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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29화 (429/651)

제429화: 절대권력(2)

지장천은 한가하게 커피 따위 마시기 위해 오지 않았지만 예의상 커피라고 말해 주었다.

권총수는 카운터로 다가가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번호표를 받아 돌아왔다.

“지상식 상무 아버님 되신다구요?”

지장천은 날카로운 눈으로 권총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르르!

좌우 눈가주름이 펄럭거리듯 떨린다.

분노를 참는 것이다.

“어린 아이도 아닌데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잔뜩 겁을 먹고 있더군요.”

“그럴 겁니다. 최선이 징역 20년인데 지금 서른여섯이니 들어가면 쉰여섯에 나오는군요. 물론 중간에 모범수가 되어 감형이 된다면 쉰 이전에도 나올 수 있을테고.”

“원하는 게 뭐요?”

“상무님께서 말하지 않던가요? 권악수의 부탁을 받고 아들을 시켜 내 부하직원 두 사람을 죽였잖습니까? 자수를 하면 분명히 참작이 될 것입니다.”

지이이이!

번호표에 불이 깜빡 거린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두 잔을 가지고 왔다.

쓰흡!

뜨거운 커피를 소리내어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열었다.

“그게 내가 원하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경찰을 찾아가 자수하는 것, 어쩌면 병원 환자복을 입고 찾아갔다는 내용이 조서에 실리면 조금이라도 재판부의 동정을 더 얻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끼이익!

그때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체구의 정장 사내 두 명이 들어섰다.

“아르바이트? 주인?”

두 사내 중 한 명이 컵을 닦고 있는 여자를 향해 묻는다.

“주인인데 왜 그러시죠?”

“저기 주방 안으로 들어가 있어.”

“뭐라구요?”

“들어가 있으라면 들어가 있을 일이지.”

뻐억!

사내는 바닥에 있는 쓰레기통을 던졌다.

여자는 피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을 맞았지만 재빨리 등을 돌리는 바람에 다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내가 어느새 뽑아 들고 있는 날선 회칼을 보고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주방으로 뛰어들어갔다.

히죽!

사내는 주방 쪽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등을 돌려 걸어왔다.

두 사내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섰고 지장천이 입을 열어 말했다.

“보안기업을 운영한다고 들었소? 특수부대 출신자들을 중심으로 중동과 아프리카 쪽에 사람들을 보내다보니 많은 자신감이 생겼나 봅니다?”

지장천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목소리도 처음과 달리 힘이 넘치는 것이 두 사내의 등장으로 용기를 얻은 듯 보인다.

“우리는 전쟁 같은 것 잘 모릅니다. 그냥 누군가 방해하면 바로 치워버리죠. 웬만해서는 두려움을 모르는 내 아들에게 어떤 구라를 쳤기에 매우 겁을 먹었더군요.”

후루룩!

지장천은 뜨거운 커피를 소리내어 마셨다.

탁!

잔을 놓더니 권총수를 향해 웃는다.

“젊은 사람이 너무 나대도 못쓰는데 데리고 가서 묻어 버려!”

여자 주인에게 쓰레기통을 던졌던 오른쪽 사내가 들고 있던 회칼을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일어나시죠. 사장님!”

권총수는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이어 고개를 돌려 두 사내를 바라보았다.

피식!

실소를 짓는 권총수를 보며 왼쪽 사내가 역시 들고 있는 회칼을 찌를 듯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한 방 맞고 가시겠습니까? 그냥 가시겠습니까?”

콱!

갑자기 권총수가 오른손으로 칼날을 거머쥐었다.

사내는 본능적으로 칼을 잡아 당겼지만 꼼짝하지 않는다.

“미친 자식!”

사내는 칼을 쥐고 있는 권총수의 손을 보았다.

지금쯤 칼날에 베어 피가 흘러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피는 없다.

두 사람은 아주 잠깐 칼을 잡고 팽팽히 맞섰다.

휙!

돌연 권총수가 칼을 잡아 당겼다.

누구라도 칼 자루를 잡고 있으면 놓지 않는다.

사내 역시 그러했다.

