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6화: 돌발사태(2)
최식도는 다시 한 번 휴지로 입을 닦았다.
“전화 드렸던대로 차석준씨가 칼에 맞아 숨졌습니다. 일단 신원확인을 해야 하니 같이 가시죠.”
두 사람은 최식도의 차를 따라 병원으로 이동했다.
영안실 공기는 언제나 차다.
끼르륵!
두 개의 냉동관이 끌려 나왔다.
관에는 차석준과 조셉이 누워 있다.
얼굴은 깨끗하다.
“둘 모두 복부에 칼을 맞은 것 같습니다.”
이미 간단한 부검은 끝난 듯 상처가 뭉개졌다.
부검의들의 손가락이 상처를 후비고 벌렸다는 증거였는데 오민철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냥 들어왔네.”
최식도가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부검의 말에 의하면 신체 다른 부위는 깨끗한 것이 여기저기 쑤시지 않고 곧장 타점을 정해 놓고 박은 것 같다고 했다.
츠륵!
권총수는 미리 준비해 온 듯 가정용 비닐장갑을 끼더니 차석준의 복부를 살폈다.
여기저기 만져 보더니 이번에는 조셉의 상처를 보았다.
둘 다 복부다.
그런데 권총수가 두 사람 모두 좌우 팔을 살폈다.
“여기 부은 것 같지 않아?”
권총수가 차석준의 왼쪽 어깨와 팔이 이어지는 부위를 가리켰다.
“비교 해보면 더 쉬울 거야.”
권총수는 차석준의 왼쪽 어깨의 옷도 벗겼다.
왼쪽 어깨와 비교하면 오른쪽 꺾이는 부위가 확실히 부었다.
“부었네.”
그러면서 오민철은 권총수를 바라본다.
최식도 역시 눈을 빛내며 권총수의 입을 바라보았다.
“두 놈이서 양쪽 팔을 끌어 안았어. 그리고 한 놈이 정면에서 칼을 넣은 거지. 오른쪽 어깨가 부은 건 잡힌 팔을 빼내기 위해 거칠게 움직이다 보니 근육이나 뼈 일부분이 빠지거나 비틀어졌을 거야. 오른손잡이니 당연히 오른쪽에 더 힘을 줬을 것이고.”
최식도 눈이 커졌다.
부검의들로 부터는 전혀 듣지 못한 얘기들이다.
더욱 놀라운 건 권총수의 말에 혹시나 하고 시신을 옮겨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정말로 오른쪽 어깨에 인대와 뼈가 탈골되어 있었다.
부검의들은 상처를 제외하고 찰과상 하나 없는 깨끗한 몸을 육안으로만 확인한 탓에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조셉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차석준처럼 어깨는 이상 없었지만 일부 어깨와 팔의 근육에 아주 희미한 멍 자국이 발견되었다.
최식도가 놀란 건 전문의나 의료 장비에 의해 드러난 것이 아니라 권총수의 눈으로 찾아냈다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
블랙잭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전직 용병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것과 지금 보여주고 있는 충격적인 능력은 전혀 별개다.
두 사람이 죽었다.
누가 봐도 두 사람의 죽음은 내일 있을 천왕중공업 주총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은 병원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초강수도 이런 초강수가 없잖아.”
천왕을 배후로 의심하는 것이다.
오민철은 잔뜩 이마를 찡그렸다.
“정말 권악수 짓일까?”
그쪽에서도 이쪽의 자금원이 레블론이라는 것과 그 배후에 또 다른 거대 헤지펀드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할 것이다.
그러나 권총수가 있음을 안다는 건 불가능했다.
“많이 달라졌군.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야수의 심장이 되었단 얘긴가.”
권총수는 권악수로 배후를 단정했다.
“허면 천왕 케이원을 동원했다?”
“아니야.”
권총수는 앞으로 구부렸던 상체를 천천히 폈다.
“케이원은 특수부대나 뛰어난 무술 유단자들로 대부분이 구성되어 있어. 그들은 이런 방식에 서툴러. 이건 완전 프로 작품이야.”
“조폭?”
“두고 봐야지.”
“그럼 오늘 주총은 어찌 되는 거야?”
“일단 연기 시켜야지.”
