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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98화 (398/651)

제398화: 전투기(2)

다행히 두 번의 파도를 밟고서 강변에 내려앉은 권총수는 달리기 시작했다.

스윽!

스으으으!

AK와 PKM의 공격으로 내상이 깊지만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상류에서 군인들이 수색을 해 내려오고 있다.

지금은 멀리 떨어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슉!

얼마나 달렸을까, 산이 나타났다.

아프카니스탄이나 이라크의 험준 고봉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한가지에서는 더 나았다.

숲이 우거졌다는 것이다.

숲은 도망자의 둥지로 가장 적당한 곳이다.

빠르다.

오민철을 등에 업었는데도 순식간에 야트막한 산 하나를 넘었다.

등성이를 넘어 이번에는 내려간다.

멈칫!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걸음을 세웠다.

‘오른쪽’

재빨리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몸을 날렸다.

작은 언덕 하나를 넘자 정말로 집이 있었다.

마치 우리의 화전민 촌 마냥 허름한 농가였다.

산을 개간해 일군 것으로 보이는 조그만 밭뙈기에서 밀이 익어가고 있고 양들의 울음소리가 좀 더 선명하게 들렸다.

선택의 여지란 없다.

자신은 상관없지만 등 뒤 오민철의 정강이 부위가 계속 부어 오르고 있고 몸의 열도 높았다.

어른 팔뚝만한 통나무를 세로로 길게 묶어 만든 대문사이로 농가 안쪽을 살폈다.

이 밤에 기침을 하며 한 노인이 양의 젖을 짜고 있었다.

찌그러진 국방색 통에 양젖을 짜 담고 있던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권총수는 아무말 하지 않고 헛간 앞에 깔린 마른 갈대 위로 오민철을 눕혔다.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노인이 더듬거린다.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는 아무말 없이 지갑에서 백달러 짜리 다섯 장을 꺼냈다.

지갑이 물에 젖은 바람에 돈까지 축축했으나 갑작스런 달러에 노인이 주춤 놀란다.

“가짜 아닙니다. 이런 고액권을 갖고 당장 시장을 간다면 의심을 살것입니다. 조금 더 세상이 안정되면 그때 사용해도 늦지 않죠.”

노인은 탐이 나는 듯 자꾸 침을 삼켰으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아는 듯 망설인다.

오백 달러는 자신이 일 년 내내 양을 키우고 밀을 재배하여 시장에 내다 팔아도 만질 수 없는 돈이다.

스윽!

노인은 슬며시 돈을 받았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헛간 앞에 누워 있는 오민철을 보며 말했다.

“다친 모양인데 방으로 눕히시오.”

“아닙니다. 여기도 좋습니다.”

신세지기 싫다.

자칫 자신들의 방문으로 노인에게 피해가 갈수도 있다.

“형!”

“내 걱정은 마. 담배 있냐?”

“물에 다 젖어 버렸는데, 잠깐 기다려봐.”

윗주머니에거 꺼낸 말보로는 완전히 물에 젖었다.

권총수는 손바닥 위에 놓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손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 나왔다.

젖은 담배갑에서 수증기가 피어나고 얼마가지 않아 담배가 바짝 말랐다.

두 사람은 담배를 꺼내 물어 불을 당겼다.

하지만 물에 한 번 젖은 담배는 특유의 맛을 상당부분 잃어 심심했다.

“일이 간단할 것 같지 않은데.”

권총수 표정이 딱딱해졌다.

시리아 국방부가 전투기까지 지원했다는 것은, 단순히 보아 넘길 수는 없었다.

결정적인 건 GPS를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냈다는 것이다.

“사막의 흑새를 죽이는데 중국이나 러시아가 개입했을리는 없잖아.”

시리아가 두 나라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나오는 말이었다.

“잠재적인 적으로 봤었을 수도 있지. 내가 CIA와 많은 작업을 했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테니까. 은근슬쩍 끼어들지 않은 것처럼 하여 죽이고 싶은거야.”

권총수는 말을 하면서도 빙긋 웃었다.

이미 CIA에서는 공작원 임무에 대한 제의가 한 번 왔었다.

물론 몸값은 권총수가 요구하는대로 주겠다고 했으나 자신은 결코 국제정치에 전혀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런면에서 볼 때 중국이나 러시아 입장에서는 적지 않게 불안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밤을 샜다.

