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41화 (441/651)

제441화: 허를 찔렀다(2)

주차장은 조용했다.

“회사는 어찌됐소?”

“며칠전에 한 번 가봤는데 돌아가야 할 기계들은 멈춰 있고 종업원은 한 명도 볼 수가 없었소?”

“사채를 갚았다고 했잖소?”

그러면 공장이 정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뜻이었다.

“사채 빚이 얼마였소?”

“은행 채무까지 합해 칠백만 달러.”

권총수는 눈을 좁혔다.

불법 도박장에서 백오십만 달러를 잃었으니 최소한 팔백오십만 달러 이상을 그 누군가에게 받았다는 뜻이다.

“상대는 누구였소?”

“모른다고 하면 믿겠소?”

“당연히 안 믿지,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오민철이 소릴 질렀다.

“하는 수 없죠.”

애런은 길게 숨을 내쉬었는데 더 이상 자신도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모두 다 했으니 마음대로 하라는 듯 다시 한 번 길게 숨을 내 쉰다.

“호텔 CCTV에도 클레어 양이 나가는 모습이 찍히지 않았습니다?”

“옥상입니다.”

“옥상?”

맨 꼭대기 27층이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곧바로 호텔 썬 스타 호텔로 달려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권총수는 신음을 터뜨렸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아름다운 광경이 끝없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여기서 어떻게 갔다는 거야?!”

오민철이 답답해 소릴 질렀다.

“패러글라이딩!”

“아아!”

오민철이 입을 벌렸다.

“패러글라이딩이라면 저 바다까지 얼마든지 날아가지.”

“혹시 바다에 미리 배를 대기시켜 놓고?”

“그랬을 거야.”

도주로까지 찾았다.

이제 남은 건 그들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애런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천만 달러를 줬다는 건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뜻이고 범인은 애런과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고 했다.

목소리까지 숨겨 철저히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려 했다는 의미다.

범인은 놀랍게도 천만 달러를 계좌이체가 아닌 현금으로 직접 전달했다.

은행을 통하면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자신들의 정체도 감추고 돈을 사용하게 될 애런까지 수사망에서 자유롭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좀 이상하지 않아? 애런의 진술이 어딘가 허술하게 느껴진다고.”

“첫술에 배부를 생각하면 안 되지. 일단 실마리를 잡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자고.”

지금으로써는 애런의 증언 이외에는 어떤 단서도 없다.

분명한 건 애런에게 돈 천만 달러가 생긴 건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아직 쓰지 않은 돈 일부가 그대로 있었고 직접 보여주었다.

한 명의 노인이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냥 모자를 눌러쓰고 나타난 칠십 가량의 노인을 향해 다가갔다.

“머독 영감님?”

“내가 머독일세, 자네가 날 불렀나?”

“FBI 창설이래 머독영감님 보다 더 완벽한 몽타쥬를 작성한 사람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영광입니다.”

노인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그릴 놈이 누군가?”

“이쪽으로 오시죠.”

권총수는 머독을 데리고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오민철과 애런이 앉아있었다.

“여기 이분이 얘길 해줄 것입니다. 그대로 그려 주시면 됩니다.”

노인은 화가처럼 탁자 위에 소형 이젤을 올리더니 스케치북을 펼쳐 놓았다.

그리고 필통에서 연필을 꺼냈다.

“말하게!”

애런은 자신이 그날 봤던 사내의 용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혹 사내가 변장을 했다고 해도 정확히 그려내기만 한다면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리면서 스케치북에는 한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난 권총수는 노인에게 이백달러를 지불했다.

“백 달러 받기로 했잖는가?”

“너무 마음에 들어 백 달러 더 드리는 것입니다. 버본 위스키 좋아하신다던데 오늘 같은 날 한잔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젊은이 이름이?”

“권총수입니다.”

“인생을 아는 멋진 친구로군.”

노인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짐을 챙겨 카페를 걸어 나갔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진행이 답답하다.

