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7화: 전투기(1)
권총수는 피곤한 듯 차량 뒷바퀴에 등을 기대고 앉더니 두 다리를 쭈욱 뻗었다.
“좋다!”
권총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 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도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스라’
오민철이 무슨 뜻이냐는 듯 바라보자 권총수는 씨익 웃었다.
“성경 내용이야. 우린 지금 창세기에 나오는 넷째의 강 유프라데스에 있고.”
사방이 어두워 흐르는 강물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강물에서 풍기는 희미한 비린내가 코끝을 적셔 들었다.
툭!
마스히토 입에 물린 담뱃재가 떨어졌다.
권총수는 느릿하게 다가와 거의 꽁초만 남은 담배를 뽑아 버린다.
“이름이!”
“마스히토!”
“소속은 어디죠?”
“가미카제 용병, 그러나 진짜 신분은 육상 자위대 7313부대 소속 삼등육조(하사).”
“자위대 현역이라는 것 아닙니까?”
마스히토는 눈을 감더니 다시 떴다.
그렇다는 대답이다.
“자위대 현역이 용병으로 위장하고 전쟁터를 돌아다닌다? 조금 이상하군요? 자위대는 엄연히 군대가 아닌데?”
국가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설혹 나가더라도 유엔으로 배속이 되고 전투 부대가 아닌 의료와 건설 등 한정된 분야에서만 활동이 가능하다.
권총수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탈영한 건 아닐 테고? 그럼 가미카제 용병들 전부가 자위대 현역이란 말입니까?”
마스히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괴로운 듯 얼굴 근육을 실룩 거렸다.
언뜻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자신의 의지를 탓하는 탄식처럼 보인다.
바로 그때였다 쐐애애액 하며 한밤중인데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엎드려 전투기야.”
권총수가 재빨리 바위 뒤로 몸을 날렸고 오민철은 그 자리에 엎드렸다.
하늘에서 거대한 회백색의 육중한 원통형의 폭탄들이 떨어졌다.
쿠쿠쿠쿵!
십여 발의 폭탄은 근처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콰아아아!
타고왔던 SUV차량은 폭탄을 맞고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졌다.
화르르르!
불길의 기세가 대단하다.
권총수는 엄청난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일어났다.
“형!”
재빨리 일어나 오민철을 찾았다.
없다.
재빨리 내공을 끌어 올려 인기척을 살폈다.
숲과 나무가 불타는 소리 말고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내공이 뛰어나도 주위의 잡음이 강해버리면 그 속에서 다른 소리를 간파해 낸다는 건 쉽지 않다.
‘이런 젠장할!’
슉!
땅을 박차고 날아갔다.
강한 폭격으로 발생하는 열 폭풍에 휩쓸려 날아가 버렸을 수도 있다.
항공폭탄은 재래식 화력인 포병, 함포사격, 어뢰, 미사일, 기뢰 등 모두를 통틀어서 가장 강한 화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폭발 위력이 큰 만큼 발생하는 폭풍 또한 웬만한 나무는 뿌리 채 뽑아버리고 거대한 바위도 잘게 부셔 버린다.
권총수는 오민철이 날아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근처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극성의 금강부동신법을 펼치며 천리지청술을 전개했다.
수색공간을 조금씩 높였다.
서둘러야 한다.
전투기의 폭탄이 떨어졌다는 건 곧 청소를 위해 보병들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시리아 군이 동원된 걸 보면 자위대 쪽에서는 오늘 밤 반드시 자신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점차 원형이 커졌다.
방원 50미터를 시작으로 200미터까지 넓혔을 때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십여장(30미터)우측!”
슈우욱!
단숨에 날아가 갈대숲으로 내려섰다.
있다.
오민철이 나동그라진 채 있었는데 상처가 깊어 보인다.
“형!”
오민철을 흔들려다 재빨리 갈대를 손으로 헤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군인들이 오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군인들이 산을 내려와 폭탄 투하지점으로 다가온다.
차에 있는 자동소총은 폭탄에 날아갔을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권총 뿐이다.
