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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49화 (449/651)

제449화: 벗겨지기 시작하는 옷(1)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두 모금을 빨고 뱉더니 말을 잇는다.

“당신에게 내 행방을 가르켜 준 놈이 누군지 그것만 얘기하면 됩니다.”

팔카오가 씨익 웃었다.

“지금 좋은 위치에 있다고 내게 명령을 하는 건가. 여긴 나 한사람의 사업체가 아니지. 알고는 있나. 내 뒤에는 웬만해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소.”

“MS-13을 말하시는군요.”

권총수는 빙그레 웃었다.

“난 당신이 겜비노 마피아 보스라고 해도 지금과 같은 질문을 할 것입니다.”

팔카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권총수를 다시 살피는 눈빛인데, MS-13이 마피아보다 세력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역사와 전통에서는 결코 따라 갈수가 없다.

아직은 마피아란 이름이 세상 사람들 기억 속에는 훨씬 MS-13보다 공포스런 집단이다.

“내 동선을 가르쳐준 사람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나보군. 하긴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

푸슉!

권총수의 권총이 속삭인다.

“크훅!”

총알은 오른팔을 그대로 뚫고 지나가 뒤에 있는 나무로 된 캐비닛 문에 박혔다.

권총수와의 팔카오의 거리는 4미터 정도 되었다.

그 거리에서 언제든지 서랍 속 권총을 꺼내기 위해 비스듬하게 뻗고 있는 오른팔에 부상을 입힌 것이다.

권총은 유효사거리가 짧다.

그건 어깨나 다른 신체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오로지 팔에 의지한 가격을 하기 때문이다.

양손으로 감싸며 사격을 하는 것은 명중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물론 급하면 한 손으로 쏠 수 있겠지만 웬만하면 두 손으로 최대한 총을 고정하여 쏜다.

4미터는 권총의 거리치고는 가깝다고만 할 수는 없다.

양손으로 권총을 잡고 쏜다고 해도 팔뚝을 맞춘다는 건 어려운 것이다.

오른팔에 피가 철철 넘친다.

“아직도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까?”

팔카오는 상처를 입은 오른 손목을 왼손으로 감싸며 놀라는 눈으로 권총수를 바라본다.

푸슉!

다시 권총이 불을 뿜었다.

“크음!”

팔카오는 온몸을 떨었다.

오른손 팔목이 사라졌다.

고개를 숙였는데 조금 전까지 붙어 있던 손이 책상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두 발을 쏴서 손목을 잘라 버렸다.

고통도 절망도 공포도 떠오르지 않았다.

술잔을 자주 들어 올렸고 바비큐나 스테이크를 먹을 때 나이프를 쥐었던 손이다.

화장실에서 항상 뒤를 닦을 때 필요했던 손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피어스!”

결국 털어놓고 말았다.

더 이상 버티는 건 무모하다.

여자로 변장해 들어와 두 부하를 죽이고 자신을 몰아치는 배짱도 대단한데 팔목까지 너무 간단하게 잘라 버렸다.

자른다는 건 칼로서 하는 행위인데 권총수는 총을 칼처럼 쓴다.

그렇다면 승부는 끝난 것이다.

일단 목숨을 건진 다음 뒤를 노리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FBI 선임수사관?”

“피어스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그 밖에 없소.”

“좋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팔카오씨가 날 공격할 하등의 이유가 없죠? 내 말이 맞습니까? 우린 전혀 얼굴도 모르고 원한을 맺은 적은 더욱 없습니다.”

팔카오는 아픈 것을 참느라 계속 이를 물고 있었다.

“왜 날 죽이려고 하셨어요?”

권총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 졌다.

팔카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기가 몹시 어려운가 봅니다?”

팔카오는 눈을 감았다.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다.

그건 삶을 포기하겠다는 의미였다.

권총수는 환하게 웃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당신은 내 포로이고 나를 향해 범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즉 내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할 책임이 있죠. 굳이 못하겠다면 만들어 드리는 것이 순서겠죠.”

파파팟!

권총수의 왼손이 뻗어 나갔고 팔카오의 마혈과 아혈이 제압되었다.

권총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구석에서 포대자루 하나를 발견하고 주워들었다.

