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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04화 (404/651)

제404화: 복귀(1)

만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근처 주민들로부터 전화는 쏟아졌지만 상금을 노리는 아니면 말고 식의 신고가 대부분이었다.

딸칵!

창문을 열었고 환풍기까지 틀어놨지만 사무실은 담배연기로 가득했다.

사흘에 한 갑 정도 피우던 아베도 입에서 담배를 놓지 못했고 나카야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관리 업무를 보는 유일한 직원인 오카자키도 일손이 잡히지 않는 듯 멍하니 앉아 있다.

상금 욕심에 불이 날 만큼 울려대던 전화벨도 뜸해졌다.

그때 전화가 온 듯 아베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부동자세로 받았다.

“이등육좌 아베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대장님!”

나카야마는 부대장이라는 호칭을 듣고서 상대가 7313부대장 사코오 일등육좌(대령)라는 걸 알았다.

아베는 열심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색에 대한 보고를 했다.

“백퍼센트 죽었다고 확신합니다.”

아베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나카야마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백퍼센트’

현역 군인이자 일본이 비밀리에 키우고 있는 특수부대 7313 레이더스부대이다.

지금은 대대급이지만 조금씩 늘려 2개여단급 규모로 발전시킨다는 것이 최종 목표란 얘길 들었다.

자신이 봐도 전쟁 수행능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건 사격이었다.

대단했다.

용병생활을 하면서 세계적인 특수부대 출신들과 숱한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7313부대원들과 어렵지 않게 비교 평가 되었다.

오히려 사격 하나만 놓고 본다면 앞섰다.

물론 씰이나 델타포스 SAS출신들 모두가 현역을 제대한지 오래됐고 민간인이다 보니 군인들처럼 엄격한 통제와 질서가 아닌 무절제한 생활에 노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몸에서 나오는 능력이 현역 때와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7313 부대원들의 사격술 하나만큼은 빼어났다.

“커피 하시겠습니까?”

아베가 커피머신을 돌리며 물었다.

“주시죠.”

나카야마는 담배를 끄고 나무 의자에 앉았다.

“나카야마 이등육조(중사)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 번도 나카야마씨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이는 나카야마가 두 살 많지만 계급은 아베가 이등육좌(중령)이니 높다.

그러나 나카야마는 민간인이다.

그런데도 용병으로의 활동을 군대생활의 연속으로 보기라도 하는 듯 존칭은 없고 가끔은 반말을 하기도 했다.

“드시죠!”

두 개의 머그잔에 커피를 담아왔다.

나무로 된 둥근 원탁을 놓고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사람이 살아 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자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건 자신이 조금전 전화기에 대고 호언했듯 권총수가 죽었다고 믿는데서 오는 확신이다.

“글쎄요!”

“왜 이러십니까? 설마 죽지 않았다고 믿는 건 아니시겠죠?”

“글쎄요!”

나카야마는 커피를 마셨다.

죽기를 바란다.

죽었으면 좋겠다.

누구보다도 사막의 흑새가 죽기를 간절하게 소원하는 사람이다.

이렇게까지 공격을 당했는데 다시 살아난다면, 아니 죽지 않았다면 그 후환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럴 리는 없지만 살아난다면 가미카제 용병중 단 한 명도 고향땅을 밟지 못할지도 모른다.

눈을 떴다.

흐릿하던 시야가 금세 밝아졌고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천장에 달린 백열전등이다.

딱딱한 바닥을 손으로 더듬자 까칠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단번에 양탄자라는 걸 알아차렸다.

양탄자가 바닥에 깔렸다는 걸 확인하면서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양탄자를 깔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이슬람문화권이 대부분이고 자신은 시리아에 들어와 있다.

“우욱!”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는데 목뼈가 부러진 듯 아프다.

그렇다고 뼈가 부러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권총수는 몸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으음!”

신음을 흘리면서도 살았다는 생각에 잠시 가슴이 시원해졌다.

숨만 쉬면 된다.

