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96화 (396/651)

제396화: 행동(2)

한편 그 시간 아부카말의 시내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모여든 곳은 내전당시 러시아 전투기 수호이-30이 금지 폭탄으로 정해진 백린탄을 뿌려 초토화가 되어버린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몰려든 승용차와 SUV를 합쳐 열다섯 대였다.

차에서 내린 사내들 손에는 30발들이 탄창이 장전된 M4가 들려 있었는데, 마흔 명이 조금 넘었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집결하는 장소로 사전에 준비가 된 듯 움직임들이 일사 분란했는데 검정색 원통형 모자인 페즈를 쓴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마스히토 삼등육조(하사)가 실종되었다. 음료수를 사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가 그길로 행방불명이다.”

“어느 쪽에 가능성을 두고 있습니까? 납치, 아니면?”

“핸드폰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그건 이미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부터 팀 단위로 움직이면서 수색에 나선다. 현사태는 매우 심각하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작전 개시.”

사내들이 각자의 차량으로 돌아갔고 운동장은 삽시간에 텅 비었다.

지휘관인 사내, 아베의 표정이 펴질 줄 모른다.

지금까지 교전중 사망자 발생은 한 건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사라져 버린 예는 없었다.

부우웅!

그때 라이트를 켠 차량 한 대가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검정색 혼다 SUV다.

딸칵!

운전석에서 내린 사내가 천천히 아베를 향해 걸어갔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사내의 나이는 마흔 가까이 되어 보였다.

허리에 글록 19 한 정을 차고 있었으며 통 넓은 회색 바지에 오래된 국방색 야전점퍼를 걸쳤다.

“잠깐!”

사내의 양해를 구하고 아베는 전화를 받았다.

“예! 예! 그렇습니다. 예! 곧바로 전화드리죠.”

야전 점퍼를 걸친 사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전화를 하고 있는 아베는 2등육좌(2等陸左:중령)이다.

사내가 누구냐는 듯 바라보자 아베가 대답했다.

“사코오 1등육좌(1等陸左:대령)입니다.”

“사코오 1등육좌.”

사내는 나직히 중얼 거렸다.

아베의 직속상관이며 그가 거느린 부대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하다.

그들은 자위대의 수준을 넘어 각 나라의 어떤 특수부대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지이잉!

진동으로 해놓은 벨소리지만 조용한 까닭에 들린다.

아베는 다시 핸드폰을 보며 통화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듣기만 했다.

아베의 표정이 갈수록 굳어지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잠시 뭔가 생각 하는 듯 이마를 찡그리고 있던 아베가 사내를 향해 불쑥 물었다.

“블랙잭 말입니다?”

“새로 생긴 한국 보안회사말입니까?”

“그곳 대표의 행방이 갑자기 사라졌다는군요.”

“블랙잭 대표는 사막의 흑새인데.”

사내의 눈이 반짝 거렸다.

사실 권총수의 행방은 하나의 뉴스가 된다.

그가 숨만 길게 내쉬어도 큰 사건이 되며 각국 보안 기업들의 정책 결정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블랙잭은 신생기업이다.

그러나 보안 시장에서 만큼은 기존의 다른 회사들 보다 그 무게가 훨씬 무겁다.

신생이지만 이미 경쟁 기업인 것이다.

사막의 흑새는 누구보다 전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또한 아무도 용병시장에서 사막의 흑새 명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가급적 블랙잭과 사업이 겹치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쓰며, 그래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든 회사들의 감시망에 있는 것이다.

“계속 감시가 붙은 것 아니었소?”

“24시간 체제로 채널을 가동하고 있었는데 일주일 전 갑자기 사라졌다는군요.”

사내의 표정도 굳어진다.

갑자기 사라지면 반드시 뭔가 진행 중에 있다는 걸 오랫동안 겪어 알고 있다.

“오민철은? 블랙잭의 넘버 투?”

“같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종적을 감춰 버렸다면 보통일은 아니다.

