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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11화 (411/651)

제411화: 천왕중공업(2)

제철모의 눈이 커졌다

조심스럽게 시신으로 다가간 제철모 입에서 신음이 흘러 나온다.

“보이지 않아 납치되어 간 줄 알았는데.”

어금니를 물고서 한참을 내려다보던 제철모가 고개를 들어 또 한 명의 한국인 나시백 과장을 바라보았다.

같이 시신을 옮기자는 사인이다.

나시백이 다가왔고 두 사람이 시신을 움직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야 임마, 총 내려놓고 같이 해라.”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두 용병은 그제야 힘을 보탰다.

시신을 트럭 화물칸으로 옮겼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두 구의 한국인 시신이 더 있었다.

콸콸콸!

용병들은 갖고 있던 물병의 물로 손을 씻었다.

“지랄들 해요!”

그걸 보며 오민철이 피식 웃는다.

딸칵!

오민철이 담배불을 붙였다.

“형 담배 하나 줘.”

담배가 떨어진 듯 권총수가 손을 벌렸고 오민철은 갑째 넘겨 주었다.

담배 한 개비를 이로 뽑아 문 권총수도 불을 붙인다.

후우우!

연기가 열기 속으로 흩어진다.

“저어어!”

제철모가 다가왔다.

상의 작업복에 천왕중공업이라는 글씨가 시선을 끈다.

“저는 천왕중공업 아카스 가스유전 개발 제1팀장 제철모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윗주머니에서 명함한 장을 꺼내 권총수에게 내민다.

탁!

그러자 오민철이 가로채 명함을 읽더니 퉁명스럽게 물었다.

“뭔일 입니까? 조금 전 오면서 보니까 이십 여명이 총을 쏘고 난리 부르스를 치던데?”

“어후후!”

제철모는 길게 한 숨을 내쉬더니 눈을 빛냈다.

“이러지 마시고 저희 현장이 멀지 않으니 가서 시원한 커피 한 잔 하시죠. 6킬로 정도만 가면 됩니다.”

오민철이 권총수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뭐.”

제철모 일행이 자신들 차로 돌아가고 오민철은 꼼짝도 않고 담배만 피우는 권총수 눈치를 본다.

“마음에 걸리냐. 가지 말까?”

“객지도 아니고 타국인데.”

권총수는 담배를 버리고 운전석에 올랐다.

부르릉!

시동을 걸어 출발했는데 앞 차는 저 만치 가고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중장비들이 사막을 덮고 있었다.

천왕중공업 이라크 아카스 유전개발 현장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영어와 한글로 걸려 있다.

철조망 펜스를 쳐서 공사현장의 외부인 출입을 막았고 컨테이너 박스로 된 현장 경비실을 지났다.

근로자들의 숙소는 조립식 2층 건물로 지어져 있었는데 모두 3개동이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얼굴을 덮는다.

온 몸이 싸하니 가라앉으며 더위에 찡그러져 있던 오민철의 표정이 환해졌다.

“야아, 이게 얼마만에 맛보는 에어컨 바람이냐.”

“이쪽으로 앉으시죠.”

책상에 앉아 근무를 하던 직원들 모두가 낯선 한국인의 등장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았다.

두 명의 용병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제철모는 얼음을 띄운 믹스커피 두 잔을 가져와 내놓았다.

“드시죠. 나 과장도 앉아요.”

같이 있었던 사내 나시백 과장이 슬그머니 앉았다.

“소장님은 이번 사태로 어제 바그다드 가셨습니다. 대사관과 긴밀히 협조해야 할 사건이어서.”

제철모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 보려는 듯 이말저말 묻지도 않는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권총수와 오민철은 커피만 마셨고 제철모는 혼자 떠들다 지친 듯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두 분은?”

궁금할 것이다.

이 더운 사막에 여행객 같아 보이지도 않는 건장한 체구의 한국인이라니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한편 그때 구석진 곳에서 업무를 보던 젊은 남자직원의 눈이 빛났다.

그는 지금 컴퓨터를 보고 있었는데 터번을 두른 한 사내의 모습이 화면에 있었다.

