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9화: 도륙(2)
한 사내가 하늘을 보고 누워 있었다.
복부에 수류탄 파편이 박혔고 어깨쪽에 피가 내를 이루며 흘러내린다.
“이런 우라질!”
권총수 역시 생존자가 있는지 텐트 밖을 살피다 오민철의 욕설에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야 쪽바리 네가 왜 여기 자빠져 있어?”
쪽바리라는 말에 권총수는 한 번에 날아갔다.
피를 흘리며 신음을 터뜨리는 용병은 나카야마였다.
“야 임마, 눈 떠봐. 나카야마. 눈 떠보라니까.”
권총수는 재빨리 혈도를 눌러 지혈을 하고 나카야마 몸을 거꾸로 뒤집어 엎고서 명문혈에 진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가장 효과가 빠른 방법이다.
내공 주입에 대한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창백하던 나카야마 안색이 불그스레해진다.
권총수는 명문혈에서 손을 떼고 나카야마를 반듯이 눕혔다.
후욱!
나카야마는 입에서 핏덩이 하나를 토해내더니 눈을 떴다.
움찔!
내려다보고 있는 오민철과 권총수를 발견하고 몸을 떨었다.
“미...민철, 캡틴!”
“야 어떻게 된거야? 네가 왜 여기 있냐고?”
오민철의 소리에 나카야마가 다시 피를 토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웃어? 이런 개 쪽바리새끼가!”
오민철이 버럭 소릴 질렀다.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올 줄 알았는데.”
나카야마는 다인코프를 떠날 때 이미 죽음을 예상한 모양이었다.
“야마 형!”
권총수가 불렀다.
“캡틴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쪽바리 미안할 짓을 왜 해? 일단 병원으로 가자. 아무리 시리아라고 해도 너 한 명쯤 살릴 수 있는 병원은 있을 거야.”
늦었다.
현대 의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복부에 수류탄 파편이 박히고 어깨에 총을 맞았다.
최소한 두세 발이 뚫어 버린 듯 상처가 크다.
오민철도 알지만 그냥 죽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워 내 뱉는 소리일 뿐이었다.
“연락이 왔어. 그것도 자위대 막료장으로부터.”
자위대 막료장이면 우리의 육군참모총장 격이다.
나카야마는 전 육상 자위대 이등육조(2等陸曹:중사) 출신이다.
이미 군복은 벗었지만 육상 자위대 막료장이 전화를 했다는 건 나카야마에게 영광이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마사요카 육상 자위대 대장은 한 인물을 만나 볼 것을 종용했다.
제7313부대장 사코오 대령이었다.
당시 사코오 대령은 카이로에 와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난 나카야마는 무슨 일인가 궁금했기에 곧바로 사코오 대령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갔다.
거기서 나카야마는 놀라운 얘기와 함께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7313부대 전술 교관이 되어 달라’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비록 자신이 실전 경험이 풍부하긴 하지만 특정부대 전술 교관으로 일한다는 건 파격적이었다.
그러면서 사코오 대령은 나카야마의 마음을 분명이 잡기 위해 가슴에 담겨져 있는 비밀 한 토막을 털어 놨다.
‘작전명 카인’
구약성경에 동생 아벨을 죽이고 하느님께서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내가 그걸 어찌 아느냐고 대답했던 형 카인.
이어진 카인 작전의 내용은 자위대로 하여금 실전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었다.
이어진 부대설명에 또 다시 놀란다.
7313부대는 미군의 네이비 씰과 같은 성격의 부대였다.
훈련과 장비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치명적인 약점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건 적과 교전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혹독하게 굴린다고 해도 훈련은 훈련일 뿐이다.
그런데 국제법과 국내법에 묶여 7313부대원들을 전장에 파견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한 가지 변칙적인 방법을 생각해 냈다.
