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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26화 (426/651)

제426화: 선수교체(2)

대대적인 인사 태풍이 불었다.

권악수의 측근들로 지목된 인물들부터 내 쳐졌다.

원출도는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월급쟁이로 입사하여 임원까지 지냈으니 성공한 샐러리맨임은 분명했다.

아쉬움이라면 마지막 모양새가 우습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돌아서다 멈칫하는 원출도의 시선이 전면 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타계한 권철악 창업주 사진이 걸려있었다.

권철악의 눈에 띄어 승승장구했지만 나중 권악수쪽으로 배를 갈아탔다.

물론 모든 건 자신의 판단이었다.

최소한 당시만 해도 권악수는 상당한 재목감이었고 상식적이었다.

흠이라면 독선적인 면이 있긴 했으나 그 또한 대기업을 끌어가려면 그 정도는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것이 악수(惡手)였다.

내 탓이라면 출세욕이 빚은 참사였고, 남의 탓이라면 권악수의 치밀한 계획에 걸려든 것이다.

권철악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지능적이고 체계적인 자기 연출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내 쉬는 숨소리도 거짓이고 위선이었다.

권악수의 실체를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회사의 모든 주요부처와 계열사를 권악수 측근들이 점령한 뒤였다.

워낙 큰 회사이기 때문에 망하지는 않겠지만 엄청난 구조조정의 폭풍이 밀어닥칠 것이다.

전자 하나만 남기고 모조리 공중분해 된다는 설이 있지만 세상은 모를 일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가 있으니 권악수가 어떤 처세를 하느냐에 따라 계열사의 잘려나가는 숫자가 정해질 것이다.

드르륵!

마지막으로 자신이 앉아서 업무를 봤던 책상 서랍을 열었다.

볼펜 한 자루 없다.

오른쪽 서랍도 하나씩 차례차례 열던 원출도가 마지막에 멈칫했다.

바닥은 텅비어 있는데 서랍 벽으로 뭔가 끼어 있었다.

오래된 사진 한 장이었다.

한 사내가 위아래 사막색 전투복에 터번을 두르고 있다.

오른손에는 M4 한 정이 들려 있었는데 떨어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담배를 물고 있는 이는 권총수였다.

블랙잭이라는 용병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건 뉴스를 통해 들었다.

창업 2년이 조금 안 됐는데 민간 보안시장에 확실히 뿌리를 내렸고 며칠 전부터 미국증시에 상장한다는 말도 돈다.

털썩!

갑자기 의자에 주저앉았다.

오른손에 사진을 들고 한참 바라보던 원출도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친구였다면’

한때는 권총수를 제거하려는 권악수 작전의 맨 선봉에 섰던 자신이다.

그런데 이제는 권총수였다면 과연 회사를 이 지경으로까지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린다.

스윽!

원출도는 윗주머니에 사진을 넣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골프연습장 팻말이 세워진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북한산 자락을 끼고 있는 연습장은 숲에 둘러쌓여 있으면서 시설도 좋아 평일이지만 사람들이 많았다.

입구 오른쪽으로 야외주차장이 있는데 차량들이 빼곡했다.

좌우 앞문이 열리면서 권총수와 오민철이 내렸다.

“야 그림 죽인다.”

오민철은 산세를 보며 감탄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연습장 허가가 날 수 있자. 혹시 이거 불법 아냐.”

권총수도 주변 경치를 둘러보았다.

골프 연습장은 소나무와 벚나무 굴참나무가 빼곡한 깊은 산속에 있었다.

“총수야!”

오민철이 한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주차장 오른쪽 끝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흐르는 개천이 있는데 바로 옆에서 세 명의 사내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는 듯 큰 소리로 웃는다.

오민철이 사내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모래를 가득 담은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오민철이 담배를 피워 물었고 뒤이어 온 권총수도 말보로 레드를 꺼내 물었다.

딸칵!

불을 붙이고 길게 한 모금 내 뿜었다.

웃고 떠들던 사내들은 낯선 사내 둘이 다가와 담배를 피워 물자 위아래로 훑기 시작했다.

“이런 연습장 하나 하려면 얼마나 들까?”

오민철이 물었다.

“오십 억?”

“그렇게는 안 들걸, 골프 연습장 하나 만드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간단 말이야?”

“나도 몰라!”

권총수가 상의 왼쪽 어깨를 오른손으로 툭툭 털었다.

