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10화 (410/651)

제410화: 천왕중공업(1)

맥보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당장 백악관에 보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알려지면 국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텐데요. 특히 중국을 비롯한 남북한은 물론 일본의 침략을 당했던 동남아 국가들이 가만 있을까요?”

맥보란은 마땅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은 모양이다.

필의 말처럼 카이로 대사를 거쳐 백악관 안보담당관에게 올리면 자기 임무는 끝난다.

중요한 건 백악관의 반응이다.

미국 정부야 말로 워낙 일본과는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걸 미끼로 큰 장사를 할 수 있는 좋은 건수이기도 했다.

미국 노동자를 위해 도요다 자동차가 플로리다나 텍사스주 어디쯤에 5만 여명의 인력 정도를 창출할 수 있는 부품 공장을 세운다던가, 캘리포니아 산 오렌지를 매년 십억 달러씩 향후 십년간 백억 달러어치 수입한다는 따위의 투자 발표를 해버린다면 미국으로서 당연히 이번 일을 덮어 버릴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난 백악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할 것입니다’

권총수의 마지막 말이 걸린다.

백악관에서 있는 그대로 발표하지 않고 앞서와 같이 일본과 어떤 막후 거래가 이뤄진다면 자기 입으로 떠벌려 버릴 것이라는 뜻이다.

사막의 흑새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내다.

더욱이 그는 한국인이다.

일본과는 여전히 격앙된 관계이고 양국 국민사이의 감정도 전후 최악이라는 것이 CIA분석이다.

“그래도 보고는 해야죠?”

“해야 하는데.”

백악관에서 뭉갰다가 만약 권총수가 러시아나 중국쪽에 정보를 귀띔해 버리면 미국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진다.

어차피 그런식으로 폭로될 것이라면 백악관이 털어 내는 것이 좋다.

과연 백악관은 그렇게 할까.

***

권총수는 오민철과 함께 국경을 넘었다.

이제부터는 이라크 땅이다.

좀 더 지름길로 가기 위해 안바르주 아카스 지역으로 방향을 잡았다.

길은 울퉁불퉁 하였고 절벽 길을 지나 들판으로 들어섰다.

밀 수확이 끝난 들판은 황량했는데 군데군데 양들이 마른 풀들을 뜯고 있었다.

멀지 않는 곳에 마을이 보인다.

길 좌우에서 마른풀을 뜯는 양들은 저 마을에 사는 누군가가 주인일 것이다.

마을 입구에 올리브나무가 서 있다.

굉장한 크기에 두 사람 모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족히 수백 년은 먹었을 것 같은데.”

오민철이 놀란다.

끼이이!

차가 멈추었다.

올리브 나무 아래 두 명의 노인이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앗쌀라 말라이쿰!”

두 사람이 손을 모아 가볍게 허리를 구부리자 노인들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할아버지 말 좀 묻겠습니다. 이 마을 이름이 뭡니까?”

오민철이 물었다.

“카카락 이오.”

“카카락!”

재빨리 지도를 펼쳤다.

하지만 지도에 나오지 않았고 오민철은 다시 묻는다.

“아카스까지는 얼마나 됩니까?”

노인은 손가락 다섯 개를 폈다.

“50킬로?”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민철은 그제야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50킬로면 길이 나쁘긴 해도 넉넉잡고 한 시간 30분이면 충분할 것이다.

거기서부터 바그다드까지는 고속도로가 닦여져 있다.

“앗쌀라 말라이 쿰!”

다시 인사를 하고 두 사람은 차를 몰고 카카락 마을을 통과했다.

물이다.

작은 물줄기지만 개천을 흐르고 있다.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알수는 없었으나 두 사람은 차를 잠시 세우고 계곡으로 내려가 손을 담갔다.

석회암지대에서 흘러 나온 듯 물은 희뿌옇긴 했는데 의외로 차가웠다.

“저 산쪽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데.”

오민철이 뽀드득 소리가 나게 손을 씻고 맞은편 산을 가리켰다.

손을 씻고 올라온 두 사람은 차에서 20여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밖은 41도지만 그늘 아래 들어오자 한결 더위가 수그러 든 기분이다.

