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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13화 (413/651)

제413화: 아귀다툼(1)

권총수는 좀 더 자세한 속사정을 알기 위해 차석준에게 자료 의뢰를 한 것이었다.

“차 매니저가 보기에 어떻습니까? 천왕이 회생할 방법이 있겠어요?”

“없습니다!”

단 일 초도 생각 않고 회생할 수 없다고 말하는 차준석을 보며 권총수는 상당히 놀랐다.

헤지펀드 업계에서는 이름난 투기 매니저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천왕이 망할 것이라는 단정적인 얘기가 흘러나왔다는 건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봐야 했다.

“살릴 방법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유동성 자금이 그다지 여유가 없기 때문에 한 가지 뿐이죠. 부실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아니면 금융권에서의 안정된 자금 지원입니다.”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다?”

“구조조정도 아주 인정사정 없어야 합니다. 대충했다간 며칠 숨이 더 붙어 있는 정도 밖에 안되죠.”

권총수는 이마를 찡그렸다.

누구보다도 권악수를 잘 안다.

회사 매각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매각도 영업이익이 없는 부실 계열사가 아니라 알짜배기에 가까운 것까지 과감하게 정리해야 그 진의가 제대로 채권단에 전달되어 지원을 받을 것입니다.”

뼈를 깎는 각오 없이 형식적인 계열사 몇 개 정리해봤자 소용없다는 뜻이었다.

“한국 정부에서도 천왕이 성의있게 뭔가를 보여줘야 자금을 지원하든지 하겠죠. 그런데 지금처럼 버티면 여러 면에서 불리 합니다.”

권총수는 차석준의 얘기를 귀담아 듣기 시작했다.

***

권악수는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러 갔다.

자리에 없다.

한국은행 총재와 식사 약속이 있어 나갔다.

제주도 금융인 세미나 참석중이라며 전화를 받지 않는다.

모두 일곱 번 전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은행장이 없다는 것이다.

핸드폰은 계속 통화중이다.

“회장님 원이사님 오셨습니다.”

비서의 목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이사로 승진한 원출도가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조 은행장은 여전히 얼굴도 보지 못했고 영업총괄본부장과 얘기를 나눠 보긴 했는데...”

원출도가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 현재로서는 더 이상 자금 지원이 어려울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 하더군요.”

“지랄한다 개새끼.”

권악수 입에서 차가운 욕설이 나왔다.

“지가 언제부터 백상은행 총괄본부장이 되었다고.”

권악수 입가로 냉기가 맺힌다.

지이잉!

그때 핸드폰이 울리고 권악수는 재빨리 터치했다.

“장변호사.”

“회장님 조 은행장을 찾았습니다. 오늘 저녁 강남 어군에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황수억 위원장과 식사 약속이 잡혔다고 합니다.”

“틀림없소?”

“틀림없을 것입니다. 제 라인(정보)도 쓸만 합니다.”

“알겠소. 수고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권악수가 거칠게 말했다.

“개자식이 오늘 저녁 어군에서 황수억 국회기획재정위원장과 밥을 처먹는다고 합니다.”

“직접 가실 것입니까?”

“왜요? 자꾸 피하니 내가 가봐야 하지 않겠소. 백상은행 돈이 전부 자기 것인 양 가오잡고 다니는 놈인데.”

웃고 있지만 두 눈은 섬뜩하다.

독이 바짝 오른 것이다.

어군은 언제나 화려했다.

이제는 참치 스시를 잘하는 식당이란 유명세에 더해 한국 사회 명사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사교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웬일로 마낙춘이 입구에 나와 있었다.

어지간한 손님들 앞에는 좀체 얼굴을 내밀지 않는데 정장까지 차려 입고 서 있는 것이 중요한 손님이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한 대의 차가 들어왔다.

주차장 입구에서 차는 멈췄고 뒷문이 열리면 쉰 중반의 사내가 내렸다.

짙은 푸른색 정장에 회색 꽃무늬 넥타이를 하고 금테안경을 썼다.

“어서 오십시오. 은행장님!”

마석춘은 다가오는 사내를 향해 허리를 구부렸다.

사내는 조만식 백상은행장이다.

