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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01화 (401/651)

제401화: 햇빛사냥(1)

오민철은 계속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는데 뭔가 횡재한 사람의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라면 아냐.”

오민철은 옆에 있는 젓가락을 잡더니 라면을 후루룩 소리내며 먹어보더니 눈을 빛냈다.

“이거 일본 라면 아닌데,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라면은 전문간데.”

그러더니 쓰레기통 뚜껑을 열었다.

“그럼 그렇지.”

오민철이 쓰레기통에서 주워든 건 라면 봉지였는데 국산 심(心)라면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고, 어이 쪽바리 라면은 메이딘 코리아가 좋지. 자식들 좋은 건 알아가지고.”

톡톡!

오민철은 사내들 어깨를 두드려주고 가스 불을 끈 뒤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다시 이 층으로 올라와 거실 창문을 열었다.

아부카말의 밤은 어두웠다.

불빛 보다는 어둠이 더 짙게 내려 앉아 있었는데 잠시 창밖을 바라보던 권총수는 구석에 있는 등받이 없는 둥근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파팟!

권총수가 왼손을 뻗었다.

소림의 탄지신통이 날아가 두 사내의 아혈을 풀었다.

하지만 마혈이 제압되어 여전히 움직일 수는 없다.

딸칵!

권총수는 말보로 레드를 꺼내 라이터 불을 붙였다.

멈칫!

실내를 둘러보다 시선이 고정됐다.

만화책이다.

권총수는 손을 뻗어 만화책을 집어 들었는데 일본어판 소드 아트 옥라인이다.

나카야마를 통해 듣기만 했지 본적은 없다.

그것 말고도 많은 일본만화가 쌓여 있었는데 필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향수를 달래려 함일 것이다.

툭!

권총수는 책들을 제자리로 던져 놓으며 불쑥 물었다.

“나한테 할 말 없습니까?”

“당신 뭐야?”

텔레비전에서 볼 때 왼쪽에 앉은 사내가 차갑게 물었다.

“뭐야?”

빠악!

어느새 올라온 오민철이 사내 얼굴을 구둣발로 찍었다.

마혈이 제압된 상태인 사내는 앉은 자세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개자식, 언제봤다고 반말이야. 너 우리 알아. 아냐고?”

퍼억!

이번에는 옆구리를 찍었다.

“크훅!”

사내는 비명을 질렀다.

“이런 개 빠가야로 새끼가 뒈지려고.”

오민철은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어 찍으려다 그만 내렸다.

딱!

쓰러진 사내의 뒤통수를 한 대 갈기고 끄억 하며 트림을 했다.

“가서 라면 먹어, 라면 퍼지면 맛없어.”

“두 놈은?”

“그대로 있지.”

“제거해.”

“라면 끓여 놨는데?”

이유야 어쨌든 라면을 끓여 자신에게 바친 형국인데 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투다.

“여기 두 놈이면 충분해. 많아 봤자 피곤해.”

“그건 그래. 알았어.”

오민철이 권총을 꺼내더니 안전장치를 풀며 계단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푸숙 푸슉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뭔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내의 표정이 굳는다.

아래 동료들이 죽어가는 소리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목숨을 이토록 말 몇 마디 주고 받으며 없앤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쟁에 익숙해 있다.

“죽였어!”

오민철이 권총을 들고 올라왔다.

권총수는 피우던 담배를 방바닥에 떨어뜨리더니 구둣발로 짓이겼다.

“아시죠. 우리가 누군지?”

이미 들어서는 순간 알아보았다.

이곳에 파견되기 전부터 가장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용병들이라면서 사진까지 인쇄하여 돌렸다.

사막의 흑새 권총수와 한국 특수전부대 출신의 오민철 중사다.

그중 사막의 흑새로 불리는 권총수에 대한 소문은 도무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 몸을 이렇게 마비시키는 걸 보면 소문이 오히려 축소 은폐되지 않았나 싶다.

사람이 너무 위력적이라는 소문이 돌면 어떤 용병부대건 간에 권총수가 속한 부대와 만나면 도망갈 생각부터 먼저 한다.

회사에서는 그런 현상을 막기 위해 일부러 소문을 축소하고 잘라내려 노력한다.

