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3화: 햇빛사냥(3)
천장의 시멘트 덩어리는 150킬로는 충분히 나갈 것으로 보였다.
슥!
강력한 강기로 받치고 있던 왼손을 거두며 곧장 몸을 날렸다.
“꽉 잡아.”
오민철은 눈을 감아 버렸다.
단단히 묶어 매달았지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지금이야 말로 죽고 사는 건 인간의 능력이 아닌 운에 달렸다.
슈욱!
받치고 있던 힘이 사라지자 잘려진 천장의 시멘트 덩어리가 떨어졌다.
콰아앙!
시멘트가 떨어지면서 대전차 지뢰를 터뜨렸고 가공할 폭발이 일어났다.
퍼어억!
금강부동신법도 빠르지만 결코 대전차 지뢰의 폭발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콤포지션 계열의 폭발 속도는 1초에 8킬로미터를 간다.
물론 모든 폭탄이 그런 속도로 터지는 건 아니다.
대전차 지뢰처럼 탱크를 잡기 위한 폭발물은 속도도 중요하지만 짧으면서 강한 폭발력을 얻는 파괴력에 중점을 둔다.
그렇다고 해도 폭발속도가 빠를수록 위력이 커진다고 본다면 휩쓸리면 인간의 육신으로는 온전할 수 없다.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며 집이 날아갔지만 단 한 발의 총성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도 날아가는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밤이고 워낙 빠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전차 지뢰가 터질줄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시리아 군과 가미카제 용병들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 되었다.
피해가 예상치를 훨씬 넘는다.
근처 다른 주택들까지 무너졌고 인명피해도 있었다.
아무도 대전차 지뢰가 터질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수 많은 주택들이 폭삭 주저앉은 현장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사막색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과 두 명의 민간인이다.
한 명은 나카야마였고 또 한명은 가미카제 용병대장으로 있는 아베 이등육좌(2等陸左), 그리고 오늘밤 동원된 시리아 37대대 대대장 나빌중령이다.
폐허다
완전하게 모든 것이 주저앉았다
수북한 잔해로 인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단지 후레시를 비춰 대충 여기저기 살펴 보는데 사람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도대체가!”
나빌 중령이 이마를 찡그리고 있었다.
“전투기의 폭격에 쏟아지는 자주포 속에서도 죽지 않았다더니...”
앞서 있었던 권총수를 향한 폭격과 포격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절대 살아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자신있게 죽었다고 발표했다.
사막의 흑새가 시리아군의 공격에 시신도 찾지 못할 만큼 파괴되었다는 소식에 아랍권 모두가 흥분하고 즐거워 했다.
그런데 다시 살아 오늘밤 여기에 나타났다.
“놈!”
아베 중령의 눈이 활활 타오른다.
네 명이 모두 죽었다면 마스히토까지 포함하여 벌써 다섯 명이 권총수의 손에 희생된 것이다.
어둠을 바라보는 아베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시체가 아닌 부상 상태로 발견되길 빈다.
살아 있는 놈을 잡아 고통스럽게 죽여야 이 분노가 조금 달래질 것이다.
“왜 아무 말이 없소?”
아베는 나카야마에게 물었다.
“글쎄, 별로 할 말이 없군요.”
할 말이 없다는 말에 나빌 중령까지 돌아보았다.
용병으로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나카야마이다.
더욱이 권총수를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에 대한 정보는 훤하다.
그런 입에서 만족스런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눈 앞의 불길함과 다를바 없다.
“이등육조(二等陸曹), 왜 말이 없습니까?”
아베 중령은 나카야마 현역 때 계급을 불렀다.
“그는 과학을 벗어난 사람입니다.”
“그 말씀은 대전차 폭발 속에서도 죽지 않았을 수 있단 말입니까?”
“다시 말씀드리죠. 사막의 흑새에게는 과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죽었다 살았다라는 속시원한 대답대신 과학으로 분석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죽지 않았단 말입니까? 이 폭발속에서 말입니다?”
아베의 눈이 가늘어졌다.
