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5화: 검은 향기(1)
눈앞의 사내는 절대 평범하지 않다.
그는 불가사의하다.
이번일에 권총수를 적극 추천한 것도 그러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필시 뭔가 있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맥보란은 곧바로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맥입니다. 클레어양이 사용하는 화장품 종류를 알아야 합니다. 빠른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린 맥보란이 말했다.
“랭글리입니다. 아마 오늘 안으로 연락이 올 것입니다.”
“맥!”
“말해요 캡틴!”
“냄새가 다른 또 하나의 화장품 냄새가 있습니다.”
“캡틴.”
“객실에서 두 가지 각기 다른 화장품 냄새가 났다는 건 두 명이 있었다는 뜻이죠.”
권총수는 단정해버렸다.
그건 자신감이고 금강신룡후에 대한 확신이었다.
“백악관에서 오늘 내로 답이 오지 않으면 내일 오전까지 미국에서 브랜드 있는 여자 화장품 열 가지를 준비 해주시죠.”
“그러죠!”
맥보란의 눈이 빛난다.
권총수가 뭔가 흔적을 낚았음이 틀림없다.
금방 연락을 주겠다는 백악관으로부터의 대답이 없다.
맥보란은 두 번이나 랭글리에 전화를 걸었으나 백악관에서 답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다행히 이곳 백화점에 미국의 여자화장품 톱 브랜드 열 개회사의 제품이 있어 맥보란은 일단 구입을 했다.
권총수는 어제와 달랐다.
운기조식으로 완전하게 피로가 풀린 듯 생기가 넘쳤다.
맥보란과 윌리엄이 들어섰는데 커다란 캐리어 하나를 끌고 들어왔다.
“화장품입니다. 모두 기본으로만 준비했죠.”
권총수는 윌리엄이 내민 캐리어를 열었다.
안에는 미국 화장품 열 개 회사 로고가 찍힌 화장품들이 네모난 상자에 들어 있었다.
글로시에(Glossier), 키엘(Kiehl’s)등 몇 번 들어봤던 브랜드를 살핀 권총수는 기초화장품이 담긴 열 개의 박스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일제히 마개를 열어 주세요. 그리고 여기 있는 고무판으로 덮으면 됩니다.”
오민철까지 나서서 화장품을 브랜드별로 놓고 마개를 열었다.
그리고 재빨리 준비해 놓은 고무판으로 향기가 빠져 나가지 않도록 덮었다.
권총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화악!
맨 오른쪽 고무판부터 열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흐읍!
한 번 쉬고 곧장 고무판을 덮어 버렸다.
흡읍읍읍!
냄새를 삼키듯 연거푸 빨아들인다.
후우!
길게 토해낸 다음 잠시 30여초 휴식을 취한 뒤 2번째 고무판 뚜껑을 열고 앞과 같이 냄새를 맡았다.
세 사람은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얼핏 마약견이 마약을 탐지하기 위해 여행자의 가방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놀라는 건 인간의 코로 다른 것도 아닌 화장품 냄새를 구별한다는 것이었다.
술이나 담배를 구별하는 사람들은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조향사라고 하여 향을 분별하고 여러 향료를 섞어 새로운 향을 만들거나 덧입히는 사람도 있고, 검미사라고 하여 음식이나 술 따위의 맛을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특별한 훈련을 하고 일정기간 교육을 받아 탄생한다.
회사마다 화장품의 향기도 다르다.
그러나 기초화장품, 즉 스킨, 로션, 크림 등은 큰 향기의 차이가 없고 섞어 버리면 더욱 애매해진다.
탁!
마지막 10번째 화장품까지 냄새를 맡는데 걸린 시간은 약 10분 정도 소요되었다.
권총수는 한참 동안 고무판으로 다시 덮인 화장품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3번이라고 쓰인 고무판을 가리켰다.
“이것이 어느 회사 것이죠?”
“에스티 로더(Estee Lauder)죠.”
맥보란이 대답했다.
“객실에서 났던 향기와 일치합니다.”
그때 맥보란이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 통화를 하는 듯 하더니 전화를 끊고 말했다.
