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9화: 습격(1)
권총수는 밝게 웃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권총수는 양젖을 벌컥벌컥 소리내어 마셨다.
“카하, 조오타!”
그릇을 오민철에게 넘겨 주었다.
오민철 역시 유난히 넘어가는 소리를 크게 냈다.
조금이라도 노인의 마음에 답례를 하려는 것이다.
“크아아! 쥑인다.”
두 사람은 불룩 솟아 오른 배를 탁탁 치며 노인을 보며 웃었다.
“앗 쌀라 말라이쿰.”
“앗 쌀라 말라이쿰!”
신의 축복을 기원하자 노인은 무척 즐거워 했다.
“다리를 다친 모양인데?”
노인이 남은 양젖을 자신이 비운 뒤 손으로 입가를 닦으며 물었다.
스윽!
오민철이 바지를 걷어 올렸다.
기부스가 된 다리를 보며 노인이 눈을 빛냈다.
“금이 간 듯 합니다.”
오민철이 무거운 표정으로 기부스를 쓰다듬었다.
“잠깐 기다려 보세요.”
노인이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갔고 5분 정도 지나 조그만 약병 하나를 가져왔다.
약간 밤색 계열의 액체가 조금 담겨 있었는데 오민철을 보며 말했다.
“유프라데스강 이 지역에 자생하는 크라키쉴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거기서 체취한 진액입니다.”
뼈를 튼튼하게 하는데 매우 효과가 뛰어나다면서 노인은 자신이 한 방울 먹었다.
이쪽을 안심시키려는 행동이다.
문제는 권총수와 오민철의 반응이었다.
두 사람 모두 크라키쉴이란 나무에 대해서 알고 있다.
물론 본적은 없지만 뼈를 튼튼하게 만드는데 효과가 뛰어나다는 얘길 오랜 중동생활을 하며 들었다.
이 지역에 살았던 유목민족 아람인들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발목이 부러져 달릴 수 없는 말에게 먹였더니 다음 날 전쟁터로 달려갔다고 했다.
옛날 사람들의 허풍이 태풍 수준이라고는 해도 중요한 건 권총수와 오민철 모두가 크라키쉴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민철은 망설이지 않고 크라키쉴 액을 마셔 버렸다.
약간 쓴맛이 날 뿐 먹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용병으로 활동하면서 지역사람들에게 들었던 크라키쉴 액에 효과의 절반의 절반만이라도 나타나길 기대했다.
노인은 단순히 내려오는 옛 이야기만은 아니라면서 진짜 좋은 약이라고 강조했다.
노인의 이름은 부라크였다.
원래는 아부카말에 살았다.
하지만 6년 전 내전으로 아들 부부와 손자 둘이 죽으면서 홀로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했다.
노인 부라크의 시리아 정부에 대한 증오는 강했다.
며느리가 시리아군들에 끌려가 성폭행을 당하고 사살되었다는 것과 열다섯 살에서부터 마흔 살까지 징집이 내려왔고 아들은 생계를 이유로 거절했다가 집 마당에서 사살 되었다.
“혹시!”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육 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내전 당시 아부카말에 살았다면 뭔가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에 일본 자위대 출신 용병들이 들어와 있는 걸 아십니까?”
“소문은 들었소.”
화악!
권총수까지 눈이 커졌다.
“아들 부부와 시내에 살 때부터 일본 용병들이 시리아 정부군 편에 서서 활동한다는 얘기는 있었지요. 언젠가 친구를 만났지요. 그는 사실...”
부라크는 잠시 주저했다.
권총수는 어떤 말을 해도 우리는 친구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안심한 듯 얘기했다.
“자흐라는 쿠르드족이지요. 아주 선한 사람입니다. 그가 자꾸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뭣이 이상하냐고 묻자 일본인 용병이 들어와 자신들을 학살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세 살 아래인 자흐라는 알레포 대학을 졸업했다.
그의 꿈은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결혼 한 뒤 교수가 되기 위해 계속 학업에 매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서른세 살에 알레포대학 교수가 되는 꿈을 이루고 만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쿠르드계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하루 아침에 쫓겨났다.
그때부터 그의 기나긴 투쟁은 시작되었다.
