔카오의 연락을 받고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팔카오는 자신이 시장의 수행비서와 가깝게 지낸다는 걸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자주 불러 술도 사고 저녁도 먹으면서 적지 않은 돈을 챙겨 주었다.

그날도 그런 일상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갔었는데 낯선 백인 사내가 있었다.

팔카오는 스스럼없이 그 사내를 로이킨에게 소개했다.

“캐시먼 인사 나누시죠. 시장님 수행비서 되십니다.”

“캐시먼이오.”

백인 사내가 손을 뻗었다.

“로이킨입니다.”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날 만남의 전부였다.

그가 팔카오와 어떤 관계인지 무슨 일로 사무실에 찾아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물을 필요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30여분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고 사내는 시계를 보더니 일어났다.

“그만 가봐야겠소.”

“준비는 잘되십니까? 언제든지 지원이 필요하면 말씀 하십시오.”

팔카오는 걸어 나가는 사내를 향해 말했다.

“누구요?”

사내가 나가자 로이킨이 물었다.

팔카오는 빙긋 웃었다.

“별 것 아닙니다.”

팔카오는 그냥 얼버무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말을 바꿨는데 로이킨이 어떤 사람인지 깨달은 듯 보였다.

루이빌시에서 사업을 하려면 로이킨을 섭섭하게 한다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여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빵 한 조각에 원수진다.

“사실은 오늘 밤 시장님 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봅니다.”

“어떤 일?”

“글쎄요. 회사원(business man)들이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이들에게 회사원은 다른 뜻으로 통용된다.

이들이 말하는 회사원은 MS-13의 공격부대를 의미한다.

즉 오늘밤 MS-13에서 누군가를 공격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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