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40화 (440/651)

제440화: 허를 찔렀다(1)

아침이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비밀 경호국 요원들이 퇴근한다.

빵!

소리를 내며 라이트가 켜졌다 꺼진다.

잠긴 문이 열린 것이다.

“애런씨!”

문을 열려던 애런이 고개를 돌렸다.

권총수와 오민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애런의 표정이 굳어졌다.

“또 뭐요?”

지겨운 모양이다.

하긴 지겨울 법도 했다.

대통령 딸의 행방이 여전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니 당시 경호를 했던 자신을 찾아올 건 자명했다.

백분 이해하지만 기분이 갈수록 나빠지는 것 까지 어쩔 수는 없었다.

딸칵!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더니 주차장 기둥에 등을 기댔다.

“퇴근하나보죠?”

“보다시피!”

“바로 집으로 가십니까?”

“주간 근무도 아니고, 야간 근무 끝나고 어디 갈 곳 있습니까?”

낮 근무 같으면 퇴근하고 맥주라도 한 잔 하겠지만 이른 아침에 술 마실 수도 없고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 사실입니까? 진짜 집으로 가는 거죠?”

“당신들 뭐야? 용건이 있으면 빨리 말해요. 그렇지 않으면 비키고.”

“오늘은 블링크 차징에 안가십니까?”

흠칫!

문을 열려던 애런이 소스라치며 돌아보았다.

“비밀경호국 10년 차 연봉이 8만달러를 전후하던데 12번 출입에 150만달러를 썼더군요.”

“개소리!”

애런이 소리치며 차문을 열더니 의자 밑에서 권총을 꺼내려고 허리를 숙였다.

“총을 꺼내는 건 괜찮지만 당신 가족들은 장례식을 치루게 될 것입니다.”

빠악!

허나 애런은 말을 듣지 않고 총을 쥐고 돌아서려다 강력한 장력에 맞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소림의 십팔 금룡수가 경(勁)으로 펼쳐졌다.

기(氣)가 가장 아래있고 그 다음이 바람(風)이며 세 번째가 경(勁)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강(罡)이다.

강을 펼쳤다면 아무리 내공주입이 작아도 즉사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욱!

체력에 관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호국 요원이다.

강한 남자들로 불리지만 권총수의 부드러운 경력(勁力)에 격중되자 피를 토해냈다.

저벅저벅!

권총수가 다가가 애런이 떨어뜨린 권총을 주워들며 말했다.

“아무리 총기 소지가 자유스런 나라라고 해도 비밀 경호국 요원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사람이 많지는 않을텐데.”

비밀 경호국 요원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받지는 않는다.

단지 일반인 보다는 월등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시비에 휘말릴 일은 드물다는 뜻이다.

즉 권총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냐.

뭔가 찔리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공격을 받을 만한 못된 일을 한건 아니냐는 질문이다.

불법 도박장에서 거액을 잃었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찔러보는 질문이기도 했다.

“애런씨, 지금부터 대답을 잘해야 합니다. 현명하지 못한 대답을 하면 당신의 삶이 피곤해집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난 비밀 경호국 요원이다. 날 공격하는 건 곧 백악관을 모욕하는 일이지.”

애런의 자신만만한 말에 오민철이 빙긋 웃으며 다가갔다.

“당신 지금까지 사람 몇 명 죽여 봤지? 씰 출신이라고 하던데 이라크 전에서 한두 명?”

“내 총에 죽은 사람은 셀 수 없다.”

“멀리 두고 쐈다는 얘기 아닌가?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난 면전에 세워 놓고 죽인 IS가 수십 명도 넘는데.”

화악!

씰 출신답게 눈이 커진다.

아무리 군대가 뺑끼와 뺑끼의 막장이라고 하지만 무자비한 IS대원들을 앞에 놓고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쉽지 않다.

모든 군인들은 거리를 두고 총격전을 벌인다.

