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3화: 잠입2
한참을 듣던 압둘가니가 무거운 신음 소리를 냈다.
권총수는 가벼운 내용이 아님을 간파했다.
2분여에 걸친 녹음 재생이 끝났다.
권총수는 자신의 핸드폰을 넣고 오민철의 핸드폰을 귀에 대었다.
“무슨 뜻입니까?”
“그들은 용병이 아니다. 현역군인이다.”
“누가?”
“자위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 자위대?”
스피커 폰으로 나온 소리에 오민철이 놀란다.
“술을 먹고 자기네들끼리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는 군요. 자기 이름은 자말.”
죽은 사내의 이름이다.
아부카말 시내에 정찰을 나갔다가 우연히 터번을 한 아시아계 인물들을 발견했다.
이미 일본 가미카제 용병들이 들어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자말은 그들을 미행했고 같이 술집에 들어갔다.
시리아는 술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이슬람국가다.
하지만 내전이 길어지면서 병사들 전투력 향상을 꾀할 목적으로 알콜에 대한 제제나 처벌을 완화했고 지금은 일반인들도 어렵지 않게 마신다.
술이 몇 순배 돌면서 자말은 놀라운 소리를 들었다.
일등육사(一等陸士:일등병), 육사장(陸士長:병장), 3등육조(3等陸曹:하사) 2등육조(2等陸曹:중사)하며 계급을 불렀다.
자말은 용병이지만 서로 편하게 현역시절 계급을 사용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육사장 한 명이 술이 과했는지 실수를 했다.
그러자 2등육조라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꾸중을 하며 훈육했다.
육사장이란 사내는 현역 군인처럼 허리를 똑바로 편 차렷 자세로 듣고 있었다.
용병은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의견충돌이 있으면 곧장 주먹으로 붙는다.
아무리 군대에서 계급이 높아도 이른바 열 받으면 치고 받는 난타전이다.
그나마의 대접은 이 바닥 고참이다.
용병생활을 오래한 사람에게는 한 발 물러선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간파하고 자말은 술집을 빠져 나오다 그들에게 발각되었다.
너무 급히 나오느라 그들에게 쿠르드 민병대라는 걸 들키고 만 것이다.
“수고했소.”
전화를 끊었다.
오민철도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표정이 굳어 있었다.
“봐봐!”
권총수의 핸드폰으로 검색한 일본 자위대 계급인데 압둘가니가 해석한 그대로였다.
권총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유유히 흘러가는 유프라데스강을 바라보기만 했다.
죽어가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리 없다.
또한 회사 직원인 압둘가니가 사장에게 거짓 해석을 해줄 리는 더욱 없다.
일본 출신 용병들 전투력에 대해서는 모든 회사가 긍정적이다.
책임감 있고 체력 좋고, 특히 사격에 관해서는 씰이나 델타포스 출신들 못지 않다고 했다.
자위대는 결코 군대가 아니고 방어적 개념의 보안경찰 정도다.
일본은 헌법을 고쳐 자위대를 군대로 만들고 해외 파병을 꿈꾸고 있다.
자위대 출신들 용병이 예전에는 한두 명이 고작이었는데 왜 갑자기 근래에 들어 일백여명까지 늘었을까.
한편 일단의 사내들이 유프라데스강 줄기를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눈에는 사안식 야시경을 끼었고 손에는 M4를 들었다.
복장은 모두가 달랐다.
아랍식 복식 토브를 걸친 사람도 있고 일부는 전투화에 사막색 군복바지를 입고, 또는 이슬람의 평상복(우리의 개량 한복과 비슷)차림이 대부분이다.
용병이라고 해서 최신 사안식 야시경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워낙 고가의 장비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작전을 벌일 때 참여하는 병력에게만 지급되었다가 끝나면 반납한다.
“여기 봐 핏자국이야.”
185센티 정도 되는 단단한 체격의 사내가 야시경을 통해 강변 모래 위를 보았다.
좀 더 정확한 걸 보여주겠다는 듯 쭈그리고 앉아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손을 모은 뒤 볼펜만한 가느다란 후레시를 비췄다.
