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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21화 (421/651)

제421화: 강호의 칼(2)

권총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둠은 더욱 깊어갔고 송명파의 각혈은 좀체 멈출지를 몰랐다.

“너무 안 와서 걱정 했잖아.”

오민철이 차 밖에 나와 있었다.

“뭔 땀을 그렇게 흘려?”

권총수 이마에 땀이 맺혀 있다.

권총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오민철은 권총수가 입 열기를 기다리는 듯 돌아본다.

“어때?”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강호의 검에 비하면?”

“그냥!”

“그냥? 어느 정도?”

“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절정고수 급은 아니야.”

“죽였어?”

“처음에는 죽일 마음이었어. 어쨌든 차이사와 조셉이 카케류에 죽었으니까. 그런데 문득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죄지은 아들의 잘못을 부모에게 책임 지울 수는 없잖아. 도덕적으로는 비난할 수 있어도 말이야.”

“어느 정도?”

죽이지 않았어도 어느정도 손을 봐줬을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무척 궁금했다.

“내 칼을 이길 사람이 21세기에 있다고 봐?”

“없지.”

“알아서 넘어지더라고.”

“넘어졌어? 그래서 그냥 온거야?”

오민철은 인정사정 없이 공격해 버리지 가만 놔뒀냐는 시선이다.

“싸움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내공대결이지. 서로가 초식을 펼치지 못하고 기회만 노리며 잔뜩 내공을 끌어 올리고 있다보면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지. 최소한 일 년 이상은 치료를 해야 할 거야.”

일 년 이상 치료해야 할 것이라는 말에 오민철이 만족스러워 했다.

“제대로 먹였네.”

“운이 좋으면 그 정도고 더 길어질 가능성이 커. 그만 가자고.”

권총수는 담배꽁초를 땅바닥에 버리고 차에 올랐다.

뒤따라 오민철도 운전석으로 올라 시동을 걸었다.

차가 조그만 시멘트 포장길을 벗어나 도로에 진입했을 때 권총수가 입을 열었다.

“형, 다온건설이라고 알아?”

“알지.”

“진짜? 어떤 회사야?”

“알긴 뭘 알아. 신문에서만 좀 봤지 뭐.”

“말해봐.”

“한마디로 양아치 집단이야. 철거민들의 피와 눈물을 빨며 살을 찌우는 잔인한 기업이지.”

오민철은 자신이 알고 있는 다온 건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폭력철거의 피해자들은 그를 도시 개발이 만든 괴물이라고 한다.

1990년대 철거현장은 모두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끝내 철거왕이라는 황금빛 트로피를 받게 된다.

철거왕 지장천.

20대 초반 고향 거제도에서 무작정 상경한 지 회장은 당시 철거업계의 저승이라는 ‘파산’의 회장 이무치의 운전기사로 들어간다.

지장천은 파산의 이무치 운전사로 일하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히 배운다.

그리고 7년 만에 운전사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와 고향 선후배들끼리 뭉쳐 ‘다온’을 설립했다.

‘봐주지 마’

늦게 출발했지만 빨리 인정을 받고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서는 다른 업체들과 차별화가 필요했다.

그건 폭력성이었다.

다온의 철거는 확실히 다른 회사들과 차이가 있었다.

쓰나미였다.

그들이 지나가면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는다.

업계에 진출한지 5년 만에 철거 매출 1위 기업으로 올라선다.

지난 30년간 그는 철거용역사업의 1인자로 군림했다.

철거용역사업의 90%를 수주해 수천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이토록 승승장구 할수 있었던 이면에는 무자비한 폭력과 함께 독버섯 같은 공작이 있었다.

다온의 용역들은 각목, 오함마, 도끼, 일본도를 들고 폭력철거를 자행했으며, 또한 공작을 꾸며 철거민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이도록 만드는 악랄함도 보였다.

2013년 전국철거민연합회에서 작성한 ‘다온 범죄 보고서’를 보면 그들의 야수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온이 벌인 철거과정에서 확인된 피해자만 일천여명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지난 30여년간 폭력 1,750여건, 철거민을 향한 성추행과 성폭행 356건, 위협과 협박 899건, 살인 33건이었다.