둘 모두 늦게 잠이 들었다.

노인이 양떼를 몰고 가기 위해 시끄럽게 하지 않았다면 깨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저기 오토바이 달릴수 있는 것입니까?”

대문 앞 담벼락쪽에 낡은 오토바이 한 대가 있었다.

“병원을 좀 다녀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래되긴 했지만 사용하는 데는 이상 없을 것이오.”

“시내 병원이 몇 곳이나 됩니까? 혹시 할아버지가 다니던 병원은 없습니까?”

병원을 다니던 곳 없냐는 말에 노인은 살짝 웃는다.

“전쟁 전에는 대여섯 곳의 병원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소.”

“아는 병원만 얘기해 주시죠.”

노인은 기억을 더듬 듯 길게 숨을 내쉬더니 병원 두 곳을 말해 주었다.

권총수는 잘 기억했다면서 웃었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향해 걸어가다 말고 멈칫했다.

자신이 없을 때 노인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람 마음 정말 알 수 없다.

누구도 모른다.

특히 전장에서는 믿는 순간 칼이 들어온다는 걸 숱하게 경험했다.

오민철이 전혀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노인을 따라다니며 감시 할 수도 없다.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노인이 앞쪽 산비탈에 양떼를 풀어 놓고 돌아오자 권총수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탁!

할 수 없었다.

노인의 수혈을 집어 눕혀 놓았다.

노인은 돌아올 때까지 골아 떨어질 것이다.

권총수는 노인이 쓰고 있던 페즈를 자신의 머리에 썼다.

“조심해라!”

등을 벽에 기대고서 오민철이 말했다.

권총수가 뭔가 생각 난 듯 오민철에게 다가가더니 장딴지를 양손으로 감싸 쥐며 두께를 몇 번 재더니 일어났다.

“이거 받아!”

권총수는 권총을 던져 주었다.

“넌?”

“난 도망이라도 칠수 있지. 갖다 올게.”

부르릉!

시동을 건 권총수는 오토바이를 끌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손수레 정도 지나갈 길을 따라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자 작은 개천이 나타났는데 물은 없었다.

개천을 따라 10여분 달리자 차가 다닐 수 있는 국도가 나타났는데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얼마가지 않아 아부카말이라고 쓰인 낡은 이정표가 보인다.

권총수는 달리면서도 주위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앉았다.

멀리 아부카말이 보인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권총수가 움찔했다.

대규모 군 병력이 유프라데스강이 있는 맞은편으로 이동하고 있었으며 굉음을 내며 가는 장갑차까지 보인다.

투입되는 군인들과 장갑차를 보아 시리아 정부군까지 본격적으로 수색 작업에 나선 듯 보인다.

권총수는 교차로를 만나 좌회전을 했다.

노인이 그려준 약도를 찾아가는 것이다.

첫 번째 병원은 없다.

건물이 완전히 폭격으로 무너져 간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부르릉!

권총수는 노인이 가르쳐준 두 번째 병원으로 향했다.

개인 병원이라고 했는데 간판이 걸려 있다.

권총수는 주위를 한 번 살핀 뒤 재빨리 계단을 통해 이 층 병원으로 들어갔다.

멈칫!

병원으로 들어선 권총수는 놀랐다.

십 년의 전쟁이 지나갔기 때문에 당연히 환자가 많을 줄 았았다.

그런데 단 한 명의 환자도 보이지 않았고 간호사로 보이는 여자가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권총수는 내공을 끌어 올려 사람의 숫자를 살폈다.

‘둘!’

정말로 병원에는 의사와 간호사 둘 뿐이었다.

딸칵!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근 권총수를 보며 간호사 얼굴이 굳는다.

강도로 판단하는 표정이다.

“의사 어딨소?”

“저기!”

탁!

간호사의 옆구리를 치자 마혈이 제압되면서 굳어 버린다.

벌컹!

권총수는 안쪽 문을 열고 들어섰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의사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급한 환자가 있소. 정강이 뼈에 금이 간 듯 합니다. 주사기와 주사약, 그리고 뼈를 지지할 수 있도록 석고 기부스를 만들어 주셔야 겠습니다.”