이어 팔카오의 상반신을 포대 안에 집어넣고 묶은 뒤 어깨에 둘러멨다.

사람임은 알 수 있으나 상체를 가려버려 누군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권총수는 천천히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묵직한 사람을 어께에 둘러메고 걸어 나갔지만 술에 취하고 음악에 취한 사람들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피어스는 전화를 받았다.

얼마 전 알게 된 사내였는데 잠시 커피 한 잔 하자는 것이다.

피어스는 커피를 좋아한다.

출장 갈 때는 소형 커피머신을 챙겨다닐 정도로 커피 애호가다.

그런 커피를 한 잔 하자는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평소라면 만사를 제쳐두고서라도 나갔을 것이다.

스스로도 선뜻 나서지 않으려는 자신의 신체 반응에 당황하면서도 약속을 했으므로 차의 시동을 걸었다.

“지미!”

운전석 유리를 내리고 때마침 급히 지나가는 부하 직원을 불렀다.

“예 선배님!”

“타!”

지미라는 사내는 어딜 가려는 것이냐는 시선을 던진다.

“타라고!”

“예!”

FBI 3년차 수사관으로 올해 서른세 살인 지미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부우웅!

차는 FBI 루이빌 지부를 출발했다.

오하이오 강이 내려다보이는 강가에 통나무로 된 커피숍이 있다.

커피숍 주차장에 차를 세운 피어스는 지미를 데리고 통나무 계단을 올라가 커피숍 문을 밀고 들어섰다.

약간 어두운 실내에 바흐의 무반주첼로 조곡 1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일이라고는 하나 오늘 따라 실내는 텅 비었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두 사내가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피어스와 지미는 창가에 앉아 웃고 얘기를 나누는 두 사내에게 걸어갔다.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 권총수와 나란히 앉아있던 오민철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어서 오십시오.”

오민철이 웃음을 짓는다.

피어스는 지미와 같이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는데 오민철은 커피를 주문했다.

특별히 피어스가 마실 것은 멕시코산 치아파스 원두를 갈아 내린 것을 달라고 주문했다.

순간 피어스가 입가로 만족스런 표정을 했다.

자신의 입맛을 정확히 알고 주문한 것이 기쁘다.

“어쩐 일로?”

피어스는 자신을 배려하는 오민철의 커피 주문에 기분이 좋아진 듯 물었다.

“얘길 일찍 끝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오민철이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피어스씨 공직에 있는 분이 봉투 받는 걸 좋아하나봐요?”

권총수가 직설적으로 파고들자 피어스는 멍한 얼굴을 했다.

“레드윙 클럽 팔카오 잘 알죠?”

“팔카오? 그가 누군데?”

“피어스씨 후배 요원 있는데서 확 까발려 드릴까?”

피어스는 흘긋 옆에 앉은 지미를 살피더니 굳은 얼굴로 말했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이 사람 미친 것 아냐.”

탁!

권총수는 핸드폰을 놓고 녹음버튼을 눌렀다.

‘피어스 선임 수사관과는 매우 즐겁게 지내고 있소. 한 달에 오천달러씩 현금으로 직접 건네주고 있죠. 작년에는 자기 딸 바이올린이 문제 생겼다고 해서 10만 달러를 주고 하나 선물해주기도 했지’

스윽!

권총수는 녹음기를 껐다.

“더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계속 들려드릴까요?”

“으음!”

피어스는 표정이 굳어지면서 두 손을 만지작거렸다.

왜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았었는지 이해가 된다.

그때 주인이 커피를 가져왔다.

“감사합니다.”

권총수는 주인을 향해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게 피어스씨 것 같군요.”

오민철이 좀 더 진한 색을 내는 커피를 피어스 앞으로 놓는다.

권총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리면서 말했다.

“이곳 커피 맛이 좋다더니 명불허전이군.”

“크햐!”

오민철 또한 독한 술을 한잔 마신 듯 인상을 쓰며 크게 소릴 내었다.

“난 피어스 선임 수사관께서 클레어양 납치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팔카오씨와의 관계를 전혀 탓한다거나 이상한 눈으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자 하는 건 아주 간단한 내용이죠. 팔카오가 날 공격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 하십니까?”

