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8화: MS-13(1)
탁!
권총수는 알몸의 사내를 줄에 묶어 끌어 올리듯 간단하게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정신이 오락가락한 백인 사내는 자신의 몸이 어떻게 침대 위로 올려졌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의자에 앉은 두 여자는 백인 사내가 그냥 떠올랐고 침대 위에 눕혀진 것을 보았다.
재빨리 눈을 비비며 다시 보았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건 꿈이 아니라는 뜻이다.
두 여자는 우리가 잘못 본 것 아니지 하며 서로를 돌아보며 묻는다.
“제임스!”
권총수가 부르자 백인 사내가 더듬거렸다.
“조금 전 블루 마운틴 빌딩에서 나오셨죠?”
백인사내가 눈을 빛내는데 경계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권총수는 웃었다.
“경찰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고, 14층 15층 들어가려면 출입증이 있어야 한다는데 그것 좀 빌릴 수 없겠습니까? 똑같은 거 하나만 만들고 가져다 드릴께.”
멈칫!
그때 오민철이 들어섰다.
“아직 멀었어?”
말을 안들으면 내가 해볼까 하는 표정으로 팔 소매를 걷어 올린다.
사내는 재빨리 말했다.
자신이 지금 상당히 위험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자존심 세운다고 버티다 거덜 날 수도 있다
“상의 아래 주머니에 있습니다.”
오민철은 탈의실로 들어가 옷장을 열었다.
남자가 입고 온 정장이 걸려 있고 주머니에 손을 넣자 신용카드 크기의 검정색 카드 하나가 나왔다.
다음 날 저녁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내렸다.
두 명의 흑인 사내가 신분증 제출을 요구했고 두 사내는 검정색 카드를 보여 주었다.
“즐거운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다가서자 자색 원목으로 된 문이 좌우로 열렸다.
그르르릉!
열린 문으로 들어간 두 사내는 깜짝 놀란 표정이다.
카지노다.
라스베이거스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카지노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푸른색 치마에 흰색의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푸른색 나비넥타이를 맨 여자 딜러들, 블랙잭, 바카라, 룰렛, 트럼프 게임 등 정식 허가를 받고 하는 영업장과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 또한 어깨를 부딪칠 만큼 북적거렸고 돈을 잃고 흥분하여 소릴 지르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을 정장을 한 보안요원들이 끌고 나갔다.
안쪽으로는 술을 마실 수 있는 바가 있고 안쪽으로는 많은 슬롯머신 기계들이 있는데 역시 사람들로 넘쳐났다.
“어마어마한데.”
“원래 불법 도박장에 손님이 더 많은 법이지.”
권총수와 오민철이다.
어제 밤 제임스에게 빼앗은 카드를 복사했다.
일반 카지노가 아니다.
불법 카지노 도박장답게 따는 사람보다는 잃은 사람이 훨씬 많다.
물론 가끔은 거액을 딴 사람도 나타난다.
하지만 제임스 자신은 믿지 않는다고 했다.
불법 도박장도 얼마든지 딸 수 있다는 걸 광고하기 위한 짜고 치는 자작극이라는 것이다.
툭!
두리번거리며 객장을 살피던 오민철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쳤다.
턱으로 한곳을 가리켰는데 낯익은 사내가 블랙잭 게임에 빠져 있었다.
애런이라는 비밀경호국 직원이다.
권총수는 애런과 한 테이블 건너 있는 바카라 게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등을 지고 앉았지만 얼마든지 애런의 게임 상황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 사이 오민철은 슬롯머신기 앞으로 다가가 자리를 잡는다.
게임을 하면서도 권총수의 모든 감각은 한 테이블 건너에 있는 애런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애런은 잃고 있었다.
권총수가 자리에 앉은지 40분이 채 안됐는데 애런의 앞에 높인 고액의 칩들이 마구 쏟아져 나가고 있었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베팅이다.
특히 그가 내던지는 건 블랙 칩인데 한 개에 백 달러의 가치를 지닌다.
카지노 게임의 가장 위험한 부분이 배팅 도구가 현금이 아닌 칩이라는 것에 있다.
