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8화: 절대권력(1)
전략과 전술은 꼭 전장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삶의 조그만 부분도 알고 보면 그 안에 나름대로 전략과 전술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누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전술을 세우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컥!
빠직!
오민철은 쉽게 등을 내주지 않았다.
등을 내주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장소가 넓기 때문이었고 워낙 스피드가 좋다 보니 사내들은 인원은 많지만 쫓아다니기에 급급했다.
사내들의 주 무대인 좁은 골목길이나 빈집들이 몰려 있는 철거 현장과 여긴 전혀 다르다.
허허벌판이다.
여기저기 사내들이 엎어져 신음을 흘린다.
마른 개천은 마치 한차례 피의 소나기가 지나간 듯 시뻘겋다.
퍼억!
콱!
오민철은 조금이라도 일어서려는 사내들은 가만 놔두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확인사살 하듯 삽으로 후려쳐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형 그 사람 좀 데리고 와.”
오민철은 구동철의 등짝을 삽으로 찍으려다 그냥 내렸다.
그러더니 머리채를 휘어잡고 질질 끌고 온다.
퍼억!
권총수 앞에 데려다 놓았다.
만신창이다.
잘려나간 오른손에 셔츠를 찢어 묶었다.
병원이 아닌 곧바로 뒤를 쫓아왔다는 건 지상식에 대한 충성심이다.
병원으로 달려가 치료를 잘한다면 손가락 하나라도 건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
건달의 의리는 돈에서 나온다고 볼 때 지상식은 물론이고 아버지 지장천도 돈에 인색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또 하나는 권총수에 대한 복수심이다.
멈칫!
누워있는 구동철 눈앞으로 담배 한 개비가 나타났다.
담배를 쥔 손만 보이지만 건네는 사람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는데 구동철은 받지 않았다.
“늘씬 깨지고 한 대 피우는 똥필터 맛도 괜찮아요.”
구동철은 왼손으로 받았고 권총수는 불을 붙여 주었다.
“용병이 되려면 군대에서 배우지 않은 한 가지 기술을 습득해야 하죠. 바로 자동차 운전입니다. 미행하는 법, 미행을 따돌리는 법, 차동차를 타고 가면서 공격하는 법, 좁은 도로에서 시속 백 마일로 달릴 수 있는 법, 최대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커브길을 지나가는 법등 아주 다양합니다.”
용병이란 말에 구동철은 물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지상식도 눈을 빛낸다.
‘용병이라면 설마 전쟁을 직업으로 하는?’
어쩐지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흡!”
그러다 뭔가 생각 난 듯 지상식은 눈을 크게 떴다.
용병 회사 블랙잭이 떠오른 것이다.
꿀꺽!
지상식은 처음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아직 확인된 건 아니지만 만약 블랙잭 사람들이라면 일은 커진다.
권총수는 서둘지 않았다.
구동철의 대답에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내 말이 틀립니까? 생각해 보세요. 아직까지 내 차를 미행해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날고 긴다는 아랍의 테러리스트들이 날 죽이기 위해 추적했지만 죽은 사람은 항상 그들이었죠. 난 누군가를 뒤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란 얘깁니다. 구동철씨와 저 식구들은 내 차를 따라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는 거죠.”
구동철은 아무소리가 없다.
“날 따라 올 수 있는 방법은 딱 한가지입니다. 교통 흐름을 살필 목적으로 수많은 교차로에 세워진 CCTV입니다. CCTV를 통해 내 차량 넘버를 추적하면 어느 교차로를 이용해 어디로 빠져 나갔는지 아는 건 매우 쉬운 일이죠.”
구동철이 안색이 변했다.
정확히 알고 있다.
서울 경찰청 광역수사대장 최술무 경정은 퇴근을 하기 위해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지하 주차장에 들려 차를 끌고 나온 최술무는 집이 있는 동대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자하문 터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15분여 달려 그가 도착한 곳은 북한산 깊숙한 곳에 위치한 간판도 없는 식당이었다.
허름한 식당이지만 이 집 고기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난 터라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어렵다.
예약된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구동철이 앉아 있었는데 최술무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눈사람인줄 알았다.
머리를 비롯해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한 눈에 많이 다친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오늘 철거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다.
“앉으세요!”
구동철과 앉아있는 또 한 사내가 있었다.
구동철 말고 다른 사람이 동석하리라는 건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약간 표정이 움츠려든다.
“권총수라고 합니다.”
“최술무입니다.”
권총수가 손을 내밀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악수를 해야 했다.
“구 부장, 몸은 왜 또 그러는 것입니까?”
최술무가 물었는데 대답은 권총수가 한다.
“원래 여기 나올 수 없는 몸이지만 일이 워낙 중대하여 제가 모시고 나왔죠. 중환자이니 빨리 돌려보내야 하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권총수는 핸드폰 녹음기능을 켰다.
“여보세요. 다온 건설 구동철 부장입니다. 대장님!”
“어우 구부장 오랜만이야.”
“급히 승용차 한 대 추적해 주십시오. 포드 익스플로러인데 넘버가...”
구동철은 권총수의 차량 넘버를 불러주었다.
“빨리 좀 부탁 드립니다.”
“오케이!”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탁!
녹음을 끈 권총수는 굳어 있는 최술무를 바라보았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걱정 할 필요 없습니다. 대신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최술무는 컵에 채워진 냉수를 마셨다.
“광역범죄수대 제1팀에서 우리 직원 사망사건을 수사중인데 잡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잡지 않은 것인지 진전이 없습니다. 지금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최술무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광역수사대는 자신이 최고 지휘선이다.
