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3화: 개자식(1)
두 명의 남녀가 주차장 기둥 뒤에서 끌어안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원피스를 입었는데 치마 밑으로 들어오는 남자의 손을 밀어내고 있었다.
권총수는 그들을 지나 곧장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는 3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2층과 3층이 유흥주점이다.
그러다 보니 밤이 깊은 지금 엘리베이터가 다니는 건 지하 주차장과 2층, 3층이다.
1층도 멈추지 않는 건 호텔 투숙객들을 대비한 것이었다.
만에 하나 호텔 이용객들과 충돌이라도 벌어지면 골치 아프다.
택시를 이용할 손님도 지하 일 층을 통해 나가야 한다.
쨍!
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과 2층 3층 4층에서 골고루 한 번씩 멈추고 5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술에 취한 세 명의 여자가 쏟아져 내렸다.
“뭘 봐!”
불쑥 마주친 눈길이었는데 한 명의 여자가 표독스럽게 노려본다.
“왜 한 번 줘? 병신!”
술이 취했다.
권총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버튼을 눌렀다.
역시 올라갈 때도 4층 3층 2층 1층에서 골고루 멈추면서 사람들을 태웠다.
어디서 한잔씩 하고 오는 듯 술 냄새가 진득하게 풍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남자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고 각자 탑승 층이 달랐는데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2층에서 내렸다.
권총수는 3층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바닥에 깔린 붉은색 카페트였다.
권총수는 왼쪽 맞은편으로 위치한 카운터로 다가갔다.
카운터에는 한 명의 여자와 정장을 한 두 사내가 서 있었는데 찾는 웨이터 있느냐고 묻는다.
여긴 클럽이다.
채명천이 전해주는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 3대 클럽 중 한 곳이라고 했다.
3곳 중 강남에 두 곳이 있고 나머지 한 곳은 부산 해운대에 있다고 했다.
그때 유리문이 열리고 채명천이 나타났다.
“잘 찾아 오셨군요. 내 손님입니다.”
채명천은 카운터를 향해 말하고 권총수를 데리고 들어갔다.
복도는 두 갈래로 뻗어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졌는데 채명천은 왼쪽 복도로 걸어갔다.
좌우로 문이 있다.
그러나 웃음소리 술잔 부딪치는 소리, 노래 소리 하나 흘러나오지 않는다.
“조용합니다?”
방음장치가 잘된 듯 귀에 거슬릴 만큼 큰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안에서 살인이 일어났는데도 모르죠.”
“그건 또 무슨 얘깁니까?”
“오래 됐습니다만 손님이 아가씨와 시비가 붙어 술병으로 아가씨 머리를 때려 죽였죠.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피웠지만 밖에서는 아무도 몰랐다고 합니다.”
채명천은 11호실이라고 쓰인 문을 열고 들어갔다.
10인용 룸이라는데 굉장히 넓었다.
탁자와 의자가 있고 안쪽으로는 샤워실이라고 쓰인 문이 보인다.
구석으로 거대한 달 항아리가 있는데 꽃이 가득 꽃혀 있다.
놀라운 건 조화가 아닌 생화라는 것이다.
“이런 곳 처음이시죠?”
채명천은 한참을 둘러보는 권총수를 보며 웃었다
“사람 한 놈 패죽이기 위해 룸살롱은 들어가 본 적은 있지만.”
“룸살롱이나 거기서 거기에요. 2층은 춤도 추고 떠들며 놀 수 있고 3층은 철저히 비즈니스 목적으로 오는 손님들이죠.”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고 마흔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깔끔한 행색의 사내가 들어섰다.
“차 지배인 인사하지. 우리 회사 대표님이야.”
“안녕하십니까?
사내는 권총수를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구부렸다.
“버닝홀 지배인 차만대입니다. 옛날 현직에 있을 때 인연이 깊었죠.”
채명천은 강력계 형사 출신이다.
그와 인연이 깊다는 건 차만대 지배인이 조폭 출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권총수 입니다!”
권총수는 차만대와 악수를 했다.
“차 지배인도 앉아!”
혼자 서 있자 채명천이 앉을 것을 권했다.