분명 현금을 주고 바꾼 칩인데도 게임이 집중하다 보면 큰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칩을 던지는 것이다.
지금 애런도 그러했다.
‘웬만한 건 콜(call)이군’
좀체 패를 엎지 않는다는 건 두 가지이다.
승부에 자신이 있다거나 아니면 밑천이 넉넉할 때인데 40여 분간 돌아가는 상황을 보건데 애런의 포카 실력은 아마추어에서 한 단계 정도 높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런 불법 도박장에서 돈을 따기에는 터무니없는 실력이었다.
콰앙!
느닷없는 소리에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굳이 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잃은 애런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게임 테이블을 양주먹으로 치며 일어났다.
조금 전 자기 입으로 20만 달러를 잃었다고 했다.
“완전 사기야.”
애런이 버럭 소릴 질렀다.
“어떻게 서른 번의 게임 중 단 한 번을 먹지 못하냐구. 이건 문제가 있는 거라고, 뭔가 이상해.”
“고객님, 잃는 분들은 항상 판이 이상한 법입니다.”
보안요원이 빙긋 웃으며 그만 나가달라는 듯 손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그만 진정하시고...”
빨리 나가지 않자 정장을 한 흑의 사내가 애런의 왼 소매를 잡고 데리고 나오려는데 팔꿈치가 빠르게 돌아갔다.
빠악!
애런의 팔꿈치는 소매를 잡던 흑인의 얼굴을 가격했고 피가 주르륵 흘렸다.
팔꿈치에 흑인의 코가 부서져 버린 것이다.
탁탁!
싹!
세 개의 권총이 애런을 에워쌌다.
아차하면 발포하겠다는 차가운 시선들에 애런이 흥분을 가라 앉혔다.
“치워 검둥이 새끼들아!”
버럭 소릴 지르며 몸을 돌려 걸어갔다.
뭔가 폭발할 것 같던 도박장은 애런이 나감으로 다시 열기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CIA와 FBI에서 이미 여섯 명의 경호원들에 대한 통장내역을 훑었다.
거액의 돈이 나가고 들어온 흔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렇다면 애런의 도박 자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후로도 애런은 심심찮게 도박장을 들락거렸다.
따는 날도 있지만 거의 털리는 날이 많았다.
잠깐은 몰라도 장시간의 도박에서 플레이어가 따기란 어렵다.
운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 습성을 갖고 있다고 볼 때, 그것도 불법 도박장에서 아마추어가 돈을 챙겨 나오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비밀경호국 요원들은 도박장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도박을 즐기고 좋아한다면 애런처럼 불법도박장을 이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이다.
“그냥 잡아다 족쳐 봐?”
오민철이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못할 것도 없다.
납치하여 분근착골로 두들겨 버리면 없는 말까지 만들어 낼 것이다.
권총수도 그걸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최후의 패(覇)가 되어야 한다.
여기저기 걸리는 사람마다 고문하고 위협하는 추적은, 말썽을 일으킬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배후에 있는 진짜 범인들을 더욱 깊게 숨도록 만든다.
팟!
갑자기 권총수 눈이 빛났다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승용차 한 대가 멈췄다.
문이 열리고 내린 사내는 흑인이었는데 넥타이가 없는 정장을 했다.
탁!
차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 재차 닫는다.
타악!
하지만 이번에도 제대로 닫히지 않은 듯 문을 열었는데 사내는 투덜거렸다.
“이런 개 똥차!”
콰앙!
급기야 두 손으로 문을 잡고 있는 힘을 다해 닫았다.
그리고 나서 사내는 다시 손잡이를 잡아 당겼는데 제대로 닫힌 듯 이번에는 꼼짝하지 않았다.
칵!
사내는 짜증스럽게 가래침을 뱉으며 돌아서다 말고 멈칫했다.
한 사내가 앞을 가로막자 재빨리 오른손이 허리로 돌아간다.
“아아! 걱정 마세요. 난 강도가 아니니까?”
“뭐야 그럼?”