핏자국었다.
핏자국은 조금씩 갈대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쉭!
쉬이익!
키 큰 사내의 손가락이 좌우로 움직이자 사내들은 산개하여 갈대숲을 향해 다가갔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방아쇠를 당길 듯 갈대숲으로 다가가는 동작들은 극히 신중했다.
권총수는 앞서서 이미 사내들의 기척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재빨리 차를 밀어 숲속에 숨기고 나뭇가지를 꺾어 완전 위장했다.
어두운 밤이기 때문에 5,6미터의 거리만 두어도 알아차릴 수 없다.
두 사람은 권총을 집어넣고 승용차 뒤에 실려 있던 MP9를 꺼내 들고 있었다.
개머리판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데 특히 접었을 때는 50센티 정도밖에 되지 않아 옷자락 속에 간단히 숨길 수 있다.
기관단총이라고도 부르고 기관권총으로도 불릴만큼 쏟아내는 화력은 압도적이다.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최대한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
서로 정면에서 마주치기 전까지는 건드려서는 안 된다.
타초경사(打草驚蛇)라고 했다.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인데 지금 방아쇠를 당기면 몸통은 더욱 숨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오민철의 귀에까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캄캄하고 고요한 밤중인데도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그다지 크지 않다.
‘훈련이 잘된 병사와 그렇지 않은 병사는 걸음을 보면 안다.’
훈련이 잘된 특수부대 원들의 행군은 빠르기도 하지만 지면과의 마찰을 최소화 한다.
사냥을 성공시키는 첫째 관건은 접근인데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이 발자국 소리다.
발자국 소리를 숨기지 못하면 사냥 성공률은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다가오는 사내들의 걸음은 매우 뛰어났다.
발자국소리만 놓고 본다면 씰 출신들 보다 오히려 낫다.
그 순간 또 다시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영국의 SAS, 네이비 씰은 자타가 인정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훈련이 잘된 집단이다.
그들은 항상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했다.
많은 나라가 나름 특수부대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력과 장비 면에서 그들을 따라갈 수는 없다.
오민철도 잔뜩 이마를 찡그렸다.
그 역시 특수 부대 출신들이기에 이토록 소리없이 다가오는지 궁금하면서도 매우 놀란 얼굴이었다.
스으윽!
오민철이 기관단총을 들어 올리자 권총수가 총의 몸통을 지그시 눌러 내린다.
기다리란 뜻이다.
다가오는 사내들과의 거리는 대략 20미터 정도다.
공격하려면 지금이 적기다.
너무 가까워도 결코 이롭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방아쇠를 아껴야 한다.
오민철은 흐릿한 어둠이 움직이는 정도였지만 권총수는 사안식 야시경을 쓰고 다가오는 사내들을 보고 있었다.
대략 열 명가량이다.
조금 전 자신이 묻어준 쿠르드 민병대원을 추적해 왔을 것이다.
“정지!”
리더로 보이는 사내가 오른 손을 들어 올렸다.
모두가 긴장을 풀고 허리를 세운다.
스윽!
우두머리 사내가 쓰고 있던 사안식 야시경을 머리 위로 밀어 올렸다.
그러자 선명한 동양계의 얼굴이 드러난다.
‘일본인’
서양 사람들은 몰라도 같은 동북아시아 사람들은 중국과 한국과 일본계를 거의 알아 맞춘다.
파팟!
돌연 권총수의 눈이 섬광을 발했다.
사내들이 일제히 맹수들처럼 고개를 약간 쳐들었는데 믿을 수 없게도 콧구멍을 벌름 거리고 있었다.
먹잇감의 냄새를 맡기 위해 고개를 쳐들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사자를 본적이 있다.
표범도 그랬고, 하이에나 역시 냄새를 맡을 때는 고개를 쳐들었다.
어떤 이유로도 인간의 후각은 절대 야생동물과는 비교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사내들의 행동은 뭔가.
벌름 거리는 콧구멍은 냄새를 맡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철수!”
우두머리의 지시에 모두가 갈대밭 너머로 사라졌다.
