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2: 잠입(1)
조동수를 보내고 난 권총수는 회사 마당 한쪽에 서 있는 오래된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섰다.
“뭔가 있는 것 같지?”
오민철이 다가와 슬쩍 묻는다.
“그러게!”
권총수는 아카시아 나무 줄기에 등을 기댔다.
자위대 출신 용병을 겪어본 프린스의 말에 의하면 생각보다 출중한 기량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일본 자위대의 복지는 세계 정상급으로 알려졌다.
좋은 장비에 금전적 지원까지 더해지면 병사들의 전투력이 뛰어나지는 건 당연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긴 한데.”
이번 사건은 신문기사에서 접했다.
그런데 당시 기사를 보는 순간 온 몸에서 열이 확 피어나면서 긴장하는 자신의 신체 반응에 당황했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그런 경험은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맥보란을 만나 사건의 경위에 대해 질문한 것이다.
* * *
비행기가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중 이십 여명은 한국인이었는데 모두가 반팔 점퍼를 입고 있었으며 왼쪽 가슴에 대유건설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대유건설은 지금 이라크 알포 신항만 공사와 더불어 이라크 서북부에 있는 하디타 댐 공사를 맡고 있다.
후세인 사망 이후 정부군과 반군의 오랜 충돌에 이어 IS와의 전쟁으로 하디타 댐이 붕괴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이십 여명의 한국 근로자들은 곧바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하디타 댐 공사현장까지는 버스로 6시간 정도 걸린다.
인천에서 국적기를 타고 사우디 리야드로 왔다가 그곳에서 에미레이트 항공으로 환승하여 도착하는데 10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버스로의 이동이 시작되자 눈을 뜨고 있는 근로자들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피곤에 지친 듯 잠속에 빠져 들었고 단 두 사람만 맨 뒤에 앉아 조용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권총수와 오민철이었다.
국정원에 의해 대유건설 근로자로 신분 세탁을 하여 지금 이동하는 것이다.
하디타 댐에서 이번 사건이 일어난 시리아 아부카말까지는 150킬로 정도 떨어져 있다.
비록 비포장이지만 도로가 뚫렸고 옆으로는 유프라데스강이 흐른다.
이미 가미카제 보안업체에 대한 조사는 끝났다.
맥보란이 보내준 정보에 의하면 어디에도 흠잡을 곳이 없는 일반 보안 기업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과는 의심을 받을 만한 점이 없었으나 맥보란은 물론 조동수를 포함한 국정원 고위층에서는 뭔가 엄청난 냄새가 난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냄새.
물론 어떤 냄새인지 역시 말하는 이는 없다.
이제 남은 건 권총수와 오민철이 가미카제 용병들이 활동하고 있는 현장인 시리아의 아부카말로 잠입하여 살피는 것이었다.
“석유도 있고 특히 종교적 유적이 많아 정치가 제대로 서면 잘사는 건 시간 문제 같은데 말이야.”
오민철이 멀리서 원유를 퍼 올리는 이라크의 시설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정치인은 절대 나라가 부강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데?”
권총수가 물었다.
“정치인은 자신의 권력에만 관심 있지 국민의 삶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외인부대시절 프랑스 소대장이 떠들던 얘기 아냐? 내가 봐서 이라크가 대표적인 것 같아. 아니지 중동의 산유국 전체가 그 말 속에 들어간다고 봐야겠지.”
부자가 될 수 있는 자원을 수두룩하게 갖고 있다.
그러나 종교에 의해 갈라지고, 종교가 권력까지 장악하면서 그야말로 신권정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킨다는 명분으로 끊임없이 여론을 분열시키고 갈라치기 한다.
차별과 분열이 심할수록 자신들의 권력은 탄탄해진다.
외인부대 프랑스 간부들의 정치인에 대한 불편한 시선은 상당했다.
또한 우리와 달리 그들은 군인 신분인데도 어디서나 서슴없이 비판했고 지지했는데 우리 군대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해 있을 때 출발했는데 현장에 도착하자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려 앉아 있었다.