흑인은 허리 쪽에 오른손을 올린 채 물었다.
“그 손 좀 내리시고, 할 말이 있어 기다렸는데 그러고 있으니 너무 무서워서 입이 잘 열리지 않군요.”
자신에 비해 훨씬 작은 동양인이다.
몇 번에 걸쳐 가로막은 사내의 위아래를 살피더니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듯 손을 내렸다.
동양인 사내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주위가 캄캄하긴 하지만 거리가 멀지 않아 돈 뭉치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것도 백 달러짜리다.
“우선 받으시고.”
동양인 사내는 갖고 있던 백 달러 뭉치를 흑인 사내에게 던졌다.
던진 돈이므로 받지 않을 수도 없다.
탁!
흑인 사내는 돈뭉치를 받아 다시 한 번 살폈는데 눈이 커졌다.
굳이 형광등 불빛에 비춰보지 않아도 가짜가 아닌 진짜 백 달러짜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직장에서 돈을 만지는 자리에 있다보니 지폐의 진위 가리는 데는 전문가다.
백 장이다.
일만 달러 인 것이다.
“원하는게 뭐지?”
동양인 사내는 씨익 웃었다.
“역시 형님은 빨리 통하는군요. 내가 봐서는 아주 쉬운 일인데 형님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군요.”
“말해봐!”
일만 달러면 자신의 능력 안에서 못해줄 것이 없다.
마누라를 하룻밤 빌려달라는 부탁이 아니라면 무조건 오케이 건이다.
“애런이란 사람이 칩과 바꾼 현금 영수증 하나 얻고 싶은데 안되겠습니까? 우린 IRS(국세청)도 아니고 그 사람이 근무하는 직장의 감찰기관 따위는 더욱 아닙니다.”
불법 도박장이다.
대부분이 시간이 없어 라스베이거스를 가지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드러내놓고 카지노 게임장 출입이 불편한 이들이다.
스포츠, 연예계, 고위 공직자 등 이 사회의 명사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불법 도박장을 드나든다는 것을 약점 잡아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건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들은 철저히 비밀을 보호 받는다.
그걸 알기 때문에 더욱 맘 놓고 즐기고 가는 것이다.
흑인 사내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애런 한 명?”
“그럼요. 다른 사람은 필요 없죠.”
“오케이!”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권총수는 손을 들어 보이며 돌아서 갔다.
앤드류는 손에 있는 달러 뭉치를 다시 보았는데 절대 위폐가 아니었다.
앤드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런 걸 두고 횡재라고 한다.
앤드류는 닫히지 않던 자동차 문을 바라보았다.
문을 수리하는데 천 달러가 있어야 하는데 마침내 앓던 이가 빠졌다.
이제 더 이상 내리면서 문과 씨름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오민철이 핸들을 잡았는데 권총수는 조수석에 앉아 유리를 내리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맥보란에게 애런에 대한 은행 계좌를 좀 더 분명하게 들여다 봐달라고 부탁 해볼까? 어딘가 놓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안돼!”
권총수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우리가 재차 계좌 수색을 의뢰하면 CIA가 어떻게 생각을 하겠어. 뭔가 있다고 보고 시끄럽게 훑겠지. 그걸 보고 가만 있을 FBI가 아니야. 두 집단이 들쑤셔 버리면 비밀경호국에 근무하는 애런이 모를 것 같아.”
“더 숨어 버린다?”
“당연하지. 우리가 도움을 청할 것이 있고 힘들더라도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CIA와 FBI내부에 범인들과 소통하는 첩자가 있지 말란 법 없잖아. 어쩌면 우리의 존재도 이미 범인들쪽에 알려졌을지 모를 일이지.”
오민철이 흠칫했다.
그렇다면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총기 소류가 허가된 나라이고 강력한 전쟁을 치러도 될 만큼의 중화기도 거래된다.
워낙 자신감 넘치는 용병의 삶을 살아와서 인지 누군가 우릴 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오민철은 권총수를 바라본다.
확실히 자신보다 위에 있다.
경계가 생활화 되지 않으면 당한다는 권총수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연재]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 43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