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25화 (425/651)

제425화: 선수교체(1)

다시 사진을 살피던 둘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넌 뭔지 알겠냐는 질문이면서 어떤 사인이 분명해 보였다.

부웅!

그때 자동차 라이트가 비치며 포드 익스플로러가 다시 나타났는데 이번에 내리는 사람은 오민철이었다.

채명천과 교대를 한 것이다.

“이 사람들이야?”

오민철이 다가오더니 두 사람을 바라본다.

서로가 눈싸움 하듯 노려보았는데 그때 권총수의 음성이 들렸다.

“이사님, 내 차 트렁크에 보면 삽 있을 겁니다.”

오민철이 차로 걸어가 트렁크를 열더니 삽을 꺼냈다.

삽은 사막을 무대로 하는 용병들에게 필수 장비다.

아무리 성능 좋은 4륜구동 차도 자주 모래에 빠지기 때문이다.

장륜 장갑차도 자주 빠지는 곳이 사막인데 그 버릇이 남아 한국에 있는데도 삽을 싣고 다닌다.

탁!

권총수는 삽을 들고 다시 물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으십니까?”

“전혀!”

“도대체 뭘 묻고자 하는 건지.”

빠아악!

보지 못했다.

뭔가 눈 앞에서 번쩍하는 건 느꼈으나 그것이 사람이고 또한 친구 백도군을 찍은 삽이라는 건 전혀 몰랐다.

“우우욱!”

백도군이 신음을 흘리며 휘청 거렸는데 왼쪽 팔이 잘려나갔다.

정확히 팔꿈치 부분이 잘려나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잘린 부위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어디서 많이 본 칼자국 같지 않습니까?”

“도,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팟!

번갯불이 튀는 듯 하더니 쿵 소리가 들려 조기용은 고개를 돌렸다.

“허걱!”

백도군이 넘어졌는데 왼쪽 무릎이 잘려나갔다.

다리가 잘리면서 중심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대답은 자신이 했는데 백도군의 다리가 잘리자 조기용은 당황했다.

권총수는 삽을 들고서 땅바닥에 쓰러진 백도군을 내려다 보았다.

“소림에는 절맥역혈대법(絶脈逆血大法)이라는 비기 하나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갑자 이상의 내공을 지닌 고수만이 펼칠 수 있는데 무공이면서 의술이죠. 간단히 말하면 신체가 잘리거나 심장이 멈추었을 때 회생시키는 광세신기라는 것입니다.”

비록 팔과 다리가 잘리긴 했지만 앞으로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치료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권총수의 말속에 담긴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또 반복해서 묻습니다. 사진의 칼자국 처음 보는 것입니까?”

백도군은 밀려오는 고통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있었다.

“사진의 칼자국이 생소합니까? 정말 모르는 것입니까?”

꿈틀!

삽이 또다시 움직일 기세다.

이번에는 오른팔 아니면 다리일 것이다.

“잠깐!”

백도군은 친구다.

조직에서 만난 친구가 아니라 고향도 같고 동갑이며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오래된 말이지만 죽마고우(竹馬故友)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팔 하나 다리 한 개쯤은 붙어 있어야 그나마 사람 노릇을 한다는 생각에 조기용은 말했다.

“잘 알고 있소.”

권총수는 지체 않고 잘린 팔과 다리 부위에 손을 대고 극양의 내기를 주입했다.

상처 주위에 막히고 죽어가는 신경과 근육과 뼈를 되살리는 절맥역혈대법을 시전한 것이다.

오른손은 잘린 팔꿈치에 있고 왼손은 무릎에 댄다.

그렇게 오 분여가 흐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잘린 부위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쫘악!

백도군의 셔츠를 찢어 팔꿈치와 무릎을 붕대처럼 감았다.

“형! 차에 태워 병원으로 데려가.”

오민철이 사내를 부축해 차에 태우고 곧바로 현장을 떠났다.

자동차 미등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사방은 다시 어둠 속에 갇혔다.

움찔!