두 사람이 담배를 피우며 작렬하는 사막의 햇볕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다.

두두두두두!

두 사람은 재빨리 자세를 낮추고 근처를 살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안바르주 서쪽에 위치한 이곳 아카스 지역은 한동안 IS가 지배했다.

기세 좋던 과거의 IS는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까지 군데군데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고 테러가 일어나긴 하는데 이지역도 그런 곳중 하나였다.

다다다!

총소리가 뜸하자 재빨리 오민철이 차로 달려가 뒷문을 열고 HK-416총을 가져왔다.

휙!

권총수를 향해 한 정을 던지고 자신은 나무 뒤로 숨는다.

콰아앙!

바로그때 엄청난 폭발음에 두 사람은 동시에 엎드렸다.

“RPG!”

엎드린 권총수는 중얼거렸다.

차를 노리고 발사한 건지 아니면 다른 곳을 노렸는데 잘못 조준되어 그런지는 모르지만 차량과 2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폭발했다.

폭발에 날아온 돌멩이에 유리가 금이가고 차량 일부가 우그러 졌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2시 방향!”

권총수는 작은 바위 뒤에 엎드려 2시 방향을 바라보았다.

산자락을 타고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타탕!

쿠쿠쿵!

“군인들 같지는 않고?”

오민철이 눈살을 찌푸렸는데 거리가 멀다.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만 행색으로 정체를 분별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권총수는 다르다.

두 눈이 밝게 빛나면서 내공이 주입되자 칠팔백 미터거리지만 바로 면전에서 보듯 환했다.

“용병들 같은데.”

오민철이 재빨리 권총수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일단 숫자는 많아 보이고.”

오민철이 중얼거렸다.

“M4, AK.”

M4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진영 보안회사들의 제식소총이고 AK는 남미와 아프리카계 보안회사들 제식총이라고 단정해도 무리는 없다.

“으음!”

“왜 그러는데?”

“IS야!”

“뭐?”

“진짜야.”

권총수의 두 눈은 활활 타올랐다.

“용병들과 IS가 붙었어.”

오민철은 눈살을 찌푸렸다.

위험하긴 해도 바그다드까지 가는 길이 잘 닦여있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선택한 길이다.

이라크에서 위험하지 않은 지역은 없다.

여전히 테러는 일어나고 있고 사회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항전은 지속되고 있다.

이것저것 따지면 갈곳 없다면서 이쪽을 택했다.

“조용한데.”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트럭 한 대가 멈췄어.”

오민철도 트럭이 일으키는 먼지는 봤으나 차종은 확인하지 못했다.

잠시 멈췄던 트럭은 사람들을 태우고 사라졌다.

전쟁은 길가다 붙는 시비가 아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뿐 아니라 정치와 종교적 문제가 치열하게 엉켜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일이 아니면 함부로 끼어들거나 개입할 수 없다.

뒷짐 쥐고 죽고 사는 치열한 살육전을 구경할 수는 있어도 어중간한 동정심 따위에 휩쓸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차가운 가슴을 지녀야 한다.

궁금하긴 했으나 더 이상 위험하지 않았으므로 차에 올랐다.

부르릉!

차가 다시 움직였고 오백여 미터도 가지 못해 갑자기 무전기가 울렸다.

두 사람이 사용하는 무전기는 맥보란측을 통해 아부카말 아스마 모스크, 일명 A지점에서 지원 받았던 것이다.

두 사람 만이 통화할 수 있는데 느닷없이 무전이 들어오자 오민철이 놀라는 표정을 했다.

무전이라는 것이 체계적인 통신기기지만 가끔은 다른 주파수가 걸려 들어오면서 엉뚱한 내용을 듣게 되기도 한다.

“지금 어딘데?”

“어랏!”

오민철이 깜짝 놀란다.

무전기에서 단번에 한국말이 튀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여긴 지부투 계곡입니다. 핏자국 말고는 없습니다.”

“수색대와 같이 있나?”

“예!”

