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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34화 (434/651)

제434화: 제3의 눈동자(3)

썬플라자 호텔에 권총수가 나타났다.

권총수는 프론트로 다가가 정장 차림으로 서 있는 여직원에게 CIA서 제공해준 신분증을 내밀었다.

여직원은 놀라는 기색 없이 카드 열쇠 하나를 건넸다.

카드를 받아든 권총수와 오민철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27층에서 내렸다.

호텔 복도는 조용했다.

투숙객의 대부분이 관광객이니 벌건 대낮에 객실에서 시간 보낼리는 없다.

‘2777호’

실종되기 직전 클레어가 묵었던 객실이다.

촬영을 마치고 팀원들과 지하 식당에서 식사를 끝내고 곧장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침에 나오지 않아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사라지고 없었다.

2777호 문에는 호텔 관계자를 제외한 누구도 출입할 수 없다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경찰이 수사하느니, 여기에 머물던 여자가 실종되었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객실은 5성급 호텔 답게 넓고 깨끗했다.

소지품은 이미 CIA에서 수거해 갔다고 했다.

즉 지금 남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중 호텔 직원에게 들었는데 미국 측으로부터 별도의 얘기가 있기전까지는 일체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

방안을 살폈으나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민철은 뭔가 찾아보겠다는 듯 눈에 힘을 주고 수색을 했지만 소득이 없는지 투덜거렸다.

권총수 실내를 대충 살피더니 문을 향해 걸어갔다.

“어디가?”

“아무것도 없는 객실에서 뭐해.”

딸칵!

권총수는 밖으로 나갔고 오민철도 재빨리 뒤를 따라갔다.

두 번째로 들린 곳은 지하 1층에 있는 식당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식당은 한가했다.

종업원들이 탁자를 닦고 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뚱뚱한 체구의 사내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권총수와 오민철이 들어오자 상대에게 나중에 연락하겠다면서 끊고서 말했다.

“지금은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손을 뻗어 청소하고 있는 종업원들을 가리켰다.

저녁 식사시간을 대비해 청소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배인 되십니까?”

권총수가 물었다.

“맞습니다. 내가 지배인 저스틴입니다.”

“27층 사건 때문에 왔습니다.”

그러면서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저스틴이 권총수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저쪽으로 앉으시죠.”

“아닙니다. 간단히 몇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클레어양이 식사를 마치고 올라갈 때가 몇시쯤이었죠.”

“우리 식당의 저녁 시간은 6시부터 8시까지입니다. 보통 손님들은 마감 시간 20분 전까지는 식사를 마치시죠. 그때도 CNN스텝들이 모두 떠나고 20여분 정도 지나 청소를 시작했죠.”

“그럼 7시 40분에 식사를 끝내고 여길 나갔다는 것이군요?”

“글쎄요. 떠나고 20여분 지나 청소를 한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7시 40분?”

권총수는 재차 확인하며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8시에 끝나므로 20분전이면 7시 40분이 맞다.

그런데 저스틴은 20분을 강조할 뿐 7시 40분이라는 말에 선뜻 호응하지 않았다.

“저스틴! 저녁식사 시간이 6시부터 8시까지라고 했죠?”

“물론입니다.”

“지금 클레어양이 나가고 20분 정도 지나 청소를 했다는건 8시를 의미합니까?”

“그렇게 봐야겠죠?”

“그날 식당 손님이 많았습니까?”

“많았죠.”

“이쪽을 좀 봐주시죠.”

권총수는 입구 오른쪽에 세워진 안내판을 가리켰다.

“뭐라고 쓰여있죠. 내가 읽어보죠. 저녁 식사시간은 6시부터 8시다. 식사를 하실 분은 7시40분까지 도착해야 가능하다고 써 놨어요?”

저스틴이 놀란 표정을 했고 권총수가 말을 이었다.

“입장 시간은 있지만 언제까지 식사를 끝내고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퇴장 시간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손님에 따라 식사습관이 느려 어쩌면 9시를 넘겨서까지 식사를 할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대답해 보시죠?”

“그렇다고 봐야죠.”

“그런데 클레어양이 식사를 끝내고 나간 지 20여분 정도 지나 청소를 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클레어 양이 나간 뒤 20분이 8시일수도 있지만 9시일수도 있다는 의미 아닐까요?”

