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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17화 (417/651)

제417화: 칸케류(陰流)(1)

칼이 살인도구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소리가 없고 휴대가 간편하다.

“하긴 요즘은 마피아들도 총 놔두고 칼을 쓴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총살이라는 건 한 마디로 백퍼센트 죽여야 할 대상에게 저질러 지는 기법이죠. 칼이라는 증거물은 숨기기도 좋고 아무리 부검에 뛰어난 의사라고 해도 칼로 찔렀다는 건 알아 냅니다. 그러나 어떤 칼로 찔렀는지 백프로 정확히 규명은 못합니다.”

권총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총기류는 쉽게 밝혀진다.

총알만 있어도 사용된 총기 종류와 몇 년도에 만들어졌고 어디로 유통이 됐으며. 심지어는 가해자가 어느 각도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쐈는지까지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칼은 속무무책이라는 것이 마낙춘의 설명이었다.

“수준은 어느 정도로 봅니까?”

마낙춘을 들고 있던 사진을 다시 보았다.

“상처가 정확히 한 일자라는 건 나올 때 들어갈 때 칼의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는 뜻이죠.”

“칼이 흔들립니까?”

오민철이 묻는다.

마낙춘은 짧은 웃음을 지었다.

“피부는 물론이고 몸속 장기도 무척 예민합니다. 물과 같아서 칼이 조금만 흔들리면 상처가 다르게 나타나죠. 보면 그냥 알 수 있죠. 이런 칼질은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직선으로 들어갔다가 그대로 빠져나오는 칼일 때 이런 상처가 만들어지죠.”

마낙춘은 몇 가지 얘기를 더 했고 권총수는 묵묵히 들었다.

경찰이 몇 번 회사로 찾아와 차석준과 조셉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간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요즘은 잘 찾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다.

그들 말에 의하면 워낙 현장이 깨끗했고 외국인이다 보니 수사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M&A를 주도하고 있는 펀드 매니저들이라는 것이 확인되었고 목표가 천왕중공업이었다는 것에 일단 용의자 지목은 크게 어려울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용의선상에 오른 대상이 국내재계서열 1위 기업 천왕이라는 것이었다.

증거도 없이 수사했다가 나중에 잘못되면 강력한 역풍을 맞을 수가 있어 전진도 후진도 못한 상태였다.

***

신중식은 무기징역을 받았다.

혐의는 살인.

올해로 20년째 복역중이다.

형행 성적이 좋아 가석방의 희망이 있긴 하지만 사람일은 모른다.

20년 동안 가끔씩 찾아오던 어머니가 얼마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찾아오는 면회객은 거의 없다.

그런데 접견신청을 한 사람이 있다는 말에 그저 의아할 뿐이었다.

긴 병에 효자 없듯 오랜 감방생활에 의리는 없다.

처음 몇 년은 동생들이 찾아오고 가끔씩 형님들이 넣어주는 두둑한 영치금에 교도소 살림은 큰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무기수라는 타이틀은 미래를 앗아 가버렸다.

어차피 나올 수 없고, 가석방으로 나온다고 해도 굉장히 운신의 폭이 좁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조그만 사건 사고에 휘말려도 재수감이 되니 사고가 항시 어른거리는 뒷골목 생활은 불가능하다.

계산해 보면 정확히 7년째부터 조직에서 찾아오는 사람은 완전히 끊어졌다.

처음에는 체면상 옥바라지를 했는데, 이 체면이라는 것도 수감자가 아닌 다른 조직을 의식한 행위다.

오성파는 조직을 위해 희생한 사람의 옥바라지를 소홀히 한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충성도가 떨어지고 배신자가 생기면서 균열이 일어난다.

그 기간이 7년인 것이다.

뒷골목의 세대교체는 7년을 전후로 한다.

한 세대가 교체되면 그때는 앞 세대가 저지른 일이므로 뒷세대는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어머니까지 떠나면서 완전한 면벽 고행(찾아오는 사람 없는 죄수에게 붙이는 자기들의 은어)이다.

뚝!

신중식의 걸음이 멈췄다.

왼쪽으로 가면 일반 접견실이지만 오른쪽은 변호사 접견이다.

자신은 변호사 접견을 신청한 적도 없고 형이 확정된 무기수가 변호사를 고용할 일도 없다.