“내 말을 아직 알아듣지 못한 모양인데 우리직원 사망사건 수사보고가 천왕그룹으로 들어가더군요?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경찰의 수사상황이 피의자일 수도 있는 쪽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이 말입니다.”
최술무는 여전히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녹음 내용을 방송국에 보내주면 좋아하겠죠?”
최술무는 눈을 감았다.
걸려들었다.
그야말로 빼도 박지도 못한다.
구동철이 녹음한 걸 다운 받았음이 틀림없다.
거절하면 녹음 내용이 방송을 탈 것이고 권총수의 질문에 대답을 하게 되면 권악수와의 관계가 흔들린다.
자신은 권악수와 만난 적도 없다.
문제는 자신의 윗선이 권악수와 각별하다는 것이다.
차준석과 조셉의 사망 사건이 터지고 이틀 만에 직속 상관인 청장으로부터 저녁을 먹자는 전화가 왔다.
윗사람의 전화이므로 다른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식사 중 청장으로부터 한 가지 청탁이 들어왔다.
‘레블론 이사 살인사건 있지. 그때그때 나에게 보고 좀 해줄 수 있겠는가’
20년 넘는 경찰 밥을 먹었다.
청장이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걸 눈치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최술무가 붕대에 감겨 있는 구동철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런 일에 대한 비밀은 지켜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원망이다.
구동철 또한 억울하다는 듯 눈을 깜박 거렸다.
웬만해서는 열리지 않는 것이 내 입이다.
그러나 권총수 앞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절대 권총수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그러시죠!”
최술무의 말에 권총수는 흔쾌히 대답했다.
“어떡하면 되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그럴 때는 훌훌 털고 상대에게 백기 투항을 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괜히 잔머리 굴리다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면 불길에 기름 부은 격이 될 수도 있다.
“권악수와 통하는 간부만 알면 됩니다. 당연히 둘이 통하고 있다는 증거가 필요하겠죠. 한 가지는 약속드립니다. 대장님의 신상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최술무는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은 빈 물컵을 들어 마셨다.
속이 탄다.
병원을 찾아온 다온 건설 지장천의 얼굴이 안 좋다.
하나 뿐인 아들의 머리가 박살 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의 말이 놀라웠다.
“상처가 크긴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머리가 이렇게 많이 깨졌는데 괜찮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움직임을 좌우하는 뇌의 어떤 기관이나 신경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천운입니다.”
“천운!”
지장천은 무거운 얼굴로 누워있는 지상식을 내려다보았다.
“누구냐?”
지상식은 눈을 감고 있었다.
“네가 이렇게 다칠 정도인 걸 보면 평범한 놈 같지는 않구나. 태양회냐?”
태양회(太陽會)는 오성파와 국내 조직폭력을 양분하고 있는 경쟁조직이다.
“흐윽!”
바로그때 눈을 감고 있던 지상식이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흠칫!
지장천은 소스라쳤다.
단순히 눈물만 흘리는 것이 아니었다.
“어어엉!”
소리 내며 쏟아내는 눈물이 금세 베게를 적신다.
워낙 큰 소리로 우는 바람에 문이 열리고 바깥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부하들이 살짝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사...상식아!”
마흔이 머지않은 아들이 운다.
자식이라고는 하나였기에 안 된다는 것 보다는 된다는 것에 많은 힘을 실어주고 길렀다.
이른바 오냐오냐 한 탓인지 몰라도 학창시절 말썽깨나 피웠고 아버지 뒤를 이어 회사를 이어가려면 강해져야 한다면서 스스로 경주로 내려가 카케류라는 일본의 검법을 배우기까지 했다.
차갑기로 따지면 아버지인 자신보다 한 술 더 뜨는 아들이 그야말로 대성통곡이다.
“아버지!”
지상식은 옆에 있는 휴지통에서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더니 입을 열었다.
“20년만 받게 해주세요.”
지장천의 이마가 잔뜩 찌푸려진다.
갑작스런 20년 형은 또 뭔가.
“사람을 두 명이나 죽였으니 무기나 사형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변호사의 능력에 따라 20년도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잖아요?”
“지금 뭔 소리냐? 20년 형은 뭐고?”
지상식은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켜 세워 침대에 앉았다.
머리카락은 단 한 올도 볼 수 없을 만큼 붕대가 머리를 칭칭 감고 있었다.
“오늘!”
지상식은 권총수와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지장천은 한동안 할 말을 잊었다.
뭔가 한마디 하고 싶은데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 지상식의 말이 더함도 덜함도 없는 진실이라면 권총수는 절대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지상식의 말처럼 오로지 형량 감경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일만 남았다.
“내가 한 번 만나봐야겠다. 어떤 친군지.”
지장천은 지상식으로부터 받은 권총수의 명함을 보며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평범한 목소리다.
“권총수 사장님 되십니까?”
“예!”
“난 지장천이라고 합니다.”
“그러시군요.”
놀라지도 않는다.
“지금 뵐 수 있을까요?”
상대는 오케이 하면서 장소를 말했다.
지장천은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스윽!
손에 쥐고 있던 명함을 다시 본다.
블랙잭(Blackjack)이라는 글씨를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북한산은 자주 찾는다.
얼마 전까지 주로 골프로 몸 관리를 해왔지만 어느 순간 등산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는 단골로 오르는 산이다.
평일의 북한산은 한가해 보였다.
권총수가 만나자고 한 커피숍 몽블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약간 어두컴컴한 커피숍에 손님이라고는 딱 한 사람 있었다.
입고 있는 양복의 색상을 말해 주었지만 다른 손님이 없었으므로 지장천은 곧바로 창가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권총수씨?”
“그렇습니다. 앉으시죠.”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얼 마실 건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