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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48화 (448/651)

제448화: 가짜(1)

권총수는 빙긋 웃더니 조수석 문을 열고 콘솔박스를 열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회칼 한 자루가 있었는데 꺼내 들고 트렁크로 다가갔다.

번쩍!

눈앞에 회칼을 보여주었는데 창문을 뚫고 들어온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이름이 뭐요?”

“흐흐!”

이죽거리며 웃더니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려 뻑큐를 했다.

파앗!

권총수의 손에 들린 칼이 수평으로 그어졌다.

내공이 실린 칼은 사내의 손목을 그대로 자르고 지나갔다.

툭!

잘린 손목이 트렁크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뻑큐 모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끄어어!”

사내는 잘린 팔목을 보며 온몸을 떨었다.

콱!

이번에는 왼손을 잡는다.

“이름?”

“과르다도.”

“히스패닉?”

“그렇다!”

짜악!

권총수의 칼이 다시 움직였고 사내의 잘린 오른팔 소매가 갈라지며 문신이 드러났다.

“MS-13이군?”

“우린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 반드시 복수한다.”

겁을 주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시간에 그곳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지. 필시 우리쪽 누군가가 그쪽에 정보를 건네 줬을 거야?”

FBI와 CIA에 자신들이 쫓고 있는 범인 쪽과 선이 닿고 있는 첩자가 있다.

물론 이미 머릿속에 용의자로 떠오른 인물들이 있지만 과르다도 입을 통하면 좀 더 분명하게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누군가 MS-13에 귀띔한 것이다.

팍!

“으아아악!”

과르다도가 소릴 질렀다.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허리가 위로 튕겨 올랐다가 떨어졌는데 오른쪽 발목이 잘려나갔다.

“가르쳐 준 사람?”

권총수는 다시 칼을 들어 올렸다.

MS-13의 악명이 통하지 않는 사내다.

“말하겠소. 마...말한다고.”

과르다도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의 사지가 하나도 남아나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과르다도는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고 권총수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루이빌 29번가 골목길에 승용차가 멈췄다.

뒷문이 열리고 몸에 착 달라붙은 미니스커트를 걸친 여자가 내려 모텔을 향해 걸어갔다.

“지난 번처럼 엉뚱한 짓 했다간 가랑이를 찢어버리겠다.”

조수석 유리가 내려가고 담배를 문 사내가 모텔을 향해 걸어가는 여자를 향해 말했다.

사내는 둘이다.

조수석의 사내가 마틴, 운전석에 앉은 이가 토레였다.

둘은 가이드(guide)였다.

그렇다고 관광이나 지역의 역사를 소개하는 시청소속의 해설사와는 거리가 멀다.

이른바 매춘가이드다.

고객이 찾는 여자를 고객이 있는 곳까지 태워다 주고 데려오는 일이다.

두 사람은 음악을 틀었다.

시끄럽게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고개를 까닥였다.

마틴과 토레의 차에서 내린 여자는 모텔 입구를 들어섰다.

여자는 프런트에 앉아있는 뚱뚱한 여자를 향해 말했다.

“505호.”

주인여자는 재빨리 체크를 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오른쪽을 가리켰다.

여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내렸다.

복도를 따라 걷다가 505라고 쓰인 문 앞에서 멈춘다.

많아야 스물 초반의 여자는 굳게 닫힌 문을 잠시 노려보더니 벨을 눌렀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여자는 10여초 기다렸다가 다시 벨을 눌렀지만 이번에도 안으로부터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세 번째 벨을 누르려다 여자는 도어를 잡고 슬며시 돌려보았다.

손잡이가 돌아가고 문이 열렸다.

문은 잠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섰다.

가슴이 뛴다.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개 잡놈들이 많다.

사람을 불러 놓고 한 시간 동안 알몸으로 세워 놓기만 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다짜고짜 허리띠로 때리는 놈도 있다.

바빠서 미처 감지도 못하고 출근한 머리채를 잡고 킁킁 냄새를 맡으며 흥분하는 놈, 죽은 마누라 분위기가 난다면서 쳐 우는 놈 등등 길 거리에서 보면 멀쩡하게 걸어가는데 왜 여자만 부르면 괴상망측하게 변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놈 또한 은근히 신경 쓰인다.

