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5화: 돌발사태(1)
주총 소집에 대한 보고를 받은 권악수는 인상이 험악해졌다.
“레블론이라고 했지.”
“소집한 사람의 이름이 조나단 차입니다.”
“조나단 차, 한국계라는 얘긴가?”
원출도는 권악수와 마주 앉아 있었다.
“그래 보입니다만.”
지이잉!
원출도 핸드폰이 울렸고 아는 부하 직원의 이름이 떴다.
“어딘가? 지금 뭐라고 했나?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원출도가 얼어붙었다.
“그래 수고하게.”
전화를 끊은 원출도를 향해 권악수가 물었다.
“무슨 소리요?”
“조나단 차라는 친구 말입니다. 헤지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소속의 펀드매니저라고 합니다.”
“펀드매니저라는 건 알겠는데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는 또 어딥니까?”
“지금은 이사로 물러났지만 얼마 전까지 하버드대 교수 출신인 제임스 사이먼스가 대표로 있던 헤지펀드죠.”
헤지펀드에 대해 조금은 알지만 그다지 깊지는 않다.
더욱이 제임스 사이먼스나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따위의 이름은 처음 듣는다.
“월가 최초로 컴퓨터 분석에 의한 과학적 투자 기법을 개발한 금융공학자 입니다.”
“이과 출신이란 말이오?”
“헤지펀드 업계는 지금 이과출신들이 대세입니다. 경영대학원 출신들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죠.”
“내 회사를 먹어 보겠다?”
권악수가 피식 웃었다.
“회의를 소집했으면 응해야겠지.”
권악수가 웃는다.
“안 그렇소?”
“그렇긴 합니다만.”
권악수의 입가 미소가 갈수록 짙어진다.
그리고 한 순간 웃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내 회사를 잡숴 보겠다.”
권악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처먹다가 체할 수도 있는데’
권악수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미국에서 낳고 자랐지만 한국 음식에 익숙하다.
부모님이 자주 먹었던 탓에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그리고 빵이 아닌 흰 쌀밥에 나물 김치를 좋아한다.
미국에서부터 차석준의 파트너로 온 조셉 역시 처음에는 거부감을 드러내더니 이제는 곧장 한국 음식을 먹는다.
“내일이죠?”
내일 임시 주총이 열린다.
“캡틴의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회사를 다듬어 넘기는 것인지 아니면 경영권을 확보하는 건지?”
회사를 다듬어 넘긴다는 건 지분을 무기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이사가 되어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회사 몸값을 키운 뒤 팔아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헤지펀드의 전형적인 M&A 방식이다.
대부분의 헤지펀드들은 돈을 버는데 목적이 있지 회사 경영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권총수로부터 아직 분명한 대답은 없었다.
차석준이 권총수와 일을 하게 된 것은 아주 단순했다.
얼마 전까지 민간 보안업체 아카데미에서 전 대표(지금은 이사)였던 제임스 사이먼스 경호를 책임졌다. 하지만 남미를 여행중이던 막내아들이 두 명의 경호원이 보는 앞에서 납치가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납치 10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출은 됐지만 놀란 제임스는 곧바로 아카데미와 계약을 해지하고 블랙잭으로 거래선을 바꾼 것이다.
권총수와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스터 차.”
어느 날 출근하자마자 제임스가 불렀다.
“지금 당장 사우디 리야드 비행기를 타게. 사막의 흑새가 한 가지 문제를 의논해 왔는데 자네가 충실하게 답변하고 그가 원하면 곁에서 일을 돕게.”
그리고 지금까지 왔다.
“쓸데없는 살덩이를 모조리 베어내고 홀가분하게 만들어 팔도록 천왕 경영진에게 압력을 넣을 가능성은 적어보이네.”
“천왕 중공업 재무구조를 봐서는 가지 몇 개만 쳐낸다면 건강하게 회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던데.”