그들이 다시 나타날 때면 엄청난 뉴스가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보도된다.

‘설마!’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강하게 부정한다.

‘그럴리는 없다’

그러다 무엇을 떠올린 듯 사내가 눈을 빛냈다.

“시청에 있던 한국인 시신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했소?”

“CIA에 솜씨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부탁을 받고 움직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렇겠죠.”

CIA가 아니면 적지에 있는 시신을 그토록 소리 소문 없이 빼내갈 수 없다.

두 사람의 얘긴 조용조용 이어지고 있었다.

한 사내가 서성거린다.

쉰 중반 정도로 보인다.

눈썹이 파마를 해 놓은 듯 치열하게 엉켜 있고 이마가 좁았다.

머리는 8대2 가르마로 단정하게 넘겼고, 금테 안경을 끼었는데 굵직한 콧등이 매의 부리처럼 휘어져 있었다.

이름하여 매부리코다.

어깨 위에는 네 개의 별이 걸려 있었는데 자위대 육상막료장(陸上幕僚長:대장)마사요카였다.

“부관!”

인터폰으로 말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이등육좌(중령계급)가 뛰어 들었다.

“아직도 연락이 없나.”

“예 장군님!”

지이잉!

책상위에 놓인 세 개의 전화중 하나가 울렸다.

단 한 사람만이 자신과 직통전화를 할 수 있는데 바로 일본을 이끌어나가는 총리였다.

“총리각하!”

일본 총리 스미모토였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예! 충성!”

힘차게 소리치며 전화를 끊었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리며 넥타이를 한 중년의 남자가 들어섰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매서운 한광이 쏟아지고 깡마른 체구에서는 냉기까지 돌고 있었다.

내각정보국장 와타다 였다.

“어서 오시오. 국장!”

“장군, 우리쪽에서 알아 본 바에 의하면 납치쪽에 무게를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범인은 어느 쪽입니까?”

“보통 납치를 하면 곧장 대 내외에 정체를 드러내며 요구사항을 밝히는데 아무런 행동이 없는 것이 쿠르드 민병대나 시리아 반군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그쪽도 바쁘게 돌아가는 모양인데 아직 어떤 감을 잡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때 부관이 녹차 두 잔을 가져와 탁자에 놓았다.

서 있던 육상자위대 막료장 마사요카 대장이 내각정보국장 와타다 맞은편에 앉는다.

두 사람은 숨을 죽이듯 소리 없이 차를 한 모금씩 마셨다.

“밤을 새웠다면서요?”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

“음!”

마사요카의 어금니가 물린다.

“사막의 흑새가 자꾸 꺼림칙하군요.”

마사요카는 눈을 좁혀 떴다.

“카이로에서 아카데미 프린스를 만난 것까지는 확인됐는데 갑자기 종적이 감시망에서 사라져 버렸죠.”

벌떡!

마사요카가 벌떡 일어났다.

답답하고 긴장이 되는 모양인지 실내를 서성거린다.

“찾아야 합니다. 이건 우리 일본국의 운명과도 직결이 됩니다. 전모가 드러나기라도 하면 국제사회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비난은 물론.”

잠시 말을 끊었다.

“남북한과 중국이 가장 강하게 반발하며 유엔에서 강력조치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렇겠죠. 그래서 일단 모든 블랙요원들까지 아부카말로 집결 시켰습니다. 언제든지 무기를 사용해도 좋다는 명령도 하달했죠. 우리 특수군과 정보국 요원들이면 곧 사건의 전모를 밝힐 것이니 조금 기다려 봅시다.”

“으음!”

마사요카는 다시 소파에 앉아 녹차를 마셨다.

“조금 전 총리님께 시리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하여 그쪽 군을 동원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아주 좋은 얘깁니다.”

둘의 얘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다.

입을 열지 않는다.

지금까지 포획한 포로 누구보다도 의지가 강하다.

마스히토는 죽여 달라고 사정했다.

사무라이 후손답게 당당하게 죽고 싶다는 것이다.

