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7화: 집단 거주지(2)
아부카말에서 가장 부자들만 사는 동네다.
그그긍!
차가 멈췄는데 저택 앞이다.
아부카말은 시리아 최고의 농경지대이다.
숲과 나무가 우거져 돈 많은 사람들의 휴양지로 많이 이용되는데 이곳 살바레의 주택중 상당수가 수도 다마스쿠스에 사는 부자들 소유다.
이슬람시대의 건축물로 보이는 저택은 언뜻 모스크로 착각할 만큼 육중한 돌기둥과 둥근 지붕을 하고 있다.
SUV가 들어가고 뒤이어 서버번도 그 옛날의 고성 같은 저택으로 사라졌다.
쿵!
철문은 굳게 닫힌다.
스르르르!
권총수가 골목 한 구석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머니에서 처음 타마르가 주었던 아부카말의 주요 시설물 위치와 이름을 적어준 약도를 꺼내 펼쳤다.
몇 번 물에 젖었는데 그때마다 말리기를 반복하여 종이는 쭈글쭈글했고 글씨는 번져 알아보기 힘들었다.
‘살바레 여깄군’
살바레란 글씨를 찾아 냈고 주위를 보았다.
‘찰부르아 성당!’
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즉 지금 차량이 들어간 저택이 과거 오스만 제국 시절 이지역을 다스렸던 정교회 소속 찰부르아 성당이었다.
중간에 일부가 크게 훼손이 되어 지금은 저택 수준이지만 본래 건물은 굉장히 컸다고 했다.
스르르!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 권총수의 몸이 순식간에 흐트러지며 사라져 버렸다.
다시 잠영술이 펼쳐 진 것이다.
오민철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권총수가 떠난지 1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다.
미행이 실패하여 어떤 화를 당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온전한 상태의 권총수를 죽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손에 총기까지 없다보니 초조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애꿎은 담배만 피우고 있을 때 권총수가 걸어오고 있었다.
“총수야!”
자신도 모르게 소릴 질렀다.
권총수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왔다.
오민철은 별일 없느냐는 듯 권총수의 위아래를 살폈다.
“뭣 좀 얻어 냈냐?”
“둥지를 찾았어.”
“본부를 알아냈다고?”
권총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아스마(Asma)는 아부카말 북쪽에 있는 모스크다.
하지만 내전으로 무너지고 지금은 폐허가 되어 방치되어 있다.
어둠이 내려앉고 아스마에 사람이 나타났다.
전쟁으로 오갈 곳 없는 노숙자들과 사막을 떠도는 보부상들이 가끔 찾아와 건물 잔해더미 속에서 하룻밤을 새우기도 하는데 오늘은 조용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손을 씻는 물을 담아둔 수반 역시 부서졌지만 일부 흔적은 남아 있었다.
드륵!
그때 나타난 사내 하나가 주위 돌 조각을 들어냈다.
놀라운 건 사람의 힘으로는 들수 없을 만큼 큰 바위덩이를 너무 쉽고 간단하게 들어냈다.
멈칫!
사내의 눈이 빛난다.
국방색 가방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더니 무너진 모스크를 벗어났다.
모스크 입구에는 출입자를 감시하는 또 한 명의 사내가 있었는데 가방을 메고 오는 사내를 보며 반겼다.
두 사내는 달려오는 택시를 세워 올라타더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호텔이지만 오층 짜리 작은 건물이었다.
그나마 아부카말에 있는 호텔중 가장 시설이 잘 갖춰진 곳으로 303호 문이 열리며 두 사내가 들어섰다.
객실 불이켜지고 들어서는 두 사람은 권총수와 오민철이었다.
둘은 들어서자마자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가방에는 묵직한 쇳덩이들이 들어 있었는데 권총수가 하나씩 꺼냈다.
크고 작은 쇳덩이들을 조립하자 두 자루의 총이 되었는데 HK-416이었다.
글록-19도 보였고 백달러 짜리 지폐도 수북했다.
두 사람은 장비를 꼼꼼하게 살피며 빠진 건 없는지 확인을 거듭했다.
아부카말에서 활동하는 CIA 블랙 요원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물론 맥보란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다.
자정이 넘었다.