“내 말이 그 말이야. 작년과 올해 망가지기는 했지만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영업이익 5억달러를 달성한 건실한 기업이야.”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카운터에서 카드로 계산을 했다.
“잘 먹었습니다.”
차석준은 미소를 지으며 식당을 나왔다.
오늘 저녁은 조금 늦었다.
내일 주주총회에 제출할 서류와 발표문을 작성하느라 피곤까지 몰려온다.
두 사람은 식당 골목을 걸어 나왔다.
근처 몇몇 가게들은 벌써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골목 일부 구간은 어두웠다.
그런데 어두운 그 구간을 지나가는데 문제가 생겼다.
두 사람이 이상하다고 느낄 땐 이미 사내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좁은 골목은 두 사람의 동선을 거의 폐쇄해 버렸다.
퍼퍼퍽!
강한 주먹이 들어오는데 마치 쇠망치로 두들겨 맞는 것 같았다.
“I am an American(나는 미국인이다)
라고 외쳐도 소용없었다.
푸욱!
그때 불덩이 하나가 복부를 파고 들었다.
뜨겁게 달궈진 쇳덩이 하나가 파고 드는 것처럼 어찌나 뜨거운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허허헉!”
차석준은 입을 벌리고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푹!
불덩이가 빠졌다가 다시 들어왔고 차석준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경험해 보지 않아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이 급속하게 생기를 일어간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푸우우~!
세 번째 들어오는 불덩이, 바로 그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존 애드몬드.
1970년 뉴욕 마피아 오대패밀리중 한 곳인 갬비노의 청소부였던 인물이다.
많은 마피아 거물들이 그의 손에 쓰러졌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듯 그의 마지막 역시 마피아의 손으로 정리되었다.
열세 번째 표적, 보난노 패밀리 부두목을 청소하다 함정에 빠졌다.
당시 보난노 패밀리에서는 벼르고 있었던 듯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었다.
당시 보난노 패밀리에서는 그를 총이 아닌 칼로 죽였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칼이 더 아프다.
마피아에서 아프다는 말은 고통을 의미한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일 때 아프다고 한다.
그의 목에는 마이크가 달려 있었는데 그는 칼이 몸속으로 들어 올 때마다 중얼거렸다.
‘뜨겁다. 아아! 너무 뜨겁다. 불덩이다’
차석준은 자신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것이 칼 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두 눈으로는 볼 수 없었고 조용히 무너졌다.
“철수!”
마지막 의식이 사라질 때 희미하게 들려오는 한국 말이었다.
골목은 다시 고요를 찾았고 십여분 정도 흐르고 난 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그리고 경찰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근처 도로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시간 권총수는 구기동 자택에 있었다.
북한산 깊숙이 자리 잡은 산동네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조용하지만 밤은 더욱 무겁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아주 가끔 가파른 길을 올라오는 승용차 거친 엔진 소리 말고는 깊은 정적이다.
“후우우!”
권총수눈 마당 한가운데 놓아둔 평평한 화강암 위에 앉아 있었는데 두 눈을 뜨며 숨을 내쉬었다.
내공 수련을 위해 보름 전 화강암으로 된 바위 하나를 가져다 놓은 것이다.
물론 북한산이 아닌 정당한 절차를 밟아 유통되는 이른바 자연석인데 바위는 운기조식에 꽤 도움을 준다.
운기가 깊어질 때 몸에서 강한 내기가 뻗어 나오는데 단단한 바위가 아닌 흙일 때는 먼지가 일어난다.
내공이 높을수록 운기 중 뻗어나오는 경기는 강하다.
그래서 바위에 앉거나 아니면 딱딱한 곳에 결가부좌하는 것이다.
지이잉!
거실에 놓아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이중으로 된 현관문이지만 권총수의 귀를 속이지는 못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권총수가 핸드폰을 쥐려고 할 때 끊어졌다.
권총수는 걸려온 전화를 확인했는데 낯선 번호다.