조기용은 순간적으로 몸을 떨었다.

차가운 냉기가 목덜미를 덮는다.

아직까지 두려움을 모르고 살아왔고 나름대로 바닥에서 대가 세다는 평을 들었다.

숱한 사건사고 속에서도 항상 건재했다.

주위 동료 선후배들은 강제철거를 강행할 때 일말의 미안함이라도 생기는 듯 가끔은 한숨을 쉬기도 했고, 누군가는 꿈속에 어제 밀어 버렸던 국밥집 주인 할머니를 봤다면서 간헐적인 인간미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그런 생각은커녕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남들이 뭐라든 자신은 이것이 직업이다.

짓밟고, 부수고, 두들겨 패서라도 빨리 쫓아내는 것이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사람이 되는 순간 아웃이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신만의 삶의 좌우명이다.

철거 용역은 직업이다.

직원이 월급을 받고 살려면 회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최대한 노력을 하여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게 살아왔다.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말이 누군가의 것만은 될 수 없다.

자신도 앞만 보고 살아왔고 지금도 이 바닥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잘 살아갈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차가운 얼음 칼 하나가 목을 베며 파고드는 것 같은 이 소름끼치는 한기는 무엇인가.

“조기용씨 사람들이 왜 잠을 자다가 죽는 걸 소원하는지 아세요? 고통이 없고 공포가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의 그 무서움이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공포죠. 누구도 죽어갈 당시 자신의 감정을 담아 글로 써낸 사람이 없습니다. 인간의 언어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할 수 없다고 합니다. 내 말 뜻을 아시겠습니까?”

모른다.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죽으면 죽는 거지 하는 것이 죽음에 관한 자신의 철학이다.

그런데 지금 온 몸이 싸아하다.

“조기용씨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사진 속 칼자국 정말로 처음 보는 것입니까?”

딸칵!

질문을 던진 권총수는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당겼다

후우!

노려보지도 않고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위협적인 액션 따위는 취하지도 않는다.

길가에 놓인 바위에 걸터앉아 담배 한 개비 물고 있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내들의 모습이다.

서슬퍼런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데 살이 떨린다.

이상한 기세를 풍기는 사내다.

“봤소.”

권총수는 조기용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칼에 대해 조금 아는 모양이군요?”

“아는 편입니다.”

“그럼 사진 속 칼자국을 보면 당신들 표현대로 연장질하는 사람의 실력을 알 수 있겠군요?”

“그...그렇다고 봐야죠.”

“당신이 보기에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조기용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괜찮습니다.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평가 해보세요.”

조기용은 망설이는데 두 개의 감정이 격렬하게 교차하고 있다.

하나는 자신의 상사인 지상식 상무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 바로 앞에 있는 권총수를 향한 감정이다.

자신도 어느정도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만, 지상식에게는 대지 못한다.

그에게는 두 가지만 존재한다.

죽이거나 살리거나, 결코 중간이란 없다.

내편 혹은 네편 뿐이다.

물론 네 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어야 한다.

반면 권총수는 지상식과는 또 다르다.

겪어보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일단 헷갈리는 사람이다.

자신들을 꼼짝 못하게 마비시킨 것이나 사진을 물 위로 띄워 보내듯 날리는 솜씨와 삽으로 친구 백도군의 팔과 무릎을 잘랐다.

팔꿈치 무릎 모두 뼈가 있기 때문에 눈 깜짝할 사이에 두부처럼 매끈하게 잘릴 수 없는 부위다.

그것도 칼이 아닌 삽으로 잘랐다.

세상에 잔인한 사람은 많아도 삽으로 한 번에 팔꿈치와 무릎을 잘라버리는 사람은 없다.

수술 전 마취를 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의사는 있지만 멀쩡한 자신을 돌비석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은 권총수가 처음이다.

그것 뿐인가.

지금껏 겪어 본 적 없는 두려움이 온몸을 감싼다.

“지상식 상무님 칼 솜씨입니다.”