문까지 잠가놓지 않는 것이 자신을 배려하기 위한 것 같지는 않고 웬지 모르게 불길하다.

어쩌면 난 이만큼 착한 남자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문을 열어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까지 그런 미친놈은 보지 못했기에 가슴이 뛴다.

사내는 등을 돌리고 의자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엉거주춤 서 있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하던 일이 있을 땐 먼저 씻으라면서 샤워실을 가리키거나 아니면 앉으라고 하는데 사내는 그런 말도 없고 자신이 온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돌아보지도 않는다.

“오케이. 그렇게 하지.”

사내는 통화가 끝난 듯 핸드폰을 내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아 미안합니다. 급한 전화가 있어서요. 앉아요.”

흠칫!

그런데 사내를 본 여자가 매우 놀랐다.

동양인이다.

자신이 기억하는 역대 악몽 넘버 쓰리에 동양인 사내가 들어간다.

섭위평이라는 중국 놈이다.

무려 한 시간동안 혀바닥으로 온몸을 핥기만 하던 놈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간지러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경험했다.

언젠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간지러움을 태우는 고문으로 테러범 두 명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서 어이가 없었다.

간지러움은 즐겁고 신나는 일인데 어떻게 사람이 죽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중국놈의 혓바닥을 맛본 뒤 그 옛날 죄수를 간지러움을 태워 죽였다는 말을 믿었다.

지금도 그놈 얼굴을 떠올리면 무섭다.

사내는 다가와 담배를 권했는데 말보로 레드였다.

“객실 내에서는 금연입니다.”

“걱정 마세요. 주인에게 허락을 받았으니까.”

주인의 허락을 받았다는 말에 여자는 다시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

부드러운 미소다.

저 미소 뒤에 또 얼마나 잔혹한 성적취미를 갖고 있을까 생각하니 확 침을 뱉어 버리고 싶다.

하지만 업소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자신을 불렀다는 건 일단 VIP라고 봐야 했다.

VIP는 몸뿐만 아니라 대접 또한 그만한 가치에 맞춰줘야 했기에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딸칵!

사내는 불을 붙여주고 자신도 한 대 피워 물었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차분하게 내 말 잘 들어요. 이름이 엠마?”

“네!”

“엠마가 소속된 레드 윙 클럽의 사장에 대해 잘 알아요?”

잠시 멈칫하며 사내를 바라보던 엠마가 담배를 끄고 원피스 지퍼를 내렸다.

“뭐하는 거에요? 빨리해요.”

“2,000달러를 드리죠.”

그러면서 텔레비전 쪽 탁자를 바라보았다.

엠마의 눈이 커진다.

정확히 몇 장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백 달러 짜리가 텔레비전을 받치고 있는 탁자에 쌓여 있다.

“손해보는 거래라고 생각한다면 더 드릴수도 있어요.”

자신의 몸값이 오백달러다.

그중 70퍼센트인 350달러가 주인에게 돌아가고 자신의 몫은 150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

엠마는 아무 말 없이 텔레비전 앞에 놓인 지폐를 쥐고 세기 시작했다.

티티틱!

정확히 스무장 2,000 달러가 맞다.

이건 몸값과는 별도로 뺏기지 않고 전액 자기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제의였다.

“팔카오란 사람이죠. 이름에서 알 수 있겠지만 히스패닉이에요.”

“몇 살이오?”

“몰라요. 많지는 않아 보여요.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사람이에요.”

여자는 자신이 속한 레드윙 클럽 사장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차안에 앉아 있던 사내들의 고개가 모텔 쪽으로 향한다.

“야 왜 이렇게 늦었어. 죽일년아.”

조수석 사내가 버럭 소릴 질렀다.

엠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뭐해!”

엠마는 화대로 받은 오백달러를 내 놓았다.

조수석의 토레는 돈을 확인하더니 백 달러를 돌려주었다.

“왜 백 달러만 주는 거죠. 오십 달러 더 주세요.”

“미친년아 잔돈이 없으니까 그러지 가게에 가서 줄 테니까 기다려.”

