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6화: 집단 거주지(1)
두 사람은 양떼를 이끌고 사막을 걸었다.
권총수도 말이 없고 에베르 역시 가끔씩 흘긋 눈치만 살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마음에 걸리는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모조리 죽일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느냐 이런 생각이시죠?”
에베르는 부인하지 않는다.
“살려줘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
“사람들의 마음이 에베르 같기만 하면 세상은 참으로 살아 볼 만한 곳일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르.”
권총수는 새끼양 한 마리를 품에 안았다.
권총수는 가슴에 안은 새끼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삭초제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풀을 뽑을 때는 뿌리가지 제거해야 다음 해에 싹이 돋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저들을 살려두면, 인정에 의해 몇 사람 살려준다면 과연 그들이 에르베를 가만 놔둘까요. 에르베를 납치하고 남의 귀한 재산인 양을 허락 없이 죽였어요. 그런 사람들이 내가 살려준다고 감사해 하며 개과천선하리라 보지는 않겠지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권총수의 행동은 자신과 손자 술탄을 위한 것이다.
애지중지하던 양을 잡아먹고 자신을 끌고 갈 때는 정말 미웠고 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권총수에게 걸려 무기력한 모습을 보자 측은한 마음이 든 것이다.
권총수의 설명에 다소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신과 손자 술탄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징벌이었다는 말이 고맙다.
외부와 통화를 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전화를 이용하는 것과 직접 만나야 할 사람을 찾아 가는 것이다.
만나야 할 사람은 멀리 이라크와 카이로에 있기 때문에 후자는 곤란하고 결국 전화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게 또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에르베는 전화가 없다.
유선전화도 없고 핸드폰도 갖고 있지 않았다.
방법은 아부카말 시내로 나가 시청 앞에 있는 공중전화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슥!
사정을 들은 에르베가 공중전화 카드 한 장을 주었다.
할 수 없다.
권총수는 카드를 받아 들었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에르베를 따라 나섰다.
10킬로 상류에 다리가 있으나 너무 멀기 때문에 여기서 배로 강을 건너는 것이 빠르다고 했다.
술탄이 고기잡는 작은 나룻배에 올랐다.
에르베는 여유있게 노를 저으며 삼백 미터가 넘는 강을 잠깐사이에 횡단하여 맞은편 아카시아 나무 아래 내려 주었다.
“조심하시오.”
에르베는 손을 들어 보이고 다시 강을 가로질러 갔다.
버스는 두 시간에 한 대씩 온다고 했다.
버스가 올 때 까지 지나가는 차량이 있으면 태워달라고 손을 들어볼 생각이다.
역시나 이슬람 복장을 했지만 건장한 사내 둘이라는 게 마음에 걸린 듯 태워주겠다고 멈추는 차량은 없었다.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났다.
지친 두 사람은 담배를 피우면서 여전히 손을 들었다.
그런데 때마침 뿌연 먼지를 날리며 빈 택시 한 대가 달려와 멈췄다.
“알라후 아크바르!”
차에 오르자마자 오민철은 큰소리로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듯 말했다.
운전사는 젊었다.
구레나룻에 짧은 머리를 했는데 두 사람을 보며 웃는다.
“어디 가십니까?”
“카부아말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 길입니다.”
“차가 없으면 다니기가 힘들죠. 걸어서 다니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택시비는 이천 파운드만 받겠습니다.”
아마 자신들을 태울 목적으로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장거리 손님을 태워다 주고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에 비싸게 받지 않겠다는 뜻 같았다.
권총수는 대꾸 없이 미화 백달러짜리 지폐를 건네주었다.
“흐윽!”
끼이익!
운전기사가 너무 놀라는 바람에 하마터면 택시는 길 아래 강으로 처박힐 뻔했다.
“받아요. 고마워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폐 아니므로 잘 보관했다가 작은 액수로 만들어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알라후 아크바르!”