“떠난지 30여분이 채 안됐으니 부지런히 추적하면 잡을 수도 있을 거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이라크 서북부 산간지역에서 들려오는 한국인의 음성은 묘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더 이상 무전은 들려 오지 않았고 권총수는 자신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형!”

권총수가 조금 전 치열한 교전이 일어났던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여기 아카스에 그 회사 있지 않아?”

“어떤 회사?”

“대규모 가스개발 한다고 언젠가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천왕중공업 말이야.”

“천왕중공업?”

“아카스에서 대규모 가스가 발견되었고 한국의 천왕중공업이 최종 개발회사로 낙점되었다는 알자지라 방송을 본 것 같은데.”

얘길하던 권총수의 시선이 왼쪽의 산을 향해 돌아갔다.

일단의 사람들이 조금 전 교전이 있었던 산을 넘어오고 있었다.

필시 지금 막 무전에서 들었던 수색대인 모양이다.

차량 세 대가 나타났는데 비록 거리가 멀지만 포드 익스플로러였다.

수색대는 산을 넘고 차량은 우회하여 도로를 따라 달려온 것 같았다.

차가 멈추고 사내들이 올라타고 앞서 IS트럭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뿌연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났다.

사라지는 차량들을 바라보고 있던 권총수는 다시 출발했다.

차안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흘긋!

오민철이 핸들을 잡고 있는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평소와 차이가 있다.

약간 굳어 있고 불편한 심기가 드러난다.

오민철은 담배를 물고 유리를 내렸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천왕중공업이라는 말에 신경이 쓰인 것이 분명했다.

최소한 오민철이 바라보는 시선은 그렇다

태양은 더욱 뜨거워졌다.

이글거리며 올라오는 지열은 보이지 않는 불길이 되어 천지 사방을 태우고 있었다.

끼이익!

잘달리던 권총수가 갑자기 차를 세운다.

왜 세우냐는 듯 오민철이 돌아 볼 때 권총수는 문을 열고 내렸다.

왼쪽 바짝 말라 버린 길 아래 개천에 한 사내가 엎어져 있었다.

“어어!”

조수석을 내려 온 오민철이 놀란다.

총을 맞은 듯 주변으로 핏자국이 선명했는데 엎어진 사내는 검은 머리카락이다.

잠시 시신을 내려다보던 오민철이 밑으로 내려가 잡아 당겼다.

털썩!

시신이 반드시 누웠다.

“빌어먹을!”

한국 사람이다.

어쩌면 중국 사람일 수도 있고 일본인 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이 한국 사람이라는 걸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는데 입고 있는 회색의 작업복이다.

‘천왕중공업’

왼쪽 가슴에 미싱으로 박은 다섯자의 글씨는 시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걸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그때 권총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흰색의 픽업트럭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차는 적당한 거리에서 멈췄는데 앞 뒤 문이 열리고 네 명의 사내들이 내렸다.

앞에서 내린 두 사람은 한국인으로 보이는 아시아계였고 뒷좌석에서는 M4를 든 백인 두 명이 내렸다.

한 눈에 용병이라는 걸을 알 수있다.

물론 소속은 아직 모른다.

툭!

용병들이 안전장치를 풀고 총을 겨눈다.

“핸스 업(Hands up:손 들어), 돈트 무(Don’t move: 움직이지마), 돈트 무, 돈트 무.”

움직이지 말라는 말을 반복하며 다가왔다.

“야 이새끼야. 재수 없게 어디다 총구 들이대는 거야. 총 치워 개새끼야”

오민철이 버럭 소릴 지르자 한국인으로 보이는 아시아계 남자가 말했다.

“한국인이시군요? 멈춰, 총 내려, 우리 편이오. 우리편.”

다른 한국인 사내가 재빨리 영어로 통역을 하자 두 백인이 총을 내렸다.

먼저 말을 걸었던 사내가 미소를 지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혹시 저쪽에서 댐 보수공사를 하는 대유건설 쪽?”

시리아 국경 부근에 있는 이라크 댐 보수공사를 대유건설이 맡고 있었다.

권총수는 대답하지 않고 뒤쪽 길 아래를 가리켰다.

모두가 고개를 돌렸고 시신을 발견한 한국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