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4화: 잠입(3)
이미 맥보란으로부터 타마르라는 사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왔기 때문에 권총수는 당당한 그의 태도를 의심하거나 불편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장 급한 건 보안업체 가미카제의 이 지역 지사를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그곳의 책임자죠.”
“책임자까지는 모르지만 수뇌급 인물중 한 명의 이름이 나카야마란 얘길 들었습니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나카야마?”
오민철이 소스라친다.
“예 나카야마.”
“쪽바리 이 개자식이.”
“형 흥분할 것 없어, 일본에서 나카야마란 이름은 한국에서의 철수, 영수야. 일본 사람들 보면 거의가 나카야마, 이마까라 뭐 그렇잖아.”
“하긴!”
오민철은 흥분을 눌렀다.
그러나 이미 눈동자는 벌겋게 일어나 있었다.
“며칠 동안 이 지역을 돌아다녀 봤는데 모든 관공서에는 가미카제 용병들이 있었고, 강북쪽 밀과 면화를 생산하는 교외와 알타부 지역은 자주 교전이 벌어지는데 시리아군과 가미카제가 합동작전을 펴고 있죠.”
“인원은 어느 정도 됩니까? 가미카제 용병들 숫자 말입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일백 여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시리아군과 합동작전을 펴는 인원들만 입니까?”
“소문이 그렇습니다.”
오민철이 권총수를 돌아보았는데 이마를 찡그리고 있다.
“관공서를 지키는 용병들까지 더하면 도대체 몇 명이라는 거야?”
홱!
권총수 고개가 번개처럼 돌아갔다.
어느새 손에는 권총이 뽑혀 있었는데 오민철도 재빨리 따라 뽑았다.
오민철은 아무소리도 듣지 못한 듯 권총수를 보았다.
집 앞 마당이 아닌 뒤이기 때문에 골목 쪽에서 들리는 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다.
슥!
권총수는 권총을 거두더니 땅바닥에서 돌멩이 한 개를 주워 들었다.
파팟!
갑자기 오민철이 눈이 빛났다.
지금 막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타마르 또한 긴장한 듯 태연하게 그물 손질을 시작했다.
잠시 후 뒷마당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라합!”
나타난 사내는 타마르와 몇 차례 같이 일을 했던 이웃이다.
처음 시청에서 한국인 시신을 훔칠 때도 일했었고 얼마전 가미카제 용병들 장비 상태 조사를 할 때도 협조했다.
물론 그때마다 댓가는 지불했다.
라합이란 사내가 주위를 훑었는데 권총수와 오민철이 숨어 있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물 손질 중이었군?”
라합이 길다란 그물을 보며 말했다.
타마르 역시 열심히 꿰매면서 물었다.
“웬일인가?”
오늘은 부르지 않았다.
일이 있을 때만 부른다.
“자네 하는 일에 나 좀 끼워 주면 안 되겠나?”
“내가 하는 일?”
라합이 빙긋이 웃었다.
“그래 자네가 하는 일 말이야. 거기에 나도 좀 끼워 주게. 자네 가족들만 터키로 건너가 잘살면 되나? 우리가족도 잘 살아야지 안 그런가 타마르?”
타마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건 노골적인 협박이다.
끼워주지 않으면 당장 신고해 버리겠다는 뜻이다.
“아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우리가 하루 이틀 알고 지내온 사이도 아니고, 같이 먹고 같이 행복하자는 뜻이라네. 난 정식 직원은 바라지 않네 그냥 임시직이라도.”
“정식은 뭐고 임시직은 뭔가?”
“자네는 규칙적으로 미국으로부터 돈을 받지만 나는 가끔 생각날 때 한 번씩 던져주면 그것으로 족하겠다는 거지.”
라합이 가느다랗게 웃었다. 타마르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씩 던져주면 되겠소?”
라합이 화들짝 놀라며 돌아섰다.
권총수와 오민철이 서 있다.
“누구쇼?”
“당신처럼 친구의 도움에 감사하기는커녕 협박하여 날로 먹으려는 사람은 살아 있을 필요가 없소.”
푸슉!
소음기가 달린 오민철의 총구가 꿈틀했다.
라합은 한차례 부르르 몸을 떨더니 그대로 엎어졌다.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며 쓰러진 라합을 보며 오민철이 중얼 거렸다.