“어허허!”

조만식은 너털 웃음을 지으며 마석춘과 악수를 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마석춘이 직접 안내해 데리고 사라진다.

그리고 5분여 뒤 또 한 대 승용차가 입구에서 멈췄는데 기사가 내려 재빨리 뒷문을 연다.

헐렁한 대머리에 배가 툭 튀어 나온 예순 중반정도의 검정색 정장을 한 사내가 내렸다.

조만식을 안내하고 돌아온 마석춘의 허리가 다시 구부려진다.

“위원장님.”

“마사장!”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 황수억이다.

“조 은행장은 도착해 계십니다.”

“내가 좀 늦었어.”

마석춘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 들어갔다.

그로부터 한 시간여 지난 뒤 벤츠 S클래스 한 대가 들어왔다.

벤츠 역시 주차장으로 가기 전 어군 앞에 섰고 두 사람이 내렸다.

권악수와 원출도였다.

앞에서 손님들을 안내하던 두 명의 여직원중 한 명이 재빨리 갖고 있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지배인님, 천왕 권회장님 오셨습니다.”

“권회장이, 가만 오늘 예약 없는데.”

“어서오세요 회장님!”

여자는 무전기를 내리고 공손하게 손을 모아 허리를 구부렸다.

“조만식 백상은행장 왔죠?”

여 직원이 머뭇거리자 권악수는 웃었다.

“뭘 그렇게 놀랍니까? 황수억 기회재정위원장님과 왔다는데 어느 방이죠.”

권악수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안쪽에서 지배인이 달려왔다.

“회장님!”

“지배인까지 뭘 그렇게 놀라요. 오늘따라 왜들 이래. 입구의 직원분도 날 마뜩찮게 보던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농담입니다. 사람 좀 만나고 갈 생각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보세요. 아 조 은행장 왔죠. 어디 있어요. 후원에 있나?”

권악수는 지배인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걸어간다.

술잔이 돌면서 두 사람의 얼굴은 적당히 달아올랐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대학교 선후배로 고향도 같다.

그러다 보니 지연과 학연이 겹친 이른바 밀어주고 끌어주는 끈끈한 관계인데 조만식의 백상은행장 임기가 곧 끝난다.

2번을 연임(4년)했는데 한 번 더 할 수 있도록 밀어달라는 것이 조만식의 의견이다.

재임 4년 동안 그다지 큰 사건 사고도 없었고 대체적으로 무난한 경영실적을 보였기 때문에 황수억이 약간만 힘써주면 2년 더는 어려운 일도 아니다.

“우리가 한두 해 술잔 나눈 것도 아닌데 너무 걱정하지 말게.”

“감사합니다. 선배님!”

“뭐가 그렇게 감사들 하십니까?”

드르륵!

음성이 들리고 문이 열렸다.

“권회장!”

두 사람 모두 놀란다.

권악수는 불콰한 얼굴로 올려다보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자리에 앉았다.

“소맥 하셨나봅니다.”

권악수는 황수억 앞에 있는 맥주잔을 자기 앞으로 가져다 놓더니 소주를 따랐다.

콸콸콸!

소주가 가득 채워진 맥주잔을 들어 벌컥벌컥 소리내어 마시는 권악수를 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화들짝 놀란다.

“커어!”

탁!

권악수는 술잔을 놓고 참치 회 한 점을 손가락으로 집어 입속에 넣는다.

“권회장 연락도 없이.”

황수억이 어색한 표정을 했다.

“위원장님께서 죽은 우리 친아버지가 청와대 주인으로 있을 때 그 밑에서 기획재정부 장관 하셨던가요?”

“그...그렇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위원장님 쪽에서 장관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왔는데 아버지께서 무척 고민 하셨죠. 남의 돈 떼어 먹을 줄 밖에 모르는 친구가 무슨 장관이냐면서 불편한 얼굴을 했죠.”

대구를 무대로 황수억 일가가 거느린 사업체가 작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금융권과 크고 작은 마찰을 피할 수 없었는데 그걸 말하는 것이다.

황수억의 표정이 굳어졌다.

“위원장님과 대학 동창인 어머니께서 소원 한번 풀어 주라고 하도 잔소리를 하셔서 아버지께서 사인했죠.”