잘못 걸려온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담배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조금 전 운기조식을 하던 바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 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권총수는 거실로 들어갔다.
처음이지만 같은 번호가 연속해 두 번 찍힌다는 건 그냥 흘려보낼 수 없다.
“여보세요!”
“권총수씨 되십니까?”
“누구십니까?”
“서울 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2팀장 유식도 경감입니다. 차석준씨 아시죠. 미국 이름 조나단 차.”
“예! 우리 직원입니다.”
“음, 뭐 알게 될 테니까 말씀 드리죠. 조금전 사망했습니다. 조셉씨 역시 사망했습니다.”
“죽어요?”
“차석준씨 핸드폰을 검색하다 사장님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어 전화 드린 겁니다. 본청으로 좀 나오셔야 하겠습니다.”
상대는 전화를 끊었으나 권총수는 그대로 들고 있었다.
퇴근 시간까지 내일 천왕중공업 주총문제로 회의를 했고 준비할 서류가 있다면서 차석준은 조셉과 회사에 남았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내리고도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게 뭐지’
권총수는 바위에 앉았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어둠속에서 담뱃불은 더욱 빨갛게 타오르고 권총수는 번호 하나를 길게 눌렀다.
“형 어디야? 그래, 형수님 태워다 주고 서울 경찰청으로 좀 와야겠어. 일단 오면 알거야.”
오민철이다.
그는 지금 사귀는 중학교 선생님과 저녁을 먹고 한강에서 데이트를 한 뒤 집까지 바래다주는 중이라고 했다.
담뱃불을 끈 권총수는 거실로 들어가 차 키를 들고 곧장 대문을 나섰다.
골목에 세워진 차를 후진으로 뺀 뒤 경찰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경찰청에 도착했을 땐 12시 10분 전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눈에 익은 랜드로버 한 대가 들어온다.
오민철의 차다.
“총수야!”
운전석 유리가 내려지고 오민철이 불렀다.
끼익!
재빨리 차를 주차하고 내려온 오민철이 급하게 묻는다.
“왜 그래? 뭔 일인데?”
“차 이사가 죽었다네.”
“뭐라고?”
“조셉도 죽고.”
“무슨 말인데?”
권총수는 굳은 표정으로 경찰청 건물로 들어섰다.
로비에 들어선 권총수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강력범죄수사대를 찾아 들어갔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야식인 듯 세 명의 사내들이 둥근 유리탁자에 앉아 라면을 먹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가장 젊어 보이는 사내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유식도 경감님!”
“팀장님!”
젊은 사내가 맞은편에서 라면을 먹는 머리 희끗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며 면발을 소리내어 흡입하던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권총수씨?”
입안 가득 라면을 넣고 묻는다.
“예!”
“그쪽으로 좀 앉으시죠.”
권총수와 오민철은 창문 쪽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사내는 젓가락을 놓고 정수기로 다가가 종이컵으로 물을 떠서 마셨다.
“죄송합니다. 하도 출출해서.”
최식도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휴지로 입을 닦았다.
권총수는 명함을 꺼내 주었다.
최식도는 권총수의 명함을 보더니 놀란 얼굴을 했다.
“블랙잭이라면 혹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전쟁기업?”
전쟁기업이라는 말에 라면을 먹던 두 사내가 고개를 돌려 본다.
권총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최식도는 매우 놀란 얼굴이었는데 블랙잭이 요즘 언론에 자주 보도되기 때문이었다.
잘만하면 웬만한 대기업 연봉 뺨친다는 블랙잭의 대우에 젊은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했다.
특히 특전사나 유디티 씰 같은 특수부대 출신들에게는 꿈의 직업이다.
국방부에서는 좋은 자원들이 의무 복무기간만 끝나면 곧바로 전역을 한다며 아쉬워 하지만 그들 입장은 블랙잭이야 말로 바라던 직장이고 진작 한국에도 있었어야 할 회사였다며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