그때, 권총수의 오른손이 품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권총수가 봉투 없이 지갑에서 천만원 짜리 수표 한 장을 차만대 앞으로 밀었다.
크게 놀란 차만대가 우물쭈물하자, 채명천이 재촉한다.
“뭐해요. 받아요.”
“급히 나오느라 준비한 것이 많이 모자랍니다.”
아무리 고급 클럽에 돈이 흔하다고 해도 한 번에 팁으로 천만 원 받아본 일은 없다
“바쁠테니 간단히 몇 가지만 물어 보겠습니다.”
“차 지배인 돈 받아 넣어. 우리 대표님 돈 줘놓고 다시 돌려달라고 하시는 분 아냐.”
분위기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어 보려는 듯 채명천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차만대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지상식에 대해 아는 데까지 설명 좀 해주시죠.”
차만대는 공손히 입을 열어 말했다.
“여기 버닝홀 주주중 한 분입니다.”
“지분이 어느 정도 되죠?”
“정확히는 모르지만 20퍼센트가 조금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대주주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권총수가 채명천을 돌아보았다.
“크죠.”
“국내 3대 엔터테인먼트중 한 곳인 YGP가 가장 많은 41퍼센트의 지분이고 외국인 투자자도 있습니다.”
“외국인?”
“대만 출신 여자 사업가 링이라고 두 달에 한 번 정도 방문합니다. 그때는 주주들 거의가 나타나죠.”
“지상식도?”
채명천이 물었다.
“서로 아주 친해 보이더군요.”
“오늘도 왔다고 들었습니다?”
권총수가 물었다.
물론 채명천으로부터 대략의 설명을 들었다.
“VVIP실에서 손님들과 얘기 나누는 중입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도 술 좀 보내 주시죠.”
차만대가 다시 허리가 구부러지도록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팟!
채명천이 뭔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다 말고 놀랐다.
권총수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잠영술이라고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문이 닫혀있다.
저렇게 틈 하나 없이 닫힌 문틈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권총수는 잠영술로 한 방에 스며들었다.
놀랍게도 룸 안에 있는 남녀는 모두 벌거벗었다.
속옷까지 벗어던진 알몸으로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남자 셋, 여자 셋이다.
여자들은 늘씬한 키에 하나같이 미모가 출중했고 뽀얀 피부는 그들이 매우 젊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명과 괴성이 난무하면서 방안의 공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권총수는 여섯 명의 남녀가 약을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럼 그렇지’
탁자 위에 주사기 한 개가 보인다.
뿐만 아니라 쓰레기통에도 여러 개의 일회용 주사기가 있었다.
권총수는 주사기 한 개를 냄새 맡으며 약의 종류도 알아냈다.
약에 관해서는 전문가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아편단속을 했으며 멕시코에서는 코카인 밀매 조직과 한바탕 전쟁을 치른 적도 있었다.
“아악!”
방안 여기저기를 살피던 권총수는 비명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 사내가 여자의 뺨을 갈겼는데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
“씨발년이 날 갖고 놀아. 야 이년아.”
사내는 서른 중반정도 되었다.
185센티미터는 넘어 보이는 신장과 온몸이 근육질로 다져졌는데 헬스를 하는 모양이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쭉 위로 찢어진 눈매에서 서슬퍼런 독기가 뿜어 나온다.
자신이 찾는 지상식이라는 사내다.
여자는 팬티만 걸치고 있었다.
얘기인 즉 술집을 다니는 직업적 여성이 아니고 오늘 아르바이트로 나왔는데 시간이 늦어 가봐야 한다면서 옷을 입었다가 맞은 것이다.
지상식은 가지 말라고 했고 여자는 가야 한다고 맞선 것이다.
빠악!
지상식이 오른발로 여자의 복부를 찍었다.
여자는 뒤쪽 소파로 나동그라졌는데 제대로 맞은 듯 숨을 쉬지 못했고 바르르 떨기만 했다.
“이런 패죽일 년이!”
지상식은 얼음이 들어있는 스텐으로 된 아이스버킷을 들어 웅크린 여자의 뒤통수를 찍는다.
퍼억!