재빨리 핸드폰을 잡은 남자 직원이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대리님 빨리 인터넷에 들어가 보세요.’

조금 떨어져 근무를 하던 서른 중반의 사내가 흘긋 남자 직원을 살피며 재빨리 알자지라 사이트로 들어갔다.

‘사막의 흑새 검색해 보세요’

대리라는 사내가 키보드를 때렸다.

‘사막의 흑새?’

탁!

엔터를 치는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터번을 쓴 권총수의 모습이 나왔는데 고개를 들어 세 사람이 앉은 곳을 바라본다.

‘맞죠. 저 사람 사막의 흑새?’

‘그런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은데가 아니라 사막의 흑새입니다. 잘 보세요’

‘그...그으래. 진짜’

대리라는 사내도 확신하는 듯 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사막의 흑새가 왔습니다. 저 사람 사막의 흑새가 맞아요. 인터넷 검색해 보세요’

십여 명의 직원들은 일하다 말고 일제히 사막의 흑새를 검색했다.

한편 권총수는 사무실 공기가 바뀌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직원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낸 것이다.

자신의 신분을 알았다면 권악수와 어떤 관계인지 쉽게 떠올렸을 것이다.

‘후훗!’

권총수는 속으로 웃었다.

조금 전까지 부드럽게 출렁거리던 사무실 공기가 이번에는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권악수와 권총수는 불구대천지수라는 걸 알고 모두가 긴장하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본다면 자신들의 적이 지금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때 제철모와 나시백이 동시에 핸드폰을 보았다.

그들도 권총수가 사막의 흑새라는 문자를 직원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과는 달리 제철모는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짐시 후, 제철모 입에서 놀라운 얘기가 흘러나왔다.

어제 오후부터 현장은 IS 공격으로 난장판이 되었다.

총 한 자루 없는 근로자들에게 말로만 듣던 IS는 공포 그 자체였다.

물론 한국에서 출발할 때 지원자에 한해서 뽑았고 IS에게 피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알렸지만 막상 총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뿔뿔이 도망쳤다.

만약을 대비해 대피소를 만들어 놨지만 소용 없었다.

IS의 공격 목적은 자금 마련이다.

“용병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기습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회사는 어딥니까?”

“이규제큐티브 아웃컴(EXO)입니다.”

“한심한 놈.”

갑자기 권총수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오민철 또한 한숨을 푹 쉬었다.

이규제큐티브 아웃컴, 일명 EXO는 남아프리카콩화국에 있는 보안기업이다.

블랙워터가 이라크 전쟁으로 등장한 2세대 보안기업이라면 EXO는 그보다 빠른 1세대 보안기업이다.

1990년대 중반에 첫 모습을 드러냈으나 열악한 장비와 용병들의 면면이 그다지 화려하지 못해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주로 아프리카의 돈 많은 족장들이나 독재자, 남미의 부호들을 상대로 경호와 경비를 하며 돈을 벌다 블랙워터를 중심으로 하는 2세대 보안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사세는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아직도 시장에서 활동은 하고 있으나 그다지 화려하지 못했다.

권총수가 화를 내는 건 어떻게 천왕그룹 같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아프리카의 삼류 보안기업에 경비를 맡겼느냐는 것이다.

“보나마나 싼값에 덥석 계약했겠지.”

오죽하면 아울렛 용병들이라고 부를까.

제철모가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회사 재정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우리도 용병시장의 몸값 등급에 대해 다방면으로 알아봤죠.”

“아무리 재정상태가 나쁘다고 천왕그룹 같은 대기업이 덤핑 용병들을 쓴단 말입니까?”

오민철이 빤히 보았다.

“국내 사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군요? 전반적으로 국내외 경기가 좋지 않습니다. 천왕 창업 이래 가장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죠. 그런데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치고 들어와 여기저기 들쑤시고...”

“헤지펀드?”

오민철이 그게 뭐냐는 듯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대학 나온 사람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순간 오민철의 인상이 굳어진다.

“아 진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철모가 빙긋 웃었다.