권총 탄창을 꺼내 손가락으로 누르자 쑥 들어간다.
‘일곱 발 남았군’
혹시 오민철에게 권총이 있나 살폈지만 분실한 듯 보이지 않는다.
자신은 괜찮다.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 호신강기를 끌어 올려 외상은 입지 않았다.
하지만 오민철은 크고 작은 찰과상과 머리카락 일부가 타버렸다.
타탁!
혈도 두 곳을 치자 기절한 오민철이 눈을 떴다.
“총수야!”
쉿!
권총수가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낸다.
“우리 위치가 노출된 것 같아.”
시리아의 위성 시스템으로는 결코 알아내지 못한다.
중국 아니면 러시아 첩보위성을 통해 체크 됐을 것이다.
마스히토가 갖고 있는 핸드폰으로 계속 전화를 시도한다.
그때 우주에 떠 있는 첩보위성은 마스히토 핸드폰이 있는 위치를 찾아내고 지상에서는 정확한 위치를 찾아 레이더를 작동한다.
그런 방법으로 중요인물들이 숨어 있는 장소나 이동공간을 공격하는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한곳에 머물렀다.
실책이다.
시리아 전투기까지 동원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첩보위성을 통한 추적은 더더욱 예상하지 않았다.
“몸은 어때?”
“폭탄이 떨어질 때 다친건지 아니면 날아와 여기로 추락하면서 발생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오른쪽 정강이가 불편한데.”
“어디 봐!”
권총수는 오민철의 바지를 걷어 올렸다.
“크욱!”
정강이를 누르자 오민철이 비명을 지른다.
“골절은 아닌 것 같고, 금이 간 모양이야. 형 잘 들어. 내가 형을 업고 포위망을 빠져 나갈거야. 알겠지만 직선으로만 날아가지 못해. 총알을 피하려면 좌우로 급격한 방향전환을 해야 하는데 그때 형이 몸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거지.”
오민철의 몸 정도는 이갑자에 이르는 내공으로 업고 달리는 건 일도 아니다.
문제는 적과 교전을 하고 위험을 피해 움직이다 보면 등에 있는 오민철이 버티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찌이익!
오민철이 윗도리를 찢었다.
모두 다섯 개로 찢은 뒤 권총수의 등에 업혔다.
권총수는 오민철이 찢어준 다섯 개의 천으로 아이처럼 묶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받쳐 묵고 허리를 묶고 오민철의 겨드랑이 사이로 천을 집어넣어 권총수의 목으로 한 바퀴 감았다.
“탈출로는 강뿐이야.”
그건 물속으로 들어갈 것이므로 호흡 관리 잘하라는 뜻이었다.
파파팡!
잔투기가 쏟아놓고 간 폭탄에 의해 발생한 불길만으로도 훤한데 그것도 모자라는 듯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
갈대밭과 강변의 백사장이 대낮처럼 환해져버렸다.
슈아아아!
단번에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권총수의 신형이 강물을 향해 날아갔다.
“놈이닷!”
드르륵!
두두두두!
AK 뿐만 아니라 러시아 기관총 PKM 소리까지 들린다.
거리가 5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권총수는 호신강기를 최대한 끌어 올렸다.
툭!
투투투툭!
십여발이 호신강기를 때리면서 권총수는 휘청 거렸다.
총알 한 발이 때리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도 일반 소총보다 훨씬 강한 기관총 탄도 몇 개 때린 듯 순간적으로 비릿한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려고 한다.
‘역시’
권총수는 다시 한 번 현대 무기의 무서움을 인정했다.
단번에 내상을 입어 버린 것이다.
투둑!
세 개의 총알이 더 파고드는 충격을 느끼면서 강물로 떨어졌다.
풍덩!
권총수가 물속으로 사라지고 이어 달려온 시리아 병사들이 강물을 향해 총을 갈겼다.
아무리 뛰어난 총도 물속에서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오십여 명의 군인들이 미친 듯 방아쇠를 당겼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군인이 통신병의 등에 지고 있는 무전 송신기를 들어 본대와 교신을 하기 시작했다.