슥!

권총수는 품에서 사진 십여 장을 꺼냈다.

휙!

포커 게임 하듯 사진을 두 사람 앞으로 던졌다.

사진들은 허공을 날아가 두 사람 앞에 정확하게 떨어졌다.

처처처척!

“잘 보셔야 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보시면 낯이 익을 것입니다.”

권총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렇다고 두 사내는 권총수가 무척 따뜻한 인품을 가졌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부드러움 속에 살벌한 칼이 숨어 있다.

권총수는 사진을 바라보는 두 사내의 눈빛에 집중했다.

‘알고 있다’

흔들렸다.

아주 미세했으나 권총수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사이코패스라도 자신이 죽인 사람의 얼굴이나 사진을 보면 순간적으로 흔들린다는 보고가 있다.

겉으로는 무덤덤했지만 본능까지는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비정상적으로 죽였을 때는 반드시 후유증이 남는다.

더욱이 신체가 마혈로 인해 굳어 있기 때문에 그런 변화는 더욱 눈에 두드러졌다.

슈슈슉!

권총수가 손을 뻗자 바닥에 펼쳐져 있던 사진들이 일제히 회수되었다.

능공섭물(凌空攝物)이다.

사내들은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지만 바닥에 깔린 열 장의 사진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또 한 번 몸을 떤다.

“두 달 전.”

“정확히 두 달 6일.”

오민철이 날짜를 제대로 짚어준다.

“한국인 성지 순례객 다섯 명이 시리아 정부의 허락 없이 국경을 넘어온 적이 있소. 지금 사진속에 있는 분들이지요. 남의 나라를 몰래 들어간다는 건 간첩으로 오인되어 얼마든지 사살당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도 그 문제 가지고는 크게 따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쪽바리들이 독도를 들어오면 쏴버리지.”

오민철이 추임새를 넣듯 끼어든다.

“현역군인들이니까 잘 알겠지만 하나같이 가슴에 총알을 받았습니다.”

권총수는 의자를 들고 일어났다.

와그장창!

소파 탁자를 거칠게 당겨 치워 버리고 그 앞에 등받이 없는 의자를 다시 놓고 앉았다.

“다섯 명이 약속이나 한 듯 가슴에 총상을 입었다는 건 한 가지 상황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한 기둥 같은 곳에 묶어 놓고 조준 사격을 했다는 것입니다. 군법을 위반한 군인을 총살할 때처럼 말이오.”

피식!

이번엔 오른쪽 사내가 웃음을 지었다.

“난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겠소.”

“계급이?”

“용병에게 무슨 계급이 있겠소?”

파파파팟!

순식간이었다.

권총수의 오른 손이 사내의 신체 다섯 곳을 번개처럼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혈을 풀자 사내는 곧바로 나동그라졌다.

“끄아아악!”

분근착골이 시행된 것이다.

투투툭!

순식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힘줄이 살갗을 뚫고 나올 듯 불거진다.

와드득!

발목이 뒤틀리고 손톱이 딱딱한 방바닥을 긁어 버렸다.

끄으윽!

틱!

티티틱!

손톱이 통째 일어나면서 피가 흘렀고 고통에 혀를 깨문 듯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사...살려!”

“일분 칠초!”

오민철이 초시계를 재기라도 한 듯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파팟!

점혈되었던 혈도가 해혈 되면서 사내는 축 늘어져 버렸다.

꾸역꾸역!

사내의 입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손가락 굵기로 튀어나온 얼굴의 신경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절반쯤 돌아간 발목과 뒤틀린 손목은 그대로다.

근육과 달리 뼈는 시간이 흘러야 제자리로 돌아온다.

분근착골의 놀라운 점은 뒤틀린 뼈도 고통만 가할 뿐 장애로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발목이 조금 돌아갔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상적으로 돌아오며 붓기도 빠진다.

발목이 돌아갔다고 하여 골절이 된다거나 뼈에 금이 가는 일은 없다.

“계급?”

“이등육위(2等陸尉:중위 소대장)”

“이름!”

“게이스케!”

“소속?”

게이스케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게이스케는 모든 걸 포기한 듯 입을 열었다.