칼날을 쥐고 있는 사람의 손이 멀쩡할 리 절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피가 흐르고 있지만 워낙 꽉 쥐다보니 손바닥 밖으로 아직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사내는 휘청하며 끌려왔으며 여전히 칼 자루를 놓지 않았다.

빠악!

권총수의 왼 손바닥이 면전까지 끌려온 사내의 얼굴을 찍었다.

소림의 반야수(般若手)였다.

손바닥이지만 어느 돌덩이보다 강하다.

사내의 얼굴이 부서지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푸우욱!

권총수는 사내가 놓친 칼을 바꿔 잡더니 쓰러진 동료를 향해 고개를 돌린 오른쪽 사내의 복부에 박았다.

뻑!

워낙 빨랐기 때문에 오른쪽 사내는 피하고 방어할 틈이 없었다.

권총수는 사내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마.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부푹!

한 번 더 강하게 박더니 칼을 놓고 물러났다.

그때 나가떨어진 사내가 비틀 몸을 일으켰는데 얼굴이 두부처럼 으깨어져 버렸다.

권총수는 사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내가 살인을 해도 경찰은 절대 잡지 못합니다. 마음만 먹었으면 아드님도 사장님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얘기죠.”

지장천은 커피잔을 쥔 권총수의 오른손을 보았다.

회칼보다 더 예리한 칼은 없다.

그런데 손바닥에는 긁힌 상처 하나 없다.

“더 이상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권총수는 일어나 카페를 걸어 나갔다.

지장천은 입을 꾹 다물었다.

회칼을 거머쥐고도 상처 하나 입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꼼짝 않고 앉아있던 지장천이 핸드폰을 들었다.

한참을 망설이더니 번호 한 개를 눌렀다

“지 사장 아니오?”

커피숍이 조용하여 권악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무슨 소리요. 갑자기 죄송하다뇨?”

탁!

지장천은 전화를 끊었다.

이어 권악수의 전화를 받지 않기 위해 전원을 꺼버렸다.

갑자기 뉴스 속보가 떴다.

6개월 전 르네상스 테크노놀로지 소속 펀드매니저 조나단 차, 한국이름 차석준과 조셉을 살해한 범인이 잡혔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순식간에 그 사건에 관한 기사로 도배가 되었다.

보고를 받은 권악수도 노트북을 켜고 속보로 올라온 뉴스를 읽고 있었다.

범인은 올해 서른여섯인 지상식이라고 했다.

속보인 탓에 아직 자세한 소식은 더 이상 보도되지 않고 있었지만 권악수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자수’

결코 자수할 사람들이 아니다.

설혹 경찰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자수를 한다고 해도 사건과는 무관한 엉뚱한 대타를 보낸다.

권악수는 재빨리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권회장님 이시군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범인이 자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지금 막 소식을 듣고 청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알아보고 전화 드리죠.”

상대는 서울 경찰청장이다.

“빨리 좀 알아봐요.”

권악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좋지 않다.

그렇잖아도 며칠 전부터 죽은 권철악이 자꾸 꿈에 나타난다.

권악수는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초조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긴장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두 명의 백인이 입국장 앞에 서 있었다.

둘 모두 정장 차림이었는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전광판에 나타나는 비행기 도착 상황을 수시로 살핀다.

굳게 닫혀 있던 입국장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오는 비행기인데 들어오는 사람들은 거의가 한국인이었다.

여기저기서 엄마 아빠를 부르는 걸 보면 유학생들이 많아 보였는데 들어오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던 두 백인 사내가 눈을 빛냈다.

선글라스를 낀 백인 한 명이 서류가방을 들고 들어섰다.

“부장님!”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선글라스 사내가 다가오는 백인들을 보며 웃는다.

서로 악수를 주고받으며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여전들 하군.”

“부장님도 건강해 보입니다.”

세 사람은 곧바로 청사를 빠져나갔고 잠시 후 차량 한 대가 공항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검정색 링컨 컨티넨탈이었다.

선글라스를 낀 백인 사내는 뒷좌석에 앉아 서류 하나를 검토하고 있었다.

