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42화 (442/651)

제442화: 적진 깊숙이(1)

오민철이 새우눈을 하며 분석하듯 말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MS-13 고위층에서 우릴 노린다는 것 아냐? 도박장 블링크 차징과는 별개로 말이야?”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봐.”

도박장 문제였다면 이토록 발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다.

즉 그들은 이쪽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

“이만큼 치밀한 계획을 세울 정도면 누군가로부터 의뢰를 받았다는 것이며 정보제공 역시 받았다는 뜻이고, 우리가 이번 일에 개입했다는 건 CIA와 FBI말고는 없는데.”

권총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애런이 흘린 것 아냐?”

“아냐!”

권총수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이미 우리에게 완전히 벌거벗겨졌어. 우리의 한마디면 그의 인생은 끝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더 죽여 없애려고 할 수 있잖아.”

“그는 영리한 사람이야. 더욱이 씰 출신이지. 사막의 흑새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다고. 두 번 다시 날 적으로 세우지 못해.”

권총수는 애런에게 자신의 용병시절 닉네임을 가르쳐 주었다.

권총수의 초장기 용병시절 그는 이미 씰에서 제대를 하고 비밀 경호국 시험에 응시한 것이다.

권총수가 사막의 흑새라는 공포의 존재로 중동의 사막을 종횡무진하고 있을 때 그는 백악관에 있었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서 가끔 들었고 여전히 씰에 남아 있는 동료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는 어리석은 남자가 아냐. 아무리 배짱이 좋다고 해도 사막의 흑새에게 칼을 겨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지. 그는 우리와의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 있을 거야.”

권총수는 모든 걸 덮겠다고 했다.

그 조건으로 애런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말해주었다.

더러운 거래일지라도 신뢰는 생명이다.

사막의 흑새는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주고 약속은 기어이 지킨다.

상대가 갖고 있는 약점이나 비밀을 볼모로 협박하거나 이용하지 않는다.

트렌튼 시내를 샅샅이 뒤졌다.

이름하여 탐문 수사다.

애런으로부터 넘겨받은 정보를 토대로 닉이 자주 들리는 바(BAR)와 헬스장까지 샅샅이 훑었다.

이번까지 세 번째다.

그들이 귀찮을 만큼 자꾸 찾아가서 닉의 행방을 묻는 데에는 단순히 그를 찾으려는 것도 있지만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소문은 빠르다.

그리고 당사자에게 신속하게 들어간다.

소문을 들으면 상대는 어떤 식이든 액션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일의 실마리는 그렇게 풀리는 것이다.

계획은 좋다.

입질은 의외로 빨리 왔다.

최소한 대여섯 번은 닉의 단골 술집이나 헬스장, 경마장을 다녀야 어떤 효과가 나타나리라 생각했는데 세 번째 만에 기회가 온 것이다.

오늘은 거꾸로 헬스장을 가장 먼저 훑고 두 번째로 닉이 자주 다닌다는 지하 바(BAR) ‘알레그로’에 들어섰다.

낯익은 종업원이 어서오라는 인사를 하다 말고 표정이 변했다.

이미 두 번이나 찾아와 버번 스트레이트 한 잔 시켜놓고 두 시간을 자리한 과거이력을 떠올린 것이다.

그것도 손님이 가장 많은 시간인 5시 30분부터 7시 30분이었다.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는 버번 두 잔을 놓고 열 시간을 있든 열흘을 살든 상관없다.

그러나 퇴근시간을 전후하여 가게 매출에 협조하지 않는 그런 손님은 밉상을 넘어 패 죽이고 싶다.

그런데 오늘 또 왔다.

하지만 오늘은 걱정할 것 없다.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사내가 권총수가 두 번째 왔다간 이후 찾아와 물었다.

‘몇 놈이었나?’

종업원은 힘차게 대답했다.

‘두 명이었습니다.’

‘동양인이었다고?’

‘CIA 신분증을 보였습니다’

‘금요일 날 왔다고?’

‘예’

그리고 두 사내는 돌아갔다.

오늘이 금요일이다.

그런데 정확히 왔다.

앞서 두 번과의 차이라면 오늘은 한 명이라는 것이었다.

