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7화: 선수교체(3)
질질질!
지상식을 끌고 자신의 차량으로 다가가더니 트렁크를 열고 쳐 박듯 실었다.
“형 갑시다!”
오민철이 조수석에 오르고 포드 익스플로러는 주차장을 떠나 사라져 버렸다.
남은 사내들이 허둥지둥한다.
“경찰에 신고해야!”
“미친 새끼야 신고할 때가 따로 있지 콱 그냥, 빨리 쫓아!”
세 명의 사내는 담벼락에 부딪힌 벤츠의 시동을 걸어 끌어냈다.
칼로 차안의 에어백을 모조리 잘라 버리고 권총수의 차를 쫓기 시작했다.
“형님 손부터.”
핸들을 잡은 사내가 잘려버린 구동철의 오른 손을 보며 말했다.
“씨발! 이미 날아간 손 지금 가봤자 용 빼는 재주 있냐? 그냥 가.”
구동철은 자신의 와이셔츠를 찢어 감싸 맨 오른팔을 보며 이를 갈았다.
“기어이 널 내 손으로 잡는다.”
왼손으로 핸드폰 번호 한 개를 꾸욱 눌렀다.
“나다. 비상이야. 상무님께서 납치됐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개자식아. 당장 애들 대기시켜.”
구동철은 잠시 숨을 몰아쉬었는데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은 사장님께 알리지 마.”
결심을 굳힌 듯 앞을 노려 보았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왼쪽 가슴에 꽂힌 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지만 소리도 지를수 없다.
출렁거리는 걸 보면 자신이 어디론가 실려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손발이 묶인 것 같지도 않는데 움직일 수 없고, 입은 왜 꼼짝을 하지 않는지.
지상식은 순간적으로 차가 담벼락을 들이 받는 순간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고 느꼈다.
아플 정도는 아니었지만 뜨끔했다.
즉 허리를 두들겨 맞아 두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리 움직여 보려고 해도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두려움이 생긴다.
덜컹!
갑자기 차의 움직임이 심해졌다.
비포장도로에 들어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어디로 가는걸까.
그리고 이들은 누굴까.
카케류를 알고 있고 자신의 실력으로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을 만큼 차원이 다르다.
자신의 손은 웬만한 칼이다.
찌르면 이마 정도는 가볍게 뚫고 들어가 버리는데 닿지도 못하고 손가락과 손목이 같이 부러졌다.
끼이익!
차가 멈췄다.
이어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트렁크가 열렸다.
파파팟!
몸 여러 곳이 부드러운 자극이 있었다.
손가락이 푹 누른다는 그런 느낌이었는게 갑자기 움직이지 않던 몸이 꿈틀거린다.
“어어!”
고통에 신음을 터뜨린 자신의 목소리가 분명 귀에 들렸다.
“벌떡 일어나 내려오지, 뭔 잔머릴 굴리려고!”
오민철이 버럭 소릴 지른다.
지상식은 스스로 일어나 트렁크에 앉아 밖을 보았다.
냇물이다.
물이 흐르고 주위로 크고 작은 자갈돌들이 지천으로 널린 꽤 넓은 곳이었다.
지상식은 경기도 어디쯤이 아닐까 생각했다.
골프장에서 가장 가까운 경기도 지역은 파주다.
권총수는 20여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버드나무 아래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손이 나갔지 발목이 나간 거 아니잖아.”
느릿하게 걷는 지상식을 향해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척!
5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섰다.
“앉아요. 편히!”
지상식은 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깔고 앉았다.
“담배 좋아 하시던데 한 대 피우시고.”
권총수가 권유했다.
왼손은 멀쩡하다. 지상식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후우!
담배연기가 바람에 흩어진다.
지상식은 연거푸 담배를 빨아 들였다.
“아버지가 대단하시더군요. 철거왕, 밤의 청와대, 또 뭐가 있다고 했지?”
그러면서 오민철을 바라본다.
“목이 두껍다고 하여 돼지 목.”
오민철이 대답했다.
“지상식씨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세요. 한마디라도 삐끗 했다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참고로 난 당신 스승도 만났습니다. 아마 일 년은 아랫목에 누워 몸 관리 해야 할 것입니다.”