부우웅!

차는 골목을 빠져 나갔다.

레드윙 클럽은 루이빌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술을 마시고 즐기는 클럽이면서도 뒤로는 불법 매춘 사업까지 하고 있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세 사람이 내렸다.

엠마는 토레를 따라갔다.

“지독한 년!”

토레는 따라오는 엠마를 노려보며 지하 클럽으로 내려갔다.

자정이 넘었지만 클럽은 사람들로 가득했으며 고막이 터질 것 같은 록 음악이 터져 나왔다.

“헤이 엠마!”

“여기 앉아!”

통로 좌우에 앉아 술을 마시던 젊은 사내들이 엠마를 향해 소릴 질렀다.

하지만 엠마는 일체 대꾸를 않고 마틴과 토레를 뒤따라갔다.

통로 끝에는 출입문 하나가 있었는데 정장을 한 두 명의 사내가 문을 열어 주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자 레드카펫이 깔린 복도가 나왔고 안쪽에 또 하나의 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은 넓었는데 아프리카 물소 뿔이 놓인 책상에 한 사내가 앉아 시가를 물고 있었다.

“토레, 과르다도에게 연락해봐. 이 미친놈이 전화를 안 받아.”

“어, 낮에 통화를 했는데 보스.”

“어디서 술 쳐먹고 있나. 일을 정리했으면 보고를 해야지.”

보스라고 불리는 걸 보면 책상을 놓고 앉은 사내가 바로 이곳 우두머리인 팔카오인 모양이었다.

“쟤는 왜 왔어?”

엠마를 발견한 팔카오가 묻는다.

“진드기 같은 년, 누가 떼어먹는대, 여기 있다 가져가라.”

지갑에서 십 달러짜리 다섯 장을 꺼내 던진다.

지갑에 잔돈을 넣어 놓고서도 거슬러 주지 않은 것이다.

엠마는 허리를 구부려 바닥에 떨어진 십 달러짜리 지폐를 주웠다.

“돈 받았으면 대기실에 쳐박혀 있어.”

토레가 인상을 썼는데 그걸 보며 엠마는 씨익 웃었다.

“웃어? 이런 죽일 년이!”

욕을 하며 노려보던 토레의 눈이 커졌다.

“어엇!”

분명 엠마였다.

그런데 지금 조금 전까지 있던 엠마는 없고 그 자리에 낯선 사내가 서 있다.

“당신 뭐야.”

뒤늦게 마틴 또한 바뀐 엠마를 보며 소스라쳤다.

“당신들 둘은 필요 없을 것 같고.”

사내는 뒤에서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는데 전혀 주저함이라고는 없었다.

푸슉!

슉!

마틴과 토레는 정확히 미간이 뚫리며 넘어졌다.

“이 총보다 손이 빠르면 서랍을 열고.”

책상에 앉은 팔카오가 서랍 손잡이까지는 잡았으나 더 이상 움직일 수는 없었다.

엠마는 권총수가 변장한 것이었다.

축골공으로 체구를 줄이고 의복 위로 엠마가 입고 있던 옷을 걸친 것이다.

얼굴은 변체환용을 썼다.

사락!

권총수는 엠마의 치마와 상의를 벗어 옆 책상위에 곱게 개 놓았다.

돌려주기로 한 것이다.

“팔카오씨!”

권총수는 빈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들어올 때 과르다도를 찾는 것 같던데 그 친구 지금쯤 저승에 있을 겁니다.”

죽었다는 말에 놀란다.

“과르다도씨의 말에 의하면 팔카오씨께서 지시를 내렸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자신이 내린 지시는 한 가지 뿐이다.

판도라 커피숍에 있는 권총수를 죽이라는 것이었다.

“으음!”

팔카오 표정이 딱딱해졌다.

전화가 안 될 때부터 불길함을 예감했지만 네 명 모두가 사망했으리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신이 이 구역에서 황제로 군림한다는 걸 들었소. 그래서 나 또한 이곳 사람들과 같이 당신을 높이 볼 것이오.”

지위에 맞는 충분한 대접을 할 것이다.

그러니 그에 상응한 대답을 해달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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