“못된 놈.”
그때 타마르가 다가와 접혀진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 도시의 지도입니다.”
권총수는 지도를 받아 펼쳤다.
작전지도였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주둔하고 있는 위치, 가미카제 용병들이 지키는 관공서, 쿠르드 민병대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 등이 자세히 그려져 있었다.
8개월 전 폭탄을 실은 승용차가 돌진하며 많은 인명피해가 일어난 이후 아부카말의 시청은 많이 달라졌다.
담장을 높였고 그 위로 철조망을 올렸다.
가장 많은 변화는 시청 입구에 용병들이 지키고 있었다.
M4를 휴대한 그들은 세 차례에 걸친 쿠르드 민병대의 공격을 막아냈고, 장갑차까지 앞세운 시리아 반군을 격퇴했다.
또한 그들이 아부카말 시내의 치안을 맡으면서 하루도 그치지 않고 들려오던 총성이 점차 멎어들고 있었다.
“일본놈은 일본놈인데.”
권총수와 오민철은 시청 정문이 훤히 보이는 2층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거리는 50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오민철은 커피 마시랴 용병들 살피랴 바빴다.
“근무는 두 놈이지만 경비실에 몇 명 더 있겠지?”
“도합 네 명 있어.”
권총수가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경비실 유리는 선팅이 되어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으나 권총수는 다르다.
“다 쪽바리야?”
권총수가 물었다.
“왜 저들 숙소를 아는 사람이 없을까?”
용병들의 숙소는 두 가지 형태로 이뤄진다.
군 기지처럼 특별한 지역에 건물을 세우거나 아니면 임대하여 군대처럼 생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각자로 하여금 숙소를 마련하도록 한다.
즉 출퇴근 형태로 용병 개개인이 집을 얻어 생활하는 것이다.
양쪽 모두 장단점은 있다.
군대처럼 다수가 모여 생활하는 형태일 경우 외부의 공격에 쉽게 노출된다.
경비병력을 세우지만 멀리서 로켓이나 박격포를 쏟아 버리면 대책 없다.
개인 주거일 때 또한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자칫 절제하지 못하는 생활, 과도한 음주로 취해 골아 떨어진다거나 하면 비상시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인력 배치나 출동이 이뤄지지 않는다.
다인코프에서 개인 거주를 시도했다가 일 년이 안 되어 포기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술도 술이지만 남편이 있는 여자를 건드렸다가 보복 살해된 사건이 몇 건 있었다.
어쨌든 그 지역에서 작전을 벌이는 용병들의 거주지는 미군부대처럼 드러나게 되어 있다.
단지 얼마만큼 분명한 경계와 외부 공격에 재빨리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미카제는 아직 어떤 주거 형태인지 아무도 모른다.
타마르의 말에 의하면 미행을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놓쳤다고 했다.
특수부대의 훈련과목 중 미행과 감시가 있다.
들키지 않게 뒤를 따르고, 따라오는 적을 따돌리는 방법을 반복적으로 숙달 훈련을 받는다.
결국 타마르의 능력으로 저들을 미행한다는 건 어려운 일일 것이다.
오히려 역으로 걸려 총 맞아 죽지 않은 것에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머리카락 말이야.”
권총수의 말에 오민철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머리가 하나 같이 짧지.”
홱!
오민철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어 그렇네.”
용병들은 민간인이다.
군대처럼 두발 간섭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머리가 길다.
아카데미와 다인코프 용병들 중에는 적지 않은 인원이 머리를 미는데 대부분이 탈모가 심하기 때문에 배코 치듯 해버린다.
어쨌든 용병은 짧지 않다.
아카데미 같은 경우 어깨까지 머리를 늘어뜨려도 간섭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미카제 용병들은 약속이나 한 듯 스포츠 머리다.
“한두 놈 정도면 그저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겠는데 거 참.”
오민철도 이상하다는 듯 중얼 거렸다.
근무 교대가 이뤄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지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이뤄졌기 때문에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어디서 나타난 거야.”
“놀랍군.”
권총수의 눈이 흔들렸다.
“민원인처럼 들어가 자연스럽게 섞여 버리는데.”