그렇다고 13년 넘도록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조직에서 갑자기 호의를 베풀 리도 없다.

“변호사 접견 맞습니다.”

자신이 하도 고개를 갸웃 거리자 젊은 교도관이 웃는다.

끼익!

교도관이 문을 열었다.

잠시 망설이는 듯 서 있던 신중식이 조그만 사무실로 들어섰다.

사무실에는 책상과 의자 두 개가 마주 놓여 있었다.

교도관은 가볍게 문을 닫아주고 밖에서 기다린다.

신중식은 고개를 돌리고 창밖을 보고 서 있는 사내를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다지 큰 체격도 아니다.

감청색 상하의를 걸쳤는데 뒷모습을 보고서 누군지를 짐작하기란 어렵다.

다만 교도관의 말을 따르면 변호사라고 했다.

알지도 못하는 변호사가 왜 자신을 찾아온 건지 궁금할 뿐이다.

“허험!”

신중식은 기침을 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사내가 천천히 돌아섰다.

모른다.

처음 보는 사내다.

“신중식씨?”

“변호사라고 했습니까?”

슥!

사내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말보로 레드를 꺼냈다.

담배 갑을 흔들어 한 개비를 빼낸 뒤 건넨다.

딸칵!

사내는 신중식에게 불을 붙여 주더니 자기도 피워 물었다.

이어 들고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커피가 들어 있는 종이 컵을 책상 가운데로 놓는다.

커피를 마시려는 목적보다는 재떨이로 사용하기 위해 가져온 듯 보인다.

“앉죠!”

사내가 먼저 의자에 앉았고 잠시 서서 내려다보던 신중식이 맞은편 의자를 뒤로 당긴 뒤 앉는다.

“나 변호사 아닙니다.”

사내가 씨익 웃으며 내뱉는 말에 신중식은 멈칫했다.

꼭 변호사라고 해서 단독접견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돈과 인맥, 둘 중 하나만 분명하면 가능한 것이 이런식의 접견이다.

“모범수로 가석방 가능성이 아주 높더군요?”

“통성명이나 합시다. 난 신중식이요.”

신중식이 먼저 이름을 밝힌 건 당신의 이름이 뭐냐는 질문이다.

“권총수라고 합니다.”

20년을 썩었지만 머릿속에 들어 있는 이름까지 잊을 정도는 아니다.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마낙춘씨 아시죠?”

“낙춘이 형님.”

“뒤가 없는 아주 깨끗한 후배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자주 찾아가야 하는데 장사하느라 바빠 무척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 사람을 빠뜨렸다.

딱 한 명이 면회를 오는데 바로 참치 집을 운영하는 마낙춘이다.

일 년에 봄가을로 두 번 온다.

올 때마다 넉넉하게 영치금을 넣어주며 반드시 모범수로 가석방되어 술 한잔 하자고 격려한다.

같은 조직에 몸을 담지는 않았다.

마낙춘은 국제 PJ파 였고 자신은 오성파다.

둘 모두 칼잡이로서 상당한 명성을 얻었는데 몹시 존경하는 선배였다.

사람들이 자신의 칼을 마낙춘과 나란히 놓을 때 마다 고개를 흔들었다.

난 아직 멀었다.

그분의 발 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겸양이 아니었다.

마낙춘의 칼은 확실히 자신보다 높다.

술자리에서나 어디서든 칼 얘기가 나올 때마다 신중식이 한 발 물러서는 그런 행동이 마낙춘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어느 날 모르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는데 나 마낙춘이오 하며 술 한 잔 하자는 것이다.

만나 식사 한 번 해본적도 없고 조직 선후배들의 경조사에서도 만난 적이 없는데다 타 조직의 칼잡이를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중식은 과감하게 만났고 둘은 많은 얘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무슨 목적으로 자신을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마낙춘이 소개했다면 크게 경계할 대상은 아니다.

권총수는 품에서 사진을 꺼냈다.

“이것 한 번 봐주시죠.”

신중식은 왼손으로 사진을 훑어보더니 눈을 빛냈다.

푹!

피우던 담배까지 커피가 들어 있는 종이컵에 버리고 자세히 보았다.