“자흐라가 말하길 일본은 군대가 없어서 용병이라는 사람들이 만들어질 수가 없다고 했소”
아들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한 걸 알고 싶으면 그 아이 이름이 뭐였더라. 자흐라 아들이었는데 허헛 늙었는지 이제 뭔가 기억 좀 하려면 이래...아 이제 생각났소. 알파이.”
두 사람의 눈이 빛난다.
“자흐라 가정 역시 내전의 폭탄을 맞았지요. 부부가 죽고 아들 알파이 아내와 다섯 살 아들이 시리아 정부군의 총에 죽었죠. 그길로 민병대로 돌아서서 싸우는데 아직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겠소.”
“알파이?”
“내 아들과도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는 시리아 대학을 나왔죠. 똑똑한 녀석입니다. 졸업 후 전기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역시 내전으로 회사가 문을 닫았소. 고향의 가족과 친지들이 행방불명되고 무자비한 쿠르드족 탄압이 일어나자 민병대로 들어갔지요.”
노인은 알파이에 대해 말했다.
아주 똑똑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 전쟁이 알라의 뜻이라면 난 신을 거부하겠습니다’
무슬림 입에서는 좀체 나오기 힘든 폭탄선언과 같은 말을 남기고 총을 잡았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어느 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물론 내전으로 모든 걸 잃은 두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얘기는 한정되어 있었다.
건강해야 한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헤어졌다.
믿어지지 않는다.
권총수 역시도 입을 떠억 벌렸다.
이틀 만에 오민철이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한 것이다.
“뛰어봐!”
오민철은 제자리 뛰기를 하더니 금방 멈췄다.
“뛰는 건 무리야. 진동이 생기면서 다리가 어른 거리는데.”
“걷기만 해도 어디야.”
크라키쉴액의 효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부라크와 작별을 했다.
권총수는 비상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부라크에게 전달하며 감사를 표했다.
부라크는 손사레를 쳤지만 결국 받을 수밖에 없었다.
중동에서 오랫동안 용병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반정부군이나 탈레반, 무자헤딘 같은 테러조직의 지휘부는 거의가 깊은 산속이나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사막 깊은 곳에 세워졌다.
전투 역시 지휘부를 중심으로 포진하여 작전을 펼친다.
하지만 도심에서 일어나는 자살 폭탄테러나 납치극 같은 일들은 정보원들이 현지인들을 포섭하여 진행된다.
부라크가 말한 아들친구 알파이 또한 권총수가 볼 때 쿠르드 정보원이 분명했다.
이곳이 고향이니 누구보다 현지 사정에 밝다.
또한 가족의 죽음은 알파이로 하여금 어느 누구보다 더 분노에 찬 활동을 하도록 만들 것이다.
“저긴데!”
오민철이 한쪽을 가리켰다.
사막색의 커다란 돌로 된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과거 이곳을 지배했던 마리왕조의 유물중 하나인데 진짜는 박물관에 보존 해 놓았고 그 자리에는 모형의자를 관광객을 위해 세워 놓았다.
마리왕이 앉아 정사를 봤다는 돌 의자는 엄청 컸다.
더욱이 의자 주위로 작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대추 야자나무와 커다란 석류나무가 만든 그늘에 모여 있었다.
오랜 내전으로 일자리가 사라진 사람들이다.
기족을 잃고 희망을 버린 사람들의 메마른 얼굴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다.
광장오른쪽으로 아부카말 최대 번화가인 차리할이다.
두 사람은 대충 광장을 한 번 둘러본 뒤 커다란 아카시아나무 그늘에 주저 앉았다.
부라크 노인은 이곳에서 아들 친구인 알파이를 만났다고 했다.
그것 말고는 알파이에 대한 어떤 단서도 내놓지 않았고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무작정 여길 온 건 간단했다.
권총수는 알파이가 쿠르드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증거는 없다.
하지만 권총수의 추측이 들어맞는다면 이 도시에 들어와 있는 일본 용병들에 대해 누구보다도 소상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진까지 한 장 얻어 왔다.
사흘이 지났다.