수류탄도 아닌 대전차 지뢰가 터졌다.
그것도 사방이 툭 터인 넓은 공간이 아닌 폐쇄된 주택이다.
같은 수류탄도 실내에서 터질 때 위력이 더 상승한다.
더욱이 그에 앞서 다섯 발의 RPG를 쐈다.
자신이 겪고 보았던 사막의 흑새를 제거하기 위한 공격중 오늘 밤처럼 무자비하고 강했던 적은 없었다.
죽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데 바로 대전차 지뢰였다.
대전차 지뢰는 120킬로 이상의 압력을 받아야 폭발한다.
가미카제 용병들 말에 의하면 병기창고로 사용하는 지하실에 보관되었다고 했다.
무거운 물건일지라도 힘의 집중을 곧장 전달하는 방식으로 떨어지지 않고 넓게 퍼지면 터지지 않는다.
건물이 무너졌는데도 대전차 지뢰가 터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층집이라고 하지만 낡았다.
과연 부실한 시멘트 덩어리 따위가 정확히 내려 꽂히지 않는 이상 대전차지뢰가 폭발할지는 분명 의문이다.
중장비가 도착했고 주위에 전등이 설치되어 대낮처럼 불을 밝혔다.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나카야마는 포크레인과 군인들이 동원되어 잔해를 걷어내는 현장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제발 걸려들었길’
간절한 바람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권총수는 강해진다.
‘내공이 증진한다는 건 무슨 뜻이지?’
아침을 먹고 난 나카야마는 물었다.
‘내공이 계속 성장한다는 뜻이야.’
‘어떻게?’
‘두 가지가 있어. 규칙적으로 아침저녁 운기조식을 함으로써 조금씩 올라가는 거지. 대자연의 기를 얻어 증진시키는 것인데, 또 한 가지는 이른바 영약이라고 부르는 희귀한 약초를 통한 증진이야. 물론 그건 인연이 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고’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 증진한다는 거군’
‘민철이 형처럼 운기조식 한 번 않고 증진되기를 기대하면 안되고, 날마다 규칙적으로 운기를 한다면 오르게 되어 있어’
나카야마가 보는 권총수는 굉장히 규칙적이다.
생활이 문란한 듯 보이면서도 운기조식 하나 만큼은 분명했다.
특히 아침 운기조식은 거르는 법이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 비해 지금 더 높아져 있을 수도 있다.
아니, 분명히 무섭게 높아졌을 것이다.
나카야마는 부디 시멘트 잔해 속에 권총수가 누워 있기를 기도했다.
몸이 날아갔다.
이갑자의 내공으로도 도저히 컨트롤 할 수가 없었다.
일 초에 수천 미터를 가는 폭발의 속도에서는 그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해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으나 소용없었다.
온 몸을 칼이 난자하는 것 같았다.
‘아아아!’
진정으로 경이롭다.
강호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 해도 결국 현대 과학을 당해 낼 수 없음이다.
슈우우우!
눈을 뜰 수조차 없는 속도다.
어디쯤 가는지 주위를 살피고 싶었으나 너무 빨리 날아간다.
살이 뜯기고 머리카락이 뽑혀 나가는 듯 싶다.
그나마 호신강기마저 없었더라면 공기와의 마찰로 산산조각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파르르!
눈을 떠야 한다.
눈을 빨리 뜰수록 위험은 줄어든다.
이런 속도로 날아가다 바위나 높은 빌딩에 부딪히면 즉사를 피하지 못 한다.
우웩!
진즉 토했어야 할 피를 지금 뱉는다.
즉 속도가 느려지면서 몸의 상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사방을 덮고 있었다.
“으음!”
아프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내상으로 인한 고통이 크다.
폭발순간 팔과 다리가 찢어질 것 같았다.
몸통에서 뻗어나온 나뭇가지 같은 팔과 다리가 가장 심하게 흔들린 것이다.
나뭇가지였다면 찢어지고 잘려졌을 것이다.
예상못한 팔과 다리 보호에 진력을 많이 쏟느라 몸통의 상처는 훨씬 깊었다.