권총수는 신중식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는데 들어올 때와 다른 형형한 안광이다.

마치 적수가 남기고 간 도법을 바라보는 강호 무사의 눈빛이다.

“이건 연장질이 아니라 법(法)이오.”

“법(法)?”

“우리 같은 마구잡이 칼잡이는 이런 상처를 남기지 못하죠. 딱 봐도 질서가 있고 안정되어 있잖습니까?”

권총수의 눈이 좁아졌다.

칼에서 질서와 안정이라는 표현을 처음 듣는다.

“도법(刀法), 이제 기억 났소. 누군가 칼에도 질서가 있고 순서가 있는데 일컬어 칼의 길, 또는 도법이라고 한다더군요.”

신중식의 말이 끝나자 퍼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사부 천금성승의 말이다.

‘법(法)은 길(道)이다. 그 길은 아주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놀라워지지. 병기의 가는 길을 법(法)으로 만들면 그건 새로운 세상이다’

권총수는 물었다.

“이 칼을 쓴 자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입니까?”

“보세요? 어떻게 상처가 도장처럼 찍어 낸 듯 같을 수가 있습니까?”

권총수 눈이 커졌다.

“설마 한 사람이 죽였단 말입니까?”

“똑같잖습니까?”

상처가 똑같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죽였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중식의 말이 사실이라면 차세준을 죽이는 걸 조셉은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동시에 두 명을 죽일 수는 없다.

물론 누군가에 의해 행동이 묶인 상태였을 것이다.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떠했을까.

거기에 뒤이어 자신이 저렇게 칼에 찔려 죽는다는 걸 안다면 그건 차라리 지옥일 것이다.

“제대로 칼을 배운 사람이라는 뜻입니까?”

“그렇다니까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쉬운 것 아닙니다. 굉장히 칼을 잘 아는 사람의 솜씨입니다.”

권총수는 책상 위의 사진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오민철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접견을 마치고 나온 권총수로부터 신중식의 얘길 전달받고 이마를 찡그렸다.

“도법?”

칼을 쥐고 휘두른다고 해서 도객(刀客)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신의 칼을 체계적으로 다듬고 만들어 계속 반복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사람을 도객이라고 한다.

그냥 칼만 들었다고 무사가 아닌 것이다.

“무사는 너잖아.”

권총수는 강호무사다.

오민철은 그걸 말하고 있었다.

“일단 가죠.”

두 사람은 차를 타고 교도소를 떠났다.

권악수는 이를 악물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조금 전 결정이 나왔는데 자구책의 강도를 보고서 채권단의 지원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구책이라는 것이 애매했다.

어느정도 선까지 구조조정을 하고 적자를 내는 계열사를 털어 내야 하는지 마지노선을 정해주지 않았다.

즉 알아서 하라는 것인데 그건 아주 차가운 결정이다.

자칫 구조조정은 구조조정대로 하고 채권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쪽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채권단에서 그걸 받아들이냐가 문제다.

그 정도 정리 갖고는 부족하다고 해버리면 그야말로 답이 없는 것이다.

“기재위원중 아버님이 넘겨준 USB에 몇 놈이 들어 있죠?”

“4명입니다.”

원출도가 대답했다.

“우선 한 놈만 언론에 터뜨려요. 날 뭘로 보고, 황수억 이 개자식이 한 번 해보자는 거야 뭐야. 당장 언론사에 보내세요.”

“회장님. 안됩니다.”

“뭐가 안된다는 거요?”

“국회의 결정은 대통령도 막지 못합니다.”

“대통령이 못 막는데 어찌 나 같은 놈이 막겠다고 나서느냐?”

“그게 아닙니다. 권력에 맞서는 꼴입니다.”

“권력에 맞서면 안 되는거요?”

“80년 국세그룹 사태를 듣지 못했습니까? 권력에 밉보여 하루 아침에 공중 분해 되었습니다.”

“원이사, 지금은 21세기요. 어떤 놈이 내 회사를 건드려, 당장 언론에 터뜨려요. 한 번 해보자는 건데 좋다고, 해보자고.”

“한 번 더 고려하시죠. 조금 성급한 면도 있고.”

“나와 더 이상 일하기 싫다는 것입니까?”

권악수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 원출도는 길게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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