권총수는 저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들어오자 새벽 3시가 넘었다.
권총수는 마당 가운데 있는 화강암 바위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말이 없다.
표정도 없다.
규칙적으로 담배 불만 달아올랐다 수그러지길 반복했다.
꽁초를 땅바닥에 비벼 껐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점점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다음날 권총수는 사무실에 출근했다.
출근하자마자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전 대표이자 이사로 있는 제임스 사이먼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차석준과 조셉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굉장이 충격을 받은 듯 목소리가 무겁다.
“한국 경찰에서 좀 더 정밀 부검에 들어갈 모양입니다. 유족들이 와도 당장 시신을 모셔가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군요.”
권총수가 더 설명하자 제임스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완전히 마피아 식이군요.”
잠시의 침묵 후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출근길에 이사벨라와 통화를 했습니다.”
이사벨라는 차석준의 미국 아내다. 차석준과 이사벨라는 대학 때 만나 결혼했다
“이쪽 사정을 설명하면서 경찰의 최종부검이 끝나는대로 연락 하겠다고 진정 시켰는데...”
이사벨라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몇 번을 사실이냐고 물었고 전화기에 대고 통곡을 했다.
안타까운건 제임스도 마찬가지였다. 차준석이 워낙 실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미래를 책임질 펀드매니저로 점찍고 있었기에 저도 모르게 계속 안타깝다고 신음을 흘렸다.
권총수는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다.
자신과 일을 같이 하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월가에서도 제2의 제임스 사이먼스라고 불릴 정도의 실력을 입증했던 조나단 차, 한국이름 차석준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다.
전화를 끊고 착잡한 표정으로 있는데 오민철이 들어왔다.
“뉴욕 타임즈 인터넷 판에 차 이사 기사가 실렸어.”
권총수는 노트북을 켜고 뉴욕타임즈에 들어갔다.
있었다.
차석준의 사망소식이 사회부 첫 머리기사로 큼지막하게 나와 있다.
‘월가의 신성(De Nova Stella) 조나단 차 서울에서 사망’
기사는 그가 칼을 맞았고 같이 있던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신입 펀드매니저 조셉도 함께 사망했다고 기사는 썼다.
죽기 전 조나단 차는 한국을 대표하는 C그룹의 계열사중 한 곳에 대한 M&A를 총 지휘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내용도 있다.
권총수는 길게 숨을 내 쉬었다.
살인 사건의 파장은 컸다.
미국 경영자총협회는 자본주의에서 M&A는 법이 정한 것이라면서 상당한 유감을 표한다는 성명을 냈다.
반면 국내 언론은 우리 기업을 표적으로 M&A를 노리는 외국자본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 기사를 쏟아 냈다.
소나기는 피하는 것이 정석이다.
피해자이긴 하지만 당분간은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는 것이 회사 간부들의 의견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매수한 주식과 우호적인 주주들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잖아.”
아침 회의가 끝나고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단둘이 남자 오민철이 자신감 넘친 얼굴을 했다.
“형 나와 갈 곳이 있어.”
권총수가 일어나자 오민철이 따라 일어선다.
“어디야?”
권총수는 아무말도 않고 사무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오전의 한강 고수부지는 조용했다.
흰색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들어오더니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차가 멈추고 내린 사람은 권총수와 오민철이다.
거의 사람도 없고 주차장의 차량도 지금 들어온 권총수의 차를 더해 모두 다섯 대가 전부다.
오민철은 권총수가 갑자기 고수부지는 무슨 일로 왔는지 궁금한 듯 자꾸 쳐다보았다.
“오십이 넘었는데도 몸 관리 하나는 확실하군.”
오민철은 재빨리 권총수의 시선을 쫓았다.
멀리서 산책로를 따라 한 사람이 뛰어오고 있었다.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흰색 땀복을 걸쳤는데 거리가 멀어 오민철의 눈에는 누군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권총수는 이미 알아본 듯 덤덤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누구야?”
오민철이 이마를 찡그리며 바라보지만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기다린다.
흰색 땀복을 걸친 사내와의 거리가 좁혀지고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어군의 마사장님 아냐?”
오민철은 재빨리 손목시계를 보았다.
11시 20분이다.
어군의 오픈 시간은 오후 2시다.