슥!

종업원은 구석진 사내들을 향해 오른손을 슬쩍 올려 사인을 보냈다.

두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오른손이 허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잡힌 권총이 권총수를 향해 있다.

“가만있어.”

움직이지 말라면서 낮게 으르렁거렸다.

다가온 둘 중 한 명은 총을 겨누고 있고 다른 한 명은 권총수의 몸을 수색했다.

하지만 나오는 것이라고는 말보로 레드 한 갑과 라이터와 백 불짜리 한 장 들어있는 지갑이 전부였다.

너무 단촐한 소지품에 어이가 없는 듯 사내가 이마를 찡그렸다가 권총수의 상의 오른쪽 주머니에 세 가지 모두를 쑤셔 넣어버렸다.

푸욱!

총구로 허리를 쑤시며 말했다.

“시키는 대로 하면 안 죽어. 앞으로 가.”

권총수는 앞장서 걸어갔다.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왔는데 길가에 세워진 은색 승용차 문을 열고 권총수를 거칠게 밀어 넣었다.

“두 손 허리 뒤로 하고 엎드려.”

권총수는 시키는 대로 상체를 앞으로 숙이면서 양팔을 허리에 올렸다.

곁에 올라탄 사내는 트렁크에서 노끈을 가져와 단단히 묶었다.

부우웅!

차가 거칠게 출발했다.

승용차는 트렌튼 시내를 벗어났다.

조용한 교외를 달리던 승용차가 속도를 떨어뜨리며 오른쪽으로 빠졌다.

우거진 숲 사이로 난 왕복 2차선 도로는 조용했다.

10여분을 달리던 승용차는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져 들어갔는데 권총수는 여기서부터는 사유지라는 걸 알아차렸다.

비포장 도로다.

그렇다고 길이 아주 나쁘다거나 하지 않았지만 좌우로 가끔씩 흔들리고 덜컹거린다.

한참을 들어가던 승용차가 속도를 늦추었다.

나무사이로 강이 보이고 낡은 오두막 한 채가 있었다.

델라웨어강의 한줄기로 짐작하고 있을 때 차가 멈췄다.

“내려”

권총수는 차에서 내렸다.

오두막 주위로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한 세콰이어 나무들이 솟아 있었다.

“가!”

다시 권총으로 등을 찌른다.

권총수는 앞장 서 가는 사내의 뒤를 따랐는데 강쪽으로 붙어 걸어 올라간다.

길은 그다지 험하지 않았다.

축축하게 젖은 산길을 올라가자 계곡이 나타났는데 맑은 물이 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휘이익!

한 사내가 계곡에서 플라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앞서간 사내가 플라이 낚시를 하고 있는 사내에게 뭐라고 보고하듯 말했다.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돌렸는데 권총수는 멈칫했다.

‘닉!’

애런의 친구라는 닉이 분명했다.

애런으로부터 구한 사진을 보고 또 보며 얼굴을 기억했다.

피핑!

조용한 계곡에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닉의 낚싯대가 휘어지며 내는 소리다.

부러질 듯 휘어진 것이 묵직한 고기를 건 듯 보인다.

어종은 송어일 것이다.

계곡의 송어는 고인물에 사는 송어보다 훨씬 버티는 힘이 강하고 가끔은 줄을 끊기도 한다.

피피피핑!

피아노 소리는 더욱 빨라졌고 낚시대는 손잡이 부분까지 휘어지며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했다.

하지만 닉은 노련했다.

물고기가 적당한 밀당을 하더니 10여분 만에 끌어냈는데 무려 77센티짜리 송어가 올라왔다.

풍덩!

잡은 송어의 길이를 재어보더니 다시 놓아준다.

닉은 낚싯대를 한쪽으로 놓고 점퍼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흘긋!

뒤로 손이 묶인 권총수를 바라보더니 빙긋 웃었다.

“기분이 어때? 사막의 흑새라고 하던데.”

별것 아니라는 듯 위 아래로 훑다가 다시 물었다.

“애런이 뭐라고 하던가?”

“회사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했소.”

“사실이지!”

닉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길게 연기를 내 뿜으며 조금전 자신이 고기를 잡았던 깊은 웅덩이를 바라보았다.