그건 스승 송명파에게 치명상을 입혀 놨다는 뜻이다.
“또 한 가지 아버지의 후광 믿고 날 골탕 먹이려고 했다간 큰 일 납니다. 아버지는 물론 가족 모두가 떠날 수 있어요.”
뱉어내는 말에 막힘이 없다.
자신감이 아니고서는 보여줄 수 없는 행동이다.
툭!
권총수는 꽁초를 던졌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나오던 차준석과 조셉이 칼을 맞았습니다. 뒷골목에서는 고정해놓고 작업하는 걸 총살이라고 한다던데?”
지상식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카케류의 전형적인 도흔(刀痕)이더군요?”
지상식이 인상을 썼다.
“씨발, 카케류를 나만 배웠다고 하던가? 그 사람 밑에서 칼을 배운 사람이 몇 명인데 그런 개소리를 하냐고.”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가왔다.
“뭐라고 하셨죠?”
면전에 쭈그리고 앉던 권총수가 옆에 있는 커다란 돌멩이 한 개를 쥐었다.
“재수 없는 늙은이는 왜 들먹이고.”
빠악!
빡, 빠바바바!
봐주는 건 없다.
마늘을 다지듯 머리통을 찍어 버렸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당신 입에서 그런 막말이 나올 만큼 형편 없는 스승 같지는 않던데 완전 개새끼군.”
“으으으!”
지상식은 바닥으로 넘어졌는데 일어나지 못했다.
“자식 엄살은!”
오민철이 발로 걷어찼다.
퍼억!
엄청난 파괴력이다.
축구 선수가 찬다고 해도 이토록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흐오!”
지상식은 너무 아픈 나머지 그만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앉아버렸다.
“스승은 그래도 어떻게 해서라도 당신에게 카케류 대를 잇게 해보려고 노심초사 하던데.”
스윽!
권총수는 고개를 떨군 지상식의 턱을 밀어 올렸다.
움찔!
고개가 들린 지상식이 놀란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 돌로 찍은 권총수에게는 단 한 방울의 피도 묻지 않았다.
흰색의 와이셔츠가 깨끗했다.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칼로 찔러도 피가 튄다.
피가 의복에 의해 완전히 차단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끔은 옷 밖으로까지 튀는 것이다.
더욱이 머리를 때렸다.
모자를 쓴것도 아니기 때문에 머리가 깨지면 당연히 튀는 피를 맞아야 했다.
그 증거가 바로 주위 자갈들이다.
엄청난 핏방울이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권총수의 몸에는 티끌 하나 없을까.
흠칫!
지상식이 뭔가 떠올린 듯 갑자기 몸을 떨었다.
송명파가 결가부좌해 있고 측면으로 지상식이 도복을 걸치고 있다.
송명파 2미터 앞에는 촛불 하나가 타오른다.
송명파는 길게 호흡을 조절하며 내 뱉더니 오른손을 뻗었다.
휘륵!
바람 한 점 없는데 촛불이 흔들거렸다.
송명파는 팔을 곧게 뻗었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온 몸의 내기를 끌어 올려 촛불을 향해 발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팟!
급기야 펄럭거리던 촛불이 꺼졌다.
지상식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사람에게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흔히 기(氣)라고 한다.
운기토납법이라고 하여 호흡을 이용한 수련을 하면 단전에 내기가 쌓이고 양이 많아지면 몸 밖으로 배출할 수도 있다고 배우긴 했지만 설마 했는데 직접 스승이 시연해 보인다.
“지금 보인 것이?”
“기(氣)라고 한다.”
“더 높은 경지도 있습니까?”
“기보다 높은 경지를 경(勁)이라 한다.”
“경보다 높은 단계도 있습니까?”
“물론 있다. 강(罡)이지.”
“허면 바람은 어느정도 입니까.”
“내기로 일으키는 바람(風)은 기(氣) 다음이다. 그리고 경에 이어 강에 올라선다.”
그때 스승 송명파는 한마디를 더 했다.