그때 빈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거? 말보로 레드라고 좆도 맛없는 담배 있어. 외제 담배도 옛말이야. 우리 담배가 훨씬 낫다고.”

누군가 두 사람이 피운 담배가 뭐냐고 물은 듯 한 사내가 대답을 했는데 말투가 살벌했다.

“세주 그년 담배 아냐?”

“이 마담이 저것 피우냐?”

“예! 쫙 빨아들이는 느낌이 장난 아니라면서 줄창 저것만 빨아 제낍니다.”

“어쩐지 그년한테서 똥냄새가 난다 했는데.”

“똥요?”

“모르냐? 저것 똥 필터라고 부르잖아. 잘 봐봐 누리끼리 한 것이 완전 똥이잖아.”

똥 필터라는 말에 부하로 보이는 두 사내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어이.”

오민철이 우두머리로 보이는 서른 중반 가량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어이? 나?”

“남이야 똥 필터를 빨던 훑던 무슨 상관이야. 말 한 번 좆같이 하네.”

“이 새끼가 어디서!”

부하로 보이는 사내가 오민철의 머리를 한 대 때리려는지 팔을 뻗어왔다.

타악!

오민철이 전광석화와 같은 뒤차기를 날렸고 사내는 언덕 아래 개천으로 쳐 박혔다.

슈욱!

옆에 있던 동료가 주먹을 뻗자 오민철은 재빨리 오른 발로 복부를 찍었다.

퍼어어!

사내 역시 개천으로 쳐 박혔다.

“이런 씹 새끼!”

개천에 빠진 두 사내가 각자 품에서 회칼을 뽑아 들고 언덕을 기어 올라왔다.

개천에 빠져 흠뻑 젖은 두 사내가 자기 곁으로 다가 오자 권총수가 왼 주먹을 뻗었다.

빡!

파아악!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두 사내가 날아가 버렸다.

콰다당!

연습장 건물 벽에 부딪치며 떨어졌는데 일어나지를 못했다.

툭!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의 입에 물린 담배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무 말도 못한 채 입만 벌리고 있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놀란 것 같았다.

씨익!

권총수가 웃는데 낯선 목소리가 나타났다.

“너희들 거기서 뭐해?!”

권총수는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장을 한 지상식이 연습을 끝내고 나오다 바닥에서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두 사내를 발견하고 소리친 것이다.

“이 자식들 봐라!”

개천에 빠져 젖은 옷은 땅바닥을 나뒹굴면서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더욱이 지상식의 시선을 끄는 것은 땅바닥에 떨어진 회칼이었다.

회칼의 주인은 당연히 두 사내일 텐데 어떻게 된 건지 파악이 안 된 듯 고개를 돌렸다가 주차장 흡연구역에 서 있는 구동철을 발견한다.

“야 구동철 무슨 일이야?”

그러면서 구동철에게 다가간다.

가까이 다가간 지상식은 권총수가 고개를 돌렸는데 움찔했다.

한 눈에 구동철이 권총수에게 눌려 있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지상식 상무님?”

지상식이 권총수를 훑었다.

“아버지가 다온 건설 사장이시고? 맞죠?”

“경찰입니까?”

권총수는 손을 저었다.

“경찰은 무슨?”

그러다 사내들이 떨어뜨린 회칼을 수거한 오민철을 불렀다.

“형 칼 한 자루 줘봐!”

오민철이 다가와 두 사내의 회칼중 하나를 건네주었다.

권총수는 회칼을 쥐고 엄지 손가락으로 날을 쓰다듬는다.

날이 얼마나 섰는지는 확인하는 동작인데 지상식의 눈이 좁혀졌다.

워낙 예리하여 전문 요리사들 아니면 손가락을 베일 수도 있는데 권총수는 능숙하게 날을 고르게 만져 보더니 누군가 피우고 모래에 박아 놓은 담배꽁초를 싹둑 자른다.

싸악!

지상식의 눈이 커졌다.

아무리 회칼이 잘 든다고 하여 모래에 살짝 꽂혀 있는 담배꽁초를 자른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것도 필터다.

필터 안에는 담배의 나쁜 성분을 걸러내기 위해 여러 가지 화학물질이 많이 들어있다.

사람이 양손으로 잡고 떼어내도 쉽지가 않고 그것도 길게 껌처럼 늘어지며 떨어진다.

“칼을 잘 쓰는군.”

지상식이 다가오더니 모래 재떨이를 놓고 맞은편에 섰다.