7313부대원들을 민간 용병 신분으로 바꿔 전쟁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보스니아 내전에 소수를 참여 시켰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감이 들자 규모를 확대했고 일년 전부터 일본 보안기업 가미카제를 세운 것이다.
사코오 대령은 대일본제국, 후지산의 정신,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국방력 운운하며 참여하지 않으면 매국노가 되는 듯 몰아갔다.
일본의 국방비 증액은 해가 갈수록 점프했다.
당연히 과거 피해국들인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로부터 말들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후웁!
사코오 대령 얘기를 듣고 있던 나카야마는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사코오대령의 얘기는 노골적인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일본의 최종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했다.
일본은 아직도 대륙 진출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서 일본의 국방 예산이 널뛰었고 중국이 항공모함을 건조하자 언제든지 군함으로 이용할 수 있는 10만톤급 상선 다섯 척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말이 상선이지 외형과 시설물은 철저히 항공모함 수준에 맞춘 것이다.
섬 안에 갇혀서는 결코 국제사회의 리더가 될 수 없다.
“민철!”
나카야마의 오른손이 부르르 떨린다.
손을 잡고 싶지만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민철이 나카야마의 손을 꼭 쥐었다.
“넌 멋진 친구야. 나에게 민철처럼 멋있는 친구는 없어. 난 정말 민철이가 좋았다고.”
오민철은 울음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있었다.
“캡틴 미안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권총수는 눈을 감아 버렸다.
“고민 많이 했어. 어느 길이 바르고 정의로운 것인지.”
나카야마의 당시 심정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애국심을 자극하고, 대일본제국 하면서 과거의 향수를 건드리며 자존심을 압박했을 것이다.
자신이 보는 동북아 정세는 그냥 그럴 뿐이지만 정치인들이나 야망이 큰 군부에서는 다른 시선으로 볼 수도 있다.
은근슬쩍 이 기회에 국방력을 키우고 평화헌법을 바꿔 과거의 대 일본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다.
2차 대전처럼 타국을 침범하는 일본은 싫지만 중국이나 북한으로부터 공격 받을 것을 대비해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건 반대 하지 않는다.
거기에 자신의 힘이 미력하나마 도움이 된다면 거절할 큰 명분이나 이유가 없었다.
“야마 형!”
권총수가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모든 걸 이해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난 형의 마음이 어땠을지 충분히 알 수 있어.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말은 그렇게 했다.
떠나가는 나카야마의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해주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이 나카야마 입장이었다면 단호히 거절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과거에 타국을 침략 지배했고 또 다시 그런 야욕을 보인다면 무조건 뿌리쳤을 것이다.
“고...고마워!”
그 말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뱉으며 나카야마는 죽었다.
“쪽바리, 잘 가라.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어라. 우리 저승에 만나서도 총질하는 용병되자 개자식아.”
오민철은 부들거리며 흐느꼈다.
권총수는 잠시 몸을 돌리고 서 있더니 가슴을 진정한 듯 돌아섰다.
“형! 지금쯤 가미카제 용병들이 몰려오고 있을 거야.”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오민철이 일어나 한쪽으로 걸어갔다.
“어디가?”
“묻어는 줘야지.”
“안 돼 그럴 시간 없어.”
오민철의 눈이 순간적으로 발광했다.
분노한 것이다.
권총수도 그 기분을 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형 기분 이해해. 그런데 야마 형의 시신만 없어지면 배신자로 찍힐거야. 그건 야마 형을 두 번 죽이는 거야.”
듣고 보니 맞다.
오민철은 피가 나도록 주먹을 말아쥐며 뒤돌아섰다.
누군가 장례식은 산자를 의식한 요식 행위라고 했다.
그냥 묻든 화려한 꽃상여에 관을 태우든 죽은 사람은 살아나지 않고 전혀 행복하지 않다.
오직 산자의 세상적 비즈니스로 장례식은 행해진다.
그러나 마음 한 켠이 아려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SUV 한 대가 포도 농장을 따라 뻗은 길을 달리고 있었다.