등봉조극에 올라선 내가고수는 시간이 걸릴 뿐이지 무형지독이나 좌도방문의 사술에 걸려들지만 않았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할아버지 아저씨 눈떴어.”

말똥말똥한 눈으로 소년이 내려다본다.

“너 이름이 뭐지?”

“술탄!”

“술탄?”

“아저씨 이름은 뭐에요?”

“총수, 권총수.”

“권총수.”

소년의 미소가 맑다.

“어떻습니까?”

늙수레한 음성이 들리며 비쩍 마른 노인 한 명이 다가와 앉았다.

“나는 에르베요. 당신을 살린 사람은 우리 술탄이라오. 녀석이 밤중에 그물을 치러 강에 나갔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당신을 구했답니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알라후 아크바르.”

에르베와 술탄이 동시에 마주 인사를 했다.

“다른 사람은? 나와 같이 있던 사람?”

꿀꺽!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된다.

“헛간에 누워 있지요. 당신의 상태가 더 안 좋아 방에 눕혔답니다.”

“아아아!”

권총수는 길게 숨을 내 쉬었다.

잠깐 사이였지만 너무 두렵고 무서워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당신 혼자였소.

동행한 사람은 죽었소.

하는 말이 흘러나오면 어떡하나 싶었다.

‘훗훗’

억지로 웃었다.

오민철이 살아 있다는 말, 그것도 자신보다 부상이 심하지 않다는 얘기에 갑자기 울컥했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는 건 왠지 민망할 듯 싶어 재빨리 웃음으로 바꾼 것이다.

총알 한 방 맞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상은 굉장히 심했다.

모든 건 대전차지뢰였다.

땅속에 매설하여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수많은 폭발물 중 대전차지뢰가 가장 우위에 있다.

전차는 쇳덩이다.

무게만 평균 60톤을 넘는 거대한 전차를 완전히 뒤집고 차체를 짓이기듯 부숴버리는 폭발력이란 사실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런 무시무시한 폭발 속에서 살아났다는 자체가 기적이긴 하지만 몸이 너무 많이 다쳤다.

권총수는 끊임없이 운기를 시도했다.

아무리 내상이 깊어도 운기조식만 할 수 있다면 내상은 치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발의 충격으로 입은 경락 곳곳이 훼손되고 뒤틀리며 폐기(廢氣)에 막혔으며, 임맥과 독맥의 연결도 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작되는 운기 시도는 해질녘에야 끝난다.

강호무사의 내상은 현대적 방법으로는 치료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같은 수위의 내가고수가 펼치는 추궁과혈이라거나 명문혈을 통해 불쏘시개가 될 만큼의 전이대법을 통한 내공 주입, 그것도 아니면 희대의 영약을 복용하는 등 방법이 극히 제한 적이다.

오민철은 지금와서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야 말로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는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었다.

매일 일어나 내상 치료를 위해 몸부림 치는 권총수를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 힘들다.

진즉 가르쳐 줄 때 좀 더 깊이 배워 둘걸 하는 후회로 하루를 보낸다.

“내가 가서 약을 좀 구해올까 싶습니다.”

보다 못한 소년 술탄의 할아버지 에르베가 오민철에게 다가왔다.

“저렇게 땀을 흘리며 고생을 하는데 지켜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

뜨거운 사막의 열기를 온 몸으로 맞으면서 하루 종일 결가부좌 하고 있는 권총수를 더는 못 보겠다는 듯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속옷 한 장만 걸치고 집에서 조금 떨어진 넓은 공터에는 작은 바위 하나가 있었는데 그 위에 앉아 있다.

권총수의 몸을 흐르는 내공은 극양의 기운이다.

양(陽)은 양(陽)으로 다스려야 한다.

사막의 강한 햇볕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양기이며 깔고 앉은 바위에는 철을 비롯한 여러 광석이 들어있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 또한 회복에 굉장한 플러스가 되는 것이다.