오민철의 다리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한 가지 희소식은 이 지역 시리아 군에서 사막의 흑새가 죽었다는 걸 공식 발표 했다는 것이다.
비록 시체를 찾지 못했지만 전투기와 자주포 공격에 살아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더욱 유프라데스강에는 살인 물고기로 불리는 메기 종류의 피아레크구가 사는데 피 냄새를 맡으면 순식간에 달라붙어 뼈까지 부서 버린다면서 수많은 아랍의 형제들을 죽인자에게 복수를 했다고 자찬했다.
“저 사람!”
담배를 피우고 있던 오민철이 고개를 들었다.
권총수가 차도의 횡단보도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권총수의 손이 맨 오른쪽에 홀로 서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
“사막색 젤리바를 걸친 사내.”
“키 큰 친구??”
“오케이!”
그러면서 재빨리 사진과 비교해보라는 듯 건네주었다.
오민철은 신호를 기다리는 사내와 사진 속 인물을 연신 비교하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본래 얼굴로 다닐 리는 없지만.”
다르다는 듯 연신 살피는 사이에 신호가 바뀌었고 사내가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길을 건너온 사내는 광장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계속 걸어가면 유프라데스강이 나온다.
길가에는 여러 가게들이 있으며 특히 유프라데스 강에서 뱃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관계된 상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권총수는 확신하는 듯 일어나 사내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내전이 공식 종료된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외국 관광객은 없고, 거의가 지역민들이지만 가게 주인들은 인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햇빛을 가리는 모자와 눈부심을 막아주는 일회용 안경, 또한 조끼형태로 된 튜브를 팔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을 가로막고 외쳐 말했다.
“오천 파운드.”
일회용 안경, 조끼튜브, 모자와 손수건까지 패키지로 묶어 우리 돈 1,200원 정도 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빙긋 웃으며 지나갔다.
“들어갔어!”
앞서가던 사내가 관광상품을 파는 가게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쉬이익!
오민철이 흠칫했다.
권총수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보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일부 가게 주인들이 눈을 비볐다.
그건 오민철 옆에 분명히 또 한 명이 있었는데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모두들 내가 잘못봤나 할 것이다.
‘아래쪽 보면 커다란 아카시아나무 있지. 거기서 기다려’
전음이 들려왔다.
오민철은 느긋한 걸음으로 아카시아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권총수는 이미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단지 잠영술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알파이로 추정되는 사내가 알아차리지 못했고 주인 역시 놀라지 않는다.
주인은 ‘잠시 외출중입니다(الخروج لفترة من الوقت)’
라는 팻말을 걸고 문을 닫는다.
주인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작은 집이 있는데 마당도 있고 커다란 석류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지금 막 들어온 사내는 석류나무 아래 있는 의자에 앉았다.
주인이 마당으로 들어서더니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고생이 많군.”
“나보다는 아사흘씨께서 힘들텐데.”
주인 이름이 아사흘인 모양이었다.
그 역시 한쪽에 있는 의자 한 개를 끌어당기더니 석류나무 그늘에 앉았다.
“정확하지는 않네.”
아사흘의 눈이 빛났다.
아무도 없는 자기 집이지만 주위를 경계하듯 살피더니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무르시가 오긴 오는 모양이야. 아직 정확한 날짜를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올해 면화와 밀 작황 상태를 살피려는가 보네.”
사막국가이지만 이곳 유프라데스강을 끼고 있는 아부카말은 시리아 최대 곡창지역이다.
여기서 생산하는 곡물과 과일들이 시리아 국내 소비의 90퍼센트를 차지한다.
오랜 내전으로 관계농업 시설이 파괴되었으며 이곳 역시 죽음의 강물이 피해가지는 않았다.
피해복구에만 약 십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는 것이 세계은행의 예측이었다.
이곳 곡창지대를 살려내는 시간이 빠를수록 시리아 사회는 안정된다.
정치안정은 의식주에 달렸다.
아무리 인권이 보장된 민주주의라도 배가 부르지(食) 않으면 민심은 들썩 거린다.
반대로 인권이 보장되지 않지만 배가 부르면 그런대로 사회는 굴러간다.
‘아부카말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종전선언이 있고나자 알 아사드 대통령의 첫 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