모두가 내려 숙소로 들어갔지만 권총수와 오민철은 커다란 종려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그곳에 혼다 SUV 한 대가 주차되어 있다.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꽂아 돌리자 문이 열린다.
운적석에 앉자마자 의자 밑을 뒤졌다.
권총 한 자루가 잡혀 나오는데 글록 19다.
“소총도 이상 무!”
트렁크에 실린 자동소총을 살피던 오민철이 만족스런 표정을 하며 조수석에 올랐다.
오민철 역시 의자 아래에서 권총을 꺼냈는데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총기 이상 무!”
전쟁할 때처럼 오민철은 목소리를 높였다.
부우웅!
혼다 SUV는 하디타 댐 주차장을 떠나 시리아 국경으로 이어지는 8번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길은 비포장이다.
그렇지만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한참 달려가다 오른쪽으로 흐르는 강을 발견했다.
유프라데스강이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권총수는 액정을 보더니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잘 도착했습니까?”
맥보란이다.
모든 장비는 CIA에서 준비했다.
그들 역시 이번 사건에 어떤 문제가 개입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고 국정원과 합동작전을 펼치고 있다.
“또 연락드리죠.”
권총수가 핸드폰을 내렸다.
오민철은 콘솔 박스에서 서류를 꺼내 랜턴을 비추었다.
아부 카말의 시장과 경찰서의 고위 간부들과 현지에 주둔하고 있는 시리아 제19보병여단의 여단장 및 핵심참모들에 관한 인적 사항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외우라는 것이 맥보란의 설명이었다.
“랭글리 자식들은 역시 달라. 어떻게 이런 정보를 이만큼 구체적으로 확보할 수가 있지.”
“그때 언제더라. 맥보란에게 CIA정보력이 어느 정도냐고 물은 적이 있어. 물론 가르쳐 줄리도 없지. 헌데 의외로 빙긋 웃더니 신(神)이 아는 건 다 알고 있다고 보면 된다라고 했어.”
“신이 아는 건 다 알고 있다?”
놀라운 대답이다.
모르는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진 게 있었어. 그 정도 놀라운 정보력이라면 혹시 북한 김정은의 동선도 알고 있지 않을까.”
“물어봤냐? 대답하든?”
“웃기만 할 뿐 그에 대한 대답을 전혀 않던데.”
부우웅!
차는 어둠을 뚫고 사라졌다.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고 20여분 정도 지났다.
지금은 시리아 땅이다.
권총수는 잠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강바람도 쐬이고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차에서 내린 것이다.
두 사람은 길가에 서 있는 커다란 포플러나무 아래 앉았다.
딸칵!
서로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앉아 느긋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달빛 좋고!”
때마침 보름인지 둥근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어제가 아버지 생신이었는데.”
“아무것도 안 보냈어?”
“돈!”
“그럼 됐지 뭐.”
“총수야”
오민철은 포플러나무에 등을 기댔다.
“그 여자와 결혼해야 할 것 같다.”
“누구, 학교 선생님이란 분.”
“그동안 연락이 없어서 떠났나 싶었는데 아버지 생신 선물을 보냈다는 거야.”
“형이 용병이라는 말에 등 돌렸다고 했잖아.”
“그렇지. 용병일 당장 그만 두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결혼할 수 없다고 해서 그럼 헤어지자고 했지.”
이후 연락 한 번이 없었다.
어느새 10개월이 훌쩍 지났고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어제 누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그런 내용을 전달 받은 것이다.
“어느 여자가 전쟁터가 직장인 남자를 좋아 하겠어. 더구나 국가를 위해 죽기라도 하면 훈장도 받고 이웃의 시선들이 따뜻하기라도 하지. 하지만 돈벌기 위해 돌아다니는 용병이 죽으면 그냥 그걸로 끝 아냐.”
“돈보다는 명예?”
“그랬나봐. 차라리 파견 군인이라면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지만 용병이라는 것이 굉장히 거북한 모양이야.”
“선생님이면 자기가 벌어도 두 식구 충분히 먹고 살만하지. 그러므로 그런 위험한 일을 하는 걸 싫어 할 수도 있고.”
쉿!
갑자기 권총수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재빨리 담뱃불을 껐다.