에르베의 눈에는 그늘이라도 찾아 들어가 하지 꼭 저렇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감사한 말씀이고 염려입니다만 최소한 저 사람에게는 저 방법이 가장 적절한 것입니다.”

강호에 대해 알지 못하는 에르베는 고개만 갸웃 거릴 뿐이었다.

오민철은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앉아 있는 권총수를 쳐다보며 또 다시 후회의 한숨을 내 쉰다

착잡한 마음에 담배를 물고 대추야자나무 아래 그늘에 앉았다.

“아저씨!”

술탄이 다가왔다.

그의 나이 올해 아홉 살이다.

얼마 전까지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스스로 그만 뒀다.

또래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쿠르드계라는 이유를 들어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와 고기 잡으면서 장차 유프라데스강 최고의 어부가 되겠다는 것이 술탄의 꿈이다.

“아저씨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이에요?”

오민철은 빙긋 웃으며 술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술탄!”

“네 아저씨!”

“내가 보기에는 할아버지와 물고기 잡는 것 보다는 차별이 있어도 꾹 참고 학교를 다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너의 생각은 어떠니?”

“할아버지도 물고기를 잡는 것 보다는 학교를 다니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 하셨어요.”

“그런데 왜? 학교가 싫니?”

“총을 갖고 있는 친구들도 있어요.”

총이라는 말에 오민철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전쟁 뒤끝이라고 하지만 아홉 살, 열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학교로 총을 가져온다는 건 놀라울 일이었다.

“한 달 전 마제드가 모하메드를 죽었어요.”

“모하메드?”

“저기 윗동네 사는 친군데 마제드가 쿠르드인이라면서 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니?”

“마제드는 지금 학교 다녀요.”

오민철은 사건의 그림을 그렸다.

마제드란 아이가 쿠르드계인 모하메드를 쏴 죽였지만 학교측에서는 어떤 처벌도 내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건 술탄에게 엄청난 공포일 것이다.

죽인 아이가 처벌 받지 않는다는 건 언제든지 같은 사고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쿠르드족 독립문제로 터키를 포함해 이란 이라크 시리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건 용병으로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직접 현지에서 본 결과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보이는 대로 쏘아 죽이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라크에서는 국경 밖으로 추방을 해버렸다.

조상부터 살아왔던 땅에서 나가지 않으려는 쿠르드인과 쫓아내려는 시리아의 살육전은 무차별 했다.

스윽!

오민철은 술탄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누구의 고백처럼 모든 건 운명이다.

정해진 운명을 어찌하랴.

오민철은 술탄의 어깨를 가볍게 끌어 안아주었다.

채명천을 비롯한 블랙잭 간부들의 표정은 먹물을 뿌려 놓은 것처럼 어둡다.

모두가 사우디 지사에 모여 권총수의 실종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지만 좋은 묘안은 없었다.

유일한 결론이라면 전번 전투기 공격으로 시리아 정부에서 사막의 흑새 사망을 정식 발표했지만 권총수는 살아 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번 또한 그런 불가사의한 기적을 바라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권총수는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

막연하지만, 그 막연함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사고가 일어나고 정확히 백일이 지났다.

어쩌면 외인부대 생활 5년을 포함한 10년이 훌쩍 넘는 용병생활에서 이번만큼 오랫동안 권총수에 대한 소식이 단절된 적은 없었다.

그러자 보안업계는 권총수를 사망으로 단정하는 분위기였다.

놓치고 싶지 않지만 데리고 있기에는 너무 거북한 존재였다.

어느 회사건 권총수를 데려가면 회사 매출이 수직 상승을 하면서 주가가 폭등한다.

워낙 귀한 몸인 탓에 전장을 누비는 용병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

회사 고위 간부들도 그의 뜻을 함부로 가로막거나 중단 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데리고 있기에는 매우 거북스럽지만 그렇다고 다른 회사에 빼앗기고 싶지는 않은 계륵(鷄肋)같은 존재다.

이심전심 공통적인 희망이 있다면, 권총수가 죽어 없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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