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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12화 (412/651)

제412화: 천왕중공업(3)

차를 엄폐물 삼아 응사하던 네 명의 사내들이 일어나 다가오는 권총수와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거리가 가까워졌는데 권총수의 말처럼 두 명이 한국인인데 예상대로 천왕중공업이란 작업복을 걸쳤고 M4를 든 백인은 EXO소속 용병이었다.

“감사합니다.”

한국 사람이 먼저 인사를 했는데 권총수는 가스유전 공사 현장 감독일 것으로 판단했다.

제철모의 말에 의하면 어제 바그다드로 갔으니 대사관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일 것이다.

다른 한 명은 직원이자 운전사다.

“현장감독 강현장입니다. 사실 제철모 팀장의 전화를 받았죠. 사막의 흑새를 만나 영광입니다.”

사막의 흑새라는 말에 두 백인의 눈이 커졌다.

“현장 노동자 다섯 명이 끌려갔습니다.”

제철모는 일체 사건 내용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특히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는데 강현장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두 명은 한국인이고 셋은 이라크 현지인입니다.”

권총수는 묻지 않았다.

“끌려간 인질도 그렇지만 사망자가 7명이나 됩니다.”

강현장은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오민철이 묻는다.

“달러를 얻기 위한 범행일 텐데?”

강현장은 얼른 입을 열지 못했다.

대사관에서 회의를 했지만 뾰족한 대책은 아직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IS에게 어떤 식이든 협상이라는 건 통하지 않는다.

그냥 달라는 대로, 할 수만 있다면 조금이라도 깎아 교환하는 것 말고는 방법은 없다.

그들도 구석에 몰려 있는 만큼 매사가 이판사판이다.

“진퇴양난이라더니.”

현장 감독 강현장은 혼잣말 하듯 중얼 거렸다.

“서울에서조차 아무 말도 없고.”

서울에서 아무런 말도 없다는 말에 오민철이 반응했다.

“그게 무슨 얘깁니까? 서울에서도 특별한 주문이나 사건에 대한 어떤 언급이 없다면 지금 회사 차원에서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강현장이 웃었는데 착잡한 신색이다.

“어떡하죠? 서울 같으면 소주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목숨을 구해준 보답을 하고 싶었지만, 사방이 모래사막이고 더욱이 이슬람 국가인 탓에 술 한잔 마실 곳은 더욱 없다.

“조금 전 제 팀장이 두 분께 차를 대접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회사로 안내 하기가 조금 그렇다는 뜻이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럼 수고들 하십시오.”

권총수와 오민철은 강현장과 악수를 나눈 후 돌아섰다.

두 사람은 자신들 차로 돌아와 곧장 출발했다.

백악관의 발표는 권총수가 조사한 그대로였다.

용병으로 위장한 일본의 자위대 파병소식에 전 세계는 들끓었다.

특히 주변국의 반발은 그 강도를 더했다.

중국은 전범의 후손다운 교활하고 야비한 행위라며 직격탄을 날렸고 곧바로 유엔안전보장 이사회 개최를 요구했다.

뿐만 아니었다.

중국은 일본이름 센카쿠 열도, 중국 이름 댜오위다오로 불리는 동중국해 무인도 8개에 대한 본격적인 점령전쟁을 준비하겠다며 위협했다.

가장 반발이 심한 국가는 역시 한국이었다.

종전 이후 지금까지 일본과 끊임없는 역사 충돌을 빚어온 한국으로서는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일본이란 나라가 원래 저렇다.

겉으로는 한없이 친절한 듯 웃고 허리를 숙이지만 돌아서면 백팔십도 달라지는 완전하고도 빼어난 야만의 이중성을 가졌다고 맹비난했다.

평화헌법 아래서도 전쟁을 준비하는데 만약 헌법이 바뀌어 자위대가 정식 군대가 되면 아시아는 또 한 번 2차 대전의 먹구름이 덮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북한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일본총리는 연일 국제사회에 허리를 숙이고 사죄했다.

하지만 성난 국제 여론, 특히 과거 침략의 지배를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을 향한 거친 분노를 드러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난의 여론이 잦아들기는커녕 불길에 기름붓듯 국제여론이 험악해지자 갑자기 침묵 모드로 돌아섰다.

오히려 날마다 사과를 반복하는 것이 더욱 여론의 흥분을 불러일으킨다고 판단하여 어떤 비난과 비판에도 일절 응대하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다.

지금은 기다리는 것만이 최고의 대책이라는 것이었다.

* * *

블랙잭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이미 10기 훈련병들이 출소했지만 예비 병력은 여전히 부족했다.

그 만큼 보안시장에서 인기가 좋다는 뜻인데 블랙잭의 인지도가 날로 치솟는 배경에는 자위대 용병 위장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 권총수라는 것이었다.

‘사막의 흑새가 아니었다면 일본은 부지런히 자위대 병력을 용병으로 파견하여 과거에 못다 이룬 신 대동아공영권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사막의 흑새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보여준 일로 블랙잭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인기는 높았지만 여전히 용병들은 부족했고, 그렇다고 훈련 강도를 낮춰 합격자를 늘릴 수는 없다.

패배하면 사직서를 내고 그만 둘 수 있는 회사가 아니라 죽는 전쟁터이다.

처음에는 주춤 거렸으나 점차 블랙잭 취직을 목표로 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특수부대를 나올수록 합격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에 갑자기 특전사를 포함한 해군 유디티 씰등 이름 좀 있다는 부대는 지원자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그들이 선발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어 탈락자 발생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특수부대 지원에 떨어져 일반 보병으로 군에 들어간 사람들의 태도였다.

블랙잭에서 주안점을 두고 있는 체력과 사격 분야에 미치도록 매달린다는 것이다.