운전사는 감동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연거푸 마른 침을 삼키면서 룸미러를 통해 쉬지 않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말이 통할수도 있다’
운전사의 말투나 여러 행동거지에 비춰 권총수는 과감한 시도를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전화 한 통 쓸 수 있을까요. 물론 통화료는 지급 하겠습니다.”
차량 앞부분 어디에도 핸드폰을 위한 설치대와 기능장치 따위는 없었지만 질문을 던졌다.
“사용하시죠!”
사내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주었다.
“앗쌀라 말라이쿰(평화가 그대와 함께 하기를).”
권총수는 그런 사내에게 두 손을 모아 진심으로 빌어주며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특히 운전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일이 꼬이고 또 꼬여 운전사가 시리아 보안국이나 가미카제에 붙잡혀 가도 통화흔적을 보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번호는 지운다고 해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포렌식)통화 상대가 드러난다.
하지만 그들이 권총수의 정체를 파악했을 때는 이미 시리아를 떠났을 것이다.
어쨌든 짧은 한 통화로 모든 걸 끝내야 하고 가급적 상대의 신분이 드러날 만한 이름을 부른다거나 특정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위험한 전화라는 걸 아는 오민철도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누구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까.
“한국보다는 CIA가 더 안전하지 않을까?”
이런 국제적인 문제는 한국보다는 미국을 방패로 삼는 것이 더 좋다는 오민철의 말이었다.
곧바로 전화기를 눌렀다.
모르는 전화로 걸 때는 이쪽의 신분이 안전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약속 된 신호가 있다.
두 번 걸어 모두 끊는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오랫동안 기다린다.
“누구요?”
“맥!”
“캡틴?”
소스라친다.
“아부카말 A지점, 장비지원 바람.”
끝났다.
권총수는 바로 끊고 번호를 지웠다.
“감사합니다!”
간단한 통화에 운전사는 흡족한 표정을 했다.
그 사이 차는 어느새 아부카말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운전사로 인해 예상치 않게 전화 통화를 하였으므로 더 이상 시청 앞까지 갈 필요는 없다.
“저기서 세워 주시죠.”
“시청까지 간다고 하셨잖습니까?”
“아닙니다. 여기서 그냥 내릴게요.”
택시가 길 오른쪽에 멈춰서고 두 사람은 내렸다.
택시기사는 기분이 좋은 듯 몇 번이고 앗쌀라 말라이쿰을 연발했다.
부우웅!
사라지는 택시를 잠시 바라보던 권총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형 저기?”
권총수가 가리키는 곳은 식당이었다.
“식사 하고 가죠?”
“오케이!”
오민철이 씨잇 웃는다.
도대체 얼마 만에 갖는 식사다운 식사인지 모른다.
그동안 권총수의 몸이 불편하여 뭔가 먹고 싶다는 식욕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배고픈지도 몰랐고 모든 신경이 권총수의 쾌유에 쏠려 있었다.
이제 마음이 안정된 탓일까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침이 돈다.
“쌈싸(빵속에 양고기 넣는 것)하고 샤슬릭(양고기 꼬치), 총수 넌.”
종업원이 다가오자 오민철이 기다렸다는 듯 메뉴를 주문했다.
“나도 같은 걸로 먹지 뭐!”
종업원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식당에는 십여명의 다른 손님들이 앉아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민철이 정수기로 다가가 물 두 컵을 받아왔다.
두 사람이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일 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권총수는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두 명의 사내가 모자가 달린 코트형태의 젤라바를 걸치고 들어섰는데 아시아계였다.
두 사내는 식당 안을 대충 둘러보더니 창가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권총수는 오민철을 쿡 찌르며 턱으로 사내들을 가리켰다.
창가에 앉은 두 사내를 보며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저 자식들 쪽바리 아냐? 쪽바리 같은데.”
오민철은 단번에 사내들의 정체를 파악했다.
이상하게 일본인에 대한 구별능력이 뛰어난 오민철이다.