뛰어오던 마낙춘도 권총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권 대표님? 오 이사님!”
마낙춘은 흘러내리는 얼굴의 땀을 소매로 대충 훑어내며 주위를 스윽 훑는다.
“운동 나오신 건 아닌 것 같고?”
“운동시간까지 방해서서 죄송합니다. 사장님과 얘기 좀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우리 사이에 방해라뇨. 좀 앉죠.”
한강물을 바라보며 계단에 앉았다.
가운데 권총수가 앉고 좌우로 오민철과 마낙춘이 앉았다.
흘긋!
마낙춘이 권총수를 살피듯 돌아보았다.
뭔가 금방이라도 말을 할 것 같았는데 강물을 보며 한참 침묵이다.
마낙춘은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골랐다.
권총수를 오래 겪었다.
그의 숨소리만 들어도 감정 상태를 안다고 자부한다.
직감적으로 무척 불편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며 등 뒤쪽으로 슬쩍 오민철을 보았다.
때마침 오민철도 고개를 돌렸고 눈을 깜빡 거렸다.
오민철이 긴장한 것을 보면 평범한 일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스윽!
한참을 앉아 있던 권총수가 품속에 손을 집어 넣더니 사진 몇장을 끄집어 냈다.
“이것 한 번 보시죠.”
사진을 받아 보던 마낙춘이 움찔 놀란다.
사진은 낯선 사내의 복부였고 붉은 자국이 선명했다.
한때 당대제일의 칼잡이였던 마낙춘이 어떤 사진인지 모를리 없었다.
“정확히 담갔는데요. 그런데 누굽니까?”
“우리 직원들입니다. 둘 모두 미국인이죠.”
훈련장이 뉴저지주에 있고, 그쪽이 보안사업에는 한 발 앞서가다보니 당연히 고용된 미국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서울 본사에도 몇 명이 있다는 얘긴 들었다.
“시신들의 어깨에 근육과 뼈에 타박상이 있었습니다.”
“총살 시켰군요.”
권총수는 눈을 크게 떴는게 그게 무슨 말이냐는 뜻이었다.
“총살?”
오민철도 놀란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군생활 할 때만 해도 군인들 사형시킬 때 얼굴을 가리고 말뚝에 단단히 묶어 총으로 죽이는 총살형을 집행했죠.”
마낙춘은 헌병을 제대했다.
“군대가 아닌 뒷골목에서는 좌우에서 표적이 옴짝달싹 못하도록 양팔을 잡고 칼을 담그는 방식을 총살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찌르고, 또 어떤 사람은 사장님 얘기처럼 잡아 놓고 조집니까?”
오민철의 질문이 이어졌다.
“반드시 죽여야 할 상대일 때 총살을 하죠. 죽이지 않고 겁만 줄 의도라면 굳이 잡아 돌리지 않아도 되죠. 설혹 없앨 목적이라고 해도 자유스런 상태에서 담그면 의외로 생존율이 높은 것이 칼질입니다. 쉽게도 죽지만 생각보다 잘 죽지 않는 것이 사람 목숨이죠.”
마낙춘은 말을 해놓고 조금은 멋쩍은 듯 피식 웃었다.
“아직도 연장질을 하는 시댑니까?”
권총수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2000년대 들어 연장 보기가 힘들어진 건 사실입니다. 전기 차가 나오는 시대에 무슨 구시대적 유물이냐고 멀리하는 풍토가 있었는데 오육 년 전부터 다시 칼이 등장했습니다.”
권총수는 아무말 없이 담배만 피우고 있었는데 그건 계속 말을 해보라는 뜻이기도 했다.
“외국으로 유인해 해결하기도 하고, 덤프 같은 것으로 박아 버리기도 하고, 3년 전에는 양주에 청산가리를 넣어 죽인 적도 있었습니다만.”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대구 조직들이 서로 아옹다옹하다 상대 두목이 마시는 양주잔에 롬살롱 아가씨를 시켜 청산가리를 넣어 버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 저 방법 모두 사용해 봐도 칼보다 더 깔끔하고 증거인멸 쉬운 것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거죠.”
칼처럼 흔한 도구도 없다.
흔하게 얻기가 쉽고 하여 부담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