“노름꾼이야. 주식사서 뒷방 때리는 허가 난 꾼들.”

권총수가 제철모의 웃음에 답하듯 말하고는 커피를 마저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마셨습니다.”

권총수가 일어났으므로 오민철도 따라 일어났다.

“이런 인연도 있군요. 사막의 흑새라는 분을 만나고.”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돌아섰다.

직원들이 걸어나가는 권총수를 흥미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모래폭풍이다.

한두 번 경험 한 것도 아니지만 오늘은 더욱 거칠다.

“어마어마한데.”

파파팟!

쏴라락!

모래와 크고 작은 자갈돌들이 차량을 때리면서 결국 차를 세워야 했다.

자욱한 먼지로 앞을 볼 수 없다.

사막에서는 모래폭풍이 한 번씩 불면 있던 길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퍼억!

거대한 바윗돌 하나가 날아오더니 기어이 오른쪽 백미러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드르륵!

캄캄하다.

아니 누렇다.

거대한 먼지 지옥에 빠진 기분이다.

멈칫!

엄청난 모래폭풍 소음을 뚫고 총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상체를 숙이며 머리만 살짝 들어 올렸다.

총소리만 들려온 건지 아니면 총알이 날아와 자동차 어디에 박혔는지는 알 수 없다.

더욱이 자신들을 노리고 쏜 건지 다른 곳에서 싸우는 소린지는 더욱 알 수 없다.

차체가 흔들릴 만큼 거센 모래폭풍에 두 사람은 꼼짝 못하고 차에 있어야 했다.

타앙!

두두두두!

또 다시 총소리가 들려왔다.

“11시 방향!”

폭풍 속에서도 권총수는 총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정확히 짚었다.

“AK야.”

오민철은 소리만을 듣고 어떤 총기인지 단번에 간파한다.

모래폭풍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소나기가 지나가듯 순식간에 하늘은 파랗게 빛났고 태양은 이글 거렸다.

세상이 다시 맑아졌다.

두두두두!

“M4”

이번에도 오민철이 말했다.

“저기!”

멀리 차량 한 대가 서 있다.

“랜드로버야!”

“총 잡아!”

두 사람은 뒷좌석에 올려놓은 HK-416을 잡았다.

“누구지, IS 같기도 하고.”

권총수는 1킬로 가까이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단번에 간파했다.

“랜드로버에 탄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어. 두 명은 한국인이고 두 명은 백인이야.”

두 사람은 움푹 꺼진 낮은 도랑을 따라 뛰었다.

물 한줄기 보이지 않았지만 도랑이어서 일까 간간히 초록색 풀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척!

한참 달려가던 권총수가 재빨리 언덕에 엎드려 랜드로버 차량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차는 아예 작살났고, 잡히겠는데 저쪽이 숫자가 너무 많아.”

IS로 추정되는 사내들은 십여 명이 넘어 보였다.

전쟁은 화력이 앞서지 않으면 숫적으로 우세한 곳이 무조건 이긴다.

IS로 판단하는 사내들이 랜드로버를 향해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고 네 명의 사내들은 차를 엄폐물 삼아 맞서고 있다.

권총수는 재빨리 총을 조준하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이 울리면서 랜드로바를 향해 공격해오던 검정색 두건을 쓴 사내가 나동그라졌다.

타탕!

뒤이어 오민철이 방아쇠를 당겼고 이번에도 한 사내가 엎어진다.

기세 좋게 랜드로버를 향해 다가오던 IS가 멈칫하며 몸을 낮추더니 주위를 살핀다.

“쌍안경!”

쌍안경으로 이쪽을 살피고 있는 사내를 조준한 권총수의 오른손 검지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퍼억!

들리지 않지만 들릴 만큼 쌍안경이 박살나면서 사내 또한 같이 뒹굴었다.

타아앙!

네 번째 사내가 고꾸라지자 IS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간파한 듯 물러나기 시작했다.

상체를 숙이며 후퇴하는 IS를 향해 두 사람의 조준사격은 이어졌다.

두 명의 IS대원이 더 죽고서야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랜드로버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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