“당신!”

의사의 손이 핸드폰으로 향했다.

신고를 하려는 모양이었는데 권총수의 손이 더 빨랐다.

권총수는 의사 핸드폰을 쥐고 다시 말했다.

“시간 없습니다.”

의사는 주춤 일어나더니 뒤쪽 문을 열고 들어갔다.

권총수도 따라 들어갔는데 거기엔 골절상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많은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의사는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기부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권총수가 문 밖으로 나왔다.

의사는 수혈을 눌러 재웠다.

간호사는 1시간 정도 지나면 자동적으로 마혈이 풀릴 것이다.

부르릉!

기부스를 담은 비닐 봉지를 들고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한참 달리던 권총수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칫했다.

오토바이 뒤에서 혼다 SUV 한 대가 다가왔다.

추월할 듯 달려왔지만 권총수의 오토바이가 속도를 내면서 두 대는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권총수는 무심결에 왼쪽 혼다 SUV로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조수석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담배를 피우려는 듯 담배값을 꺼내 입으로 한 개비 뽑아 물었다.

‘나카야마’

조수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은 틀림없는 나카야마였다.

SUV가 속도를 내자 권총수도 오토바이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도로 상태도 좋지 않은데다 오토바이는 50킬로 이상 나가질 못해 결국 SUV를 놓쳤다.

틀림없는 나카야마였다.

차 또한 혼다 SUV다.

CIA에서 제공한 정보를 보면 아부카말에서 활동하는 가미카제 용병의 특징이 일제 SUV를 사용하고 메비우스 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조금 전 담배갑은 틀림없는 일본을 대표하는 담배 메비우스(MEVIUS)였다.

달리는 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백프로 정확히 보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카야마처럼 생긴 것이 분명했고 오랫동안 곁에 있었기 때문에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부우웅!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서도 조금전 담배를 물던 사내의 얼굴이 떠나지를 앉는다.

측면 얼굴이지만 나카야마 얼굴을 빼닮았었다.

덜컹!

농가로 향하는 산길로 들어섰다.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는데 오토바이가 힘에 겨운 듯 엔진이 터질 것 같은 소리를 낸다.

대문을 밀고 들어선 권총수는 깊이 잠들어 있는 노인을 흘긋 바라본 뒤 오민철에게 다가갔다.

권총수는 오민철의 다친 다리의 바지를 걷어 올렸다.

의사가 반으로 잘라서 만들어준 기부스를 오민철의 장딴지에 붙였다.

“어때? 쪼여?”

“아니!”

두 조각을 맞댄 권총수는 병원에서 가져온 검정색 끈으로 기부스를 조인 뒤 바지를 내렸다.

“괜찮아?”

오민철은 일어났다.

“좋아!”

기부스를 했다는 것 때문인지 한결 마음이 안정된다.

절뚝거리며 다니긴 했지만 훨씬 자신감이 붙어 보였다.

“빌어먹을, 어떻게 맨날 너 짐만 되냐?”

오민철이 나무 의자에 주저 앉았다.

“형! 난 강호무사 잖아. 당연히 형보다 덜 다칠 수밖에, 어제 밤도 그래 일반인이었다면 전투기가 떨어뜨린 폭탄에 죽었을지도 몰라.”

형이 다친 건 당연한 일이다.

결코 미안해 할 필요 없다.

후우!

오민철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자식 어린놈이 대인배 기질은 있어’

오민철이 담배를 피워 물 때 권총수가 노인을 향해 지풍을 날렸다.

쉭!

그러자 죽은 듯 방문 앞에서 누워 있던 노인이 깨어났다.

“피곤했나 봅니다?”

권총수는 덤덤하게 말했다.

“요즘 양들이 새끼를 낳을 때여서 자주 밤을 새우지요.”

그러면서 부엌으로 가더니 잠시 후 쭈그러진 양은 대접에 하얀 물을 가득 담아왔다.

“뭡니까?”

“아침 식사 대신으로, 양 젖입니다.”

양 젖을 내미는 노인은 씨익 웃었다.

아침 끼니로 내 놓을 것이 이것 뿐이어서 미안하다는 얼굴이다.

권총수는 피하지 않았다.

노인은 자신들에게 지금 최선을 다해 대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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