“후우!”
오민철은 그제서야 크게 숨을 내 쉬었는데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정말로 냄새를 맡는 것일까?”
권총수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하는 것 같았다.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나 내가강기를 이용해 오민철까지 덮어버렸으므로 절대 냄새를 맡을 수는 없다.
더운 지방이고 낮에 활동하면서 땀을 흘리다 보면 비록 말라도 냄새까지 지울 수는 없다.
네이비 씰에서 펼쳐 낸 전술일지가 있다.
과거에 있었던 작전들에 대한 평가를 통한 장단점을 분석해 놓은 것인데 거기에 보면 냄새로 인해 몇 번 위기를 겪었다는 내용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베트남전이었다.
베트콩의 후각이 발달했다기 보다는 주위 지형과 환경이 갖고 있는 특유의 냄새 말고 다른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더라는 것이다.
강바람은 권총수와 오민철 쪽에서 용병들 쪽으로 불고 있다.
그렇다면 냄새를 이용해 충분히 어떤 실마리를 찾아 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동물처럼 냄새를 맡는 건 오늘 밤 처음 본다.
“일본 놈들 맞지?”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바위 뒤에서 나와 차를 덮어 놓은 나뭇가지를 치우고 시동을 걸었다.
차는 숲을 떠나 먼동이 터 올 때쯤 희미한 안개에 덮인 낯선 도시로 들어섰다.
시리아의 중북부에 있는 아부카말이다.
이른 아침의 시내는 조용했다.
차량통행도 뜸했고 가게들도 문을 아직 열지 않았다.
차는 한가할 정도인 도심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했다.
아부카말 시청 앞을 지나 십분여 달려 작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곳도 내전의 파괴를 벗어나지는 못해 골목의 담장들과 집들이 무너지고 부서진 곳이 적지 않았다.
골목으로 쏟아진 건물들의 잔해 사이로 한 여자가 아이를 등에 업고 가고 있었다.
차는 쓰레기더미 가득한 담벼락 아래 멈췄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골목 좌우를 살핀 뒤 바로 옆 대문이 열려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흙벽돌로 지어진 야트막한 단층집이었다.
집안은 아무도 살지 않은 것처럼 조용했으며 지붕 한쪽이 무너져 있었다.
권총수는 천천히 집안을 구경하듯 살피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본채와 헛간 사이로 작은 통로를 발견하고 걸어갔다.
비좁은 통로를 빠져나가자 집 뒤로 작은 텃밭 같은 마당이 있었으며 한 사내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사내는 권총수와 오민철이 나타났지만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고 구멍 난 그물을 꿰매느라 바쁘다.
“타마르씨?”
“먼 길 오셨을 텐데 우선 앉으시오.”
올 줄 알았다는 듯 자연스럽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집과 마당의 턱이 되는 시멘트에 주저 앉았다.
그날 이후 타마르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나중에서야 자신을 찾아왔던 백인 사내가 CIA요원이라는 걸 알았지만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지구상에서 그런 큰 돈을 주면서 관계를 맺자고 다가올 집단은 그들 뿐이다.
그는 곧바로 가족들을 이웃 터키로 피신 시켰다.
브로커를 통한 밀입국이었기 때문에 다른 전쟁 난민들과는 달랐다.
터키에 작은 농가 한 채를 구입할 수 있었고 인근에 크지는 않지만 농사를 지을 땅도 매입했다.
자신이 떠나지 않는 건 나름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하지만 CIA정보원이 돈 되는 직업이라는 걸 알았다.
가족들을 안전한 터키로 떠나보낸 것도 본격적인 정보원 노릇을 하기 위해서였다.
일용직 노동자에서 근처 유프라데스강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로 탈바꿈 한 것 역시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일용직 노동자 보다는 어부의 수입이 조금 더 낫다.
혹여 자신의 씀씀이가 의심 살 수도 있기에 미리 배를 사고 그물을 준비 한 것이다.
툭!
그물을 꿰던 일을 멈추고 두 사람 옆으로 나란히 주저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내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