‘호신강기라고 있다. 단전의 기로써 몸을 보호하는 것이지. 강에 올라선 고수들이 아니고서는 보여줄 수 없는 기예인데 이 스승도 말로만 들었다. 칼로도 뚫지 못한다고 하더구나’
지상식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머리가 깨지며 밀려오는 아픔은 잊은 지 오래다.
‘진짜 호신강기’
그렇지 않다면 피가 한 방울도 묻지 않을 수 없고, 자신의 손가락과 손목이 부러질 리 없다.
‘아니다!’
스승에게 지금의 세상에서도 과연 그런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고개를 갸웃했다.
‘모른다.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기이한 일들이 부지기수다.’
그 말은 존재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팍!
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시선을 내렸다.
권총수가 장난처럼 만지고 있던 주먹 만한 자갈돌을 손안에 넣고 깨뜨린 것이다.
우연이나 속임수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연거푸 몇 개의 돌을 부서버리자 지상식은 온 몸을 짧게 한 번 떨었다.
단단한 돌들이 두부처럼 허무하게 부서진다고 해서 오늘을 위해 미리 깨놓았다고 의심할 수는 없다.
“이 두 사람 당신이 죽였죠?”
이번에는 차석준과 조셉의 얼굴사진을 보여 주었다.
지상식이 웃는다.
“무슨 소릴 하는거요?”
“천왕그룹 권악수 회장으로부터 의뢰를 받았겠죠? 천왕의 하청을 받아 강남 재건축 철거공사까지 따낸 마당인데 거절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그때 자동차 소리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승용차 석대가 울퉁불퉁한 개천길을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 후 차가 멈추더니 사내들이 내렸는데 모두 열 명이다.
그중 선두에 있는 구동철이 보인다.
사내들은 트렁크를 열고 칼과 쇠파이프 야구방망이등을 꺼내 들고 다가왔다.
“어쭈, 해보자는 거야.”
오민철이 굳은 얼굴로 바라보더니 차로 걸어가 삽을 꺼내 왔다.
오민철은 살벌한 기세로 다가오는 사내들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 거렸다.
“우린 안 피해.”
삽 한 자루면 충분하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인원이 많다는 것이지만 그 대신 탁 트인 넓은 공간이다.
넓다는 건 자신에게 아주 유리함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구동철을 필두로 다가온 사내들이 걸음을 세웠다.
“상무님!”
“뭣들해 일단 까.”
구동철이 소리쳤고 사내들이 우르르 달려든다.
오민철은 쇠파이프를 들고 가장 먼저 들어오는 사내를 향해 마주 다가갔다.
깡!
떨어지는 쇠파이프를 삽으로 막으면서 오른 발로 사내의 낭심을 찍었다.
꺼억!
사내는 그대로 무너진다.
채앵!
2시 방향에서 들어오는 칼을 납작한 삽으로 막고 이번 사내도 사타구니를 찍었다.
허윽!
그 역시 거품을 물고 지면을 뒹군다.
낭심은 인체에서 치명적인 급소다.
그곳을 정확히 가격당하고 움직이거나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바닥이 울퉁불퉁하다.
즉 발을 높이 들어 얼굴을 찍거나 하는 공격을 해서는 안된다.
삐끗하여 중심이 흔들리기라도 하면 바로 당한다.
가깝고 실패해도 중심이 흔들릴 일 없고, 맞으면 치명적인 낭심이야 말로 매우 효과적인 타격점이다.
슈왕!
오민철은 뒤로 물러나면서 측면에서 날아오는 야구 방망이를 삽으로 막고 오른발로 사내의 턱을 찍었다.
측면인데다 야구 방망이를 내려치면서 상체가 숙여져 얼굴이 가까웠다.
빠악!
여지 없다.
삽은 상대의 공격을 막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쓰러뜨리는 공격은 발이다.
오민철의 계산은 간단했다.
삽으로 공격을 하면 무게로 인해 느리다.
또한 공격도중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멈추거나 컨트롤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발은 다르다.
오랫동안 실전으로 달련된 태권도, 특히 발차는 기술은 거의 경지에 올랐다.
다른 사람의 손보다 빠르고 정확하고 자유자재다.
또한 발은 주먹의 3-4배 파워를 낸다.
빠악!
퍽!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권총수는 오민철의 전략을 확인하고 마음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