운전대는 권총수가 잡고 있었는데 둘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포도 농장을 지나고 차도로 들어섰을 때 멀리서 닛산과 혼다의 SUV차량 십여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한 눈에 가미카제 용병들이 탄 차량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역시 포도 농장의 길로 들어선다.
“책임자가 아베라고 했지?”
권총수가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예상은 제대로 맞았다.
찰부르아 성당에 아베가 있었다.
여섯 명의 용병들과 같이 시신을 수습하며 현장을 수색하고 있었다.
범인이 누군지 몇 명인지 냉철한 눈으로 사건을 파헤치고 있는 것이었다.
성당 입구 못 미쳐 SUV가 멈췄다.
권총수와 오민철이 차에서 내렸는데 손에는 HK-416이 들려 있었다.
설마 다시 이곳에 나타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열려 있는 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선 두 사람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드르르륵!
한바탕 교전감도 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조준사격은 여섯 명의 용병을 단번에 나동그라지게 만들었고 권총수의 마지막 총성은 아베의 허벅지를 뚫어 주저 앉혔다.
오민철이 확인 수색을 할 때 권총수는 주저앉은 아베 중령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누군지는 알 것이고.”
권총수는 총구를 아베 머리에 댔다.
“난 군인이 아니기 때문에 애국심이 뭔지 잘 모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난 당신 나라 일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베는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다른 일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편이지만 한일전 축구에서 우리가 지면 화가 나서 견디지를 못하죠.”
치치칙!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무전기가 치직 거렸다.
“후지산 1, 여긴 후지산 2 응답하라.”
권총수는 무전기를 가져다 송수화기를 건네주었다.
“받아보세요.”
“후지산 1 여긴 후지산 2, 내 말 들리는가?”
“...말하라. 후지산 2.”
“몰살이다. 단 한명의 생존자도 없다 이상.”
탁!
권총수가 무전 송수신기를 가로챘다.
“후지산 2 내 말 들리는가?”
“잘 들린다 이상.”
“여기 있는 아베 중령님은 내 손에 있소. 후지산 2?”
“누구요? 사막의 흑새?”
“계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부드득!
대답 대신 송수신기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빠가야로!”
으르렁거리는 욕설이 들려온다.
“나와 만나지 않은 걸 감사하시오.”
타앙!
권총수는 상대로 하여금 들으라는 듯 아베 중령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아, 아베 이등육좌(중령)님?!”
“사요나라!”
권총수는 송수신기를 팽개치듯 놓고 차가 있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카이로 미국대사관 지붕으로 붉은 낙조가 덮이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넘었지만 맥보란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햇빛사냥!’
조금전 권총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정보를 들었기에 충격보다는 당황스러울 뿐이다.
“퇴근안하십니까?”
대사관 직원 필이 문 앞에 서 있다.
“해야지. 먼저 가지. 아 잠깐.”
필이 다시 돌아섰다.
“중요한 약속 있나?”
“아닙니다. 곧장 집으로 갑니다.”
그러면서 씨익 웃는다.
“들어와 잠깐 앉아보게.”
필은 주춤 거리며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드르륵!
맥보란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자네도 들었겠지. 가미카제 용병들 말일세.”
“일본 회사 아닙니까?”
“그렇지. 그런데 조금 전 믿을 수 없는 얘길 들었네. 용병이 아니라 그들 모두 자위대 현역군인이라네.”
“네에?”
필의 눈이 커졌다.
“중국군은 아프리카 동유럽 중남미에 파견되어 실전 경험을 쌓고 북한도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군사 고문단이라는 이름으로 시리아 내전에도 관여했고 이란과 많은 전술교류를 하지. 거기에 남한은 평화 유지라는 이름의 해외 파병을 하면서 은근 슬쩍 교전지역에 들어가기도 하고.”
“불안했던 모양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