“권회장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스윽!

권악수는 주머니에서 USB 한 개를 꺼냈다.

“여기에 들어 있는 것이 뭔 줄 아십니까? 고인이 되신 양부님께 정치자금 받은 사람들 명단이 들어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얼마를 주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죠. 아침에 대충 훑어봤더니 여야를 막론하고 오십여 명 되더군요. 어떻습니까? 위원장님께서 틈만 나면 새로운 정치, 건전한 정치를 외치시는데 이번 기회에 한 번 터뜨려 드릴까요?”

“이 사람 권회장.”

붉게 달아올라 있던 황수억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말을 좀 해봐. 나에게 서운한 것이 많은 모양인데 말을 해야 알지. 잔부터 받아요.”

황수억이 자기 앞에 놓인 소주잔을 권악수 앞에 놓는다.

탁!

그리고 소주병을 들었다.

팍!

하지만 권악수는 자기 손으로 건네준 소주잔을 덮었다.

“말을 할까요?”

“말을 해야 알지. 내가 독심술사도 아니고, 허허! 우리 권회장 왜 이러나.”

“좋습니다 하죠. 조 은행장, 나하고 한번 해보자는 거요. 천왕이 망하면 몇 놈이 길거리로 나 앉는 줄 아시오? 우리 직원만 20만 명이오. 딸린 식구들까지 계산하면 50만 명 계산합시다. 우리가 문을 닫으면 하청업체도 연쇄적으로 무너질 것이고, 제일 중요한 건 우리에게 대출해준 돈은 어디서 받을 생각이요?”

“회장님!”

“씨발, 왜 전화를 안 받냐고?!”

“그건!”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백상은행이 당신거야? 그 돈 조만식이 당신 것 아니잖아.”

“권회장 그만 해요. 진정하고.”

황수억이 달랜다.

권악수가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번호 하나를 눌렀다.

그러자 조만식의 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울린다.

핸드폰을 꺼내 보던 조만식이 놀라는 표정을 했는데 발신인이 권악수였다.

권악수는 전화기를 뺨에 대고 있다.

조만식이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자 권악수가 버럭 소릴 질렀다.

“왜 안 받냐고?”

“여...여보세요.”

탁!

받자마자 전화를 끊은 권악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행장님 전화 좀 받아 주세요. 네에?”

타악!

권악수가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권악수가 나가고 방안에 싸늘한 침묵이 된다.

콸콸!

이번에는 황수억이 맥주잔에도 소주를 가득 채우더니 단번에 비워 버렸다.

“죽일 놈!”

쾅!

내려치듯 놓는 술잔과 번득이는 황수억의 눈에 살기가 돈다.

“날 두고 한 소리야.”

“위원장님!”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는 재빨리 호칭을 바꿔야 한다.

“내가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아닌가. 얼마전 국회에서 천왕그룹에 대한 금융권의 지원책에 대한 토론이 열릴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무산됐지. 국회차원에서 지원하도록 압력을 넣으라는 거지. 자네에게 말이야.”

“권악수 회장 말대로 백상은행 돈이 제 것입니까? 나야말로 국회에서 결정된 사항에는 무조건 따라야죠.”

“위원장의 힘으로라도 반드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소리야. 그러면서 수틀리면 과거 권철악 회장과 교류했던 정치자금 내역을 까겠다는 것이고.”

주르륵!

이번에는 소주잔에 술을 채웠다.

“권철태 전 대통령이나 권철악 회장과는 전혀 결이 다른 놈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거야 말로 완전 양아치 새끼 아닌가? 아무리 막다른 골목에 몰렸어도 할 말이 있고 삼가야 할 말이 있는데.”

양아치가 위험한 이유다.

20만의 임직원과 딸린 가족, 거기에 하청업체까지 들먹인 건 국가를 상대로 협박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일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으면 이유야 어찌됐든 사회는 극도로 혼란해 질 것이다.

천왕그룹이 부도가 나면 당장 여론이 악화될 건 뻔하다.

내년 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집권 여당에는 치명적인 악재가 아닐 수 없다.

권악수는 그 점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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