“7313부대.”

“자위대?”

“육상자위대 제1군 방면대(군단)직속.”

오민철이 눈을 치켜떴다.

“제1군방면대라면 우리의 군단 규모 아냐? 군단규모인 방면대 직속이라면 사단이나 여단의 통제를 받지 않는 특수부대라는 뜻인데?”

확인하듯 게이스케를 바라보았다.

흘긋!

옆에 있는 사내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했다.

“1선 상륙군.”

권총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일본은 섬나라이다.

어느 나라와 전쟁을 해도 상륙이라는 말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즉 상륙군이라고 하여 미군이나 한국군처럼 해안을 이용해 내륙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그런 상륙의 의미가 아닌 가장 먼저 적진으로 투입되는 부대를 의미한다.

우리의 특수전 부대들과 같은 성격이다.

“그럼 뭐야? 자위대에 특수전 부대가 있다는 말이야?”

오민철이 놀란 표정을 했다.

게이스케의 얘기는 실로 놀라웠다.

7313부대.

누가 봐도 일반 부대일 뿐이다.

여러 힘들고 고된 훈련을 하는 건 문제가 없으나 특별한 목적을 갖고 있는 최정예 공격부대는 일본 헌법으로 용인하지 않는다.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국토방위와 치안을 다스리는 자위대가 네이비 씰 같은 특수전부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묵과하지 않을 건 자명하다.

그런데 게이스케의 다음 얘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일본군부는 오래전부터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첨단 무기와 뛰어난 장비등 세계 어느 나라 특수부대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병사들의 실전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장 경계하는 중국과 한국의 경우 평화유지군이란 명분으로 세계도처에 파견되지만 방어차원의 교전은 자주 일어난다.

특히 중국군은 독립을 요구하는 티벳반군을 상대로 실전을 치루고 있고 아프리카 상당수 나라에 파견되어 전투를 치른다.

미국과 러시아는 중동에서 걸핏하면 방아쇠를 당기고,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동과 보스니아사태, 아프리카국가들의 내전에 개입하고 있다.

이른바 일본과 동급이랄 수 있는 나라들은 부지런히 실전을 쌓고 있는 반면 자신들은 말 그대로 유엔사 소속의 평화유지군 그 이상은 절대 허용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백 번의 훈련을 한다고 해도 한 번의 실전만 못하다.

장비라고 해봤자 AK와 러시아제 RPG(휴대용 로켓포), PKM(러시아 기관총)가 전부인 탈레반이 소련군을 물리치고 미군을 밀어내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건 풍부한 실전경험 때문이다.

국방 없는 평화는 없다.

갈수록 국가와 국가사이의 이해충돌은 극심해질 것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은 영토문제는 물론 과거사까지 얽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암호명 ‘햇빛사냥’이라는 작전이 계획된다.

7313부대원들을 평범한 자위대 출신으로 세탁하여 용병시장에 진출을 시키는 것이었다.

일정기간 근무하여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았다 싶으면 은퇴를 한 뒤 다시 부대로 복귀한다.

할 말이 없었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약속이나 한 듯 담배만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쪽바리 답다.”

오민철이 씨익 웃는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평화헌법으로는 전투병력으로서 파병이 불가능하고, 그런데 가장 큰 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과 중국군은 수시로 해외를 들락거리니 초조할 만도 했겠지.”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녹음됐지?”

오민철이 아무소리 않고 주머니에서 담배갑 절반 크기의 소형녹음기 한 개를 꺼냈다.

툭!

플레이 기능을 누르자 게이스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얘기를 듣더니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녹음기를 껐다.

“이제 남은 건 사진이군요.”

권총수가 다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설명해 보시죠?”

게이스케는 한참 사진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밤에 시리아 국경을 넘어오던 그들은 야간작전중인 우리 숙영지를 지나갔소. 하필 그때 우린 작전회의 중이었는데 외부인이 없었기 때문에 부대에서처럼 계급과 이름을 불렀소.”

“그들이 그걸 엿들었다는 것이군.”

“엿들었다기 보다는 조용한 밤이고 야전이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들었다는 표현이 맞겠죠.”

“그렇지.”

오민철이 말은 제대로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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