지씨는 철거왕 자리로 만족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대기업 건설사들처럼 시행과 시공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2006년엔 유명 건설사 ‘청목’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지씨는 현재 어엿한 건설사 사장이 됐다.

***

권총수가 보고서 마지막 장을 넘겼다.

팔랑!

채명천이 어제 밤새 작성한 다온건설에 대한 보고서였다

“화려하지?”

보고서를 작성한 채명천이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권총수는 책상의자에서 일어나 소파로 옮겼다.

“강남 신주아파트 재건축 알지? 현재 그곳 철거하는 회사가 다온 건설이야.”

3,280세대 총99동으로 아파트 재건축 시장중 가장 규모가 크다.

“그리고 그곳 재건축을 하는 회사가 천왕건설이고.”

파팟!

권총수의 눈이 빛난다.

“천왕건설?”

채명천이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림 잘 나오지?”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는 뜻이다.

채명천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물었다.

“천왕건설이라고?”

“요즘 그룹 전체가 어렵잖아? 아니나 다를까 얼마전 뉴스에서도 천왕건설이 제대로 공사를 마칠 수 있을지 파헤치는 뉴스가 뜨더라고.”

서너 번 담배를 연거푸 빨던 권총수가 말했다.

“채 이사님, 다온에 대해 좀 더 알아봐 주십시오. 재무 구조던가 주식시장에서의 평가등등.”

“알겠네, 당장 뛰어들지.”

채명천이 씨익 웃으며 자신이 마시던 커피 잔을 들고 방을 나갔다.

수십 대의 포크레인이 아파트를 허물고, 부서진 건축물 잔해들을 싣고 달리는 덤프의 행렬이 끝이 없다.

권총수는 불현듯 시리아 알레포가 떠올랐다.

시리아 반군의 마지막 거점인 알레포를 향한 정부군과 러시아 전투기의 폭격은 살인적이었다.

완전 폐허였다.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골과 부서진 건물 잔해는 유령의 도시를 방불케 했는데 지금 눈앞이 그러했다.

“당신 뭐요?”

안전모를 쓴 사내가 다가왔다.

안전모에 다온이라는 글씨가 박혔고 작업복 상의 왼쪽 가슴에도 다온 이름이 있었다.

사내는 서른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권총수의 위아래를 훑더니 톡 쏘듯 묻는다.

“어디서 나왔소?”

“지나가다 내 집 잘 지어지고 있는지 잠시 바라보고 있는 중입니다.”

재빨리 재건축 조합원 행세를 했다.

“나가시오. 여기가 어디라고.”

금방이라도 한 대 때릴 듯 험악한 표정에 권총수는 가볍게 웃었다.

“수고하세요!”

권총수는 씨익 웃으며 등을 돌렸다.

권총수가 몇 걸음 걷는 걸 보고 사내는 돌아섰다.

5미터쯤 걸어가던 사내는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 몸을 돌렸는데 갑자기 눈이 커졌다.

“어어!”

권총수가 사라졌다.

사내는 재빨리 주위를 살폈으나 권총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만!”

사내는 3미터 높이로 설치된 양철 가림막으로 다가갔다.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없다.

들어올 수 없는 곳이며 현장 정문 말고는 어디로도 출입이 불가하다.

“어디로 들어 온거야?”

아무리 봐도 없다.

더욱이 자신의 현장 관리담당 직원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이틀에 한번 꼴로 외부 가림막이 훼손되지 않고 있는지 체크한다.

오늘 아침도 점검 했을때도 늘 그렇듯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사내는 눈을 깜빡거렸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헛것을 보았나 싶다.

대화까지 나눴다면 절대 헛것을 본 것이 아니라 사람이다.

고개를 갸웃 거리며 다시한번 근처 가림막을 살폈지만 여전히 구멍 따위는 없었다.

“허 참!”

사내는 계속 허참을 연발했다.

주주총회다.

분위기는 살벌했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칼을 들고 있다거나 무장 경찰이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 회의의 결과에 따라 천왕중공업의 경영진이 바뀔 수도 있다.

건곤일척의 승부다.

천왕중공업 사장 이남교는 회사측 대리인이 되어 자신들이 확보한 주식과 위임장 내용을 마지막으로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 어딘가 초조한 기색이 보이고 있었다.

“몇 시야?”