그 한마디를 뱉고 조기용은 눈을 감아 버렸다.

이제 끝났다.

다시는 지상식이 있는 조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곧장 오성파 조직원들에게 쫓길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은 물론 친구들까지 찾아다니며 칼질을 해 댈 것이다.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다.

그때 강렬한 포드 익스플로러의 라이트가 나타났다.

조금 전 백도군을 싣고 같던 오민철이었다.

차에서 내린 오민철은 분위기를 살피듯 조기용과 권총수를 살폈다.

조기용이 말끔한 것에서 어느 정도 자백을 이끌어 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지상식에 대해 좀 더 말해보시죠.”

권총수는 바지에 양손을 집어 넣었다.

게임의 양상이 확실히 달랐다.

이번에는 천왕중공업도 사활을 걸다시피 하며 지분 취득과 우호지분 확보에 나섰다.

회사가 넘어갈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번 게임에서는 차석준과 조셉이 사망함으로 잠시 호흡을 조절할 시간적 여유를 벌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언론과 뉴스에서까지 천왕중공업이 외국계 자본인 헤지펀드에 넘어갈 수 있다는 뉴스가 쉬지 않고 쏟아지면서 세상의 이목이 집중 되었다.

특이한 것은 위기설이 퍼져나가고 있지만 그 많던 시민단체 어느 곳 하나 우리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말 한마디 내뱉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걸 두고 어느 경제학과 교수는 신문 칼럼을 통해 천왕이 국민들에게 인심을 잃었다는 표현을 했다.

기업을 힘차게 잘 경영할 생각은 않고 애국심을 자극하여 뭔가를 얻어보겠다는 생각은 진부하다고 쏘아붙였다.

주주총회가 열렸다.

회의장 주변에는 수많은 국내 언론들이 몰려 있었다.

회의장 출입은 전면 봉쇄되었다.

양쪽 모두 확보한 주식에 대한 정보가 통제됨으로 인해 수성이냐 인수냐에 대한 기자들의 의견도 갈팡질팡했다.

하지만 주총이 세 시간을 넘기며 천왕중공업이 넘어 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회의장 주변에 떠돌기 시작했다.

권악수는 소스라쳤다.

세종문서감정원에서 서옥선의 위임장이 가짜라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배 원장은 우리 편이라고.”

권악수는 전화기에 대고 핏대를 올리며 소리쳤다.

“어떻게 그런 감정이 나올수가 있단 말이야? 제대로 알아봐. 절대 그럴리 없어.”

전화를 끊고 난 권악수는 한참을 씩씩거리다 배구덕 세종문서감정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신호 대신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기계소리만 반복되어 나온다.

몇 번을 껐다 다시 걸어봤지만 소용 없었다.

“설마 이 개자식이.”

권악수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진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걸고 또 걸기를 이십 번도 넘게 했지만 통화중이란 말만 계속 나온다.

탁!

핸드폰을 쥔손으로 책상을 짚는다.

부들부들!

책상을 집은 오른손이 경련을 일으켰다.

당했다.

천왕중공업의 경영권이 미국계 투자회사 레블론으로 넘어간 것이다.

자신들이 직접 매수한 19.5퍼센트와 우호지분을 합쳐 총 51.09퍼센트의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천왕중공업 경영권이 외국계 펀드 레블론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은 주말인 금요일 저녁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

경제장벽이 무너지고 지구촌이 하나의 단일 시장이 된지 오래되었다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기업이 넘어갔다는 건 놀람을 넘어 경악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외국계 헤지펀드에 넘어간 국내기업이 있었으나 대부분 중소기업 정도였다.

금융기관 두 곳 정도가 헤지펀드에 쓰러진 적은 있었다.

허나 이름 있는 재벌기업으로서는 천왕중공업이 처음이었다.

더이상 우리 기업도 안전하지 않다.

실속 없이 외형만 키우는 방만한 경영의 시대는 끝났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질의 경영이 되어야 한다면서 어떤 기업도 안전하지 않다고 언론은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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