다인코프 시절 카이로에 쇼핑을 나갔다가 관광객으로 보이는 일단의 사람들을 보더니 일본인들이라고 했다.
일장기를 든 것도 아니고 말을 하면서 떠든 것도 아니다.
일본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말이 없다.
단체 관광객인데도 조용했다.
그렇지만 오민철은 단번에 쪽바리들이라고 짚어 냈다.
물론 권총수도 직감적으로 일본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은 했으나 오민철 만큼 확신하지는 못했다.
“머리를 봐.”
오민철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가미카제(자위대)용병 두발 형태의 짧은 스포츠 머리였다.
파팟!
권총수의 눈이 빛난다.
그러고 보니 두발 상태가 눈에 익다.
역시나 사내들은 조심스럽게 일본말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식사가 나왔고 두 사람은 먹기 시작했다.
양 꼬치를 입에 넣고 한 점 씹으면서도 권총수의 청각은 두 사내에게 집중 되어 있었다.
다른 손님들이 떠들어 대는 바람에 오민철은 두 사내가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들을 수 없다보니 오로지 권총수의 표정만 살폈다.
권총수의 표정의 변화에 따라 두 사내가 뱉어낸 말의 무게를 짐작할 뿐이다.
“이등 육조, 삼등육조?”
권총수가 중얼거리며 그게 뭐냐는 듯 오민철을 본다.
오민철이 목소리를 깔았다.
“이등 육조는 우리 계급으로 중사, 삼등육조는 하사야. 저 개자식들 확실히 가미카제 용병들이 분명해.”
갑자기 밥맛이 떨어졌다.
적이 지금 식당 안에 있다.
그날 죽지 않은 건 자신들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어떤 작전을 펼쳐 기사회생 한 건 더욱 아니다.
모든건 운이었다.
대전차지뢰의 폭발 앞에서 등봉조극의 극강한 내공을 지닌 고수도 어떤 해결책이나 대비를 할 수가 없었다.
가공할 현대 과학 앞에서는 그저 파편에 맞고 폭발에 날아가고 강물로 쳐박히는 일 말고 할 것이 없었다.
살아난 건 오로지 운이었고 술탄의 도움이었다.
권총수는 꼬치 한 개를 통째 입에 넣고 씹었다.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침이 넘어가던 음식이 자갈 씹는 기분이다.
두 사내가 식사비를 계산하고 가게를 나간다.
“형은 밖에서 기다려.”
“넌!”
“따라가야지.”
워낙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동하는 사내들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식으로 이동할지 모르므로 오민철은 미행에 참여시키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오민철 또한 권총수의 속마음을 알기 때문에 다른 소리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권총수는 문을 열고 나갔다.
두 사내가 탄 닛산 SUV가 막 출발하고 있었다.
도로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시내에서 운행하는 차량 정도는 얼마든지 따라 붙을 수 있다.
스윽!
권총수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잠영술이 펼쳐 진 것이다.
바람의 한 자락처럼 앞서가는 차를 따라 날아갔다.
‘푸훗’
권총수가 웃음을 지었다.
한 대의 차량이 따라오는데 쉐보레 서버번이다.
서버 번에는 두 명이 타고 있는데 역시 무슬림 복장이지만 일본인이었다.
식사를 했던 사내들이 탄 닛산 SUV는 강 건너 아부카말의 구도시로 향하는 멤논 다리 오른쪽으로 빠졌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밑으로 빠진 SUV는 포플러와 대추야자나무등이 빼곡한 주택단지로 들어섰다.
아부카말의 다른 곳과 달리 십년 내전이 있었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깨끗했다.
포장한지 오래된 듯 아스팔트의 그어 놓은 차선이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노면에 전쟁의 자국은 없다.
주위 주택들도 크다.
대부분 현대식이었지만 일부 주택은 마치 로마시대 때부터 이어온 듯 누르스름한 석벽으로 지어져 있었다.
‘살바레’
이정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