오민철은 완전히 기절한 듯 반응이 없다.
크웨에에!
내공을 끌어 올려 속도를 줄이려 하자 피가 넘어온다.
내상이 심하다는 뜻이다.
흘긋 !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야말로 금덩어리 한 개를 잘게 부서 뿌려 놓은 듯 별들이 가득 채웠다.
피식!
묘하다.
죽을 수도 있는 이 절박한 상황에서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을 앞두면 세상이 그림 같아진다는 말을 들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건가’
인명은 재천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지만 숱한 위험을 헤쳐 나왔고 죽음의 순간을 경험했으나 유난히 오늘 밤은 살고 싶어진다.
‘정말 살고 싶다’
의지와 상관없는 이 생의 본능은 어디서 기인한 건가.
혼자 왔기에 혼자 떠난 듯 아쉬울 것도 미련 따위는 더더욱 없다고 항상 자신했다.
삶에 미련이 남는 건 이 세상 곳곳에 묻혀 놓은 정(情)이라는 자신의 도장 때문이다.
가족, 부모, 친구. 직장동료, 취미가 같다고 하여 하나가 된 동호인들, 학교동창, 그들과 맺고 이어진 시간은 떠나야 할 사람의 발목을 잡는 무서운 정연(情緣)들이다.
하지만 자신은 항상 혼자라고 생각 했기에 죽음에 관해서는 홀가분하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고, 최면을 걸 듯 언제든지 죽음이 찾아오면 피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때문인지 항상 전장에서도 앞장섰다.
그랬는데 왜 갑자기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생기는 걸까.
혹시 돈을 벌었기 때문인가.
블랙잭이라는 것 때문인가.
결국, 이제 돈 좀 벌고 어깨에 힘을 넣고 살만한 세상이 된 탓일까.
권총수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건 아니다.
돈 좀 있다고 힘주고 목소리 높이는 건 체질에 맞지 않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이던가 담임선생이 삶의 좌우명(座右銘)에 대해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반 전체 친구들을 상대로 한 명씩 물었다.
많은 말들이 나왔다.
삶의 좌우명을 갖는다고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니라며 선생님의 질문을 불평하는 이도 있었고, 항상 돌아보는 삶을 살겠다는 다소 철학적인 대답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총수 말해봐.”
권총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난 짧고 굵게 살겠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남자라면 화끈하게 살다 가야한다는 단순함에 빠져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오래 살고 싶은 마음 보다는 불꽃처럼 살다 떠났으면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설마!“
어느 한 순간 눈이 반짝 거렸다.
백퍼센트 답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80퍼센트 이상은 사실일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원인을 알았다.
‘일본!’
‘쪽바리’
‘식민지’
초등학교 때부터 일본과 축구를 한다고 하면 긴장이 되고 두 눈에 힘이 들어갔다.
‘쪽바리에게 지면 안돼.’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자세한 설명도 듣지 않았는데 일본이라는 두 마디는 일단 흥분부터 시킨다.
양국의 치욕스런 역사는 일찍 흥분하고 미워한 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제대로 배웠다.
일본 하면 자신 뿐 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거의 빠짐 없이 일단 성질부터 내고본다.
자신을 죽이려는 상대가 가미카제 용병이다.
답이 나왔다.
일본인 손에 죽을 수 없다는 오기가 본능으로 꿈틀 거리고 있는 것이다.
퍼어억!
엄청난 충격이 온 몸을 덮었고 권총수는 의식을 잃어 버렸다.
없다.
네 명의 동료들 시신은 찾아냈지만 권총수와 오민철은 발견되지 않았다.
혹시 폭발풍에 날아갔을 것을 대비해 수색 범위를 넓혔고 아침이 되면서 인근 주민들에게 현상금을 내걸었다.
많은 전화가 있었다.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을 발견했다.
찢어진 옷자락이 우리집 지붕에 있다.
사람의 손으로 보이는 물체가 마당에 떨어져 있다.
그때마다 수색대를 보냈지만 권총수와는 전혀 상관 없는 물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