자상식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양아치들 칼질은 아닌 것 같고?”

권총수는 거울을 보듯 회칼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다.

“경주까지 다녀왔습니다. 스승이 무척 아쉬워하더군요. 자질이 좋은데 심성이 어긋났다면서.”

뚝!

담배를 빨아 당기던 지상식이 멈췄다.

푹!

권총수는 칼을 모래에 꽂아 놓고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냈다.

다시 한 번 확인 하듯 보더니 모래 위에 펴 놓는다.

툭!

“잘 알죠?”

지상식은 사진을 내려다 봤는데 눈썹이 꿈틀한다.

놀랄 때 보이는 인체 반응이다.

“카케류라는 검 자체가 빠르죠. 검도에서 빠르다는 건 정확하다는 것과 동일시되기도 하고.”

빠르지 않고서는 이렇게 정확히 품자형태로 자국을 남길 수 없다는 뜻이다.

“내 직원들입니다. 두 사람 모두.”

권총수는 대화하듯 말했다.

“댓가가 강남 재개발 아파트 철거공사건입니까. 철거 시공 모두 천왕건설에서 맡았더군요?”

직접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권악수의 사주를 받아 차석준과 조셉을 처리한 것 아니냐고 묻고 있었다.

촤악!

전광석화.

지상식의 오른손이 권총수의 미간을 파고들었다.

어떤 예비 동작도 취하지 않았고 지척이기 때문에 결코 피할 수 없었다.

“허흑!”

그러나 비명은 지상식이 질렀다.

손이지만 칼이다.

자신이 배운 검식중 하나를 수도(手刀)로 바꿔 찔렀기 때문에 칼처럼 미간에 틀어박힌다.

그런데 손가락이 부러지고 손목뼈까지 골절이 되고 말았다.

미간이 뼈라고 해도 급소이고, 어쨌든 이토록 단단하지는 않다.

탄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어떤 벽에 부딪치며 손가락과 손목이 동시에 나가 버린 것이다.

스윽!

권총수는 모래에 박아 놓은 회칼을 뽑아 들었다.

“같이 좀 가시죠.”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지상식을 바라본다.

휘익!

그때 측면으로 서 있던 구동철의 주먹이 날아왔다.

기습이다.

모래 재떨이가 크지 않아 주먹을 뻗으면 바로 닿을 거리였다.

사사삭!

대낮이었지만 번쩍이는 세 개의 섬광이 있었다.

“어흑!”

그야말로 단발마의 비명이었다.

흠칫!

지상식의 눈이 커졌다.

땅바닥에 구동철의 오른손이 세 조각이 되어 떨어져 있다.

세 번의 섬광은 회칼로 구동철의 손을 세 조각내는데 발생한 도광이었다.

“가시죠!”

권총수는 천천히 자신의 포드 익스플로러를 향해 걸어갔다.

다다닥!

그때, 눈치를 보던 지상식이 도망친다.

재빨리 자신의 벤츠로 뛰어 들어 가더니 문을 걸어 잠갔다.

부르릉!

차의 시동을 걸었다.

앞서 걸어가던 권총수는 몸을 돌렸다.

부우웅!

지상식의 벤츠가 깔아 뭉갤 듯 달려온다.

자신이 가로막으면 그대로 받을 것이다.

거리는 20여 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2톤이 넘는 묵직한 차량에 받치면 결코 온전할 수 없다.

씨익!

달려오는 차를 보며 권총수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러더니 들고 있는 회칼을 차를 향해 던진다.

쉬이익!

회칼이 날아간다.

적엽비화 수법이지만 평범한 공격이 아니다.

이갑자의 내공이 실린 칼은 벤츠의 앞 유리를 너무도 쉽게 뚫어 버리고 들어가 지상식의 오른쪽 가슴에 틀어 박혔다.

파팍!

부우웅!

동시에 권총수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고 벤츠는 발 아래를 지나 맞은편 담벼락에 쳐 박혔다.

콰아앙!

장마철 수위 범람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를 쳐 놓은 2미터 가까운 개천의 담벼락이 일부 무너졌다.

권총수는 서둘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가 운전석 문을 열었는데 에어백이 터지면서 오른쪽 가슴에 박힌 칼은 더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으으으!”

지상식은 피를 흘리며 고통스런 신음을 흘렸다.

콱!

권총수는 지상식의 머리채를 거머쥐더니 차 밖으로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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