여러 군데서 구멍이 보이고 문제가 드러나고 있었다.

애런이 투자를 했다는 가죽 만드는 회사의 사장인 닉의 행방이다.

회사는 분명히 도산했다.

도산이유 역시 과도한 부채로 인한 부도였다.

닉의 가족들은 펜실베니아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도 아들과 남편의 행방을 모른다.

결국 추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 온 것이다.

몽타주 또한 사진으로 만들어 맥보란에게 넘겼지만 아직 그런 얼굴을 한 지명수배자나 테러범은 없다는 결론을 보내왔다.

사건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호텔 생활을 청산하고 단독주택 한 곳을 임대했다.

집안에 주차를 할 수도 있고 대문 앞 길가에 세워도 문제가 없는 조용한 주택가였다.

그 사이 아프카니스탄에서 사망한 두 명의 용병 장례식이 한국에서 치러졌고 권총수는 블랙잭 대표 이름으로 조화를 보냈다.

회사에서 지급하기로 되어있는 사망 보상금과 보험회사에서 나오는 위자료까지 합해 약 10억원의 돈이 전달되었다.

사람이 죽은 건 분명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한국 언론 보도는 의외로 긍정적이었다.

특전사 출신 두 명의 블랙잭 직원 둘이 아프카니스탄에서 사망했다면서 보상금으로 10억 가까이 유족에게 전달됐다는 것이다.

여론은 블랙잭에 호의적이었다.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큰 돈은 아니지만 유족에게 상당한 위로가 될 수 있는 금액이라는 것이다.

군에서 전사해도 결코 그런 보상금은 나오지 않는다면서 역시 민간 기업은 다르다며 오히려 블랙잭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국내 신문기사를 읽으며 권총수는 한시름 놓았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사업을 하다보니 여론이라는 것이 무척 중요했다.

여론이 곧 상식의 지표라는 말이 틀림없었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국내 신문을 읽을 때마다 권총수는 은근히 긴장한다.

전쟁을 하는 기업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아차하면 대중으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을 위험 높은 분야였다.

좋은 직장도 누군가 죽었다는 건 굉장한 충격으로 전달된다.

더욱이 소문은 굴절되는 특징을 갖고 있어 자칫 악의적으로 비화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는 직장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작 사건화 되면 사람들의 시선은 부정적으로 변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인지상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언론과 여론 모두 발 빠른 회사의 대처에 좋은 점수를 준 것이다.

“밥 먹어!”

현관문이 열리며 오민철이 불렀다.

권총수는 들어가 오민철과 아침 식사를 했다.

포드 익스플로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워싱턴에서 뉴저지주 트렌튼까지 가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워싱턴을 벗어난 차량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왕복2차선 도로다.

계기판 바늘은 60마일에 멈춰 있었다.

닉이라는 애런의 군대 동기를 찾아야 한다.

천만 달러라는 엄청난 거액을 애런에게 전달하고 클레어를 납치하여 사라진 사내의 정체 파악도 중요하지만 이상하게 닉이란 사내에게 묘한 끌림을 느낀다.

누군가를 특정할 수 없는 이런 사건에서는 직감이나 본능을 따르는 것도 하나의 해결법이다.

오늘로 세 번째다.

이미 두 번은 허탕을 쳤다.

물론 그의 행적이 트렌튼에 있으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지만 그나마 가능성은 그곳에 있는 것이다.

멈칫!

핸들을 잡은 권총수의 눈이 빛난다.

커브길을 돌아나가자 멀리 덤프트럭 한 대가 비상 라이트를 켜고 멈춰 서 있다.

후방으로 삼각대가 세워진 걸 보면 차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반대편에서는 많지는 않지만 직선 도로다 보니 차들의 속도가 빨라 함부로 중앙선을 넘어가는 것이 쉬어 보지 않는다.

권총수는 차를 멈춰 세웠다.

덤프와의 거리는 50여 미터 정도다.

“왜? 추월해서 안가?”

권총수의 눈이 빛난다.