옆에 앉아 있는 총무부장 채준기를 향해 물었다.

“5분전입니다.”

혀로 입술을 축이는 것이 속이 바짝 타들어가는 모양이다.

저택에서 큰소리가 울려 나왔다.

“어머니!”

“누가 네놈 어머니야. 난 너 같은 아들 둔적 없다. 꼴도 보기 싫다. 내 집에서 나가.”

거실에 세 사람이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은 타계한 권철악의 부인 서옥선이다.

그리고 우뚝 서 있는 사내는 권악수였고 조금 떨어져 가방을 든 변호사이자 회사 법무팀장인 장웅철이 있다.

서옥선을 바라보는 권악수의 눈이 이글거렸다.

“내가 그동안 뭘 잘못했는지 잘잘못은 저녁에 따지고 지금 당장 어머니 위임장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한 주가 아쉬운 마당입니다. 어머니.”

“내가 가진 2퍼센트도 채 안 되는 주식이 없어 경영권이 흔들릴 지경이라면 네놈 능력도 볼 장 다봤구나. 얼마나 인심을 잃었으면 주주들이 네놈에게 등을 돌린단 말이냐.”

“정말 이러실 겁니까?”

“내 눈앞에서 꺼져라. 벼락을 맞아 죽을 놈.”

“씨발!”

권악수가 윗도리를 벗어 옷걸이에 걸더니 서옥선에게 다가갔다.

“이 나쁜놈, 뭐하려는 것이냐?”

“좀 찍어 달라고 하잖아요.”

콰악!

권악수는 오른손으로 서옥선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왼팔로 오른손을 거머쥐었다.

“네 이놈 이게 뭐하는 짓이냐.”

“장 변호사 뭐하는 거요. 빨리 지장 찍지 않고.”

장웅철 변호사는 너무 놀라 얼어붙어 버렸다.

“빨리 찍어.”

“아, 예!”

장웅철이 재빨리 다가와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리고 빨간 인주를 서옥선의 엄지에 묻힌다.

“오오 부처님, 이것 안놔. 이 천벌을 받을 놈아.”

“천벌은 알아서 받을 테니까 잠자코 있어요. 네 서옥선 여사님?”

“장변호사 자네 정말 이럴 건가?”

서옥선의 엄지 손가락을 잡아 서류에 찍으려던 장웅철이 멈칫했다.

“사무실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하던 변변찮은 지방대 출신 변호사를 데려다 이 만큼 키워주니 고작 내 손가락 후려잡아 지장 찍는단 말인가?”

“뭐해. 빨리 찍으라니까.”

꾸우욱!

지장이 찍혔다.

“에이 짜증 나!”

권악수는 서옥선의 머리채를 놓고 양손을 털었다.

이어 옷걸이에 걸린 상의를 걸쳐 입더니 히죽 웃었다.

“곱게 늙으세요. 곱게, 시간 나면 이 앞 동사무소에 가셔서 치매 검사 한 번 받아 보시고.”

쾅!

문이 세차게 닫혔다.

서옥선은 인주가 묻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바라보았다.

피식!

창백한 안색에 미소가 떠올랐다.

‘죽쒀서 개 줬다더니’

서옥선은 이를 악물었다.

IMF를 넘고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의 파장은 국내기업들에게도 수많은 상처를 남겼다.

그때도 천왕은 살아남았고 건재했다.

그러나 지금 천왕이 무너지고 있다.

“사모님! 다녀왔습니다.”

시장을 갔던 가정부가 들어왔다.

“으헉! 사모님!”

가정부가 장바구니를 놓고 달려왔다.

서옥선은 권악수의 강한 힘에 눌려 소파에 비스듬하게 앉아 있었는데 머리가 산발한 귀신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도대체!”

“냉수 한 잔 가져다 줘요.”

가정부가 재빨리 주방으로 가더니 쟁반에 물 한 컵을 받쳐 들고 왔다.

건네주는 컵을 받아 물을 마신 서옥선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서옥선은 양손으로 대충 머리를 다듬었다.

“올라오면서 보니 회장님 차가 내려가던데?”

“김여사, 말 조심해요. 그놈이 무슨 회장이야.”

서옥선의 눈에서 시퍼런 한기가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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