“백악관에서 연락이 왔다는군요. 맞습니다. 클레어 양은 에스티 로더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건 어떤 브랜드요?”
10번이라고 쓰인 고무판을 가리켰다.
“맥(Mac)이라는 회사 것입니다.”
“소비자들 성향은 어떻습니까?”
맥보란은 흘긋 윌리엄을 보더니 말했다.
“그냥 화장품이죠. 글쎄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그때 윌리엄이 한 마디 거들었다.
“여성을 타겟으로 출시된 상품이나 남성 소비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브랜드이기도 하죠. 냄새가 진하지 않고 부드럽다는 평입니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개의 브랜드를 더 질문했고 윌리엄은 충실하게 대답했다.
맥보란과 윌리엄이 떠났다.
객실에는 권총수와 오민철 만이 남았다.
권총수는 금강신룡후를 펼쳐 두 가지의 냄새를 맡았다.
하나는 놀랍게도 클레어가 사용하는 화장품이 맞았다.
그러나 클레어가 사용하는 것과 다른 또 하나의 냄새가 있다.
그것 역시 화장품이었고 인기 있는 브랜드다.
클레어 말고 누군가 맥(Mac)이라는 화장품을 사용하는 사람이 들어온 건 분명하다.
클레어는 촬영 내내 혼자서 객실을 사용했다.
여자 스탭도 있었으나 대통령의 딸이라는 것이 그녀를 홀로 가둔 것이다.
아무튼 다른 화장품 냄새가 배어있을 이유나 원인이 전혀 없다면 어떻게 된 일인가.
딩동!
핸드폰이 울리고 메일 한 통이 왔다.
비밀 경호국에 대한 자료가 메일로 온 것이다.
난색을 표했으나 반드시 필요하다고 우겼는데 이제 보내준 것이다.
“우선 식사부터 합시다!”
권총수가 앞장섰고 오민철이 뒤를 따른다.
* * *
백악관 비밀경호요원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미국 시민권이 있어야 한다.
이어 신원조사가 들어가며 통과된 사람에 한해 거짓말탐지기 시험이 있는데 의외로 탈락자가 많이 발생한다.
질문 내용은 전혀 거창하지 않다.
지극이 일상적인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면 운전하면서 교통 위반 딱지를 몇 번 떼었냐, 생일 파티에 초대하는 친구들이 보통 몇 명 정도냐, 또한 초대하면 참석률은 몇 퍼센트이냐,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은 얼마주고 샀느냐 등등이다.
이때 대부분의 응시생들은 거짓말을 한다.
즉 준법 정신을 증명하기 위해 딱지 수를 줄이고, 폭넓은 인간 관계를 은근슬쩍 자랑하기 위해 백퍼센트라고 대답하고, 신발 가격은 절약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낮추는 것이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의 백퍼센트 탈락이다.
응시나이는 21세에서 37세 사이에 지원이 가능하다.
운전면허증과, 양쪽 시력 2.0, 4년제 대학 졸업장, 평균학점 3.0 이상을 필요로 한다.
지원 자격과 서류면접을 통과하면 10주짜리 '범죄수사 훈련프로그램'(CITP) 그리고 17주간의 '특수요원 트레이닝 코스'(SATC) 과정을 밟는다.
27주간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일정한 성적을 기록하면 백악관 비밀요원에 선발될 수 있다.
걔중에는 특수부대 출신들도 적지 않게 끼어있다.
백악관 비밀경호국에는 3,200명의 비밀요원(SS)들과 1,300명의 경비부 경찰(USSSUD)과 2,000여명의 기술직 직원들이 있다.
물론 이들이 받는 보수는 모두 다르다.
처음 신입으로 들어왔을 경우 경력과 선발과정 성적에 따라 기준 연봉 65,000달러 (7,800여만원)에서 82,000달러 (9,840여 만원) 사이를 받는다.
또한 업무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추가 근무수당으로 전체 연봉의 25%를 더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7년차 이상 되는 비밀요원들은 13만달러 (1억5,600만원), 팀장급은 19만달러 (2억2,800만원) 정도를 받는다.
비밀경호국 요원들은 근무 패턴은 정해져 있다.
처음 2주 동안은 낮 근무를 하게 된다.