주말이면 소대별로 축구나 족구를 하던 군대의 휴일문화가 바뀌었다.

단체 운동 대신 달리기, 턱걸이, 줄잡고 오르기, 팔굽혀 펴기, 타이어 끌기, 빈 총을 들고 혼자서 사격자세를 다듬는 사격술 예비훈련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블랙잭이란 회사로 인해 우리 군의 질적 향상이 크게 눈에 띈다는 국방부 자체 조사가 발표되었다.

아무리 뛰어난 첨단무기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군인이다.

그 군인이 군인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을 때 결코 전쟁을 승리로 가져가지 못 한다.

군인의 생명인 사격과 체력 두 가지가 성장하자 나머지 다른 분야의 전투력까지 상승하는 시너지 효과를 불렀다.

손님을 만나기 위해 호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권총수는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한 회색바탕에 흰색의 희미한 체크무늬가 있는 정장을 한 서른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한국인이다.

권총수가 다가가자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권총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고 같이 자리에 앉는다.

“바쁘시죠.”

“그럭저럭 합니다.”

그러면서 사내가 갖고 있던 서류 봉투를 꺼내 밀었다.

권총수는 봉투에서 서류를 꺼냈는데 한 묶음이다.

겉표지를 읽고 잠시 몇 장 들척이는데 이마가 찌푸려진다.

그러더니 툭 던지듯 서류를 놓는 권총수를 보며 사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긋 웃었다.

“차 이사!”

“예 사장님!”

차석준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월가의 대표적인 헤지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소속의 펀드매니저다.

이곳의 대표는 제임스 사이먼스.

남들이면 헤지펀드업계에서 은퇴할 나이인 마흔살에 월가에 데뷔하며 돈을 빗자루를 쓸어 담았다.

월가의 전통은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이 판을 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썩기 시작했다.

그들의 투자가 손실을 가져오기 시작한 것이다.

안이한 정신 상태, 판에 박힌 투자 기법이 더 이상 시장에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바로 그때 등장한 사람이 제임스 사이먼스였다.

사이먼스가 들어오면서 뿌리박히듯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던 월가는 경영대학원 출신들의 놀이터라는 공식이 깨졌다.

그가 헤지펀드 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하버드대를 포함한 명문대의 이공계 출신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사이먼스는 과학자들까지 끌어 들였다.

위험관리와 정교한 파생상품 개발을 위해서는 수학적 두뇌가 뛰어난 사람이 필요하다.

또한 컴퓨터를 이용한 시장분석과 프로그램에 의한 데이터 있는 투자를 위해서는 이과생들이 훨씬 앞서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 제임스 사이먼스의 철학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철학이 맞다는 것을 실증해 보였다.

차석준 역시 하버드 응용과학대를 나왔다.

미국이름 조나단 차.

“난 방아쇠를 당기며 밥을 먹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런 복잡한 서류로 보고하지 말고 핵심만 알아듣기 쉽게 하라는 뜻이었다.

“천왕이라는 브랜드의 가치가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쌓아 놓은 가치도 크고 해서인지 적지 않은 헤지펀드들이 눈독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곳이 월가 펀드들이죠.”

권총수는 가만 앉아 차석준의 얘기를 들었다.

천왕그룹이 심상찮다는 소식을 맨 처음 들었던 건 아카스 가스유전공사 현장감독 강현장을 통해서였다.

시리아에서 돌아오다 우연히 만났고 천왕그룹의 전체적인 경영상태가 불안정하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러려니 했다.

사우디로 돌아와 그동안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빴다.

그렇게 석달쯤 지났을 때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상대는 채명천이었다.

회사문제로 통화를 하다 채명천이 갑자기 천왕그룹 얘기를 꺼냈다.

“심상치 않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채명천은 자신도 기업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는 알지 못하고 언론에 보도되는 것만 간추려 말했다.

권씨 일가를 덮친 죽음의 먹구름은 엄청났다.

사고냐 살인이냐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어쨌든 하루아침에 거의 멸문지화 수준에 이를 만큼 죽어나갔다.

그렇게 흘러가면서 천왕그룹의 모든 건 권악수의 수중에 떨어졌다.

권악수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야심차게 나갔다.

여러 가지 사건사고로 침체된 그룹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과감한 투자와 함께 특히 해외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의욕은 좋았다.

하지만 지나친 해외진출로 자금압박이 시작되었다.

즉 영업 이익을 내지 못하므로 인해 은행권과 채권자들을 상대로 자금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하나 같이 난색을 표한 것이다.

처음에는 거래은행에서도 흔쾌히 대출을 승인했지만 갈수록 영업실적이 저조하자 조금씩 돈줄을 죄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재무건전성에 심각한 의심이 전 금융가로 퍼지고 국회에까지 천왕그룹의 위험성이 알려졌다.

권악수는 거래 은행을 넘어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바라며 국회를 움직인 것이다.

그러던 중 자금 마련을 위한 무차별 회사채 발행에 금융당국이 경고에 나섰다.

한도를 제한해 버린 것이다.

거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천왕중공업의 분식회계가 들통 나면서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확실한 생존의 동아줄로 여겼던 국회에서까지 분식회계가 들통나자 천왕그룹 지원에 관한 특별법 발의가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고 서울에 진출해 있는 미국의 ‘에드워드 존스’증권 한국 지사에서 한 가지 비밀 문건을 만들어 세인트루이스 본사로 보낸 일이 있는데 그 문서가 외부로 유출되면서 발칵 뒤집혔다.

서류는 천왕그룹의 몰락을 예견하는 여러 가지 조짐과 현실적 징후를 기록한 것이었다.

‘지금 상태라면 버티기 힘들다’

그 한 줄이 국내 언론에 보도되었고 증권시장에서 천왕의 모든 주가는 폭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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