시청을 출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엔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생필품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데 오로지 시청을 통해 전달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고 가끔은 십여 명씩 무리를 지어 들어갔다 나오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 속에 섞여 버리면 얼른 구분이 가지 않는다.
오민철은 아주 잠시 시선을 뺏겼을 뿐인데 근무자가 바뀌어 있었다.
“근무 끝난 놈들은 왜 안 나와?”
오민철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못 봤어?”
“뭘?”
“나왔어.”
홱!
오민철이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따라와!”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밖으로 나온 권총수는 20여 미터 앞에서 인도를 따라 걸어오는 동양인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막색 평복에 머리에 이슬람 모자중 하나인 페즈를 썼다.
사내는 주위를 경계 한다거나 살피는 눈치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유유자적까지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교대자 맞지?”
가까이서 보니 20여분 전까지 총 들고 서 있던 사내였다.
“가지마!”
권총수는 뒤를 미행하려고 걸음을 옮기려는 오민철을 불러 세웠다.
“또 오고 있어.”
먼저 지나간 사내가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쯤 또 한 명의 동양인이 걸어왔다.
그런 식으로 띄엄띄엄 모두 네 명이 지나갔다.
네 사람의 거리를 따진다면 족히 오백 미터는 넘어 보였다.
권총수는 앞 사람과의 간격이 최소 백 미터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도심에서 백 미터 이상 떨어져 걸어가는 사람을 한 패거리로 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왜 모여 가지 않고 하나씩 흩어져 가지?”
“가장 먼저 지나간 사람을 미행했다면 두 번째 사내에게 제대로 걸려들겠지.”
화악!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두 번째 사내를 미행하면 세 번째 놈에게 걸리고? 그럼 마지막 네 번째는 누가 지켜?”
“더 이상은 없지. 가장 마지막에 가는 인물이 제일 뛰어 날 테고.”
“이게 무슨 전술이야?”
온갖 특수 훈련을 받았으나 이런 전술은 경험해 보지 않았다.
“글쎄 자신들이 독창적으로 개발한 도심 이동전술중 하나일 가능성이 커,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것이 있어. 조금전 지나간 패스파인더?”
자동차다.
“닛산 꺼.”
“그 차가 태우고 갈 이동 차량일 거야.”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이마를 잔뜩 찡그리던 오민철이 입을 열었다.
“정리 좀 해보자고, 쪽바리들이 어떻게 나왔지? 일단 나왔어.”
“민원인들에 섞여 나왔기 때문에 헷갈렸고 따로 따로 걸어간 것 까지는 이해가 갔어. 만약에 붙을 수도 있는 미행자를 감시하기 위한 도시 이동전술?”
오민철이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차량 얘긴 또 뭐야?”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네 명이 미행자를 감시 해주며 걸어갔지?”
“그래!”
“무전기로 네 사람은 서로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는 연락을 했고, 마지막으로 대기하고 있던 조금 전 닛산 SUV가 맨 뒤 사람부터 순차적으로 태우고 사라진 거지.”
찡그리고 있던 오민철이 갑자기 피식 웃고 말았다.
“뭐가 그렇게 복잡해.”
“일본인들의 특징이 뭐야. 매사가 답답할 만치 꼼꼼하고 치밀하다는 거지.”
그런 점을 생각 한다면 특이할 것도 이상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민철은 머릿속을 정리하려는 듯 가만있었다.
“대단하군.”
권총수가 뭐가 대단하냐는 듯 바라보자 오민철이 힘주어 말했다.
“지금 그들의 이동 방법.”
오민철은 침을 삼켰다.
권총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대단위의 대규모 전투가 아닌 이런 도시에서 일어나는 게릴라전에서의 승패는 내 위치를 적에게 노출 시키지 않는 거지.”
“우리가 경험 했잖아. 미행, 접근, 공격순으로 해치웠어.”
적을 발견하면 미행을 하며 따라 붙는다.
그리고 야전의 숙영지나 집결지와 같은 여럿이 묵는 숙소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뒤 대대적인 공격을 퍼부어 궤멸한다.
산악전투도 있지만 어느 회사의 용병이든 70퍼센트 정도는 시가전이다.
즉 지금과 같은 개별 이동방법은 시가전에서 나와 내 동료의 안전을 지키고 오히려 적의 꽁무니를 잡을 수 있는 전략이다.
생각할수록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