그 다음 2주 동안은 철야 근무다.
그리고 또 다시 2주는 밤 근무를 한다.
왔다갔다하는 이런 형태의 6주간 밤낮이 바뀌는 근무 일정이 끝나면 2주 동안 훈련을 받는다.
이 훈련은 연차와 직급에 상관없이 실전 대비를 위해 매번 받게 되는 근무 형태 중 한 가지이다.
훈련이 끝나면 다시 교대 근무가 시작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런 식의 8주짜리 근무교대와 훈련이 교차로 진행되면서 쉬지 않고 출장과 파견을 다녀야 한다.
이런 무질서한 근무형태는 많은 가족들을 파경으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미국의 공직 집단중 가장 이혼율이 높은 곳이 백악관 비밀 경호국이다.
모든 대통령에게는 암호명이 있다.
대통령이라고 호칭하지 않는다.
여비서와 부적절한 관계로 아내 힐러리에게 피가 나도록 두들겨 맞았다는 클린턴 대통령은 암호명이 '이글'(eagle) 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등장하면 비밀요원들은 ‘이글이 떴다!’고 속삭인다.
참고로 오바마 대통령 암호명은 ‘레네게이드(renegade)’다.
영부인 미쉘 오바마는 ‘르네상스(renaissance)’, 오바마의 두 딸들은 ‘레이디언스’와 ‘로즈버드’로 불렸다.
모든 작전에서는 암호명과 숫자로만 통한다.
암호가 수시로 바뀌어 아무리 도청을 해도 동선 파악이 어렵다.
요원들 역시도 앞선 암호와 헷갈리지 않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2001년부터 올해 2008년 12월까지 총 58개의 나라들을 방문했다.
이때 백악관 비밀경호국은 모두 34,065번의 출장과 해외방문을 지원했다.
이 수치는 18명의 미국 최고위 간부(부통령, 국회의장 등)들의 경호와 해외뿐만 아니라 미국 영토 내 방문들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3만여 번이 넘는 방문이 이뤄질 동안, 당연히 수백 명의 비밀요원들도 함께 움직였다.
항상 먼저 도착하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서 ‘먼저 도착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찍 도착한다고 하여 1시간 아니면 2시간 일찍 정도가 아니다.
비밀경호국 요원들은 대통령이 방문할 장소에 평균 3개월 전부터 사전방문이 이뤄진다.
방문지역 법조계와 치안담당을 만나 협조를 구하고 대통령 이동거리 10분 안에 응급실이 있는 병원 유무를 확인하며 3개월간 비행기 이착륙부터 주변 교통을 모두 조사하게 된다.
해외 방문이 시작되면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은 똑같이 생긴 백업 위장용 에어포스원이 같이 날아간다.
정밀한 기기의 도움을 받아 살펴도 진위 구별은 불가능하다.
신문과 영화에서는 에어포스원 한 대가 날아가는 것으로 보이나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대여섯 대의 항공기가 같이 날아간다.
이들 중에는 대통령의 헬기와 리무진, 각종 차량, 통신장비, 그리고 수백 명에서 천 명에 가까운 비밀요원들과 스태프 멤버들을 실어 나른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난 오민철이 고개를 돌렸다.
권총수는 야자나무 아래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곧장 이곳 해변으로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었다.
권총수는 식사를 하면서 보내온 메일을 읽었다.
내용을 모르는 오민철은 궁금했고 뭘 그렇게 열심히 보느냐고 하자 읽어 보라는 듯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오민철이 권총수에게 핸드폰을 돌려 주었다.
궁금한 것이 많다.
왜 갑작스럽게 비밀경호국에 관한 내용을 알려는 걸까.
“맥보란이 보내 준거야?”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접근이 허용되지 않은 사람은 안 된다고 하기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지.”
“그들도 경호원들에 대한 조사는 충분히 했을 거 아냐.”
“그렇겠지.”
그런데 이건 왜 필요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권총수는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 비행기로 워싱턴 갈거야. 표 두 장 끊어놔.”
“미국 간다고?”
“수사라는 것이 일단 주변부터 훑잖아. 그러자면 워싱턴으로 가야지.”
그러면서 권총수는 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