피어스의 눈이 커졌다.

“한마디로 지역 갱단 두목 정도가 감히 사막의 흑새를 노린다? 좀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꿀꺽!

피어스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사막의 흑새를 노리는 사람들이 지천이다.

정치적 테러 집단은 물론이고 멕시코 마약조직들까지 그에게 무자비하게 밟힌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팔카오가 권총수의 동선을 물을 때도 그런 사건의 하나로 판단했다.

갱은 갱끼리 통한다.

MS-13은 분명한 히스패닉계 갱단이고 멕시코 마약조직과도 연계하고 있었다.

멕시코 최고의 마약조직 시날로아 카르텔 쪽에서 사막의 흑새에 대한 청부가 들어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권총수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차원의 공격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음! 듣고 보니.”

“난 피어스씨가 갱단에게 뒷돈 좀 받았다는 사실을 사건화한다거나 따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은근슬쩍 겁을 준다.

피어스의 입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진실이 나오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해줄 것이 있다면 해야 할 차례군요.”

피어스가 정색하여 말했다.

역시 노련한 수사관이다.

지금으로서는 권총수의 일을 지원하고 돕는 것 말고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걸 파악했다.

“내가 팔카오를 만나 알아보겠소.”

“그는 죽었습니다.”

“네?”

“심한 당뇨환자더군요. 경동맥(대동맥에서 갈라져 나온 혈관으로 얼굴과 뇌에 피를 전달)이 상당히 막혔있다는 걸 모르고 분근착골을 펼쳤더니 조금 바둥거리다 떠나더군요.”

분근착골은 고통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고문기술이다.

하지만 분근착골을 위해 몇 곳의 혈도를 점혈 해야 하는데 그중 한 곳이 인중혈(人中穴)이다.

인중혈을 점혈하는 순간 혈관을 흐르는 피의 속도가 빨라졌다.

당뇨로 좁아진 혈관을 갑자기 많은 혈액이 통과하려고 터지면서 즉사한 것이다.

그러면서 핸드폰을 꺼냈는데 죽기 전 팔카오의 자백이 흘러나온다.

“내가 뭘 해주길 바랍니까?”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우선 좋아하는 커피 식기 전에 드시죠.”

피어스는 자신의 커피를 내려다보았다.

코끝을 파고드는 향기가 매혹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매혹적인 향기에 취해 기뻐할 때가 아니었다.

백전노장이라고 할 수 있는 FBI수사관인 자신이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자신보다 어려 보인다.

하지만 팔카오와 자신의 관계를 중심으로 상황을 리드하고 풀어가는 것이 가히 신급의 경지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누군가 팔카오에게 지시를 내렸을 것이오. 루이빌에서 MS-13 갱단의 최고 우두머리가 팔카오 아니오?”

“맞소!”

“팔카오에게 지시를 내릴 정도면 누굴까요?”

팔카오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니 그래도 뭔가 그들 조직 사정에 대해서는 조금 알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문득 피어스 눈이 가늘어졌다.

한 사람이 떠오른다.

“있기는 한데 글쎄 만만찮은 위치에 있어서.”

“누군데요?”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로이킨! 시장 필포든의 수행비서죠. 난 같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가끔 팔카오가 자랑을 합니다. 수행비서 로이킨과 골프를 쳤다, 밥을 먹었다는 등등.”

“로이킨?”

오민철의 커피 잔을 들다 말고 다시 내렸다.

“하버드 출신이죠. 히스패닉계, 정확히 말하면 엘살바도르 태생 미국인입니다.”

오민철이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뭔가 냄새가 나지 않느냐는 시선이었는데 권총수는 커피 잔을 들어 올렸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자료 갖고 있소?”

오민철은 무뚝뚝하게 물었다.

그런 오민철을 보며 권총수는 살짝 웃었는데 이제 완전 베테랑이다.

아직은 피어스를 느슨하게 풀어줄 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일부러 거칠게 묻는다.

웬만한 수사관 뺨치는 능력이었다.

“대중들이 아는 정도.”

“우린 그것도 몰라요.”

그러면서 오민철은 핸드폰 녹음기능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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