“운전사 놈, 밖에 내려와 핸드폰 통화를 하고 있는 놈 잘 봐.”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운전사로 보이는 사내가 차에서 내려 전화를 하고 있었다.

“이 상황이면 운전자는 누구와 통화를 하겠어?”

“보나마나 정비업소겠지.”

“그렇지. 정비업소 관계자와 부지런히 고장 난 상태를 설명하겠지. 그런데 잘 봐. 자꾸 우리쪽을 슬쩍슬쩍 살피잖아.”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눈에 힘을 주고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전화를 하는 운전사의 동작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눈에는 그런 동작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눈에는 운전사는 이쪽으로 전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전화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권총수가 잘못 보았다는 생각은 않는다.

50미터 거리면 일반 사람은 몰라도 권총수에게는 지척이고 면전이다.

즉 상대의 모든 동작을 훤히 볼 수 있는 거리다.

권총수는 룸미러로 뒤를 살폈다.

한 대의 차량도 아직 따라 붙어 있지 않았다.

“형 혹시 모르니까 M4꺼내!”

“M4를?”

오민철은 오른쪽 문과 좌석 사이에 끼워진 M4를 꺼냈는데 30발들이 탄창이 끼워져 있었다.

“다섯 놈이 숨어있어.”

“어디에?”

“덤프 화물칸에, 뒷문이 강철판으로 되어 있잖아. 그 뒤에 있어. 아마 우리가 속도를 줄이며 다가오면 일제히 일어나 갈 길거야.”

화악!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그럼 운전사 저놈은 무슨 역할이야?”

“우리 차의 움직임을 말해줄 거야.”

“통화하잖아.”

“무슨 얼어 죽을 통화야 빈 전화기에 대고 혼자 주둥이 떠벌리는 거겠지.”

타탁!

권총수는 의자 밑에 넣어둔 권총을 꺼내 슬라이드를 당겼다 놓고 컵 홀더에 꽂힌 볼펜 한 개를 쥐었다.

스르르르!

창문이 열리고 권총수가 사라졌다.

마치 연기처럼 빠져나가더니 통화를 하고 있는 운전자를 향해 극성의 금강부동신법을 펼쳤다.

슈우욱!

빠르게 날아간 권총수는 깜짝 놀라며 돌아보는 운전사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푸욱!

볼펜은 통화를 하고 있는 사내의 목을 정확하게 파고들었고 슈욱하며 화물칸으로 날아올랐다.

예상대로 다섯 명의 사내들이 강철로 된 뒷문 벽에 숨어 있었다.

그중 한 사내는 등을 기대고 운전석쪽을 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화물칸에 나타난 권총수를 발견했는데 눈을 끔뻑 거렸다.

얼른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푸슉!

사내의 이마에 총알이 박혔다.

소음기 소리에 모두가 돌아설 때 권총수의 총구가 좌측에서 시작하여 우측으로 이동했다.

슉!

푸슉슈슛!

돌아보던 네 사내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며 하나둘 옆으로 고꾸라졌다.

휙!

권총수는 화물차 아래로 내려갔고 목에 볼펜을 맞은 운전자 사내가 아직 죽지 않고 헐떡거린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권총수는 사내의 오른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낯익은 문신이다

“MS-13.”

오민철이 가까이 끌고 온 차에서 내렸다.

“왜 이들이 우릴 노려? 앤드류 사건?”

불법 도박장 블링크 차징 교환대에서 일하는 앤드류 건으로 인해 이렇게 이들이 노린 것 아니냐는 질문인데 권총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글쎄!”

권총수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입을 열었다

“다른 차들 더 몰려들기 전에 일단 가자고.”

두 사람은 포드 익스플로러에 올라 트럭을 추월해 지나갔다.

“앤드류 사건으로 벌써 우리 앞을 막아설 만큼 정보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어.”

“별개다!”

“그렇다고 봐.”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쨌든 MS-13에서 우릴 노리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여.”

후우우!

담배연기가 창밖으로 빠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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