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9화: MS-13(2)
다음 날 정확히 그 시간에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앤드류 역시 일 분의 오차도 없이 차를 멈추고 내렸는데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어제 그토록 힘들게 닫던 차문이 아주 가볍게 닫힌다.
“고쳤나 봅니다?”
어제 한 번 만나서일까 앤드류는 한결 느긋했다.
“고마워.”
“아닙니다. 어제 부탁한 건?”
“아 그게 말이야 쉽지가 않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더라고.”
“무슨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까?”
“시간이 필요하다고, 간단한 일이 아냐.”
“얼마나 걸립니까?”
“글쎄?”
앤드류의 두 눈이 빛난다.
그건 한가지 분명한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돈을 더 달라.
권총수를 봉으로 본 것이다.
“어제 아주 손쉬운 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걱정말라고 했던 것으로 아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준비하려고 보니 만만치가 않아!”
“그럼 안 되지.”
오민철이 나타났다.
한 명이 더 나타나자 움찔하며 오른손이 허리쪽으로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앤드류 얼굴이 굳었다.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오도가도 않고 아무리 힘을 써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급한 김에 왼손으로 권총을 뽑으려 했으나 왼팔도 요지부동이다.
“어어!”
양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 핸들을 돌리며 운전을 했던 팔이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꼭 좀 부탁한다는 의미로 형님이라고까지 불러줬는데 이러면 안되는거지.”
오민철이 다가서자 앤드류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헉!”
다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상판(上板)을 떠받치고만 있을 뿐 움직이지 않는 교각처럼 두 다리는 땅속 깊이 박혀 버린 것 같았다.
척!
오민철이 어깨위로 손을 올렸다.
“어이 앤드류, 저 친구는 존경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 형님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아. 그런데 어젯밤 주저않고 형님이라고 불러줬잖아. 그만큼 믿고 존경한다는 마음을 보였으면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아냐.”
스윽!
그러면서 앤드류의 허리에 꽂힌 권총을 뽑았다.
“어쭈구리. 소음기까지 씌웠네. 글록, 정말 다시없는 명품이지.”
휘익!
오민철은 번개처럼 몸을 돌려 2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가로등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퍽!
정확히 가로등이 깨지며 불이 꺼졌다.
주위가 캄캄해졌다.
앤드류의 눈이 흔들렸다.
권총으로 20미터는 장거리이다.
비록 고정된 표적이라고 하지만 돌아서면서 바로 당겼다.
오랫동안 조준하지 않는 이른바 속사인 셈이다.
아직까지 자기 주변에서 이토록 정확하게 사격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앤드류가 다니는 불법 도박장은 뉴욕의 신흥 갱조직‘M-13’이 운영한다.
일명 마라 살바트루차(Mara Salvatrucha)라고도 불리며 일부 조직원은 아예 몸에 문신으로 새기고 다닌다.
마라 살바트루차-13(Mara Salvatrucha-13)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원한 라틴아메리카 출신 갱이자 국제범죄조직이다.
원래 이 조직은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다른 범죄조직들로부터 엘살바로르인 이민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직은 더욱 강력하고 체계적인 범죄조직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잔인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경쟁조직인 (18th Street Gang)과 더불어 마피아의 조직 강령을 흉내내고 있다.
조직 이름의 어원은 여러 이견이 있지만 엘살바도르의 수도의 거리인 라 마라(La Mara)와 살바트루차 내전에서 싸웠던 게릴라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는 설에 가장 무게가 실린다.
마라분타라는 사납다는 이름에서 따온 칼리체 속어로 갱단을 의미하는 마라(Mara)에다 엘살바도르인(Salvadoran)과 경각심을 갖는다는 칼리체 속어 트루차(Trucha)의 합성어다
이들은 입단식으로 조직 구성원들에게 13초간 집단 폭행을 견뎌내는 의식을 치른다.
“형님, 법원권근(法遠拳近)이란 말 들어 보였습니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우리나라 속담인데 형님께서 MS-13 조직원이면 뭐합니까? 형님을 구하기 위해 오는 시간보다 우리가 여기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시간이 빠른데.”
