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7화: 암투(3)
1979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 구출을 위한 독수리 발톱 작전이 실패하자 좀 더 강한 씰팀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후 SEAL의 베테랑 지휘관인 리처드 마친코 해군 중령을 중심으로 또 하나의 해군의 대테러 전담 특수부대인 SEAL 6팀이 창설되었다.
그런데 팀장인 리처드 마친코가 각종 사고와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해군특수전사령는 1987년 SEAL 6팀은 10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해체된다.
하지만 같은 해 미 해군 특수전 개발단(DEVGRU)이라는 이름으로 재창설되었다.
이들이 보여준 가장 큰 전공은 2011년 파키스탄에서 은신 중이던 오사만 빈 라덴을 사살한 것이다.
오민철은 7호와 11호 시신의 오른손 엄지 손가락에 끼어있는 반지가 미해군툭수전사령부 소속에서 가장 강하다는 데브그루 출신임을 증명하는 데브그루 링이라고 말했다.
피어스는 눈을 좁혔다.
엄청난 인물들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는데 어떻게 몰살을 당했을까.
“아무리 훈련이 잘된 부대도 이쪽의 움직임이 노출되면 꼼짝할 수가 없죠.”
권총수는 볼일 다 봤다는 듯 손을 털며 시체보관실을 걸어 나갔다.
별장 주인이 켄터키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루이빌 시장이다.
정치인들은 본의 아니게 적을 만들고 앙숙을 낳는다.
하지만 그 적이나 앙숙과 빠른 화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때 오랫동안 장수하는 것이다.
결론은 정치인은 적이 많다는 것이다.
루이빌 시장 필포든 역시 한 번씩 선거를 치를 때마다 상대후보를 비난하고 필사적으로 헐뜯었을 것이다.
“가만!”
병원을 나온 두 사람은 시내로 들어와 식사를 마치고 커피숍에 앉아있었다.
둘 모두 잔뜩 이마를 찡그리며 폭발현장과 시신들에서 뭔가를 찾아보겠다는 듯 각자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권총수가 분위기를 깨며 입을 열었다.
“이곳 시장의 별장이라고 했지.”
권총수는 핸드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공화당!”
“무슨 말이야?”
“여기 시장도 공화당 소속이야. 우연일까. 트렌튼 시장도 공화당 이곳 시장도 공화당. 그리고 맥크레인 전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켄터키 지역 출신.”
오민철은 뭔가 느낌이 오는 듯 침을 삼켰다.
“혹시.”
권총수의 눈치를 살핀다.
“난 그동안 미국의 적대국 소행이라고 확신했거든. 중동의 테러조직들이나 아니면 미국의 군사작전으로 위축되고 있는 남미의 마약 카르텔 뭐 그런 곳의 보복이라고 말이야.”
권총수는 차를 마셨다.
“그런데 지금 보니 어쩌면 미국내에서 일어난 싸움 같은데, 권력 다툼.”
“가능성이 높지. 생각해봐. 필포든 이곳 시장의 별장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 죽은 용병들이 한밤중에 왜 거기를 찾아갔느냐는 얘기지.”
날카로운 눈으로 오민철을 보더니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그때 커피숍 문이 열리고 네 명의 사내가 들어섰다.
사내들은 구석쪽에 앉아있는 권총수와 오민철을 발견하고 품에서 MP9 기관단총을 꺼내들었다.
“엎드려!”
커피잔을 들어 올리다 말고 권총수가 소리쳤다.
두 사람은 동시에 엎드리면서 손에 있는 권총을 뽑았지만 사내들이 더 빨랐다.
두두두두!
1분에 900발을 쏟아내는 MP9 네 자루가 집중되었다.
네 자루이니 1분이면 3,600발이 쏟아진다는 결론이다.
사내들은 커피숍에 다른 손님 몇이 있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고 순식간에 실내는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잠영술을 펼칠 수도 없다.
구식대법(龜式大法)이나 육신을 떠나 영혼만 활동하는 이혼대법, 또는 분신술과 잠영술 같은 건 원래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무공이다.
그런 무공을 함부로 펼치지 못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태일 때는 부상을 입어도 치료가 가능할 수 있으나 그런 특정 무공을 펼친 상대에서 공격을 받게 되면 속수무책인 것이다.