즉 적이지만 고통속에 죽어 가는 걸 정확히 볼 수 없다는 장점이 있다.

만약 그 옛날처럼 면전에서 칼로 찌르고 목을 베는 일이라면 전쟁 트라우마에 빠지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애런씨!”

침묵하던 권총수가 다가왔다.

“이 영수증이 어디서 온 건지 아십니까? 블링크 차징에서 칩을 교환하는 직원 앤드류씨로부터 넘겨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품속에서 커다란 사진 몇 장을 꺼냈다.

“애런씨가 게임하는 모습이죠.”

휘익!

사진을 던졌다.

스으으으!

세 장의 사진이 날아온다.

“으허헉!”

애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속도로 다가온다.

움직이거나 기우뚱거림이 없는 것이 마치 밑에서 무언가가 단단히 받치고 있는 듯 보인다.

애런은 날아온 사진을 떨리는 손으로 뻗어 잡았다.

슥!

사진을 받아 보던 애런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불법 도박장에서 바카라 게임을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합법적인 카지노 출입을 불허하지는 않지만 가급적 삼가는 비밀 경호국 요원들이다.

명예와 권위가 흔들리고 품위 깎일 행동은 애초에 하지 않도록 요구한다.

그런데 불법도박장에서 포커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란 경위서 따위 쓸 필요도 없이 해고 대상자다.

“내 말 잘 들으세요. 난 지금 당신에게 거래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경찰관들이 피의자를 놓고 위협하고 찍어 누르는 그런 조사가 아니라 도와줄 것을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애런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절대절명의 시간이다.

위험을 벗어나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건 냉철함이다.

차가운 이성으로 주변을 살피고 상대를 바라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다.

애런은 길게 숨을 쉬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권총수와 오민철을 찬찬히 훑었다.

동양인이다.

영어가 능숙하긴 하지만 발음이 분명한 건 아니었는데 그건 미국에 살지 않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일으켰다.

CIA신분증을 가졌다고 모두가 정보요원일 수는 없다.

FBI 베테랑 수사관일지라도 사건이 꼬이면 프로 파일러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범죄를 분석하고 연구하며 범죄자의 심리상태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그들이야 말로 자신들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사건을 보기 때문이다.

이들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들 아닐까.

CIA라고 전지전능한 건 아니다.

“맞습니다. 우린 CIA요원이 아니죠. 다만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잠시 힘을 보태고 있을 뿐이죠.”

애런은 화들짝 놀란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듯 말하고 있다.

“클레어 양의 호텔방에 들어가셨죠?”

“경호원은 필요에 따라 들어갑니다.”

“압니다. 피경호자가 원하거나 허락하면 얼마든지 들어가죠. 하지만 비밀 경호국 규정에 따르면 천장 전등을 바꿔주고 집안의 조그만 시설수리는 몰라도 같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신다거나 하는 행동은 아무리 경호 대상자가 원한다고 해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사실이죠.”

“맥(MAC)화장품 쓰시죠?”

애런이 깜짝 놀란다.

권총수는 오민철이 건네주는 두 개의 병을 들어 올렸다.

“맥 화장품에서 나오는 스킨과 로션입니다. 익숙한 물건일 것입니다.”

자신도 권총수의 손에 들린 스킨과 로션을 쓴다.

“이 의자 눈에 익을 것입니다.”

권총수는 이번에도 사진을 던졌고 애런은 받았다.

허공을 날아왔지만 이미 한 번 경험했기에 처음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사진속에는 세 개의 의자와 둥근 원탁 하나가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지만 알지 못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클레어 양의 객실 의자죠. 기억 날 것입니다.”

애런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의자에 앉아 뭐하셨죠? 가정집도 아닌 호텔 객실에 경호원이 뭔가 수리하거나 손봐줄 것이 있을 리는 없고 의자에 앉았다는 건 차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눴을 가능성이 가장 큰데?”

애런은 자신을 포함하여 클레어를 지키는 경호원을 이끄는 팀장이다.