지휘관은 송수신기에 대고 연신 ‘무스타’를 강조했다.
152밀리 2S19무스타.
사정거리 29킬로이며 1분에 최대 여덟 발을 발사 할 수 있는 러시아제 자주포다.
떨어지면 방원 30미터가 초토화 되버린다.
통신을 끝낸 듯 지휘관은 군인들에게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포 사격이 시작 될 것이다. 즉시 현 위치를 벗어난다.”
군인들이 일제히 후퇴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강가는 어둠에 잠겼다.
아직도 전투기가 남긴 불길이 남아 있었지만 어둠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10여분 정도 지나 쿵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강줄기를 따라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강이 찢어진다.
엄청난 물기둥이 솟구치고, 모래 구덩이가 생겨났다.
최소한 10대 이상의 포가 사격을 하는 듯 쉬지 않고 포탄이 떨어졌다.
그 모습을 어둠속에서 바라보는 지휘관은 상당히 흡족한 표정이다.
파편 하나가 두께 2센티짜리 철판을 뚫는다.
사람의 몸이라면 절대 견디지 못할 것이다.
20여분간에 걸친 소나기 같은 포 사격이 끝나자 지휘관은 크게 명령했다.
“각 분대별로 수색.”
다섯 개 분대로 나눈 군인들은 강둑을 따라가며 수색하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현상이었다.
포탄에 의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소용돌이가 생겨났고 물기둥을 따라 공중으로 솟구치기도 했다.
오민철을 등에 업고 있으며, 이십여 발의 총알이 호신강기를 때리면서 입은 내상이 있다고 하지만 웬만한 급류 정도는 충분히 돌파할 수 있다.
하지만 포탄이 만들어낸 살인적인 충격파와 소용돌이 앞에서는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따다닥!
물이 아니라 딱딱한 철판 같은 것이 몸을 후려치는 것 같았다.
“욱!”
급기야 오민철이 신음을 터뜨렸다.
호신강기를 펼쳐 외부 충격으로부터 오민철을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쉬지 않고 쏟아지는 포탄이 만든 물은 잔인한 칼(水刀) 날이 되어 베고 쑤신다.
우욱!
권총수는 피를 토했다.
‘형, 조금만 참아!’
귓가로 권총수의 전음이 들려온다.
형이란 말이 지금처럼 가슴을 움켜쥘 만큼 뜨겁게 다가온 적이 없다.
형(兄).
권총수에게 오민철이란 형은 친구이고 동료이다.
때로는 부하직원이기도 했고 가끔은 형을 갖고 놀기도 한다.
어쩔 때는 장난감처럼 주물럭거리다 심심하면 전문대 출신자의 무식을 폭로하기 위해 기를 쓰고 모르는 것만 묻는다.
그러다 보니 어쩔 때는 기분이 나빴고, 이 자식이 날 형으로 보는 거야 졸로 보는 거야 하는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놀림에 분노하다 칭찬에 웃었다.
형 대학 나온 것 맞아 하며 비아냥 거릴 때 눈을 부릅떴고, 그래도 우리 민철이 형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에는 다시 웃었다.
둘 사이의 시간은 그렇게 나이테가 되어 쌓였는데 지금 또다시 가라앉은 목소리로 부르는 형이란 말이 온 몸을 회치듯 후볐다.
오민철은 전음을 보낼 줄 모른다.
그래서 두 발로 용기를 내라는 듯 권총수의 허벅지를 툭툭 건드렸다.
콰아앙!
그때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지척에 포탄 한 발이 떨어졌다.
엄청난 파도가 일어나며 권총수는 물기둥을 따라 솟구쳤다.
슈우웅!
세상은 어둡다.
권총수는 이대로 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파팍!
재빨리 호신강기를 풀고 금강부동신법에 모든 공력을 쏟아 넣었다.
타탁!
해조약파(海鳥躍波), 물새가 파도를 치고 날아오른다는 수법으로 재빨리 전환하면서 강을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