화려했던 교회의 흔적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찰부르아 성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혼다 SUV 한 대가 멈췄다.
라이트와 시동이 꺼지면서 차는 꼼짝하지 않았다.
오민철이 사안식 야시경을 꺼내 쓰면서 중얼거렸다.
“진짜 감회가 새로운데.”
야시경을 써 본지 오래라는 듯 이리저리 자꾸 움직이며 조절을 했다.
“가자고!”
두 사람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잠시 높은 담장을 바라보던 권총수가 오민철의 허리를 한손으로 끌어 안더니 몸을 날렸다.
파앗!
80킬로의 거구를 한 손에 안고서도 새처럼 날아 오른다.
너무도 쉽게 담장을 넘어가 성당 안으로 내려섰다.
CCTV가 설치 되어 있었으나 촬영 영역을 훨씬 벗어난 높이로 날아 올라 버렸기 때문에 잡아내지 못했다.
오민철이 HK-416을 점검한다.
“다시 말하는데 최대한 사격은 자제해. 무슨 말인지 알지?”
권총수가 안으로 들어간 순간 오민철은 입구에 숨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일이다.
“걱정마!”
대문은 두꺼운 철문이다.
상태를 보면 옛날 것이 아닌 근래에 새롭게 설치 했음을 알수 있을 만큼 깨끗하다.
특히 손으로 열고 닫는 잠금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안에서 열어주거나 아니면 원격으로 문을 열고 닫는 장치를 차량에 싣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심을 해볼 수 있다.
권총수가 강조하는 건 대문의 시설이 개인이 아닌 단체나 차량을 이용한 출입에 목적을 두고 세워진 듯 하다는 것이다.
즉 대량의 차량과 병력이 들어오고 나갈 가능성이 높으므로 함부로 공격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신이 아직 빠져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에 방아쇠를 당겨 버린다면 일은 더욱 꼬인다.
아무리 단호하게 지시를 내려도 야전에서는 예상못한 돌발 사태가 발생하여 지휘관의 뜻과 무관한 결과가 왕왕 나온다.
이번만큼은 무조건 자신의 뜻을 따라 달라는 얘기였다.
“RPG 관리 잘하고.”
오민철의 등에 대각선으로 포탄이 장착된 RPG가 있다.
차착!
오민철은 다시 한 번 탄창을 살피더니 권총수는 향해 히죽 웃었다.
권총수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의 흔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내부는 완전히 사무실로 개조가 되었고 이층 고해소를 뜯어 숙소로 만들었다.
권총수는 일층 사무실을 둘러 보았다.
책상이 모두 다섯 개다.
즉 다섯 명이 업무를 본다는 것인데 관리는 한두 명 정도일 것이고 나머지는 현지 통역과 이른바 지사장, 또는 팀장으로 불리는 사람이 앉을 것이다.
사무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 끝에 문이 있다.
가정집 같으면 있을 수 없는 구조다.
일층 출입문도 이중 잠금장치였는데 숙소로 올라가는 계단 끝에 또 하나의 철문이라는 건 그만큼 외부인의 침입을 극도로 경계한다는 뜻이다.
일층 출입문 보다 더 단단한 철문이다.
착!
손바닥을 대자 잠시 후 손잡이 근처가 시뻘겋게 달아 오른다.
그으으으!
쇠가 달궈지며 조금씩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것이 녹아내리기 직전이다.
스르르!
철문이 힘없이 열리며 복도가 나타났다.
창문이 달린 외부 벽쪽으로 복도가 있어 밖을 볼수가 있었다.
왼쪽으로는 일정 거리로 출입문이 있는 것이 외인부대 시절 생활관을 빼닮았다.
씨익!
권총수는 자신이 예측이 맞았다는 듯 웃었는데 문 위쪽에 101, 102라는 숫자가 걸려 있었다.
끝까지 걸어가며 살피자 107호까지 있다.
문과 문 사이가 제법 거리가 있는 것이 한 곳에 20여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텅비었다.
인기척은 101호 한 곳에서만 들렸고 나머지는 조용했다.
스르르!
문이 열리지만 소리가 없다.
무형의 강기로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해 버린 것이다.
101호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선 권총수는 다시 한 번 만족스런 표정을 했다.