여자의 머리에서 피가 터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누구도 말리거나 하지 않고 웃으며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흐흐흐!”
“아름다워.”
사내들과 여자들 모두 소파에 피를 흘리는 여자를 보며 낄낄 거렸다.
약이 가져온 환각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흥밋거리로 보이는 것이다.
권총수는 더 이상 놔뒀다가는 안 되겠다 싶었다.
‘채 이사님, 119 좀 불러 주세요’
채명천에게 전음을 보내고 여자의 몸 주위를 강기로 벽을 쌓았다.
지상식은 여자에게 다가갔다.
알몸의 지상식은 공포에 젖어 있는 여자의 얼굴에 자신의 사타구니를 들이대듯 하며 말했다.
“가야 된다고? 가 그럼? 가라고 이 씨발년아.”
뻐억!
“아이고!”
주먹으로 여자를 때렸는데 지상식이 비명을 질렀다.
“상무님!”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지상식은 오른 손목을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했다.
“으으! 뭐야. 부러졌잖아.”
손목은 금세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야 뭣해 빨리 얼음주머니 만들어.”
사내들이 소리쳤다.
여자들은 재빨리 바닥에 떨어진 얼음을 주웠지만 담을 봉지를 찾지 못해 두리번거렸다.
“이 멍청한 년들아. 니년들 브래지어에 담으면 되잖아.”
그제서야 한 여자가 재빨리 브래지어에 얼음을 담아 손목에 대려하자 지상식이 확 팔로 쳐 낸다.
“이년이 어디다 재수없게 브라자를.”
브래지어와 얼음이 날아가고 지상식의 이마를 잔뜩 찡그렸다.
“야 이방에 얼음과 얼음물 좀 가져오라고 해.”
한 사내가 구석의 탁자위에 올려진 전화기에 대고 얼음과 얼음물을 주문했다.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이 아픈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여자를 내려다보는 지상식의 눈이 빛난다.
자신의 손은 결코 여자의 몸에 닿지 않았다.
단단한 벽일 줄 모르고 날린 주먹이었기에 손목이 부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여자를 잡아먹을 듯 쏘아보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덜컹!
문이 열리고 웨이터가 얼음이 담긴 통과 하얀 성에가 앉은 2리터짜리 생수를 가지고 들어왔다.
흠칫!
웨이터는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소파의 여자를 보며 놀란다.
쏴라락!
여자 하나가 재빨리 봉지에 얼음을 담아 지상식의 손목에 대주었다.
“야 지배인 오라고 해. 그리고 저년 오늘 저녁에 내가 죽여 버릴 거야. 옷 입혀서 내방으로 데려다 놔.”
“알겠습니다.”
웨이터는 도망치듯 방을 나갔다.
“판 정리해. 너희 두 년은 그만 가봐.”
“네네!”
여자들은 재빨리 옷을 입고 방을 빠져 나갔다.
두 명의 사내들 역시 재빨리 옷을 입었다.
찌르르릉!
탁자의 전화기가 울었다.
“여보세요!”
한명의 사내가 전화를 받았다.
“누가 119불렀어. VVIP실에 환자 생겼다고 119가 왔잖아.”
영업부장 정만춘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희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는 부르지 않았는데요.”
“무슨 소리야. 아이스 버킷에 맞아 머리가 깨진 환자가 생겼다고 전화가 왔다는데.”
조용하여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지상식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러더니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지상식과 같이 술을 마시던 다른 두 사내 중 한 명이 핸드폰을 보더니 멈칫했다.
문자가 온 것이다.
“상무님, 경찰까지 출동했다고 합니다.”
“무슨 개소리야?”
“영업부장이 보낸 메시지입니다. 폭력신고가 들어갔다는데요. 그리고 장소인 이곳 VVIP방까지 지목해 주었다고 합니다. 경찰차가 오고 밖이 조금 시끄러운 모양입니다.”
“야 옷 가져와.”
사내가 옷을 가져다주고 지상식은 부러진 오른팔을 움직여 의복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치워! 주사기부터 숨기란 말이야.”
사내들은 주사기를 감췄고 룸에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흔적들을 깨끗이 정리하고 닦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