두 사내 중 한 명은 핸들을 잡았고 다른 한 명은 조수석에 앉았는데 뒷좌석에 앉아 서류를 살피고 있는 선글라스 사내를 자꾸 흘긋거렸다.

서류는 십여 장 정도의 분량밖에 되지 않았지만 뒷좌석의 사내는 무려 세 번을 반복해 읽었다.

선글라스 사내는 담배를 꺼내 물더니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뒷문유리를 조금 내렸다.

“정확히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뭔가?”

“굳이 말한다면 해지펀드가 현재 천왕중공업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입니다.”

“자네들이 보기엔 어떤가? 캡틴이 천왕그룹을 노리고 있다고 보나?”

“아직 단정할 만한 분명한 액션은 없습니다. 우린 시세 차익을 노리는 단순 M&A로 봅니다.”

선글라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빠르게 사라졌다.

회장실을 들어선 원출도의 눈이 커졌다.

난장판이다.

제대로 된 물건은 하나도 볼 수가 없다.

창업주 권철악 회장의 사진을 제외한 모든 물건들이 깨지고 버려졌다.

한 차례 폭격을 맞은 듯 산산이 부서지고 깨진 사무실에 권악수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회장님!”

원출도는 크게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신은 알았소?”

“뭘 말입니까?”

“레블론 뒤에 르네상스 테크놀로지가 있고.”

“제가 말씀 드렸잖습니까?”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뒤에 그놈이 있다는 것 말이오?”

“그놈?”

“내 입에서 그놈이라고 나올 만한 새끼가 이 세상에서 권총수 말고 또 있습니까?”

“회장님 테크놀로지 뒤에 권총수가 있단 말입니까?”

원출도 역시 놀랐는데 처음 듣는 말이다.

그때 회장실 문이 열리고 법무팀장 장웅철이 들어섰다.

그 역시 아수라장이 되어 있는 사무실을 보며 깜짝 놀란다.

“또 뭐요?”

“검찰 출두날짜가 정해졌습니다.”

“언제요?”

“이달 26일입니다.”

그러면서 장웅철은 항상 벽에 걸려 있던 달력을 보았는데 그 자리에 없다.

달력 역시 사무실 폭풍을 피하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입니다.”

원출도가 무슨 말이냐는 듯 장웅철을 바라보았다.

장웅철은 그럴 일이 있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원이사.”

“예회장님!”

“권총수에게 연락해서 만나자고 해요. 오늘 당장!”

“알겠습니다.”

원출도는 조심스럽게 사무실을 나온 뒤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때 비서 임인삼이 그에게 다가왔다.

“어떡하죠. 치울까요?”

회장실을 두고 하는 얘기였다.

“무슨 일인가? 검찰출두라니?”

“모르셨습니까?”

요즘 원출도는 정신없이 바쁘다.

천왕중공업에 이어 천왕 SDI도 미국계 헤지펀드로부터 M&A를 노리는 공개매수가 이뤄지고 있었다.

아직 상대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

경영권을 노리는 것인지 시세차익을 노린 M&A인지 알 수 없지만 맞불작전을 펼쳐야 하기에 모든 정보와 자금을 투입해 주식매수에 나서고 있느라 이쪽 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권총수 블랙잭 사장이 중공업 인수합병의 최종 주인이라고 합니다.”

“그게 정말인가?”

“블랙잭으로부터 아직 어떤 대답도 없기 때문에 백 프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정황이 그렇습니다.”

“정황?”

임인삼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회장님께서 차석준과 조셉 살인사건에 깊이 관련된 모양입니다.”

원출도는 놀라지 않았다.

그 두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서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주총을 하루 앞두고 레블론을 대표하면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펀드매니저들인 그들을 죽일 사람은 한 명뿐이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온 것은 경찰이 못 잡아서가 아니라 안 잡았을 뿐이다.

“칼을 잡은 범인이 자수해 버린 모양입니다.”

범인이 자수해버렸다면 빼도박도 못한다.

“으음!”

원출도가 신음을 흘렸다.

‘도무지’

정신이 없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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