그러면서 이마에 권총을 붙인다.
“당길까요? 아시아 촌놈 두 명이 대 MS-13조직원을 죽였다고 누가 믿겠습니까? 여기서 죽으면 누구도 우릴 못 잡습니다. 완전 개죽음입니다.”
앤드류는 마른침을 삼켰다.
대충 뱉어내는 말 같지만 다르다.
오랫동안 갱조직의 거친 물살을 헤치며 살아왔기 때문에 사람을 보는 눈은 있다고 자부한다.
어설픈 아마추어들이 아니다.
속사로 가로등을 끄는 것에서부터 자신이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협박한다.
맞다.
아무리 날고 긴다는 MS-13이지만 현 시점에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자신의 목숨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살고 죽는 건 철저히 이들에게 묶여 있다.
“애런이 지금까지 현금을 주고 바꾼 칩이 얼마인지 영수증만 가져오면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푸욱!
오민철은 권총을 다시 허리춤에 꽂아 주었다.
“내일 이 시간에 여기서 다시 보는 것이 어떻겠소?”
“약속을 지키죠.”
앤드류는 어금니를 물었다.
탁탁!
오민철은 어깨를 토닥이며 등을 돌렸다.
“나...날 이대로 놔두고 그냥 가면 어쩌자는 거요?”
몸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데, 권총수와 오민철은 아무런 대답도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1분정도 지났을 때 굳어 버린 듯 하던 팔과 다리가 움직인다.
앤드류는 권총을 뽑았다.
지금이라도 쫓아가 쏴버리고 싶었지만 앤드류는 두 걸음 뛰다 멈췄다.
“서둘건 없지.”
‘살아 있으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
하늘같은 MS-13 우두머리의 말이다.
앤드류는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들어갔다.
클레어를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나타났다.
아랍계 방송인 알자지라를 통해 흘러나왔는데 자칭 IS 대변인이라는 사내가 인터뷰에서 밝혔다.
IS의 발표만 있었다면 어느정도 신뢰할 수 있겠지만 여기저기 주장하는 세력이 쏟아졌다.
나이지리아 보코하람, 헤즈볼라, 알카에다, 하마스는 물론이고 멕시코 마약조직 시날로아 카르텔, 걸프 카르텔이 자신들의 코카인 운반선 폭파에 대한 보복조치로 클레어를 붙잡고 있다고 말했다.
2년 전 코카인 600킬로를 싣고 LA로 향하던 파나마 국적의 어선 ‘센트럴 호’가 미군의 공중폭격을 받아 침몰했다.
물론 시날로아 카르텔의 코카인 운반선으로 확인됐고, 3개월 후 이번에는 걸프 카르텔 소속 배 한 척이 미 해안경비대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는데 무려 1,200KG의 코카인을 압수했다.
콜롬비아의 악명높은 마약집단 메데인 카르텔, 칼리 카르텔 역시 클레어를 납치한 건 자신들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자신들의 범죄라고 우기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진위는 알아봐야 했다.
CIA와 FBI가 바빠졌다.
그들 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많은 정보기관들이 움직였다.
털끝만한 가능성에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지랄들 하는구만.”
오민철이 씨익 웃었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차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앤드류의 차에서 세 명의 사내가 더 내린 것이다.
셋 모두 히스패닉계였는데 손에 권총을 들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일행을 데리고 온 것이다.
“콘솔함 열어봐 나무젓가락 있을 거야.”
오민철이 콘솔함을 열었는데 나무젓가락 세 개가 있었다.
며칠 전 컵라면을 먹고 남은 젓가락들이다.
권총수는 오민철이 건네주는 젓가락 세 개를 받아 쥐고서 차에서 내렸다.
오민철은 권총을 들고 내렸다.
일렬로 세울 수 있는 도로변 주차장인데 사내들은 20여미터 앞에서 일방통행인 도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입구가 아니면 거꾸로 역주행 할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사내들은 좀 더 여유로웠다.