잠영술 상태에서 부상을 입으면 자칫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가 있다.
파파팟!
투툭!
워낙 쏟아지는 총알에 어떻게 반격을 해볼 수가 없다.
단지 탁자 밑에 엎드려 최대한 오민철을 감싸고 있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욱!
권총수의 신음이 끊이지 않는다.
총알들이 호신강기를 때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집중 사격을 받는다면 아무리 호신강기가 단단하다고 해도 십여 발 이상 맞으면 내상이고 열대여섯 발이면 죽는다.
“날로 막으려고 하면 안 되지?”
갑자기 오민철이 씨익 웃었다.
“전쟁은 화력 싸움인데 네 자루 기관단총 앞에 권총 두 자루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욕심아냐?”
“무슨 소리?”
“비켜”
오민철이 느닷없이 권총수를 밀치며 일어나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탕!
갑작스럽게 오민철이 일어서자 사내들 총구가 일제히 몰렸다.
바로 그 순간 권총수가 튕겨 솟구치며 허공에서 방아쇠를 당긴다.
타탕!
연거푸 두 발이 발사되면서 두 사내가 나동그라졌고 우욱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오민철이 앞으로 엎어진다.
“혀엉!”
휘이이!
허공에 뜬 상태에서 곧장 방향을 틀어 오민철을 향해 날아갔다.
타앙!
그러면서 입구를 향해 또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컥!
세 번째 사내가 고꾸라졌고 나머지 한 사내가 도주하기 시작했다.
“형!”
오민철은 순식간에 피 칠을 해버렸다.
“제...젠장!”
“911, 911을 불러.”
권총수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 쪽팔려.”
오민철은 왼손으로 복부를 감싸며 인상을 썼다.
“돌아버리겠네. 아아!”
“형, 안 죽지?”
“내 걱정 마. 뱃대지 구멍 났다고 뒈지는 놈 봤어. 걱정말고 그 새끼 잡아.”
스스로 표적이 되어 유인을 했다.
총구가 아주 잠깐 돌아갔지만 권총수 같은 절정의 고수에게 그건 두 번 다시 없는 기회였다.
한마디로 살을 주고 뼈를 취하자는 뜻이었다.
자신이 그 살이 된 것이다
권총수는 재빨리 커피숍 주인에게 지갑에 있는 현금을 모조리 뽑아 주었다.
“부탁합니다!”
카운터 뒤에서 일어난 주인은 백달러 짜리가 수북한 모습에 차렷 자세로 외쳤다.
“내가 책임집니다.”
권총수는 순식간에 커피숍을 나섰다.
부르릉!
흰색의 벤츠 한 대가 막 출발한다.
도망친 사내의 차다.
때마침 청소차 한 대가 재활용 쓰레기를 싣고 있었다.
권총수는 운전석으로 뛰어 올라 기어를 넣고 출발했다.
뿌아앙!
청소차는 굉음을 내며 달려갔는데 두 명의 청소부는 그냥 멍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청소차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굉음을 내며 달리기 시작했는데 멀리 흰색 벤츠가 보였다.
권총수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푸와아아!
요란한 엔진 소리에 길 가던 사람들이 돌아보았고 주행중인 차량들은 하이빔을 켜고 비상라이트를 깜빡거리며 달려오는 청소차를 피하고 비켜주기 바빴다.
그 바람에 금세 일 차선을 달리고 있는 벤츠를 따라 붙었다.
권총수는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벤츠를 들이 받았다.
퍼억!
벤츠는 충격으로 앞으로 튕겨 나갔다.
콰아앙!
권총수는 가속 폐달을 밟아 또다시 벤츠 꽁무니를 박았다.
거듭된 충격에 벤츠는 중앙선을 넘어 버렸다.
빠아앙!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차가 경음기를 울리며 아슬아슬하게 피해 지나갔다.
끄그그극!
권총수는 그대로 벤츠를 밀어 버렸다.
벤츠는 떠밀려 반대차선으로 완전히 들어섰고 한 대의 승용차가 벤츠의 옆구리를 쳤다.
쿠우웅!
벤츠는 밀려 가로수를 박으며 멈췄다.
덜컹!
청소차 운전석 문이 열리고 내린 권총수는 벤츠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타탕!