“아무튼 20여분 정도 지나 청소를 한것 만큼은 사실입니다.”

“앞서 20분 후는 8시를 의미한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렇습니다.”

“20분 전인 7시 40분에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면 몇 시에 들어와야 가능할까요?”

파상적인 질문에 지배인 저스틴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당황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보죠.”

권총수의 질문은 집요했다.

저스틴은 갈수록 더듬거리며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직원들까지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두 사람은 호텔 밖으로 나왔다.

“마치 범인인 것처럼 사정없이 몰아붙여놓고 아니라니?”

“저스틴이란 지배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번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어떤 거짓말?”

“CIA에서 건네준 호텔 관계서류 안봤어?”

“대충은 봤지?”

“여기 바하마는 노는 사람이 많아.”

권총수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하마의 실업률은 30퍼센트를 넘는다.

실업률이 높다는 건 일자리가 적다는 뜻이다.

실업률이 높다보니 소비할 돈이 없으므로 일반 자영업자들의 장사 역시 잘 될 리 없다.

그런데 호텔에서의 여러 상행위(식당, 기념품 판매점, 다이빙 장비 임대 등등)시간을 늘려 버리면 거리의 상가는 더욱 위축된다.

결국 바하마 정부에서는 자영업자들을 위해 호텔의 영업시간을 정해주었다.

커피숍을 비롯해 식당, 기념품 판매장 모두가 정해진 시간만 영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호텔에 비싼 임대료를 주고 들어온 임차인들이다.

당연히 당국의 눈을 피해 영업시간은 들쭉날쭉 고무줄이다.

“이제 알겠군. 식당도 그날 정부의 지침을 위반했군. 그래서 지배인이 그렇게 버벅된 것이고?”

“거짓말은 아무리 시나리오를 잘 짜도 허점을 드러내기 마련이지. 내가 꼬치꼬치 묻자 저스틴은 준비한 대응 시나리오를 벗어 나버렸어. 그러다 보니 말이 자꾸 꼬인 거야.”

“결론은 영업시간 위반 말고는 어떤 혐의점도 없다는 거군?”

“내일 다시 한 번 호텔을 가봐야겠어.”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자신들이 묵을 애틀란티스 호텔을 향해 갔다.

다음 날 권총수는 다시 썬플라자 호텔에 나타났다.

오민철은 방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대기했고 객실 문은 닫혀 있다.

권총수는 객실 중앙에서 결가부좌했다.

서서히 내공을 끌어 올려 후각에 집중했다.

눈에 보이는 단서가 없다면 안보이는 단서를 찾는다.

냄새를 찾는 것이다.

누군가 왔다 가면 흔적이 남는다.

냄새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지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는 여러 날을 머무른다.

개의 경우 일주일에서 보름이 지난 냄새도 맡는다

그 보다 후각이 뛰어난 늑대나 호랑이, 특히 곰 같은 동물은 한 달 이상이 지나도 누가 왔다갔는지 냄새로 알아낸다.

물론 냄새의 종류에 따라 시간이 길고 짧아지겠지만 클레어가 사라진지 오늘로 43일이 되었다.

일반적이라면 어떤 냄새도 남아 있을 수 없는 시간이다.

시간은 흐르고 있다.

권총수는 꼼짝하지 않았으며 가끔씩 코가 꿈틀거릴 뿐이었다.

권총수는 집중해서 소림의 추적술 금강신룡후(金剛神龍嗅)를 펼쳤다.

추적술이 극성에 오르면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완전히 씻어가버린 냄새도 맡을 수가 있다.

이걸 이렇게 사용할 줄은 몰랐다. 허나, 흔적을 찾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성과가 없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포기하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객실 바깥에서 기다리던 오민철이 핸드폰 시계를 보았다.

어느덧 한 시간 가까이 지나고 있었다.

평소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을 보면 만만치 않는 모양이었다.

스윽!

문 열리는 솔가 들리고 권총수가 걸어나왔다.

“총수야!”

권총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왜 그래?”

한 번도 누군가와 치열하게 싸우지 않고 이토록 땀을 많이 흘리면서 피곤해 보이긴 처음이었기에 오민철은 눈을 크게 떴다.