권총수의 행동을 보며 오민철도 번개처럼 담뱃불을 끄고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 들었다.
권총수의 눈이 빛나는데 내공을 끌어 올리는 모양이었다.
오민철이 쳐다본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이다.
“신음소리야.”
숨이 끊어져 가는 거친 신음소리다. 그건 누군가 근처에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귀를 세워도 오민철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형은 여기서 기다려.”
어딜 가냐고 물으려고 했지만 권총수는 이미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없다.
갈대가 우거졌다.
한국에서 보는 갈대와 달리 이곳의 갈대는 키가 크지 않고 촘촘하지도 않다.
드문드문 서 있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되는데 권총수는 눈을 좁혔다.
20여 미터 전방에 웅크린 물체가 있다.
거친 숨소리가 느껴지는 걸 보면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었다.
‘AK’
웅크린 사내 옆으로 총 한 자루가 떨어져 있는데 AK였다.
슷!
순식간에 다가선 권총수가 권총을 들이댔지만 사내는 꼼짝하지 않았다.
‘쿠르드 민병대’
낡은 야전상의에 헐렁한 바지를 입었다.
“말할 수 있겠소?”
반응이 없다.
권총수는 사내의 등 뒤로 다가가 명문혈에 손을 댔다.
사내의 손바닥에 장심을 대고서도 얼마든지 내기를 주입할 수 있는 경지이지만 빠른 효과를 보려면 명문혈이다.
“컥!”
내기가 들어가면서 몸속의 기가 팽창하자 막힌 핏물을 토해 낸 것이다.
커럭커럭!
숨소리가 확실히 커졌다.
가래끓는 소리가 난다는 건 최소한 대화는 나눌 수 있는 상태였다.
권총수는 조금 떨어져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근처 일백 여장(300미터)안에는 어떤 기척도 없는 걸 확인하고서 담배를 피워 문 것이다.
“누구시오?”
권총수는 담배를 물고 돌아보았다.
말을 알아먹어서가 아니라 무슨 말이 들렸기 때문이다
사내는 남쿠르드어를 썼다.
쿠르드족 언어는 여러 가지다.
아랍어, 페르시아어, 자자어, 소라니어 등 십여 개 이상이다.
그중 자자어나 소라이어는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지금 사내가 사용하고 있었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꺼내 녹음 기능을 켰다.
이어 고개를 쳐든 사내를 보았는데 상처가 심하다.
앞가슴이 피로 범벅이 되었는데 총알이 어깨를 뚫었다.
피가 가슴으로 흘러내리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사내는 흘긋 옆에 있는 AK를 살폈지만 총을 향해 손을 뻗지는 않았다.
권총수가 자신의 몸 상태를 잠깐이나마 안정시켰다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누구시오?”
같은 소리다.
권총수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누구냐고 묻는 것으로 판단했다.
권총수라고 말하려다 사막의 흑새라는 이름이 훨씬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사막의 흑새.”
화악!
예상대로 사내의 눈이 접시만큼 커졌다.
가만 놔두면 찢어질 것 같다.
“오오오!”
놀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권총수는 좀 더 녹음기를 가까이 댔다.
사내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는 것 같더니 무슨 얘긴지 모를 말을 했다.
권총수는 알아듣지 못했으나 본능적으로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고 직감했다.
사내의 눈빛이 시들어간다.
생명이 다 된 것이다.
사내는 마지막으로 뭔가 중얼 거렸는데 나중에서야 그 뜻을 알았다.
‘쿠르드 독립 만세.’
사내는 숨이 끊어졌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권총수는 죽은 사내를 바라보다 모래를 파고 묻어 주었다.
큰 비가 오면 쓸려 내려 갈 것이나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래도 이것뿐이다.
사내를 묻어주고 돌아오자 오민철이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권총수는 간단히 상황을 설명한 뒤 오민철의 핸드폰을 빌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압둘가니.”
블랙잭 리야드 지사장이며 전 사우디 특수보안군 출신이다.
“자는데 미안해요. 지금부터 내가 틀어주는 쿠르드어를 듣고 해석 좀 부탁합니다.”
그리고 녹음된 사내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