클레어양과 접촉은 오직 팀장 애런만이 허용된다.

“경호원이 대통령 딸이 묵고 있는 호텔방에 들어갈 수는 있죠. 하지만 의자에 앉았다는 건 어떤 얘기를 나눴다는 의미 아니겠습니다. 클레어양과 무슨 얘기를 나눴습니까? 혹시 클레어 양이 아니라면 제3자와 앉았습니까?”

“몇 번 호출하여 객실에 들어간 적은 있지만 의자에 앉지는 않았소. 나와 같이 근무했던 팀원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내 말이 증명될 것이오.”

“좋습니다. 딱 한 가지만 묻고 마무리 하죠. 블링크 차징에서 잃은 150만 달러의 출처만 설명 부탁합니다.”

애런이 입술을 깨문다.

그 마음을 안다는 듯 권총수가 제안했다.

“한 가지 약속은 하죠. 애런씨가 어떤 얘기를 해도 결코 우리 두 사람 말고는 모르게 하겠습니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생활이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애런은 침묵했다.

권총수를 바라보고 있는데 확실히 처음과는 많이 바뀐 얼굴 표정이었다.

백오십만 달러는 큰 돈이다.

한화 17억에 가까운 거액을 도박으로 날렸다.

그런데 전혀 아까워 한다거나 돈에 쪼들리는 사람의 행동이나 생활은 엿볼 수 없다.

애런의 처가는 물론 본가 모두 평범한 미국의 일반 가정이다.

즉 양가를 통 털어도 백오십만 달러가 손쉽게 만들어지거나 지원될 만큼 경제적 여유는 없었다.

애런의 침묵은 의외로 길어졌다.

상대가 말을 하지 않으면 이쪽도 입을 닫는 것이 좋다.

애런의 침묵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은 다물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계산들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침묵이 길다는 건 그 계산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 계산하는 것이 심상치 않은데’

권총수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오민철 역시 그래 보인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애런은 한숨을 쉬고는 속내를 털어 놓았다.

“돈이 필요했소.”

권총수의 눈이 빛난다.

돈?

맥보란에게 넘겨받은 자료와 자신들이 직접 살핀 애런의 주위 가족들중 돈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로 은퇴했고 어머니는 방송국 조명 스탭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당장 돈을 갚지 않으면 닉을 죽이겠다는 협박문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왔죠.”

“닉?”

처음 듣는 이름이다.

닉은 군 시절 만난 친구다.

그는 뉴저지주에서 모피를 생산하는 가죽 공장을 운영한다.

애런은 닉의 권유에 그의 회사에 투자를 결정했다.

회사는 매우 튼튼하고 슬기롭게 나아갔다.

문제는 2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닉은 회사 경영전반에 걸쳐 대대적은 수술을 가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 칼질은 동물 가죽, 즉 모피 생산을 중단한 것이다.

이유는 동물보호 차원에서 갈수록 모피 반대 운동이 확산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의류 회사들 또한 이에 동참하는 등의 추세를 볼 때 모피는 이제 하향 산업이라는 것이었다.

대신 선택한 것이 인조모피였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것이 남을 뒤따라가도 문제지만 너무 앞서가도 위험하다.

동물 보호차원에서 모피 의류 퇴출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인조모피를 꺼리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회사는 금방 어려움에 빠졌다.

닉은 곧 인조 모피가 모피시장의 대세를 이룰 것이라면서 은행돈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모피 옷을 부의 상징, 패션의 정석으로 믿어온 소비자들의 인식까지 바뀌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또한 현재의 인조 모피 기술은 절대 천연모피의 아름다움과 보온성을 따라가지 못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인조모피는 싸구려라는 인식이 깔렸다.

금융권 대출도 한계에 찼고 결국 닉이 갈 수 있는 곳은 사채였다.

닉의 판단이 틀린 건 절대 아니었다.

단지 너무 빨랐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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