거센 물줄기가 소용돌이 쳤는데 한참을 바라보고 있던 닉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떡하지. 나도 딱히 당신에게 해줄 말이 없는데,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지만 부도까지 갈 정도는 아니었어. 그런데 며칠 사이에 돈줄이 막혀 버리는데 환장 하겠더라고.”

닉은 당시 상황을 차분하게 말해 주었다.

“급하게 은행 대출로 막았지만 임시방편 밖에 되지 않았어. 돈은 급하고 은행은 더 이상 안된다 그러고, 하는 수 없이 사채를 끌어다 막았지. 그런데 빌어먹을.”

그래도 회사의 자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그 이전에 주위에서 무리한 확장이라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심장마비처럼 전혀 예상지 않았던 자금 부족 사태가 찾아 온 것이다.

과욕임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공장이 은행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을 때 사채업자가 목숨 운운하며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압박했다.

그때 워싱턴에 있던 애런에게 전화가 왔다.

7대3

애런이 투자한 지분이 3이었다.

애런도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산까지 전부 현금화하여 투자한 것이라 공장이 어렵다는 닉의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언제까지 비밀경호국 근무를 할 수는 없다.

마흔다섯이 한계다.

간부가 되어 관리직으로 발령이 나면 몰라도 현장 직원들은 그 이전에 각자 길을 찾아 떠난다.

그때를 대비해 투자한 돈이 날아갈 판이라는 전화에 애런은 거의 거품을 물며 소릴 질렀다.

“으헉!”

거기까지 얘기를 하고 고개를 돌린 닉이 갑자기 기겁을 했다.

권총수가 느긋하게 바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묶인 손은 자연스럽게 담배를 쥐고 있었는데 그를 데리고 온 두 명의 사내는 어째선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눈알도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 있었는데 닉은 상황이 심상찮다는 걸 느끼고 갖고 있던 권총을 뽑으려고 했지만 늦었다.

조금 전까지 움직이던 오른손이 돌덩이처럼 요지부동이다.

“어어어!”

담배를 쥐고 있는 왼손 또한 움직이지 않는다.

권총수는 입에 담배를 물고서 두 사내의 손에 쥐어진 권총을 압수하고 마혈과 아혈을 풀어 주었다.

“권총을 내게 던지시오.”

이어 닉의 제압된 혈도를 해혈했다.

닉은 오른팔을 움직이며 권총을 잡았다.

권총수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손잡이를 쥐고 있는 자신이 빠를까 전혀 사격자세를 갖추지 않고 권총을 쥐지도 않은 권총수가 빠를까.

거리 또한 우습게 볼 거리는 아니다.

10미터 정도 되는 거리이므로 맞출 수는 있으나 한 방에 보내지는 못할 것이다.

죽이지 못하면 곧바로 반격이 들어올 것이다.

묶인 손목의 노끈은 아무나 풀지 못한다.

더욱 신경 쓰이건 3대1이란 상황인데도 전혀 긴장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렵다.

자신이 비록 씰 출신이긴 하지만 물러나야 할 상대로 결정했다.

휙!

권총을 그대로 던져 주었다.

권총수는 권총 세 자루를 바위에 올려놓았다.

“회사 자금 사정 악화로 은행대출에 이어 사채까지 썼던 그 기간 동안의 회사 재무제표를 볼 수 있겠소?”

닉의 눈이 빛난다.

권총수의 말은 강제로 납치해 온 두 사내와 뒤에서 지시를 내린 자신에 대한 어떤 물리적 보복이나 법적 처리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모든 것을 협조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을 것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뭔지 모르지만 이번 일에 여러 가지 찜찜한 구석이 있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방법은 없지만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은행돈 오백만 달러와 사채 삼백만 달러를 갚았다.

이제 남은 건 종업원들의 급료였다.

결국 공장부지를 헐값에 팔아 생긴 돈으로 급료를 지불하고 나자 주머니에 쥔 돈은 일만 달러가 채 안 되었다.

그 돈으로 이곳에 오두막을 구해 살림을 시작한 것이다.

권총수는 메일로 전달해온 회사 자금 사정을 몇 번에 걸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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