방아쇠를 당기자 차 유리가 박살났다.
운전석 사내는 뒤와 옆구리를 차례대로 박히면서 부상을 입은 듯 움직임이 빠르지 못했다.
“개새끼 모가지 뼈가 나갔군.”
콱!
권총수는 머리채를 잡더니 그대로 잡아 당겼다.
목뼈를 다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내를 머리채를 잡아, 그것도 깨진 유리문으로 끌어내자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
질질질!
권총수는 사내를 끌고 가더니 청소차 조수석 문을 열고 집어 던지듯 쳐 넣더니 운전석에 올랐다.
부우우웅!
차를 곧바로 돌려 처음 있었던 커피숍 앞에 도착했는데 아직까지 청소부 두 명은 눈만 깜빡 거리며 서 있었다.
그러다 청소차가 나타나자 반가운 표정을 지었는데 쭈그러진 앞부분을 보며 다시 인상이 굳어진다.
권총수가 운전석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돌아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
“내려!”
사내를 잡아 당겼다.
사내는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쿵 소리를 내며 길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수리비 청구는 이 사람에게 하시오.”
그러면서 맥보란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청소부들은 주춤하면서 명함을 받았고 권총수는 사내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고 있었다.
“어흑흑흐흐!”
사내는 고통의 비명을 질렀지만 권총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커피숍 지하에 주차되어 있는 포드익스플로러 트렁크에 사내를 집어 던졌다.
부우우웅!
차를 몰고 밖으로 나온 권총수는 다시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이미 911은 왔다갔고 경찰들이 현장 수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커피숍 종업원이 다가왔다.
종업원은 육십 가량의 나비넥타이를 맨 노인이었다.
“할렐루야. 주여 이 젊은이에게 임하소서.”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 아십니까?”
“사장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했습니다. 루이빌 대학병원 응급실로 간다고 사인을 보내더군요.”
“알라후 아크바르!”
그 말을 남기고 권총수는 길가에 세워진 자신의 차로 뛰어가며 금세 사라졌다.
‘알라후 아크바르’
노인이 무슨 뜻인지 몰라 중얼거릴 때 한 남자가 지나간다.
“신은 위대하다.”
“할렐루야.”
노인은 몸을 돌려 가게로 들어갔다.
긴급 수혈이 시작되었고 한쪽에서는 몸에 박힌 총알을 뽑는 수술이 벌어졌다.
“으음!”
권총수의 입술이 비틀린다.
오민철이 부상을 입은 건 어제 오늘일도 아니다.
이미 몇 번에 걸쳐 죽을 위기를 겪었지만 이번은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솟는다.
어쩌면 결혼을 앞둔 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시골 촌구석에서 태어나 오늘 날 적지 않은 부를 일군 오민철이었다.
지지리도 못나고 배운 것 없는 누님과 형제들을 도와 어느덧 중산층으로 끌어 올렸다.
오민철이 가문을 일으킨 셈이다.
그리고 이제 결혼을 약속한 여자까지 있는데 하마터면 전쟁터가 아닌 평화로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죽을 뻔했다.
수술중이라는 글씨가 계속 깜빡 거린다.
커피숍 주인은 병원에서 요구하는 보호자 항목에 망설이지 않고 사인을 했다.
그만 가도 좋다고 했지만 커피숍 주인은 환자가 깨어나면 가겠다고 수술실 앞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권총수는 자신의 지갑에 얼마의 돈이 들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대략 천 달러는 넘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천 달러를 벌려면 3달러짜리 커피 수백잔을 팔아야 한다.
그렇다면 조금 자리를 지켜도 손해 볼 일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는데 권총수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자리를 잠시 봐주시겠습니까?”
“그러세요. 충분히 용무를 보고 와도 될 것입니다. 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커피숍 사장은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난 깊은 눈빛을 보낸다.
권총수는 트렁크를 열었다.
사내는 누워 있었는데 권총수가 문을 열자 고개는 돌리지 못하고 눈동자를 인정사정없이 끝으로 몰아 붙였다.
하지만 권총수가 보일리 없다.
“이름?”
“개자식!”
사내는 욕하며 히죽 웃었다.
피식!
사내를 보며 실소를 짓던 권총수가 조수석 문을 열고 콘솔박스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