“전쟁 경험이 별로 많지 않은가 봅니다. 전장에서 내 목숨은 내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상대에 의해 결정되고 좌우됩니다. 내 것이라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하죠. 오직 적만이 날 죽이든 살리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난 당신의 적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살고 죽는 건 내 손에 달려있으니 죽여 달라 마라 그 따위 말은 하지 마라.

이른바 월권행위라는 뜻이었다.

“마지막으로 묻죠. 한 달 전 한국인 성지 순례 객 다섯 명을 죽였죠? 상처를 보아하니 조준사격을 했던데?”

흠칫!

마스히토의 두 눈이 출렁거렸다.

그건 권총수의 말이 송곳처럼 정확히 찔렀다는 뜻이었다.

히죽!

권총수는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담배를 피워 물었다.

딸칵!

자신이 불을 붙여 마스히토에게 권했다.

“됐소.”

차갑게 거절한다.

그렇다고 마스히토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따위 동정은 싫다. 사무라이는 결코 구걸하지 않는다. 뭐 그런 뜻인가요?”

권총수는 담배를 길게 빨아 들였다.

“어디 한 번 봅시다. 사무라이의 정신이 어느 정도인지 내 두 눈으로 구경을 하죠.”

권총수의 오른손이 뻗었다.

다섯 손가락이 칼처럼 빳빳하게 펴지면서 강력한 지력이 튕겨 나왔다.

소림의 탄지신공이다.

컥!

끊어질 것 같은 비명이다.

우두둑!

마스히토의 몸에서 뼈와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 나오더니 온 몸을 파르르 떨었다.

끄으으!

몸이 새끼줄처럼 꼬이기 시작했다.

허리를 중심으로 상체는 왼쪽으로 돌아가고 허리 아래는 오른쪽으로 뒤틀렸다.

툭!

투투툭!

부러지고 끊어지는 소리가 쉴 사이 없이 들리면서 두 손이 갈고리처럼 땅을 파고들었다.

손가락이 땅속을 파고들어 쟁기가 밭을 갈듯 지면을 긁었다.

바르르!

온 몸은 꼬이고 흔드는 듯이 떨고 있다.

얼굴은 핏물에 담가 놓은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며 관자놀이와 이마의 힘줄이 살갗을 뚫고 나올 듯 불거졌다.

푸푸푹!

입에서 피에 섞인 이빨조각들이 기어 나왔다.

너무 세게 이를 깨물면서 부서진 것들이다.

“총수야!”

오민철의 이게 무슨 고문이냐는 듯 눈이 커졌다.

“분근착골!”

권총수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사부께서 그러더군. 분근착골이라는 고문술이 있는데 그야말로 끝판왕이라는 거야.”

권총수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돌부처도 분근착골을 가하면 말을 한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더 센 것으로 보인다는 눈빛이다.

마스히토 입에서는 피거품이 흘러나왔고 완전히 까 뒤집힌 눈동자는 금방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그...그만.”

피거품이 갈라지며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마...말하겠다!”

파파팟!

다시 지력을 날려 제압된 다섯 곳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두두둑!

뒤틀린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면서 내는 소리다.

꼬였던 몸이 풀리고 반쯤 시계 방향으로 돌아간 목이 제자리를 찾았다.

트트특!

티팅!

몸이 뜨거운 불판에 올려놓은 콩처럼 튄다.

물거품이 생겼다 터지는 것처럼 한동안 요란하게 꿈틀거리던 몸이 잠잠해지고 마스히토는 축 늘어졌다.

마스히토는 죽은 사람 마냥 꼼짝하지 않았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권총수가 옆에 쭈그리고 앉더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여 한 모금 빨더니 마스히토 입술에 끼워 주었다.

앞서서는 거부하던 마스히토는 그대로 있었다.

마스히토는 한동안 담배를 물고 있더니 마침내 한 모금 길게 빨아들였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누군가 살아 있는 것은 눈물 나도로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마스히토에게 죽지 않았다는 건 유감스런 비극일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