지난 두 번에 걸쳐 앤드류에게 이쪽이 어떤 차종인지 보여주지 않은 것도 이유가 있어서였다.
즉 지금과 같은 상황을 대비한 권총수의 치밀한 안배였다.
“앤드류!”
뒤에서 부르자 사내들이 돌아섰다.
푹!
푸푹!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나무 젓가락이 남미계인 세 사내의 목젖을 그대로 뚫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권총을 한 방이라도 당겨 보겠다는 듯 들어 올리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죽음이 너무 빨리 찾아온다.
쿵!
퍼퍽!
앤드류는 사색이 되어 버렸다.
권총이 이토록 무기력하고 보잘것 없는 물건인줄 미처 몰랐다.
셋 모두 권총을 갖고 있었지만 한 방도 당겨보지 못하고 죽었다.
“앤드류 형님.”
오민철이 면전에 섰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시세를 아는 자가 준걸이라고 했잖아요. 저 동생 무서운 분이라고 내가 했어요 안했어요?”
“해...했지.”
“사람 말을 그렇게 못 믿습니까? 흑인들은 백인들과 달리 사람말을 잘 믿는다던데 정말 실망입니다. 이제...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여기!”
앤드류가 품에서 봉투 한 개를 꺼냈다.
“영수증이야.”
혹시 몰라 오늘은 준비하여 나온 것 같았다.
탁!
어느새 다가온 권총수가 봉투를 받아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꺼냈다.
프린트 된 A4용지에 애런이 칩과 바꾸며 계산했던 현금액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부르르!
앤드류의 눈이 심하게 떨린다.
캄캄한 어둠속인데 권총수가 자신이 프린터 해온 영수증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앤드류는 아프리카 가나에서 들어왔다.
15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왔는데 고향 셀루리에 가면 주술사가 있다.
병을 치료하고 귀신을 불러내며 건강한 사람도 갑자기 걸음을 걷지 못하도록 하는 뛰어난 주술사였다.
권총수를 보는 순간 문득 그 주술사 생각이 난 건 아마 어둠속에서 깨알같은 프린터 글씨를 보는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무 젓가락을 가지고 사람의 목을 뚫는 건 둘째치고, 첫날 자신의 몸을 마비시키고 꼼짝못하게 만든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속임수나 마술이 아니었다.
“됐습니다. 그만 돌아가도 좋아요.”
권총수가 오케이 했다.
“오늘까지는 넘어갑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한 번 더 어제와 오늘처럼 저항을 하면 그땐 죽이겠다는 경고였다.
두 사람은 곧장 차를 타고 골목을 벗어났다.
털썩!
앤드류는 자신도 모르게 승용차 문에 기대었다.
아랫도리가 후들거리고 뛰지도 않았는데 호흡이 가빠온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난 것에 대한 기쁨이다.
잠시 호흡을 다스린 앤드류는 천천히 쓰러진 동료들에게 다가가 쭈그리고 앉았다.
나무 젓가락이다.
자신도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잘 알고 있다.
일본 라면을 먹는데 필요한 도구이고 1달러에 50개가 들어있는 봉지로 팔기도 한다.
피가 굳어서일까 젓가락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맙소사!’
목 뒤까지 뚫고 나온 젓가락을 보며 앤드류는 굳어 버렸다.
아무리 날카롭게 강한 쇠꼬챙이라고 해도 이렇게 목 뒤까지 삐져 나오도록 찌를 사람은 거의 없다.
칼질은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칼로 사람을 찌를 수는 있지만 반대편까지 칼이 나오도록 하는 건 힘이 아닌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걸 오랜 갱단 생활을 하며 얻은 경험이다.
어쨌든 사망자가 발생했기에 조직에 알려야 한다.
이건 자신이 죽고 살고의 문제가 아니라 MS-13소속의 단원이라면 의무적이다.
불길하다.
보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들은 산전수전 겪은 자신을 그야말로 물건처럼 주물럭거리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