전투기 폭격을 받았다거나 헬기 공격이 아니고서는 누군가를 상대로 몸이 저 지경이 되도록 고전하지 않았다.

“조금 피곤하네.”

싱긋 웃고 마는 성격이 가만 대답하는 걸 보니 지친 모양이었다.

‘진짜 무서운 건 내공 대결이지. 패자는 반드시 죽거나 아니면 반신불수가 되지’

무사에게 내공을 이용한 싸움보다 더 잔인한 결과를 갖고 오는 건 없다고 했다.

물먹은 솜처럼 늘어진 권총수의 모습은, 냄새를 맡기 위해 내공대결을 하듯 자신의 모든 진력을 소모했다는 의미였다.

“일단 바람부터 쐬이자.”

오민철은 재빨리 권총수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밖으로 내려왔다.

오민철은 커피숍으로 데려가 자리를 잡은 뒤 시원한 망고쥬스 두 잔을 시켰다.

권총수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종업원이 쥬스 두 잔을 놓고 돌아간다.

권총수는 보자 말자 시원하게 마시고 트림을 한다.

빙긋 웃던 오민철이 자기 앞에 놓인 망고 쥬스를 권총수에게 밀었다.

“형은 왜?”

“너 마셔!”

권총수는 별말 없이 오민철이 밀어 놓은 쥬스잔을 쥐었다.

쭈욱!

권총수는 오민철의 것을 절반쯤 마시고 잔을 내린다.

“어때, 차가운 것이 들어가니까 조금 살 것 같지?”

정말 별것 아니다.

망고 쥬스 한 잔이지만 자신을 위해 양보하고 챙긴 오민철이다.

표현이 세련되지 못해서 그렇지 그 안에 담긴 깊은 정은 어느누구보다 따뜻하다.

지잉!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권총수는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 보더니 눈을 빛낸다.

“맥 부장이.”

권총수는 전화기를 뺨에 댔다.

“어딥니까?”

맥보란이 먼저 물어왔다.

“사고 호텔 커피숍입니다.”

“다행이군요. 저도 지금 막 도착했는데 곧 가겠습니다.”

“여길? 바하마에 왔단 말입니까?”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오민철을 향해 맥보란이 여기에 왔다고 말해 주었다.

맥보란은 군사전략의 전문가이다.

CIA 요원이면서 어느 야전 사령관 못지않는 전술 전략에 해박하고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특히 중동같은 비 정규전이 난무하는 곳에서 그의 작전과 지휘는 무척 빛난다.

그런 그가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사건이 더욱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이다.

“저기 오는데!”

맥보란이 윌리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섰다.

맥보란은 곧바로 이쪽을 알아보고 다가왔는데 미소를 짓는다.

“어제 도착했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오민철이 일어나 권총수와 나란히 앉으며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피곤해 보입니다.”

맥보란은 권총수를 보며 눈을 빛냈다.

거의 피곤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볼 수도 없는 권총수였다.

“여긴 어떻게 왔습니까?”

오민철이 물었다.

“막막한가 봅니다. 캡틴을 떠나지 말고 근처에 머물며 지원하라는 상부 지시입니다. 일이 해결될 때까지.”

“카이로는 비운단 말입니까?”

“그래야 겠죠.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백악관 공기는 우울하다 못해 완전한 침묵입니다.”

권총수는 남은 쥬스를 마셨다.

그때 종업원이 커피 두 잔을 가져와 놓고 갔다.

“민철은?”

오민철 앞에는 아무 잔도 없고 권총수에게 두 개의 잔이 있는것에 맥보란이 묻는다.

“난 괜찮습니다.”

오민철은 히죽 웃었다.

맥보란은 커피잔을 들어 마셨다.

잔을 내린 맥보란을 향해 권총수가 질문했다.

“클레어 양이 어떤 화장품을 사용하는지 아십니까?”

맥보란이 멈칫했다.

전혀 예상못한 질문이라는 듯 권총수를 빤히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그건, 왜 그러십니까? 사건해결에 필요하다면 당장 알아 보겠습니다.”

“알아봐주시죠.”

권총수가 망설임 없이 알아봐달라고 하자 맥보란의 안색이 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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