예상대로 1,2층의 침대로 스무 개가 있다.
지금 침대에는 모두 여섯 명이 자고 있는데 모두 일본인들이었다.
잠시 어둠속을 바라보고 있던 권총수는 벽에 붙은 스위치를 올렸다.
탁!
불이 켜지는 순간 잘 훈련된 군인들 답게 본능적으로 눈을 뜨고 일어났다.
그러다 입구에 서 있는 권총수를 발견하고 벽에 세워진 총을 잡으려 했지만 권총수는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드르륵!
총을 잡으려 했던 두 사내는 머리가 벌집이 되어 날아갔다.
“내 통제에 잘 따르셔야 삽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내 포로들이죠.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자다 일어난 네 사내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해 보인다.
눈을 부릅 뜬 사내, 도대체 뭔 상황이냐는 듯 옆의 동료를 돌아보고 어떤 이는 안색이 창백해 졌는데 실제상황이란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
누군가 힘에 겨운 신음을 흘린다.
상대가 권총수라는 걸 알아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생활관이 텅 빈 것을 보면 작전을 나간 듯 보이는데 나머지 병력은 몇시쯤 들어오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권총수는 부드럽게 웃었다.
“내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건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포함이 됩니다.”
가미카제 용병은 두 개 부대로 나눠져 있었다.
하나는 강 건너 유프라데스강 동쪽에서 시리아 반군과 쿠르드 민병대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다른 한쪽은 아부카말 시내의 치안을 맡고 있다.
병력의 규모는 반군과 쿠르드 민병대를 상대로 교전중인 곳이 일백 여명이며 치안을 맡는 쪽은 육십 여명 된다는 것이 지금까지 입수한 정보다.
지금 이곳은 그 두 세력과 교전을 벌이는 일백 여명의 인물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판단했다.
시내 치안은 네 명씩 이뤄진 각 팀들끼리 숙소생활을 하며 이미 경험했다.
강건너 병력도 대부분의 전투는 야간에 이뤄지고 더운 낮에는 거의 휴전 상태이기 때문에 새벽이 되면 최소한의 병력만을 남기고 철수한다는 것이 타마르의 귀띔이었다.
“대개 몇 시쯤 귀대하죠?”
여전히 침묵이다.
타아앙!
탕!
연속 두 발의 총성이 울리며 두 사내가 침대 밑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제 남은 건 두 명이다.
타앙!
다시 총구가 불을 뿜었고 한 명이 엎어졌다.
홀로 남은 사내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며 권총수는 미소를 지었다.
나카야마를 통해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일본인들은 유난히 사무라이 정신을 강조한다.
언젠가 나카야마를 통해 사무라이 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야유하듯 물었지만 대답하는 나카야마는 진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명예와 인격수양, 그리고 충성을 지켜내는 것’
권총수의 미소는 바로 그것이었다.
배신을 해도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당신의 그 잘난 사무라이 정신은 지켜지는 셈 아닌가
그러니 어서 말해 봐라.
“다섯 시를 전후해서 들어온다.”
“인원은?”
“낮이라고 해도 만약을 대비해 삼분의 일은 작전지역에서 매복하고 있다.”
“3분의 2라면?”
“60여명 정도!”
사내는 힘들게 말했다.
결코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무라이라면 죽어도 보여서는 안될 조국을 배신하고 있는 것이다.
권총수는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사내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더니 천천히 돌아섰다.
도와 주었으니 죽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등 뒤로 부터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무척 잔인한 사람이군요?
권총수가 돌아섰다
“무슨 얘긴지? 난 내 질문에 대답한 당신에게 성의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살려주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사내의 입가에 마른 미소가 스쳤다.
“살려줬다? 맞소. 살려 준거지. 하지만 모두 죽고 나 혼자 살아 있으면 내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 하겠소?”
“글쎄.”
결코 몰라서 글쎄라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날 배신자로 단정할 것이 뻔합니다. 어린아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죠. 하물며 당신처럼 전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모를 리는 절대 없지요?”
권총수는 피식 웃었다.
“당신은 죽여달라는 말을 무척 어렵게 하는군.”
탕!
권총수는 정확히 심장에 총알 한 개를 박아 넣었다.
사내는 죽었으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분명하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